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2:15-21) 기생 라합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7)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4)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갈지니라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수2:15-21)

 

여장부 라합의 순간적인 기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의 방어태세를 살펴보러 보낸 두 정탐꾼들은 기생 라합에게서 결정적인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가 홍해에서 바닷물을 말리는 기적을 일으켰고 광야를 안전하게 통과케 해 아모리의 두 왕까지 전멸시킨 일에 관해 가나안 족속들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여리고 주민들은 벌써부터 간담이 완전히 녹아내려져 이스라엘과 싸워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 정보만으로 이스라엘의 신세대들로선 첫 전투에 큰 자신감을 갖고 임할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엄청난 승리에 라합이 일등공신인 셈입니다. 그렇다고 여리고에게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단순한 격려 하나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여리고 전투에 기여한 측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날 신자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믿음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주막의 안주인으로 오래 동안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상대했고 인생의 모진 풍파를 다 겪은 여장부였던 것 같습니다. 여리고 주민 한 명이 수상한 행색의 두 나그네가 이스라엘이 보낸 정탐꾼인 줄 눈치 채고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6절)고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체포조가 들이닥쳐도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거짓말로 둘러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단 어느 나라에서 보냈는지는 몰라도 외지인 두 사람이 왔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4절) 그러나 성문이 닫기 전에 떠났으니 급히 따라가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충고까지 해주었습니다.(5절) 참으로 놀라운 지혜입니다.

 

어지간한 남자들도 갖지 못한 담대함은 물론 노련함이 돋보입니다. 군인들더러 자기 말을 온전히 믿게끔 대화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수상한 사람 두 사림이 온 것은 사실이라고 순순히 시인하고선 성문이 닫히기 전에 서둘러서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정탐꾼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므로 군인들로선 그녀를 의심하지 않고 말하는 그대로 믿었습니다. 어서 빨리 따라가면 체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줌으로써 군인들이 다른 가능성은 생각할 필요 없이 곧바로 추격에 나서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정탐꾼들은 집안에 머물러 있으니 아무리 빨리 따라 가봐야 허사입니다. 여리고 성과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는 곳을 나누는 경계는 요단강인데 그곳 나루터까지 갔다 오는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까지 감안한 것입니다. 그 동안에 두 사람을 다른 길로 피신시킬 여유를 번 것입니다. 추격대가 나루터까지 가서도 발견하지 못하면 이미 강을 건너 이스라엘 지경으로 완전히 넘어간 것으로 간주하고 추격을 포기할 것입니다.

 

그럼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므로 그녀에게 책임 추궁할 수도 없습니다. 정탐꾼들이 들키지 않고 여리고를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체포조가 떠나자마자 곧바로 정탐꾼들을 성 위에 있는 자기 집에서 줄로 매달아 내리고 딴 길로 도망가게 했습니다. 기생집 안에는 여전히 다른 손님들이 남아있어서 정문으로 도망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체포조가 완전히 수색을 포기하도록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사흘은 숨어 있다가 가라고 세심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16절)

 

그 전에 정탐꾼들과 라합은 서로를 선대하여 목숨을 지켜주기로 약조를 맺습니다. 우선 라합은 정탐꾼들과 나눈 대화와 도망간 경로를 절대로 누설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 보상으로 그녀는 정탐꾼들에게 나중에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침공할 때에 자신과 가족들은 죽이지 않고 구해준다는 맹서를 하라고 요구했습니다.(12-13절) 정탐꾼들로선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해준데다 자기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 못 들어줄 리 없습니다.

 

라합의 신앙고백

 

그녀는 엄연히 여리고 백성이며 정탐꾼들은 자기들을 정복하러 온 적국의 원수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동족을 배반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여리고는 완전히 진멸되었으므로 을사보호조약으로 조선의 국가주권을 일본에 팔아넘긴 이완용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른 꼴입니다.

