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사자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5:13-15)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11)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8)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5:13-15)

 

천사 앞에 엎드린 여호수아.

 

이스라엘의 신세대는 여리고 군대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할례와 유월절 제사를 동시에 안전하게 거행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확보해 놓은 승리를 미리 감사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사백년 전 선조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약속의 땅을 차지할 일만 남았습니다.

 

총사령관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오자 어떤 사람이 칼을 빼들고 막아섰습니다. 그 동안 적군이라곤 개미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고 자기편이 가로 막을 리도 없습니다. 대신에 혼자 당당하게 나타난 모습에서 뭔가 신령한 기운이 넘쳐서 제사장이거나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럼 할례와 유월절 예식까지 마친 믿음의 종 여호수아라면 당연히 하나님이 격려하려 보냈다고 눈치를 챘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편인지 적의 편인지 물어봤습니다.(13절)

 

그럼 여호수아가 선한 천사만이 아니라 사탄과 그 졸개들도 큰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욥기의 서론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묵인 하에 사탄도 가시적으로 능력을 발휘해 사람들을 많이 현혹시켰습니다. 출애굽 때 애굽 술사들이 사탄의 힘을 빌려 모세가 일으킨 처음 두 번의 재앙을 흉내 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이 이방 주술사 발람에게 세 번이나 백지 수표를 제시해가며 이스라엘을 제발 저주해달라고 매달린 것도 실제로 저주의 효력이 심심찮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자 바리새인들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고 비난했습니다.(마10:24) 오늘날도 복음은 물론 문명과 완전히 동떨어진 미개지에선 주술사들이 저주를 실행시키거나 반대로 병도 낫게 해서 사람들로 사탄의 종이 되게 만듭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완전히 멸망시킬 때까지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조종 농간 아래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포기한 채 버려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믿음을 강요하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기꺼이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실 뿐입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을 먼저 믿고 순전히 따르는 신자들에게 맡기신 소명이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 역사하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사탄에게 절대로 조종 농간 당하지 않는 거룩하고 신령한 모습을 불신자들에게 보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천사로부터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노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곧바로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14절) 죄에 찌든 인간은 당신께서 허락하지 않는 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없으며 그분이 보낸 사자라도 그 앞에 고개를 들고 서있을 수 없습니다. 엎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그분의 처분에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 전에 천사에게서 성령의 크신 권능이 전해지므로 일개 연약한 피조물인 인간은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순간적으로 온몸에서 힘이 빠져서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천사가 대언하는 하나님의 말씀도 순전한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인간은 그분께 자신의 어떤 것도 속일 수도 감출 수도 없습니다. 완전히 발가벗겨져 들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신자 입술의 말은 물론 마음의 묵상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필연적으로 “주여 지금 말씀하시옵소서. 무슨 말이든지 제가 듣겠습니다.”라고 반응하게 됩니다.

 

너무나 싱거운 결말.

 

그런데 그에 대한 천사의 대답이 조금 이상합니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왔다면 여호수아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군대를 지휘하거나 그의 곁에서 전투에 대한 지략을 자문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여호수아가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14절)라고 물은 것도 이번 전쟁을 대비해 할례와 유월절 외에 또 행할 일이 있다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천사는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라고만 지시했는데 여호수아는 당연히 그대로 따랐습니다. 문제는 성경 기록이 거기까지가 전부라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 더 이상 다른 행동은 물론 대화도 없었습니다. 천사는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 것입니다. 초자연적 현상치고는 너무나 싱거운 출현과 과정과 결말입니다. 그것도 여리고 첫 전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정말로 심각한 시점에 말입니다.

