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 가운데 산 자가 되어있는가? (눅24:1-12)

2020년 부활절 설교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눅24:1-12)

 

첫 증인이 하필 막달라 마리아?

 

성경에는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선뜻 믿기 힘든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일 것입니다. 정통복음주의 교단 소속의 교인들마저 유독 부활에 대해선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런 의심을 제거할 수 있는 최적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무슨 뜻입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서 다른 곳에 매장한 후에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지어내어서 성경에 첨가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아리마대 요셉의 빈 무덤에 대한 첫 증인으로 여자들로 등장시킨 것은 너무나 불합리합니다. 알다시피 당시 유대사회에선 여자의 증언은 아무 효력이 없고 법정에서 채택해주지 않습니다. 여성은 단지 자식을 낳아서 키우고 가사와 농사일을 해야 하는 일종의 종으로 천대했지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16:9은 본문 10절의 최초의 부활 여자 증인들 중에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이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치료해주었다고 말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열렬한 추종자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여성 특유의 감성에 젖어서 주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환상을 보았을 것이라고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일곱 귀신이 들렸던 전력까지 있습니다. 주님이 능력을 발휘하기는커녕 항변 한마디 못하고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큰 쇼크를 먹을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 소식을 전하면 모두가 다시 귀신이 들렸거나 정신적으로 이상 현상이 생겼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그대로 믿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당할 것입니다.

 

여인들이 전하는 다른 이야기들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천사를 보았다는 것은 둘째 치고 우선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졌다고 합니다.(2절) 남자 장정들 몇이 들어붙어서 지렛대를 사용해야 겨우 움직이는 큰 맷돌입니다. 예수님이 생전에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예고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으나 영악한 유대 대제사장은 혹시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가서 부활했다고 조작할 수 있다고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 로마 총독에게 허락을 받고 군병들로 밤새도록 무덤을 지키도록 조치했습니다.(마27:62-66)

 

그런데도 그녀들은 무덤을 막은 돌이 옮겨졌고 무덤 안이 비어져 있었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제자들도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고”(11절) 아무도 확인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만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한 죄가 있어서 혹시나 하고 여자들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무덤이 빈 것을 확인했는데도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12절) 아직은 그가 믿음으로 부활 진리를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제자들은 스승처럼 로마와 유대 당국을 거역하는 일당으로 몰리는 것이 두려워서 숨기 바빴지 시신을 훔쳐내어서 부활을 조작하여 기독교라는 종교를 창시할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활을 지어낸다 해도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를 첫 증인으로 절대로 세울 리 없습니다. 결국 무슨 뜻입니까? 성경의 부활 기사는 분명한 사실이었기에 그대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기록된 그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래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고 선언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실제로 대면하여서 신체적으로 접촉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보다 성령의 강림

 

지금껏 부활을 미심쩍어 하는 교인들로 그 의심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신자에게 더 굳건히 믿고 천국 영생에 대한 소망을 키우라는 너무나 빤한 이야기를 하려는 뜻도 아닙니다. 도저히 믿지 못하던 열두 제자들의 삶이 그 후에 어떻게 변했습니까? 모두가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십자가 군병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밧모 섬에 유배되어 계시록을 작성한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순교했습니다.

 

그럼 부활을 사실로 믿고 있는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봤고 우리는 보지 못했으니까 그럴 수 없다는 핑계는 죄송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부활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두려워했고 어떻게 행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갈릴리로 돌아가 당신을 기다리라는 주님의 명령이 있었긴 하지만 이전처럼 어부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에 지상에 사십 일간 머물렀지만 항상 제자들과 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만나 격려하는 것이 전부였고 새로운 가르침도 주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가서 기도하고 성령이 강림하길 기다리라고만 명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 강림은 주님이 마지막 만찬 때에 이미 약속하셨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대신에 이젠 정말로 더 이상 스승과 함께할 수 없으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셨을 때보다 더 불안해졌을 것입니다.

