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1:10-11 & 16-18) 육십만 개의 무덤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5)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2)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수1:10-11 & 16-18)

 

구세대와 판이하게 달라진 신세대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백성들이 자기를 충성된 종으로 온전히 인정해줄지가 염려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세운 종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당신께서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동행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아가 평생에 그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남은 문제는 백성들이 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부입니다. 본문은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처음으로 내린 지시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백성들 또한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17절) 여호수아가 명령하면 다 행하고 보내는 곳에 다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모세에게 수시로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으며 불순종했던 아버지들 세대에 비해 상당히 발전한 모습입니다.

 

실제로 아이 성 전투 때에 여호수아가 만류했음에도 고집을 세워서 올라간 일 말고는 가나안 정복 전쟁은 그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고 큰 어려움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첫 전투인 여리고 성에선 상식과 이성으로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방식임에도 한마디 반론은커녕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어떻게 해서 출애굽 이후의 이스라엘의 모습과 여호수아서에서의 모습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었던 것입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했고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했음이 첫째 원인이자 정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의 일입니다. 현실에선 신앙생활도 일상생활과 마찬가지로 신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책임 하에 분별 판단 결정 시행 평가 수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과 인간을 다스리는 원리를 잘 깨달아서 자신의 삶에 실제로 적용해야합니다.

 

하나님이 거듭난 신자와 평생토록 동행 해주심은 마치 사람이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구태여 요청 내지 의식하지 않아도 그분은 함께 해주시고 신자를 떠나는 법은 전혀 없습니다. 엄격히 말해 신자들이 하나님 함께 해달라는 간구만큼 틀린 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자와의 동행은 한 순간도 떠나지 않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신자에 대한 당신의 주권적 계획을 신자의 순종과 관계없이 세상의 어떤 방해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신자에게 매를 들더라도 반드시 당신께서 이루십니다. 신자가 정작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자기 인생에 얼마나 아름답고 진실 되게 작용되게 하느냐 여부입니다.

 

그러려면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감사함으로 기꺼이 그분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일일이 벌을 주시지는 않으나 그 인생에 결코 참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대로 따라가지 않으니 아무리 기도한들 여전히 자기 혼자서 고달픈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신자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만 기도하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바의 거의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구세대처럼 자기들 원하는 대로 결말지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해주지 않았고 나의 불행을 방관했다는 불평과 원망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럼 고난이 끝나도 단지 수동적으로 패배만 면한 꼴입니다. 삶에서 믿음으로 적극적 주도적으로 승리하는 일은 평생 가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여호수아에게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오직 한 가지 조건만 걸었습니다.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7절) 그분의 계명을 다 지키는데 그분의 권능과 은혜가 함께 해주지 않을 리는 없습니다. 생명을 유지하려면 매 순간 호흡해야 하듯이 신자가 매순간 신자로서 생명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해야 할 바입니다. 요컨대 말씀과 기도가 서로 떨어져선 안 되는데 말씀은 뒷전이고 기도만 하고 있으니 신앙생활이 주변 여건에 질질 끌려 다니는 초라한 모습을 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육십만 번의 장례식

 

이 단계에서 이스라엘 신세대들의 나이도 많게는 60살이 되었습니다. 가데스바네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에 군대징집 연령인 20세 미만은 미성년자로 하나님의 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 후 사십년이 지났으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의 신세대들이 여호수아에게 순종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아버지 세대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광야에서 죽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속담에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합니다. 귀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풍요를 누리다가 죽었다면 억울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그랬다면 자식으로서 불효했다는 죄책감도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세대들은 자기들이 불평한 대로 애굽으로 돌아가 먹고 싶은 것이라도 실컷 먹어보고 죽었으면 덜 억울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매일 무미건조한 만나만 먹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만나를 거두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사십 년간 너무나 무료하게 그저 생명만 연장하는 아무 의미와 가치가 없는 삶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나마 의미 있는 일이라곤 먼저 죽은 자들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기들도 얼마 안 가 똑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서글펐겠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서부 개척 영화를 보면 비옥한 새 땅에서 목장을 지을 꿈을 안고 서부로 향해 가다가 인디언 습격을 받던지 병에 걸려 누가 죽으면 그 자리에서 묻고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며칠 지체할 수 없어서 장례식을 격식차려 치룰 여유마저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에 다시 찾아와서 제사나 예배를 드릴 기약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땅에 간단히 묻고 나무로 십자가를 세우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정확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 그렇게 버려두고 바로 떠나야 하는 유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쓰라리겠습니까?

