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의 할례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5:2-9)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9)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6)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수5:2-9)

 

 

너무나 느긋하신 하나님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에게 남은 일은 약속의 땅에서 제사장을 중심으로 율법대로 준행하는 그분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을 그 땅에서 몰아내어야 하는데 그 첫 상대가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한 시가 급한 것 같은데 하나님은 요단을 건너자마자 너무나 한가하게도 모든 남성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지시합니다. 할례의 상처가 완전히 낫기를 처소에서 기다리라고 명했는데(8절) 최소 일주일은 지체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시한 이유를 보면 꼭 그렇게 서둘러서 행했어야만 했는지 조금 의아합니다. 출애굽 후에 “광야 길에서 난” 신세대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4절) 광야에선 하나님이 구름과 불기둥으로 인도하는 대로 옮겨야 했고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고 또 어디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지도 몰랐습니다. 할례 후에 상처가 아무는 휴식을 가질 수 없으니까 할례를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입니다.

 

반면에 “그 나온 백성들은 다 할례를 받았다”고 합니다.(5절) 구세대들은 비록 애굽에서 노예로 고생했으나 한곳에서 거주하며 정상생활을 했기에 할례를 행할 여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세대들도 지금 가나안에 들어와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니까 그 동안 행하지 못했던 할례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출애굽 이후 사십 년이 넘도록 여호와의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이 성막 위에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구세대들은 만나 뿐 아니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눈으로 생생히 보았는데도 그분을 거역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완악함만 탓해선 안 됩니다. 아무리 큰 기적이라도 매일 일어나면 그냥 당연한 일상사로 여기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입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사실은 하나님의 엄청난 기적 가운데 매일 매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목숨까지 날아갈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만 해도 신자라고 절대 피해가지 않기에 주님이 도피성이 되어주지 않으면 언제 누가 희생자가 될지 모릅니다.

 

신자의 삶은 하나에서 열까지 그분이 동행해주시는 너무나 큰 권능 속에 붙잡혀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게 된 것 만한 큰 기적도 없습니다. 정말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모든 일상의 기적에 너무나 무심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처럼 그분께 의심 불평 원망하기에, 그것도 기도하면서 그러기에 바쁘지 않습니까?

 

할례 없는 백성이 되었더라.

 

할례를 행해야 할 두 번째 이유를 성경은 그들이 “할례 없는 자가 되었기”(7절)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은 반드시 할례 있는 자여야 하지 이방인처럼 할례가 없는 상태로 있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남성 포경수술이 일반화되었지만 고대에는 유대인들만의 종교의식이었습니다. 할례는 시내 산에서 모세가 율법 규정으로 받기 훨씬 전에(레12:2,3) 아브라함 때에 이미 모든 유대 남성은 난지 8일 만에 행하도록 하나님이 명했습니다.(창17:9-14)

 