 

단순히 여호수아의 충성도를 마지막으로 시험해본 것입니까? 아니면 그가 천사에게 누구 편이냐고 물었을 정도로 의심이나 겁이 많아서 다시 격려해주려던 것입니까? 그는 아말렉과의 전쟁이나 가데스바네야 사건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에서 그만큼 헌신된 종은 없습니다. 새삼 그의 믿음을 독려 내지 확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그의 발에서 신발을 벗겨서 그가 서있는 땅이 거룩하다는 점을 온전히 깨닫게 해주려는 목적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거룩하다고 말할 때는 알다시피 단순히 아주 선하고 아름답고 신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온 우주에서 하나님만이 거룩하십니다. 당신만이 창조주이고 다른 모든 것은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모든 사물이 그분의 통치를 받고 있고 그분께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존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세상에서 하나님이 직접 따로 떼어내어 당신께 속하게 만든 것도 자연히 거룩해집니다. 하나님이 순간적으로 순전하고 신성하게 변화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연약하고 불완전하고 심지어 추악한 원래의 상태라도 하나님께 붙어 있기에 거룩한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겉으로 의롭고 아름답게 보여도 결코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구세대가 사십 년간 방황하며 죽음을 맞았던 광야도 매일 만나와 구름과 불기둥으로 여호와가 동행해 주었으니 너무나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지만 목축과 양봉이 주업이라는 뜻이므로 농사에 적합한 비옥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이제 곧 당신의 백성들의 소유로 바꿔주고 함께 하여 결코 떠나지 않으실 것이니까 거룩한 땅인 것입니다.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도 같은 맥락입니다. 신발은 죄로 타락한 세상과 직접 접촉하기에 세상의 모든 거룩하지 않은 것들이 붙어 있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속하려면 그 거룩하지 않은 것들을 다 제거해야 합니다. 그곳에 임재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행해야 첫째 순서가 신발을 벗고 그곳에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종의 취임식

 

그러나 여호와가 통치하지 않는 장소는 세상에 없으며, 이스라엘이 가는 곳마다 동행하지 않는 순간도 없습니다. 지금 천사는 가나안 정복전쟁에 아무런 힘도 보태지 않았고 심지어 위로의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굳이 여호수아에게 절 한 번 받으려고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발만 벗게 하고 홀연히 사라졌어도 결코 싱겁지 않는 하나님만의 분명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지금 여리고 전투를 행하기 전에 구세대와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이 신세대들에게도 신앙교육을 시키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장면이 이전에도 한 번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로 모세에게 떨기나무 불꽃으로 여호와가 임재 했을 때도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령했습니다.(출3:5)

 

여호수아에게 모세와 동일한 영적권위를 세워주려 했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해석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으로 여호와를 대면했을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에 백성들이 함께 있었다는 언급이 없으므로 여호수아도 천사와 일대일로 대면한 것입니다.

 

설령 백성들이 함께 있었다 쳐도 여호수아에게만 들리고 보이는 개인적인 체험이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눈을 들어 본즉”(13절)이라는 표현이 그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부르는 소리를 대제사장 엘리는 듣지 못하고 사무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삼상3장) 또 엘리야의 시종의 눈에만 여호와의 불 병거가 보이고 아람 군대는 전혀 몰랐던(왕하6:17) 경우와 같다고 봐야 합니다.

 

이 대면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여호수아의 지도자로서 권위를 세워주기 보다는 그 개인에게만 알게 해주려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당신의 거룩한 동역자로 따로 구별해서 온전히 거룩하게 세우고 헌신시키려는 거룩한 취임식 절차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명하여 불러낸 당신의 종이 그 맡은 일을 실현하기 시작하려 할 때에 당신의 임재 하에 일종의 취임식을 단둘이서만 행하시길 원하십니다. 당신이 맡겨줄 소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아 알게 해주어서 당신께 거룩하게 구별된 사명자로 충성하겠다고 진심으로 서약하게 만듭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을 알고 믿기는 했어도 자기 일을 행하는데 그분의 도움을 구하는 정도였다면 그분을 일대일로 대면하고 나면 반드시 그분의 일에만 헌신하게 되는 인생의 극적인 전환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우상을 숭배하는 타락한 땅에 있을 때에 여호와는 당신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명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정처 없이 도망갈 때에 베델에서 꿈속에 하나님을 만나 이곳으로 반드시 돌아와 장자권을 발휘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구덩이에 빠져 꼼짝없이 죽게 되었을 때 간절히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마침 지나가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리면서 생명을 건지는 응답을 받았을 때에 그 인생이 철부지 막내아들에서 가문을 보존하고 창성케 할 자로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젖 떼자마자 성막에 바쳐진 사무엘을 하나님은 그에게만 들리는 음성으로 첫 선지자로 불러내셨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움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고 앞으로 그의 일생을 통해 실현할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불에 탄 화저가 죄로 더렵혀진 자기 입술에 닿는 환상을 통해 수난 받는 그리스도를 증거 할 종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심지어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마저 요단강에 몸을 담그자 문둥병이 나음으로써 이방 땅에 여호와를 증거할 종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런 만남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대면의 방식과 의미