 

어쨌든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모른채 주님 지시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백이십여명이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 열흘 후 오순절에 성령이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모습으로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임하자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갈릴리 시골 어부에 불과했던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예수가 부활하였고 바로 메시야였다고 선포하자 그 자리에서 삼천 명이나 회심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2장)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해주었기에 십자가 군병이 되는 권능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강림하여 내주해주자 순교까지 기꺼이 감당하는 자로 변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되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지 못해도 성령이 임재 내주하고 있기에 얼마든지 평생토록 십자가 군병으로 죽기까지 헌신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신자들이 본격적으로 순교를 당한 것은 로마의 네로 황제 즉, 1세기 중후반 경부터입니다. 박해가 절정에 이른 1 세기 말 도미티안 황제 때에 산 채로 맹수 밥이 되거나 불에 태워져 순교한 신자들은 예수님 부활을 직접 본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두 세대나 지났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복음을 말로만 전해 듣고 성령의 거듭남으로 예수를 믿게 된 신자들이었습니다.

 

기독교로 최초로 개종한 유대교인들

 

요한복음 19장에 흔히 지나치기 쉬운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39절) 니고데모는 알다시피 예수님께 구원의 길을 질문했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갔던 바리새 관원입니다. 바로 앞 38절에선 같은 관원인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허락을 받아 예수님의 시신을 자기 가족묘에 안장했습니다.

 

니고데모가 주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한 바로 그날 밤에 요셉의 집에 있는 무덤을 찾아온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갖고 와서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에 그것을 넣고 세마포로 쌌다는 것입니다.(40절) 니고데모와 요셉이 누구입니까? 구약 율법에 능통한 바리새인들로 종교와 행정의 지도자인 관원들입니다. 율법의 정결례에 따르면 시신을 결코 접촉해선 안 되는 신분입니다.

 

시신을 거두는 일은 주로 비천한 종이나 여인들이 맡아서 행했습니다. 오늘의 본문 1절에서 여인들이 향품을 준비해서 무덤에 처음 들어갔다고 기록한 까닭입니다. 또 그래서 여인들이 첫 증인이라는 성경의 기록이 부활이 사실임을 더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나 요셉이 시신을 거두었기에 아직 주님이 부활하기 전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그랬다는 사실을 알면 이제 유대사회에서 추방을 당하거나 최소한 모든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지위가 박탈될 판입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은 예수를 믿는 나사렛 이단으로 몰릴 것입니다. 그들이 그 정도도 예측 못할 사람들이 아닌데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골고다에서 주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자 온 천하가 깜깜해지고 무덤이 터져서 많은 이들이 부활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로마군 처형 집행관 백부장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라고 고백했습니다. 요셉과 니고데모도 심정적으로 그 고백에 동의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거듭났고 또 그 믿음이 행동으로 실현된 것입니다. 그들도 부활을 목격하지 않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소유하며 누렸던 모든 좋은 것이 없어지고 그 사회에서 배척당할지라도 최초로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창과 못 자국을 보지 않으면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심 많은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20:29)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니고데모와 요셉 두 사람과 나중에 순교 당한 초대교회 신자들과 오늘날 우리에게도 성령의 거듭남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 세상에서 왕따가 되는 것은 둘째 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순교하는 자리에까지 갈 수 있어야 참 신자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그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어떻게 진행되며 또 어떤 상태로 바뀌는 것입니까? 뭔가 초자연적인 은사와 능력이 하늘에서부터 내 몸으로 뜨겁게 들어오는 것입니까? 그래서 어떤 위급한 상황이 닥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아주 담대하고 거룩하고 신령한 자로 바뀌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막상 신자 본인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이 성령의 강림이 신자로선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요3:8)

 