최초로 할례를 행하게 한 뜻은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어서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의 징표였습니다.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창17:13)이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살을 잘라낸 상처의 흔적이 평생을 가듯이 여호와가 이스라엘 후손에게 언약의 하나님이 되어주겠다는 그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히브리 자손이 아니라도 그들 중에 우거하는 이방 사람이나 종으로 산 이방 노예도 당신의 언약 백성이 되길 소원하면 그 표시로 할례를 받게 한 후에 모든 면에서 히브리인과 동일한 대우와 축복을 베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호와는 유대 민족만을 편애하고 이방인을 차별하고 대적하는 이스라엘의 종족 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생 라합이 고백한 대로 하늘과 땅을 다 주관하는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출애굽 하는 날 밤에 유월절 어린 양을 먹을 때에 할례 받은 이방 사람과 종도 함께 참여하게 했습니다.(출12:43-51) 그날에 이스라엘과 함께 따라 나온 중다한 잡 족들도 이미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했던 자들이라 자기들 장자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을 따라 나올 리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히브리인들은 애굽에서 사백 년간 노예로 살고 있어도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예라는 정체성은 확실히 유지했고 그 증표로 할례는 지속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할례가 없으면 아브라함의 후예도 여호와의 언약 백성도 아니며 가나안 땅을 소지할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가나안을 차지할 전쟁을 치르기 직전이라 너무나 당연히 할례는 행해야만 합니다.나아가 전쟁 중에 죽으면 결과적으로 할례 없는 백성으로 남게 되는 것마저 막아주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요컨대 할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받아누릴 수혜자라는 표시였습니다. 너희는 나의 택한 백성이므로 이번 전쟁에서도 끝까지 보호하여 승리케 해주겠다고 하나님 쪽에서 새삼 확실하게 다짐한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17:26)고 선포했습니다. 할례는 언약백성과 이방족속을 나누는 기준을 넘어 다윗의 말대로 하나님의 군대라는 표시였습니다. 참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는 유대인들만이 갖는 자부심이자 특권이었습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으로 임재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출애굽 소명을 받고 애굽으로 갈 때에 그들이 나를 자기들 구원자로 인정할지 시험해볼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너를 보냈다고 말하면 된다고 답해주었습니다.(출3:15) 말하자면 애굽의 동족들이 여호와가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래서 할례를 지속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구세대는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소망을 붙듦으로써 애굽의 그 모진 노예살이를 견뎌냈던 것입니다. 모세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구원해내어 가나안의 접경까지 이끌면서 세상 어느 민족도 체험은커녕 상상도 못하는 온갖 이적을 다 베풀었습니다. 가데스 바네야로 진군만 하면 하나님이 그 땅을 차지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백년 된 소원이 실현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자가 잡혀 죽거나 노예로 비참한 상황에 빠질까 두려워서 한 순간에 그 약속을 포기했습니다. 지금껏 온갖 고생을 해가며 살아온 동기 목적 의미 가치였던 그 가나안을 말입니다. 처자식의 안전이, 정확히 말해선 자신들의 순간적인 두려움이 하나님의 권능보다 훨씬 더 커져버렸습니다. 거기다 먹고 마시는 것들이 너무 열악한데다 아침저녁으로 성막 위만 바라보고 그대로 따라야 하는 지긋지긋한 광야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진군하려니 장대한 아낙 자손 때문에 도무지 승산이 없을 것 같아 모세 대신 다른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다시 노예로 봉사해주면 죽이지는 않고 정상생활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때까지의 하나님의 은혜는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실감나게 비유하자면 정직하고 성실하지만 가난하게 사는 남편을 버리고 돈 많은 노인과 눈이 맞아 가출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린 광야 방황하는 벌은 그들이 지은 죄에 비하면 차고 넘치는 긍휼이었습니다.

 

구세대가 너무 치사하고 비겁해 보입니까? 솔직히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그분 뜻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분의 큰일에 쓰임 받고도 싶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크기와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사랑의 깊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막상 나와 가족의 안위에 위협이 조금만 가해지면 그런 열정은커녕 소망도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저 하나님께 의심 불평 원망하기 바쁘고 때로는 그분을 등지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버리지 않습니까?

 

생명을 바쳐라.

 

그런데 신세대가 행한 할례의식은 히브리인으로써 정체성을 확립시키려는 단순한 의미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가 할례를 제정한 과정들을 살펴보면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을 찾아와 후손을 하늘의 뭇별처럼 창성케 해주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가 그를 의로 여기셨습니다.(창15:6)

 

아브라함은 곧바로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창15:8)라고 반문했습니다. 말로만 약속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를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하나님은 짐승 제물들을 둘로 쪼개어 나누어 펼쳐 놓으라고 명했습니다.

 

한 밤중이 되자 하나님을 상징하는 횃불이 그 쪼개어진 짐승 제물 사이로 지나갔습니다.(창15:17) 고대의 언약은 두 약속의 당사자가 짐승 제물 사이로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만약 한쪽이 어기면 상대가 자기를 죽여도 좋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두려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하나님의 횃불만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도 그대로 성취되지 않는 법이 절대 없습니다. 고대의 언약식 관습에 능통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쪽에서 당신께서 죽는 한이 있어도 그 언약을 지키겠다고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

 