 

이스라엘의 광야 사십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나무와 풀은커녕 물도 없고 흙먼지만 날리는 황량한 광야에 그냥 파묻어야 합니다. 성막 위의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언제든 부모님을 그대로 두고 떠나야만 하는 자식 세대들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겠습니까?

 

민수기에 따르면 군대에 나갈 이스라엘의 장정들의 숫자가 약 육십만 명이었습니다. 그럼 광야 방황 기간 동안에 육십만 번의 장례식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광야에 돌무덤만 육십만 개 남겨두었다는 것이 평생 노예로 살다가 구원 받은 이스라엘 모든 기성세대 인생의 결산서입니다. 이보다 비참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순종만이 유일한 살 길이다.

 

이스라엘의 신세대가 나서부터 어른이 되도록 목격한 일이라고는 부모들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하여 벌을 받아 죽어가는 모습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로선 여호와의 계명에 불순종하면 정말로 죽음의 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철두철미 뇌리에 박혔을 것입니다. 육십만 번의 장례식을 치를 때마다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온전하게 실행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새삼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이 벌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도 많이 체험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마련하신 만나와 생수로 넉넉히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뜨거움을 막고 밤에 불기둥으로 춥지 않게 해서 사막의 극심한 일교차에도 건강을 잃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광야만 오갔기에 도적 떼들이 감히 넘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이방 세계의 최고로 영험한 주술사 발람의 저주도 자기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사이에 당신께서 혼자서 다 막으시고 도리어 축복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특별히 모세와 관련해서 크게 깨달은 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세는 노예 살이 하던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해 내어 제사장 백성으로 세워지는 거룩한 언약을 하나님과 맺게 했습니다. 생존이 불가능한 광야에서 사십 년 넘도록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며 이 자리에까지 인도해왔습니다. 무엇보다 백성들 모두를 진멸하려는 하나님의 불같은 저주를 모세가 자기 생명을 걸고 간절히 중보 기도하여 두 번이나 심판을 모면케 해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모세가 아니었으면 이스라엘도 없었습니다.

 

그런 모세마저 하나님께 벌을 받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말로 명하지 않고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을 냈다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자기 아버지들과 함께 광야에서 쓸쓸히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세운 공로를 생각하면 큰 기념관을 지어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기존의 육십만 개의 무덤과 똑같이 비석 하나 없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광야의 돌무덤으로 그 인생을 허무하게 마감했습니다.

 

물론 그가 하나님께 심판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충성한 종으로 천국 보좌의 한 자리를 차지했으며 약 1500년 후에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서 영광스런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죄인의 무덤에 함께 장사되어야만 했던 예수님을 예표하는 선지자이기에 육십만 죄인들의 무덤과 함께 똑같은 모습으로 묻혔던 것입니다.

 

모세의 죽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당신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에 상응한 징계 혹은 벌을 받는다는 원칙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으로 신세대에게 엄위하신 하나님에 대해 가르쳤고, 그 후손들에게도 예수님처럼 어디에 묻혔는지 모르는 무덤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에 대해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세대들로선 모세마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모든 것이 허무하게 변했는데 자기들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음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죽기 직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불순종함이 생명과 죽음을 가른다고 그렇게 반복해서 강조했던 당부가 신세대들에겐 진짜로 피부에 와 닿았을 것입니다. 비석 하나 세우지 못하고 부모를 광야에 묻었을 때, 또 모세의 장례식을 치를 때에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앞에 소름이 끼치는 경외감으로 그분 앞에 무릎 꿇었을 것입니다.

 

사흘 치 만나를 모으라.