 

이처럼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을 자는 하나님 쪽에서의 분명한 부르심이 있고 그 본인도 순순히 따르기로 결단하는 과정을 반드시 한 번은 거칩니다. 그 부르심의 진행과정은 사람마다 각기 다 다른데 그 종이 처해있는 당시 상황에서 각자에게 가장 합당한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그에게 부여할 소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게 한 후에 장차 열리게 될 열매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가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 시키는 동일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자기 잘못으로 다 이루지 못하고 죽었고 여호수아가 이어 받았지만 받은 소명이 같기에 당신께서 임재하신 거룩한 땅에서 신발을 벗는 동일한 방식의 임직식을 거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둘에게 임재해서 대면하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모세는 떨기나무의 타지 않는 불꽃이었고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바로가 이스라엘 남자 아이는 태어나자 다 죽이는 가운데 하나님의 기적으로 유일하게 살아났습니다. 그 후로는 동족을 위해서 어떤 인생으로 살아야할 지에 대해 하나님은 팔십년이나 침묵으로 일관했고 현실은 그와 정반대되는 모습으로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미디안 광야 어디에서나 항상 볼 수 있는 떨기나무에 여호와가 나타났습니다.

 

정작 하나님은 바로의 궁정에서 사십 년간 출애굽 전문가로, 미디안 양치기로 사십 년간 광야의 전문가로 훈련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 당신께서 모세를 단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음을 바로 곁에 있는 떨기나무로 확인시킨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그의 바로 옆에서 함께 걷고 계셨던 바로 그 땅을 맨발로 밞아 그분의 은혜를 피부로 느껴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호수아의 머리에는 오직 가나안 정복 전쟁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궁리하는 일로 가득 차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그를 만나준 까닭은 이 전쟁의 승리는 전혀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나아가 이 전투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총사령관은 네가 아니고 하나님 당신임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당신께서 앞장서서 가서 여리고를 무너뜨릴 테니까 너희는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여호수아 네 개인의 능력으로 승리를 네가 쟁취했다고 섣불리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네가 나를 따르는 열성과 믿음이 확고해도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며 할례 없는 백성이 여호와의 군대를 절대로 이기지 못함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울 때에 여호와는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라”(수1:3)고 약속했습니다. 이때도 하나님은 과거 시제를 사용해 이미 확정된 미래임을 나타냈습니다. 신발을 벗고 엎드리라는 것은 그 약속의 재확인일 뿐 아니라 미리 그 땅의 거룩함을 온 몸과 심령 가득히 느껴보라는 뜻이었습니다. 할례로 하나님의 언약이 그 살에 영원히 살아있듯이 그 거룩한 땅을 발로 밟았기에 가나안은 여호수아의 발에 영원히 속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일대일로 만났는가?

 

오늘날에도 목사나 선교사 같은 사역자가 되는 것은 자신의 열정과 믿음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지명한 자라면 당신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일대일로 만나 주시고 그에게 가장 적합한 소명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 동안의 인생 경험, 교육과 이력, 주변 여건, 자신이 받은 은사와 재능 등을 활용하기에 가장 합당한 일을 맡겨 주십니다.

 

간혹 스스로 먼저 주의 종이 되겠다고 헌신했어도 주님의 기쁨 안에 들어와 있다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그런 분명한 부르심의 절차가 따릅니다. 사무엘이 엄마 한나가 그가 나기도 전에 성전에 바쳐졌으나 주님이 그에게 개인적으로 찾아오셨듯이 말입니다. 그것도 한나에게 잉태치 못하게 할 때부터 하나님이 이미 다 작정하신 일이었습니다.