 

만약 그 거짓말이 먹히지 않고 여리고 군인들이 집안 구석을 샅샅이 뒤졌다면 또 혹시라도 정탐꾼들이 다른 길로 돌아가는 동안 발각이라도 난다면 그녀도 바로 죽음에 처해집니다. 그렇다면 자기 목숨을 걸만한 확고한 이유가 있어야만 조국을 멸망하게 만들 그 살 떨리는 엄청난 모험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정탐꾼들이 잡히면 당장 사형에 처하게 될 처지가 불쌍해서 구해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녀가 자기 목숨까지 걸게 된 첫째 이유는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여리고가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앞에 간담이 완전히 녹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족속과 맞섰다간 틀림없이 아모리 왕 시혼과 옥처럼 전멸 당할 것이고 그럼 자기도 죽게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극도의 두려움은 다른 여리고 사람들 모두가 갖고 있었고 또 항복하면 살 수 있다는 계산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스라엘에 항복한 자가 없었습니다. 여리고 군대가 아주 살벌하게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여리고 주민의 공포심이 대단했음을 거꾸로 반증하는 셈입니다.

 

주목할 사항은 그녀가 정탐꾼을 숨기자마자 이스라엘에게 항복할 의사를 밝혔다는 것입니다.(8절) 그렇다면 평소부터 그런 생각이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녀가 정탐꾼들에게 처음 건넨 말을 다시 살펴봅시다. 먼저 “여호와가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9절)고 시작해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11절)고 마쳤습니다. 이는 분명히 여호와에 대한 그녀의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특별히 여호와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계이며 땅은 눈에 보이는 현실 세상입니다. 여호와는 그 양쪽을 다 주관 통치하시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그 안에 여러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다른 모든 나라들의 신들은 여호와에 권능에 비추면 완전히 유명무실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과 하늘 전체를 통치하지 않고 그 나라와 종족만 주관하는 지역 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와는 히브리 민족만 아니라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신이라 가나안의 지역 신들을 총동원해서 맞선들 승리는 당연히 이스라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애굽의 모든 신들은 물론 아모리 두 왕들과 이방 최고 주술사 발람 등 모든 이방신들이 여호와 앞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전혀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그녀의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지혜는 물론 영적인 분별력도 아주 뛰어났습니다. 정확히 말해 그녀 혼자만이 가나안에서 올바른 영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여호와를 아주 능력이 큰 신이라고 두려워는 해도 정확하게 그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종교학이나 신학공부를 한 적도 없고 제사장 집안 출신도 아닙니다. 한갓 아녀자로 기생입니다. 고대의 기생이란 사실은 창녀 역할도 겸했습니다. 그녀는 지금껏 정말로 한 많고 비참한 생을 살아왔습니다. 남자들의 하루 저녁 성적인 노리개 감이 되는 것 말고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가치와 보람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눈만 뜨면 지긋지긋한 똑같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고 저녁에는 아무 생각 없이 파김치가 된 육신을 침상에 던지는 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요컨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 죽은 것과 똑같은, 아니 차라리 죽어서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은 하루하루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목숨을 끊으려니 죽은 후 하늘에서도 아무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그동안 지은 죄가 많아 신의 저주를 받을 것이 확실해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겨우 연명하고 있던 차에 정말로 희한한 소식이 하나 들려왔습니다. 애굽에서 사백 년간이나 노예로 섬기던 히브리 민족이 애굽을 시쳇말로 열 번이나 완전히 묵사발로 만들고 탈출한 후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바다를 마른 땅으로 건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먹고 마실 것 하나 없는 광야를 그 많은 백성이 사십 년간을 방황했어도 강건하게 생존해 나와서 아모리 두 왕까지 전멸시켰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히브리인들의 신은 지금껏 모든 나라의 모든 신들과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신인지 알고 싶고 그 신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있는 히브리 민족이 너무 부러워졌을 것입니다. 자기도 그런 신을 섬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막연한 소망도 생겼을 것입니다. 자기는 죽어 마땅한 천하의 추악한 죄인이었고 그런 심판을 받아도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길 그런 기구한 인생이었습니다. 가장 신다운 신인 여호와에게 뭔가 구원의 길이 있거나, 최소한 자기 인생에 대한 위로라도 얻을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실 날 같은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날 그 히브리 민족의 정탐꾼이 아무 예고 없이 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도무지 소망이라곤 없이 비천한 기생으로 살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고 포기하고 있던 그녀의 인생에 아주 희미하게나마 한줄기 빛이 비취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어차피 아무 소망 없이 죽으나, 아니 살아도 죽은 것만큼도 못할 바에야, 이번에 한 번 죽기 살기로 자기 인생을 뒤집어보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바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결행한 것입니다.