 

신세대들은 여호수아가 모세 곁에서 40여년을 수종하는 모습도 다 보았습니다. 그들로선 여호수아가 후계자가 된 것에 크게 안도했을 것입니다. 지금 지도자로서 첫 업무를 가나안 땅으로 건너갈 차비를 갖추라고 합니다. 그 명령에 불순종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첫 명령이 조금 특이합니다. 삼일 안에 요단을 건너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것이니 양식을 예비하라고 합니다. 이는 쉽게 따를 수 있는 명령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서 5;12에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자 만나가 그쳤다고 말했으니 여전히 만나가 그들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 만나를 삼일 동안 모으라고 말합니다.

 

출애굽 후에 백성 중에 욕심을 내어서 다음 날 먹을 만나까지 모았더니 벌레가 생기고 썩어서 냄새가 났지 않습니까?(출16:20) 여호수아만큼 그 사실을 잘 아는 이가 없습니다. 신세대도 부모들에게 그 일을 전해 들었고 또 매일 만나를 수거해야 하니까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이 순종했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지시였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계시 받은 말씀들이 아주 구체적이었고 그 말대로 실현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여호수아도 모세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구체적인 계시를 받았음을 백성들은 알았던 것입니다.

 

만나 사흘 치를 모으라고 말한 뜻은 사흘 후에는 광야를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 지긋지긋했던 만나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 즐겁게 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만나를 평소보다 훨씬 많이 내려주었고 삼일 분을 모아도 전혀 썩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매우 구체적일 뿐 아니라 어긋날 리도 결코 없습니다. 아니 그대로 실현되지 않을 일이라면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여호수아의 첫 지시에 하나님이 힘을 실어주어서 새로운 지도자가 됨에 전혀 부족함에 없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모세에게 충성하듯이 여호수아에게도 충성하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16절)

 

바꿔 말하면 여리고 성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이 백성들의 기도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세대들은 단순히 만나를 삼일 치 모으라고 하는 본문의 지시처럼 여호수아를 통해 받은 성 주위를 돌아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뿐입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실제로 여리고 성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기도하라는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 양각 나팔을 불면서 앞장서고 백성들은 뒤따라 행진하라고만 했습니다.(수6장)

 

요컨대 그들은 하나님 당신께서 죽음으로 맹세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는 명령에 불순종하면 죽음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부모들이 바로 그 명령에 불순종해서 다 죽었는데 자식들이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면에선 이스라엘의 구세대들이 신세대들을 살리기 위해서 희생한 셈입니다. 한 집안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어 구원 얻는 경우에도 불신자 부모와 선조들의 희생이 어쩔 수 없이 따르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갖게 된 세대들이 믿음으로 행할 바가 없이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믿음은 무조건 따르는 것

 

이런 맥락에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로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서 두려워말라고 세 번이나 당부했는데(6, 7, 9절) 특이하게도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과 연결시켰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나안 족속을 무찌르라”고 해야 이 상황에 적합한 위로와 격려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당신의 명령을 따르는 일에 강하고 담대해져 두려움이 없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가나안 진군의 명령이니까 같은 뜻이지 않느냐고 치부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름에 주목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니까 당연히 당신께서 다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대신에 마음을 담대히 해서 가나안 족속과 전투하여서 승리하라고 하면 승리를 하게 되는 원인이 신자에게 달렸습니다. 이런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런 정미하고 온전한 의미를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다 하나님은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려면 담대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7절) 온 율법을 다 지키라고 했으므로 전쟁이 아닌 평화 시에도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는 담대한 믿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코가 석자라서 하나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지만 위급한 고난과 문제만 해소시켜주면 정말로 뜨거운 열정으로 순종하겠다고 너무나 자주, 아니 매번 핑계를 대지 않습니까?

 

솔직히 따져 보십시오. 아무 문제없을 때에 얼마나 하나님 뜻대로 거룩하게 살았는 지를 말입니다. 그저 풍요함을 즐기기 바빠서 하나님은 완전히 뒷전이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거꾸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니까 온전히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신자에게 고난과 문제를 이기기 위해선 구태여 담대한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놓아두어도 믿음이 강해지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아주 겸손해집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봉사 구제도 열심히 합니다.