 

정작 기억해야 할 사항은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과 대면이 전문 사역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죄인이 구원을 받아 예수를 믿는 신자가 되는 것도 완전히 동일합니다. 반드시 주님이 먼저 찾아와서 만나 주시고 지난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당신께서 정말로 그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지금껏 지내온 삶이 전부 철두철미 실패였음을 깨닫게 해주어서 앞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영광을 높이는 거룩한 일을 하겠다고 헌신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통해서 어떻게 실현하게 할지는 점차 조금씩 깨닫게 해주지만 일단 처음 믿을 때에 그분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은 세워줍니다. 그런 헌신 자체가 사실상 온전한 소명이자 그분의 종으로 이미 온전히 구별된 것입니다. 혹시라도 나는 그런 체험이 없어서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우리 모든 죄 값을 대신 감당하시고 대속 제물로 바쳐진 은혜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해서 그렇게 결단만했을 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구원의 길을 물었을 때에 주님이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성령이 죄인의 심령에 역사해 거듭나야 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삼위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한 죄인의 영혼이 서로 일대일로 만나는 체험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상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믿고 따라보려고 왔던 니고데모였지만 아직은 성령이 간섭하기 전이라 주님의 구원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되돌아갔습니다.

 

삼년간 동고동락했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분명 니고데모 만큼 영생에 대해 간절했고 율법과 메시아에 대한 지식적 믿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승을 배반했고 부활 후에도 제대로 믿지 못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자 비로소 구원이 확정되고 주님의 제자이자 종으로 세워졌습니다. 구원으로의 하나님의 택함은 이미 받았으나 본인이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됨으로써 주의 종으로 헌신하는 일은 성령님과의 대면 이후에 가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날에도 구원과 관계없이 교회 출석은 먼저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영생으로 택함을 받은 자는 반드시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하나님의 때와 방식으로 주의 종으로 헌신하게 만들어 줍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과 방식을 이전과 180도 다르게 정반대로 바꾸는 일생에 한번 뿐인 극적인 전환이 일어납니다. 본인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자기 심령이 찔러 쪼개어져서 그 추악한 실상이 완전히 벌거벗겨집니다. 그런 나조차도 주님은 너무나 사랑하기에 먼저 찾아와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 가운데 들어가 그분의 자녀이자 동역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도무지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을 믿어 신자가 된다는 것이 단순히 교회에서 가르치는 객관적인 기독교교리를 마음으로 동의하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한 죄인을 구원하는 일이 그렇게 값싸고 시시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주님이 직접 오셔서 내 대신 죽었습니다. 주님과 동일하신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나의 심령 전체를 뒤집어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시고 그 후로 내주하셔서 일생 동안 떠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주님과 맞바꾼 천하보다 귀한 그분의 새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럼 그분의 뜻이 세상 어느 것보다 최우선이 되는 거룩하게 구별된 그분의 종으로 이미 세워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자의 공통적 특징 하나

 

유대인의 사도로 세워진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먼저 찾아와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을 개인적으로 용서해주는 절차였습니다. 나아가 앞으로 그가 맡을 사명을 깨우쳐주는 계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 사랑하는 방식과 의미가 잘못되었습니다. 앞으로 십자가 복음의 온전한 사랑 안에 그들을 인도하고 또 그들로도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게 만들라는 뜻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질 바울에게 하늘의 찬란한 빛으로 먼저 찾아와서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예수 믿는 자들을 극렬히 핍박했기 때문인데 그가 맡을 소명에 대한 계시이기도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민족의 메시아일 뿐이며 로마의 사형수 인간을 하나님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종교라고 배척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인 바울더러 예수님이야말로 로마를 포함한 모든 이방인을 사랑하는 메시아임을 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의 경험, 지식, 신앙 정도에 따라서 그에 합당한 당신의 일을 맡겼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맡기기 위해서 평소부터 준비 훈련시켜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수제자로서 율법에 익숙한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바울은 민족 인종 외모에 차별하지 않는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며 이방지역 곳곳에 교회를 개척하는 자로 세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실제로 인격적으로 만났던 신자들 모두에게 공통되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갑자기 인격과 성품이 고결해지거나 믿음의 수준이 심오해지거나 기도를 뜨겁게 하게 되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자로 바뀌어서 주님의 소명자로 걸어감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처한 여건에서 자신의 경험 지성 특기 재능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주님의 구체적인 일을 찾아서 하나씩 실현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힘든 장애가 생기고 심지어 핍박을 받아도 그 새로운 삶이 불편하기는 해도 그로 인해 괴로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지치지도 않고 오히려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본성이 연약하다 못해 죄의 찌끼가 많이 남아 있어서 주님 따라 가는 길에 수시로 지체함과 쓰러짐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인생이 완전히 유턴(u-turn) 되었기에 다시는 되돌아가는(turning back) 법이 결코 없습니다. 평생을 한 곳만 바라보고 한 길로만 걸어가게 됩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중도에 지치고 때로 실수는 했어도 한 번도 각자가 맡은 사도의 직분을 놓은 적이 없었듯이 말입니다.