할례는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이 태어나고도 한참 후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약속의 외아들이 내년에 네 몸에서 태어난다고 구체적으로 예고하면서 행하라고 명했습니다. 그 할례는 아브라함으로선 하나님의 그 축복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의사표시였을 뿐입니다. 할례를 행해야만 아들이나 가나안을 주겠다는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의 신자에게 할례에 해당하는 세례나 침례 의식과 의미가 같았습니다. 그 세례식을 행해야만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났다는 신앙고백일 뿐이듯이 말입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이 행한 할례는 하나님에게 목숨을 걸겠다는 서약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이삭이 나서 청년이 되고 난 후 그의 인생 말년에 가서야 하나님이 그의 생명보다 귀한 그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명했습니다. 아브라함더러 자기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비로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당사자로써 그대로 지키겠다는 피의 맹세를 하라는 뜻이었고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스라엘 구세대들이 애굽에서 할례를 한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써 애굽인과 다르다는 정체성만 확인하는 절차였습니다. 언약의 한 당사자로써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서약하는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거룩한 율법을 수여 받을 때에 그대로 순종하여 열방 앞에 제사장 나라로 서겠다고 맹세하는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출24:1-11) 구세대도 비로소 언약을 어기면 목숨으로 갚겠다고 서약한 셈입니다.

 

피의 제사를 드려라.

 

놀랍게도 하나님은 본문의 신세대들의 할례에도 그들의 목숨을 걸라는 의미를 함께 부여했습니다. 할례 없는 백성이 아니라는 히브리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가나안 정복의 소망을 재확인하는 절차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고 구세대들이 시내 산에서 피의 제사를 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거는 맹세였습니다. 할례를 하면 피를 흘리게 된다는 외형적 모습 때문이 아닙니다.

 

할례가 아물도록 처소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지금 곧바로 전쟁을 치러야 할 군인들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적군이 알고 기습하면 전멸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지 않습니까? 야곱의 딸 디나를 히위 족장 세겜이 강간하고는 아내로 줄 것을 요청하자 야곱의 아들들이 크게 분노했습니다.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창34:14)고 이방족속과 결혼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비 야곱을 닮아 비겁하게도 히위 족속들에게 할례를 하면 디나를 아내로 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합니다. 그들이 할례를 행하여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곧바로 기습을 해서 전멸을 시키고 그들의 재산과 생축을 탈취해버립니다.

 

본문은 그와 정반대되는 상황입니다. 여호와께 할례를 하라는 명령을 받자 신세대들도 당장 이 사건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자칫 기습을 당하면 꼼짝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도 틀림없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순순히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들도 자기들 목숨을 걸고서라도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여하여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피의 제사로 맹세한 셈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간단합니다. 요단강의 급류가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발을 담그자 곧바로 끊어지는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자기들이 그 마른 땅을 다 건너는 동안 여리고 군대라곤 눈을 닦고 봐도 없었습니다. 그전에 기생 라합으로부터 여리고가 지금 메뚜기 신드롬에 걸렸다는 확실한 정보도 얻었습니다. 요단을 건너 진을 쳐도 전쟁에 대한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안심하고 할례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미리 다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에 주저하지 않고 순종했는데 실제로 그는 이삭을 죽이려 칼을 들었습니다. 일생에 걸친 온갖 문제와 고난들을 통해 여호와와 영적 씨름을 해오면서 그분 외에는 참 생명이 없음을 철두철미 절감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인간적 생각과 계획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오묘한 지혜를 수없이 체험했습니다. 무슨 말씀이든 그냥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될 정도까지 그의 믿음을 하나님이 성장시켰고 모든 여건을 그렇게 이끌었습니다.

 

드디어 자기 목숨을 하나님을 위해서 언제라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게 자랐습니다. 죽음을 코앞에 둔 그에게 하나님이 이삭을 통해 죽음의 맹세를 요구하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지막까지 고난으로 신앙연단을 시키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이삭 대신에 어린 양을 제물로 준비해 놓음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구원의 예표로 삼았습니다. 또 자기 전부를 바치는 순종을 통해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세우려는 뜻이었습니다.

 

구세대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으로 출애굽 시켜서 당신께서 사백년 전 선조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한 치의 어김없이 이루시는 분임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광야에서의 만나와 생수와 메추라기 등으로 당신의 권능을 여지없이 다 보여주었습니다. 시내 산자락에 이르렀을 때는 그 동안의 은혜가 넘쳐서 목숨 걸고 순종하겠다는 약속을 함에 염려하거나 주저할 만한 장애요소가 전혀 없었습니다. 구세대들도 하나님이 믿음이 자라게 하고 피의 서약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마련해주었던 것입니다.