 

정작 담대한 믿음이 필요할 때는 바로 거룩하게 살아보려 할 때입니다. 그분에게 불순종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일은 교육과 훈련이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누구라도 그 어떤 주저함이나 부자연스러움 없이 자동적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을 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따라가는 일은 모든 신자에게 가장 하기 힘든 일입니다. 성경도 그래서 지금 우리 생각에도 부자연스럽고 이상하게 말씀을 지키는 일에 두려워말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란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경건하고 신령한 차원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고 심지어 치사하고 비겁한 모습을 띨 때도 있습니다. 구세대들도 가데스 바네야에서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들도 어서 빨리 광야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집과 직장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소원과 열정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순종한 이유는 알다시피 아낙 자손이 너무 장대하고 자기들은 메뚜기처럼 작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처자들이 잡혀갈 것이 두려웠고 자기들 소원대로 정상 생활이 불가능할 것이 빤히 보였습니다. 가뜩이나 노예근성에 젖은 데다 연약한 믿음의 이스라엘인지라 이해해줄 만도합니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결핍된 것

 

그런데 그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서 담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같은 의미의 말을 반복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지적한 대로 하나님 명령이라는 인식이 분명히 있었다면 하나님이 승리해줄 것을 확신했을 것이고 그럼 담대하게 전투에 임했을 것입니다.

 

알기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무조건 옳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뤄진다, 나아가 당신께서 생명을 걸고 맹세한 일이라면 반드시 생명이 살아나고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죽음이 따른다는 점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구세대들은 출애굽 후 그 때까지 하나님께 벌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하나님을 경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와 광야에서 넘칠 만큼 믿음의 연단을 이미 거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온전히 알 수는 없었어도 조금 치사하지만 하나님이 명령했으니 밑져야 본전이므로 일단 한 번 따라는 보자라고 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모세와 구세대들이 벌써 사십 년 전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웠을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 사상자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고, 자기들이 봐도 믿음이 너무 빈약하고 치사해도 무조건 하나님께 맡기고 따랐어야 했습니다. 우리 생각에 치사하고 비겁한 모습일지라도 일단 하나님 편에만 서면 그분은 그 모습대로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얼마나 치사하고 비겁했습니까? 자기 목숨 살리려고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거짓말 하고 팔아먹었습니다. 첩 하갈이 아들을 낳고 기고만장하는 대로 놓아두었다가 아내 사라에게 이전에 잘못한 일 때문에 찍소리도 못하고 크게 혼 줄이 났습니다.

 

엄밀히 살피면 그에게서 믿음의 조상으로 본받을 만한 모습이라곤 그리 없습니다. 불가능한 줄 알고도 하나님이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믿어서 믿음의 조상입니까? 아닙니다. 그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 처음에는 종으로 후사를 삼으려 했고 또 첩에서 자식을 얻으려 했지 않습니까? 그도 나중에는 다른 수가 없으니 밑져야 본전이니 믿어보자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된 근거는 인생 말년에 자기 생명보다 귀한 외아들 이삭을 아무 주저나 미련 없이 하나님께 바치는 모습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동안 자기 삶에 간섭하셨던 모든 차원에서 결국에는 그분이 옳았다는 것을 수없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계획하고 노력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기에게 유익했다는 것을 자신의 여러 실패한 경험에서 깊이 깨달았습니다. 자기 생각보다 그분의 결말이 훨씬 더 좋음을 알려면 당연히 자기는 실패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선하기에 그분의 말씀과 뜻에 완전히 전적으로 의탁하게 되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선조로 세우려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서 일단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만 그는 기근을 만나자 본토 같은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혈혈단신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친척인 조카 롯의 동행을 허락했고, 자기 집안도 아비들이 살았던 모습대로 일부다처제를 수용했습니다.

 

그가 나름의 최선의 결정이라고 선택했던 일들이 전부 처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애굽에서 아내를 팔아야 하는 큰 곤욕을 거쳤고, 조카 롯과는 목초지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고, 첩 하갈은 본처의 처분에 맡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셋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끔 모든 상황을 이끌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더러 당신의 명령에 순종케 하는 훈련을 당신께서 시행한 것입니다. 매번 훨씬 더 좋은 결말로 인도해서 앞으로도 항상 당신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옳고 선하다는 진리를 확신케 만들었습니다.