 

지금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그는 구원 받을 자로 택함을 받아서 교회에 오래 동안 성실하게 출석한 셈입니다. 모세의 시종으로, 아말렉 전투의 일선지휘관으로, 가데스 바네야의 정탐꾼 등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본문에선 하나님이 그와 인격적으로 만나 주면서 여호와의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정식으로 세워주었습니다. 그 후로 여호수아는 평생을 바쳐 그 소명에 충성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세대도 사실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은 돌아갈 퇴로가 막혔다는 뜻입니다. 거기다 그들에게 안 좋은 기억만 있는 광야로 되돌아갈 리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당신의 일에 충성하게 다 마련해 놓으시고 그렇게 인도해 오셨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따지자면 여호수아처럼 여호와가 직접 만나주는 자들도 소수이긴 해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남은 자로서 이름도 빛도 없이 연약한 동족은 물론 우거하는 이방인들이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이 시간 우리 각자가 서있는 자리를 되돌아보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직접 먼저 찾아와서 네가 서있는 곳이 거룩하니 신발을 벗으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자기 인생의 진짜 한 가지 목적이 자기 모든 것을 바쳐서 소명자로 살아가는 것입니까? 혹시 나에겐 극적인 주님과의 대면이 없었기에 여전히 도통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오늘날 목사와 선교사처럼 평생을 바치는 전임사역자들이었습니다. 성경도 확정되지 않았고 성령도 보편적으로 역사하기 전이라 자연히 그 부르시는 절차가 좀 더 극적이어야 했고, 또 당장에 시킬 일이 있어서 급진적이어야 했습니다. 오늘날의 일반신자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부르심의 내용과 본질은 그들과 단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그 시간과 절차가 각양각색이라 간혹 지체되고 점진적일지라도 반드시 일생일대의 전환이 한 번은 일어납니다.

 

성령이 먼저 간섭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자를 향한 계획이 이미 다 마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그 소명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끈기가 신자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하나님 쪽이 더 강하다는 것이며 또 그래서 신자가 아무리 힘든 여건 사건 사람과 마주쳐도 담대히 이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니 그런 고난을 반드시 거쳐야만 그분의 일이 달성되고 신자에게도 큰 유익과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기껏 절 한 번 받으려고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군대의 총사령관 취임식을 하나님과 단 둘이서 거행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한 신자들더러 단순히 교회에 자기들끼리 모여 하나님께 엎드려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뜨겁게 기도하여 자기 고난을 이기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세상에서 따로 거룩하게 불러내었다는 것은 세상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라는 것이며, 그 자체만 해도 평생을 바칠 소명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한 자는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주여 지금 말씀하시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며 또 그 고백대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났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현상입니다.

 

몸은 교회에 있어도 마음은 세상으로 향해 있는 자를 주님은 외면하십니다. 참 신자는 간혹 잠시 그래도 금방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받은 소명자로 되돌아옵니다. 사탄에 미혹되어 있던 인생이 하나님 쪽으로 완전히 유턴해서 다시는 터닝백 하고 싶지 않아야 신자입니다.

 

그런 신자는 그 견고했던 여리고가 여호수아가 자기 소명을 실현하는 데에 아무 장애가 되지 않았듯이 코로나가 닥쳐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못하고 아주 불편하긴 해도 결코 그런 것들이 어떤 훼방거리도 될 수 없습니다. 현재 여러분이 서있는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땅임을 실감하기에 신발을 벗고 그분 일에 헌신하고 있다면 그 밟는 모든 땅을 하나님이 기필코 다 차지하게 해주십니다.

 

3/2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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