 

본문의 신세대들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지난주에 하나님이 구세대와 동일한 신앙 교육과 훈련을 하나님 당신의 열심과 끈기로 지치지도 귀찮아하지도 않고 시행하고 있다고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요단의 급류를 무사히 건너고 본문의 현장에 이르도록 지나온 모든 경과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례에 참여할 이유와 의미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제사장들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자칫 기습을 당해 목숨을 잃을 수 있음에도 할례를 하게 함으로써 여리고 전투에서도 목숨 걸 수 있도록 예행연습을 시킨 것입니다.

 

죄까지 씻어주는 하나님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을 때에 디나 사건에서 선조들이 범한 죄도 생각났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자기들이 거꾸로 기습을 당할 처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기습을 이미 다 막아놓으시고 대신에 장막에서 상처가 나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에 그 죄악에 대해서 진정으로 회상해보라는 뜻입니다.

 

그런다고 이미 저질러진 야곱의 아들들의 죄까지 씻어지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은 각자의 죄로만 심판 내지 형벌을 주십니다. 그럼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함은 너희들은 결코 동일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신앙교육을 시키고 앞으로 비슷한 죄에 빠지는 잘못까지 미리 막아주시는 중입니다.

 

하나님이 신세대의 할례로 애굽의 수치를 씻었다고 말씀하셨는데(9절) 바로 그런 뜻입니다. 후손의 순종으로 선조의 죄가 씻어질 리는 없습니다. 구세대들의 할례가 아무 의미가 없는 허사였다는 것입니다. 비록 노예로 살아도 할례 없는 백성과는 달리 여호와만 주인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의 우상숭배의 죄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할례 있는 백성이 할례 없는 것처럼 스스로 수치스런 행위를 하는 바람에 여호와 당신마저 수치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족속들을 당신께서 앞장서서 몰아내어 줄 테니 즉, 우상을 숭배할 여건 자체를 없애 줄 테니 너희들만은 앞으로 거할 가나안 땅에서 절대 그러지 말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디나 사건을 주모한 시므온과 레위 두 아들이 내게 화를 미쳐 가나안 족속 앞에 냄새가 나게 했다고 탄식했습니다.(창34:30) 할례 있는 백성이 할례 없는 백성 앞에 수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나안 신들 앞에 수치 당한 셈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 사건을 거꾸로 재현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과거 수치까지 씻어주고 있습니다. 에굽과 가나안 양쪽에서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이름에 먹칠 한 죄를 용서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열방들 앞에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겠다는 언약을 당신께서 어김없이,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실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고 세밀하게 당신의 백성을 이끌고 계신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그 언약을 두려움이나 주저함 없이 지킬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마련하여 신앙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확신이 생기고 난 후에야 목숨을 걸만한 큰일을 맡겼습니다. 그전에는 믿음의 분량에 맞을 만큼만 당신의 일을 하나씩 조금씩 훈련시켜 나갔습니다. 거기다 지은 죄를 진심으로 회개케 하고 앞으로 죄를 지을 수 있는 기회마저 예방해주셨습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들이 결코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신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과 바다에 멀리 있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바로 가까이 있어서 쉽게 지킬 수 있다고 마지막까지 강조한 그대로입니다.(신30:11-14)

 