 

그녀의 그런 목숨을 거는 결단이 자신과 두 정탐꾼의 목숨만 살린 것이 아닙니다. 여리고성 전투의 승패 자체를 그녀가 갈랐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만약 그녀의 모험과 기지가 없었다면 두 정탐꾼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들켰으면 여리고 사람들이 그냥 처형만 시킬 리 없습니다. 거꾸로 이스라엘에 대한 정보를 캐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며 잔인한 고문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먼저 무엇을 알고 싶어 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군대 숫자가 많고, 애굽과 아말렉과 미디안과 아모리 족속을 패배시킨 사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유추해보면 최고로 궁금했을 한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나이든 그 선지자 모세가 아직 살아있는지 여부일 것입니다.

 

모세는 아모리 두 왕을 전멸시킬 때까지 지휘하다가 가나안 땅이 멀리 보이는 곳에서 죽어서 이름 모를 곳에 묻혔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예에서 보듯이 고대의 총사령관은 자신의 죽음을 적군에게 비밀로 합니다. 아직 모세의 죽음까지는 가나안 족속들이 몰랐을 것입니다. 만약 그 노인이 살아있다면 싸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레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발람의 사건을 그렇게 길게 기록한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발락이 당시에 가장 영험했던 주술사 발람에게 백지수표를 제시하면서까지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각 민족 신들의 대결인 고대 전쟁의 승패는 결국 그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다 같은 사탄의 종들임에도 자기에게 치성과 제물을 많이 바치는 쪽에게 사탄이 능력을 발휘해서 승리를 안겨다 주는 것입니다.

 

두 정탐꾼이 잡혀서 여리고 군대의 고문에 못 이겨서 모세가 벌써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여리고 성 전투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절대로 그들이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가만히 있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응전하러 나왔을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움으로 승리는 하겠지만 사상자가 만만치 않게 나왔을 것입니다.

 

결국 기생 라합의 담대한 결단이 이스라엘에게 한 명의 희생자도 없는 완벽한 승리를 가져다준 것입니다. 계속 강조해왔듯이 여리고 성은 백성들의 행진하면서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어야 목숨을 구원 받는다.

 

요컨대 기생 라합이 자기 목숨까지 바쳤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목숨도 구원 받은 것입니다. 한 명이 죽어서 이백만 명이 살았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만 이 땅의 죄인들을 다스린다는 원리가 이때에도 이미 실현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본문도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21절의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성벽 위에 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여러 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탐꾼들이 그녀와 약조한 대로 이스라엘이 나중에 전투를 치를 때에 쉽게 구별해서 살려주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녀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니까 그 붉은 줄은 누구나 명확히 볼 수 있었고 또 라합의 집인 줄 모르는 주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줄을 단 시점이 언제입니까? 본문 21절이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줄을 달았다고 말하니까 정탐꾼이 도망간 직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18절에선 두 정탐꾼이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매달라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이스라엘이 성 주위를 도는 행진을 하기 전에는 매달았고 완전히 함락될 때까지 최고로 짧게 잡아도 일주일 이상을 달아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그 집에 들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라합도 인정했는데 그들이 떠난 후에 빨간 줄이 달렸습니다. 그럼 누구라도 그 사건과 연결해서 뭔가 있다고 쉽게 의심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붉은 줄을 계속해서 달아놓았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이지 않습니까?