오늘 본문에는 성령강림의 과정은 여전히 알 수 없어도 그 후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설명해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덤으로 찾아온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알았고 두 천사를 만나자 크게 두려워서 엎드렸습니다. 여인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여럿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훼손 혹은 도난 되었는가, 천사들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기들을 벌주는 것은 아닌지, 열린 무덤의 최초의 증인이라 유대나 로마 당국에 문초는 당하지 않을는지 등등의 걱정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녀들에게 천사들이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5절)고 다그친 후에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7절)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당신께서 예고하신 대로 정말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사실을 믿으면, 아니 알게 되면 여인들의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녀들은 최초의 증인으로서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그들이 믿어주던 아니 하던 담대히 전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당신의 증인이 되는 권능이(행1:8) 그녀들에게도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오순절 전에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십자가라는 방법까지 예고했고, 또 시일까지 정해서 부활을 예고했고, 실제로 그대로 행했습니다. 어떤 인간도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주님은 정말로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예수님이 부활 기사가 사실이라면 그 이전의 주님의 동정녀 탄생, 선포된 진리, 베푸신 수많은 기적들, 등등 모두가 진리이자 사실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 당신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죄로 타락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러 직접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창과 못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부활했습니다. 그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사십일 간 제자들과 교제하면서 고기도 구워서 함께 식사도 나눴습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인 나를 대신해 죽으심으로써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었습니다. 그럼 나도 그분을 따라서 영광스런 부활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 절대적 진리이자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그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변화산에서 인간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하늘의 영광 가운데 교제하는 모습을 제자들이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을 하늘에서 당신의 사랑의 품으로 맞아주셨고 사도 바울에겐 천국 체험을 시켜주었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복음

 

부활은 신학적으로 복잡하고 심오한 교리가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고 쉬운 이치입니다.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에겐 부활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그분을 인간으로 여기면 한없이 어렵고 의심만 생기지만 그분이 정말로 하나님이라면 부활을 의심한다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믿음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순교 당했던 초대교회 신자들 대부분은 부활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구원하러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자기 대신에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신했습니다. 주님을 만지고 보았다고 선언했던 요한 사도가 성령이 간섭하여 거듭났다는 사실을 분별하는 방법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4:2) .

 

예수 믿는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당신께서 세상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내 때문에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그분을 알고 믿기 전에 아니 원수가 되어 있는데도 나를 용서하고 사랑해주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을 수밖에 없던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으로 찾아와 거듭나게 해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 후에 평생을 내 안에 삼위 하나님 중의 한 분인 성령님이 평생토록 내주해서 내 인생을 당신의 선하신 뜻에 따라 보호 인도하고 계시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엄청난 은혜이자 권능이지 않습니까? 어찌 평생을 그분께 헌신 충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실제로 성령이 내주하시기에 그분이 강권적으로도 인도 주관하시므로 결코 이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우리를 절대로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죄로 타락된 세상에서 함께 죽어가도록 방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처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에 다들 앞으로 주님을 따라가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했지 않습니까?

 

부활절에 신자들끼리 부활은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새 생명을 이미 얻었느니 실질적으로는 부활한 자가 되었습니다. 부활 안에 이미 들어온 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부활에서 첫째로 중요한 의미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자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해 그분은 인간 선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는 인간 스승인 반면에 정통복음주의 개신교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구주라고 선포합니다. 이 진리를 붙들고 살아가고 있으면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고 부활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선생과 구세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선생은 구원을 얻는 길과 방법만 가르쳐 주고 인간더러 그대로 훈련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은 후에 하나님이 판정해서 구원과 심판으로 나눠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려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죄 값을 대신 다 갚으셨습니다. 이제 그 은혜를 순전히 믿고 그분 앞에 겸손히 엎드리면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정말로 구원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당연히 부활도 이미 함께 받은 것입니다.