예수님의 피의 맹세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고난과 슬픔과 상처 등을 몸소 체휼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그것을 사역과 이적들을 통해 실현시키면서 당신의 하나님 되심과 당신의 생명과 길과 진리가 얼마나 고귀한지 다 계시해 주었습니다. 당신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실 수 있는 모든 근거를 충분하고도 넘치게 제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우리 모두의 죄 값을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대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셔서 당신을 대적하던 우리의 타락한 심령을 거듭나게 해주셨습니다. 십자가 구원의 진리와 은혜를 온전히 깨닫게 해주어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믿는 자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그 후로 성령님이 우리에게 내주하여서 평생을 떠나지 않고 우리를 모든 더럽고 비참한 죄악과 죽음의 세력에서 보호해주십니다. 성경의 진리를 우리의 삶에 실제로 거룩과 빛과 의로 나타나도록 범사를 주관해주십니다. 나아가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세상 끝 날까지 땅 끝까지 함께 해주십니다. 여호와는 모세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당신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당신의 표효라고 강조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후 아무리 세대가 바뀌어도 예수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온 당신의 백성에 대한 사랑과 권능에는 단 한 치의 변화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은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생명을 바쳐서 그분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당신만의 방식으로 끈질기게 훈련 교육시키고 모든 여건을 다 마련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런 과정이 아닌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를 붙들고 있는 그분의 의로운 오른 손에 힘이 빠진 순간도 단 일초도 없습니다. 죄에 찌든 본성이 아직도 생생한 우리로선 그분의 거룩한 인도가 이스라엘처럼 때로는 솔직히 귀찮고 싫을 때가 있지만 당신께선 그 신실함이 줄어드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설령 우리 계획대로, 그것도 인간적 방안이나 욕심에 젖어 행했어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죄와 세상으로 향할 때는 미리 막아주십니다. 심지어 알고도 습관적으로 지은 죄마저 회개로 이끄는 사건이나 계기를 그분께서 마련해주십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강권적인 징계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당신의 사랑의 품 안으로 되돌려주십니다. 범사를 정말로 그분 중심으로 분별 판단하면 매순간이 그분의 은총과 권능이 넘치는 기적의 연속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우리가 행할 일은 정말로 여리고로 진군하는 것뿐입니다. 주님이 명하신 마지막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스라엘 구세대의 가데사 바네야의 거역을, 여리고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도 결국은 우상숭배로 타락하는 후손들이 범한 잘못과 비슷한 실패를 매번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들과 똑같이 아주 간단한 이유 때문에 말입니다. 그냥 처자식이 염려된다는 것 하나입니다. 수십 년의 신앙생활을 해도 불신자 시절과 크게 나아진 것 없습니다. 주일 예배를 의무적으로 드리고 고난이 생겨야만 기도 뜨겁게 한다는 것 하나 빼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니 하려고 노력도 않고 그럴 의향도 없습니다. 심지어 성경조차 스스로 읽지 않습니다.

 

예컨대 자기가 소원하는 눈에 보이는 목표물의 주위를 밟아 돌면서 끈질기게 기도하면 주님이 준다는 너무나 값싸고 가난한 신앙만 붙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리고가 폭삭 무너뜨려졌듯이 그 건물을 아주 싼 값에 싸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신다고 믿고 있고 그것이 아주 좋은 신앙인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싸게 판 사람은 크게 손해 본다는 사실에는 전혀 생각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너무나 뻔뻔하고 탐욕적인 신앙입니다. 아니 신앙이 아닙니다. 여리고 성의 승리의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것이며, 요단강을 건넌 후에 할례를 하지 않은 것이며, 아니 요단강을 건너지도 않은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전혀 관계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에 아주 크고 굳건한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펴본 대로 하나님이 우리가 얼마든지 순종할 수 있을 만큼 다 준비시키고 주위 여건도 마련하고 앞으로 일어날 방해 위험마저 먼저 가서 제거해 놓으시고서 순종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언제 어디서나 그 상황에서 우리 믿음의 크기에 딱 적합한 그래서 크게 어렵지 않게 순종할 수 있는 작은 일들만 명하십니다.

 

우리에게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평생 자기 삶을 희생하며 당신의 일만 하라고 아무에게나 명령하지 않습니다. 스데반처럼 순교하는 자리에까지는 더더욱 밀어 넣지 않습니다. 그냥 단순히 할례 없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할례의 가장 기본 뜻이 무엇이라고 설명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신자로서 정체성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언약에 들어와서 그분의 축복의 수혜자가 된 것입니다. 불신자와 다르게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럴 소망과 열정만 있으면 그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얼마든지 다 마련 해주십니다. 바로 그것이 본문의 할례 기사는 물론 여리고 성 전투가 말하는 바입니다.

 

최대한 양보해서 하나님 이름에 수치를 끼치는 일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도 그마저 못한다고, 지금 내 코가 석자니까 이것부터 해결하라고 떼를 쓰며 자기가 갖고 싶은 땅만 열심히 밟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얼마나 가슴이 터지겠습니까? 혹시라도 예수님이 당장 다시 오시려고 신발 끈을 묶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완악했던 이스라엘의 수치까지 다 제거해주셨는데 두렵고 주저할 만한 방해 요소는 더 이상 없지 않습니까?

 

(3/1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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