 

마침 지난주에 미국 TV에서 영화를 한편 보았는데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회사의 중역인 여성이 밤중에 혼자서 출장을 가려고 시골길로 차를 몰고 공항으로 가는데 엄청난 폭설이 내렸습니다. 차가 미끄러져 길가 낮은 곳의 눈이 많이 쌓인 곳으로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차는 꼼짝달싹하지 않았고 여자 혼자 힘으로 끌어올릴 수도 없었습니다. 한적한 시골이라 셀폰도 터지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차들도 거의 없는데다 길에선 그곳에 차가 빠졌는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자칫 차안에서 얼어 죽을 판이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빨간색 속옷을 꺼내서 트렁크에 달린 라디오 안테나에 걸었고 지나가던 경찰이 그 빨간 옷을 보고서 구해주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추측컨대 정탐꾼들과 라합도 그런 기지를 발휘했을 것 같습니다. 기생은 주로 채색 옷을 입었기에 길다란 빨간 옷이나 수건 같은 것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며 마치 빨래 널 듯이 달아놓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혹시라도 이상하게 여기고 의심 받게 되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불은 줄은 어린 양의 피였다.

 

두 정탐꾼이 라합에게 맹세할 때에 지시한 내용을 다시 보십시오.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18,19절) 어디선가 많이 익숙한 말씀 같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던 날 밤에 여호와가 죽음의 사자를 보내면서 구세대들에게 내린 지시와 똑같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출12;21-23)

 

이스라엘은 먼저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로 문의 인방과 설주에 가로 세로로 발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식구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집안에 모여서 죽음의 사자가 지나가도록 아무도 밖에 나가선 안 되었습니다. 그 사자는 붉은 피를 보고 그 집에 심판을 보류하고 건너 띄었고 붉은 피가 발라져있지 않는 애굽 집의 장자만 모두 죽였습니다. 이스라엘도 만약 밖에 나갔다면 심판 받아 죽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애굽이나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나 오직 어린 양의 피의 공로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지금도 라합더러 온 식구를 집안에 모이게 하고 붉은 줄로 구별해서 표시하되 만약 집 문을 벗어나 거리로 나가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합니다. 라합은 자기 목숨을 건 모험으로 구원 받을 만하다고 쳐도 그 가족은 전적으로 아무 공로 없이 붉은 줄 때문에 구원 받은 것입니다. 라합의 자기 목숨을 건 이런 구원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그녀와 정탐꾼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었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서로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내걸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정탐꾼들에겐 출애굽 때의 죽음의 사자를 통한 구원이 너무나 오묘해서 뇌리에 온전히 박혔고 그래서 무심결에 그런 지시를 내렸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 모두에게 성령이 충만히 역사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여리고 성벽 위에 세운 것입니다. 출애굽 유월절에 이스라엘과 함께 하여 구원을 주관하신 예수님이 지금 여리고의 라합의 집에도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라합 개인적으로는 자기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하며 정탐꾼을 도와서 피신시킨 공로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로운 행위와 공적을 보고 구원해준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 라합이 상천하지에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시인했습니다. 어차피 저주 받아 비천하게 죽을 바에야 그 참 하나님에게 목숨까지 의탁해보겠다고 기꺼이 또 담대히 헌신했던 것입니다. 그녀로선 자신이 하나님 앞에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진심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지금껏 섬겨왔던 모든 이방신들은 바치는 치성에 따라서 현실적인 복을 주겠다고 약속은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현실적으로 은혜로운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제사 드릴 때만 종교적인 자기만족만 그것도 일시적으로 있었을 뿐입니다. 나아가 아무리 열성적으로 섬겼어도 기쁨과 평안이 임하기는커녕 오히려 허무하고 갈급해지기만 했습니다. 라합 개인과는 어떤 인격적 관계도 형성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냥 조각상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은 그와 달리 엄청난 기적을 실제로 많이 일으키면서 자기를 따르는 백성들을 어떤 위험에서도 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과 오래 전에 맺은 언약을 이루려고 지금 여리고 눈앞에까지 인도해왔습니다. 여호와야말로 하늘과 땅 즉, 영계와 물질계 둘을 다 다스리는 유일한 참 하나님임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녀로선 만약 여호와마저 자기를 외면한다면 자기는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담담히 받아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목숨까지 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신학적으로 정리만 안 되었을 뿐 분명히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두 정탐꾼이 라합에게 맹세하는 말의 후반부도 보십시오.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19절b) 만약 여리고 사람이 너희를 죽이면 그 책임은 우리가 지겠다고 합니다. 그의 피가 우리의 머리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정탐꾼들 또한 자기들의 목숨으로 너희 가족의 목숨과 대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자는 서로 간의 피의 맹세로 그치지 않습니다. 당신의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온 당신의 자녀는 죽음으로 끝까지 보호 인도한다는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드러낸 것입니다. 라합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을 고백하며 헌신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정탐꾼들도 그 자리에 임하신 성령님이 간섭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진리에 따라서 맹세하게 만든 것입니다.

