평생토록 싸울 신앙 여정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대부분의 신자들이 죄를 안 지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반면에
그만한 열성과 시간을 투자해 선을 행하려 하지는 않는다.
죄를 멀리하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죄만 멀리하면
동시에 선과도 멀어진다는 면에서 결과적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또 죄를 안 지으려 노력하는 것은
죄에서만 빠져 나오려고 안간 힘을 쓰는 셈이니까
여전히 어느 정도는 자신이 죄에 묶인 상태이다.
자연히 어떤 일을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율법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율법주의란 본질상 위선이 따를 수밖에 없다.
어떡하든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보여야 하므로
확실히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를 드러내려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정한 특별한 규정(rule)에 따라 행하는 것이 신앙의 최고 목표가 된다.
성경은 자신의 도덕적 양심에만 의존하는 율법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9:9,10)
또 육체의 예법은 경건에 약간의 도움만 있지 온전한 평강과 자유를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신자는 하나님 안에서 이미 완전히 산 자다. 정말로 산 자 같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마음껏 누리며 활기차게 살고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선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 의지를 동원해서 억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선이라도 억지로 행하면 또 다른 가식적 율법주의로 흐른다.
자신의 전부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면 기꺼이 자발적으로 선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는 연약하고 아직도 죄의 본성이 살아있지만
주님의 영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면 그분의 거룩한 권능이 우리를 주관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경건에 이르는 길로 육체의 연습보다는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라”(딤전4:10)고 권한다.
신자는 무슨 일에서나 주님의 은혜를 받고 그 권능을 실천하는 영역에선
(자신의 기질 자체를 바꾸거나, 개인적 일에 욕심을 내는 측면이 아니라)
긍정적, 낙관적, 능동적,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해야 한다.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그분께 드리면 사용하는 이는 바로 그분이시지 않는가?
자신의 존재와 삶을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관토록 만드는 것이
정작 신자가 평생을 싸워야 할 신앙 여정이다.
8/20/2010
정작 신자가 평생을 싸워야 할 신앙 여정이다.
제 평생에 은혜가 왕노릇하는 삶이 되기를 원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