 

우리 생각에 우리의 믿음이 여전히 치사하고 비겁한 모습일지라도 일단 하나님 편에만 서면 그분은 그 모습대로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당신은 포도나무이니 가지인 신자들더러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순종할 수 없는 까닭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코 한 순간에 성숙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일생이 걸리도록 천천히 수많은 실패와 고난을 겪으며 조금씩 자랐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눈에 비치는 환경과 사건과 사람들에게서 직접적으로 순간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점차 하나님에게 영향을 받는 정도와 빈도와 세기가 커진 것입니다. 영적 성장이 신자 스스로 기도하고 찬양하고 묵상한다고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세밀하고 오묘하며 완벽한 섭리를 분별하고 그분 말씀대로 따라야 가능합니다.

 

믿음이란 그래서 자신이 처한 환경과 조건에서 자기에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점점 버리게 되고 하나님 안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여서 그것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실력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안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잘 분별하지 못하니까 신자로 수 없이 실패와 고난을 겪게 만듭니다. 그럴 때에 고난의 탈출만 믿음의 목표로 삼는 자는 평생을 가도 믿음이 자라지 못합니다. 힘들면 기도하는 정도밖에 안 됩니다.

 

반면에 당장에는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이해 안 되고 정 반대의 징조가 많아도 그분은 반드시 옳다고 믿고 그분의 뜻을 그분의 말씀에 비추어서 깊이 묵상하며 찾아가야 합니다. 꾸준히 그렇게 하는 자만이 믿음이 자라고 그 인생을 참된 의미와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성숙은 교회에서 기도와 봉사와 성경 지식에 능통한 것과는 별개입니다. 실제 삶에서 내 계획과 뜻대로 열심히 노력하여 얻는 성과보다 하나님의 섭리가 옳고 좋음을 체험했기에 그분에게만 의지해야 한다는 소원 욕심 열심 노력이 커져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알아서 하시라는 고백을 처음에는 마지못해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모든 것을 기꺼이 감사함으로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본성이 완악하고 체질이 연약한 우리 중에 온전히 기꺼이 의탁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평생에 걸친 정말로 힘겨운 씨름입니다. 인간이 말로 가르쳐 알아먹을 존재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아니 이 땅에 오실 이유도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로 타락했다는 뜻은 하나님과 그분의 절대적인 선에 대해서 청개구리 근성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순종해야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백성에게 절대로 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순종하면 반드시 자기에게 유익하고 속에서 샘솟는 기쁨을 하나씩 체험할 수 있습니다.

 

순종에 실패하는 이유는 신자의 소원 노력 열정 믿음이 약한 때문이 아닙니다. 꼭 순종해야 할 필요 이유 목적 특별히 기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된 것은 자기 소원을 기도해서 이루려고만 했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패뿐이라는 절박성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몰라도 무조건 그분께 맡기는 것이 순전한 믿음은 아닐지라도 매번 연약해서 넘어지는 우리에겐 차선, 아니 실질적으로는 최선의 믿음임은 분명합니다.

 

여리고 성 앞에 당도한 이스라엘의 신세대에게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죽었으면 죽었지 다시 광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백성들이 기도해서 무너뜨린 것이 아닙니다. 지난 사십 년간 육십만 개의 돌무덤을 쌓다보니 그런 의미 없는 죽음으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다는 절박감 때문에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랐던 것입니다.

 

믿음의 첫째 정의는 그래서 하나님과 등지는 순간 처절한 실패 절망 죽음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것입니다. 너무 강하게 표현했다면 삶에 허망하고 갈급함만 생기지 기쁨과 승리는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날마다 그분 말씀대로 살아가는 훈련을 실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십 년이나 교회를 다녔어도 그저 고난만 모면하려 하고 있습니까? 그래선 오히려 지금껏 경험했듯이 번번이 실패합니다. 일단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해야만 여리고 성 전투 같은 통쾌한 승리를 맛 볼 수 있습니다.

 

2/1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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