 

붉은 줄을 내걸라.

 

인간적 현실적으로 따지면 한 순간만 삐끗해도 라합과 두 정탐꾼은 당장 죽음에 처해집니다. 그런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완성시킬 때까지 끝까지 보호하시며 들어 사용하셔서 반드시 당신의 영광을 보게끔 인도해주십니다.

 

라합이 두 정탐꾼을 재빨리 피신시키는 것을 그 집의 다른 손님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눈치 빠른 한 사람만 신고하러 갔습니다. 집에서 줄로 달아 내릴 때도, 한밤중이었겠지만, 또 사흘간이나 숨어서 도피할 때도 아무에게 들키지 않았습니다. 내걸린 붉은 줄에 관해서도 끝까지 눈치 채기는커녕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하고도 세밀한 간섭이라는 것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붉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아무 공로 없어도 그 붉은 피의 은혜를 순전하게 받아들이는 자를 구원하고 끝까지 보호해주십니다. 반대로 그 피를 보고도 자기 공로만 앞세우는 자는 죽음을 면할 길이 없으며 주님을 배척했던 자기 허물로 죽을 뿐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중에 죽음 직전까지 갈만큼 절망적인 인생이 있습니까? 사방이 다 막혀 빛이라곤 새어 들어올 바늘구멍조차 없는 것 같습니까? 그래서 파멸만이 앞에 보이고 아무런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까?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자를 찾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궁극적이고 영원한 구원을 받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면 예수님이 반드시 먼저 찾아와 주십니다.

 

정말 죽지 못해 겨우 연명만 하고 있던 라합의 일상 가운데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두 정탐꾼이 나타난 것은 예수님이 보낸 구원의 천사였습니다. 그녀의 믿음을 검증 확인한 후에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마저 나를 외면하시면 나는 죽음뿐이라는 진정한 고백과 함께 하나님 쪽으로 한 발자국만 옮기는 모험을 결행하면 상황은 완전히 역전됩니다. 죽음과 사탄과 죄악과 흑암의 세상에서 생명과 하나님과 의와 빛의 나라로 순간적으로 옮겨집니다.

 

그런 하나님을 찾고 싶은 소망과 또 하나님을 향해 결단할 수 있는 힘도 성령님이 심어주십니다. 기생 라합처럼 평소에 타락한 세상에선 아무 소망을 갖지 못하는 대신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품고 정말로 의로운 인생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갖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녀가 매일 밤 출구가 없는 절망 가운데 눈물로 지새며 처절하게 영적 씨름을 했기에 목숨을 건 이런 헌신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필연적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아셔야 합니다. 성벽 위에 있던 그녀의 집은 여리고 성이 완전히 무너질 때에 함께 땅에 흔적도 없이 파묻혔습니다. 어떤 의미와 기쁨도 없던 여리고의 기생 라합도 함께 묻히고 붉은 줄로 구원 받아 여호와의 충성된 여종 라합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권능은 조금 더 나은 인생으로 바꿔주는 정도가 아니라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나게 해줍니다.

 

신자는 이미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남은 일은 세상 앞에 예수님의 십자가 붉은 줄을 내거는 것입니다. 모든 이로 자신이 예수 믿는 신자인 줄 알게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들과 달리 하나님의 참 생명으로만 자기 인생을 아름답고도 거룩하게 이끌어가고 있음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문제는 붉은 줄을 거는 순간 자동적으로 세상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즉, 피를 흘려야만 하는 반발 멸시 음해 핍박이 따라옵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은 반드시 환난을 당하게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다 승리했기에 담대하라고 명했습니다. 당신의 독생자까지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 반드시 모든 좋은 것으로 우리를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내거는 예수님의 붉은 줄로 인해서 세상과 사탄에 미혹된 영혼들이 여리고 성처럼 무너지는 기적이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3/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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