 

두 가지 삶의 방식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이 두 가지 인식은 신자에게 정말로 엄청난 정반대의 결과를 낳습니다. 신앙생활은 물론 이 땅에서의 삶의 방식과 인생의 목적부터 아예 달라집니다. 구원의 길을 배워서 그 길을 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삶에 따라서 죽은 후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기분에 맞게끔 많은 치성과 정성을 바치며 평생을 수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아무리 선하고 의로운 일을 많이 해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구원 받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해 계속 불안하고 염려됩니다. 스승은 학생의 평소 품행과 시험 성적에 따라서 상벌을 다르게 줄 뿐입니다. 학생도 선생의 평가에만 목매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원 안에 완전히 들어온 신자의 이 땅에서의 삶의 방식과 인생의 목적은 당연히 그 반대가 됩니다. 이미 확보되어 있는 미래에 맞추어서 현재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습이 따라갑니다. 부활이 기다리고 있는 자답게, 아니 이미 부활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몸과 영혼을 다 죽일 수 있고 구원으로 이끄실 수 있는 하나님이 나를 이미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럼 몸만 죽이는 사람들의 훼방 핍박 음해 거짓 등을 두려워할 필요도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끝까지 자식 편입니다. 어린 자식은 부모의 그 사랑의 틀 안에서 무슨 일을 해도 마음이 든든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극렬히 핍박하는 자에서 열렬히 옹호하는 자로 부활한 인생을 살게 된 바울이 어떻게 고백합니까?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

 

우선 신자는 세상에서 항상 환난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졌다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 신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신자의 몸에 예수의 생명도 함께 나타나게 하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 생명에 대해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고후4:14) 신자는 이 땅에서 육신이 죽더라도 부활할 것을 알기에 얼마든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는 즉, 주님처럼 기꺼이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보장된 영생이 바울의 현재 이 땅의 삶을 좌우했습니다.

 

요셉의 빈 무덤에서 두 천사는 여자들에게 왜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야단쳤습니다. 우선 이미 살아나신 예수님이 죽은 자들이 묻히는 무덤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태초부터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나아가 너희들도 성령으로 거듭나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죽은 자 가운데서 산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원죄 하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육신은 살아도 영혼이 죽어 있는 죽은 자입니다. 육신이 죽은 후에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 이 땅의 육신이 잘 되려는 노력만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신자가 되면 육신의 살고 죽음과 무관하게 영혼이 영원히 살아나게 됩니다. 죽은 후의 영혼이 잘 되는 것은 전혀 걱정할 것 없고 이 땅에서부터 영혼이 살아 있는 자답게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자로 이 땅에서부터 부활한 자로 살아가라고 세상의 죽은 자들 가운데 하늘의 산 자로 따로 불러낸 것입니다.

 

일만 스승보다 한 명의 부모

 

바울 본인도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자신은 복음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4:15,16)고 선포했습니다.

 

예수 십자가를 방법으로 제시해서 스스로 노력하여 구원을 얻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복음으로 너희를 낳은 아비라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즉, 새 사람으로 태어나야 구원을 얻습니다. 자기가 신자를 낳았다고 했으니 감히 성령의 역할까지 했다는 엄청난 의미인 셈입니다.

 

물론 자신을 성령과 동격시하는 불경한 의미는 아닙니다. 이어서 자기를 본받으라고 했듯이 자기 인생 자체를 복음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온 몸으로 복음을 실현해보이고 그들로 그런 삶이 너무 부러워서 따라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예수님의 공사역을 그대로 따라서 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앞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4:9) 사도의 현실적 삶은 세상 사람은 물론 심지어 천사에게 조롱거리가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죽이기로 작정된 자처럼 끄트머리에 두었다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장군의 개선행진 때에 곧 사형시킬 적국의 포로를 전리품으로 자랑하려고 행진의 끝에 두는 것을 빗댄 것입니다. 그럼 개선행진을 구경하러 온 로마 시민은 그들을 맘껏 희롱 멸시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골고다 처형장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과 방불하며 사도들도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사도인 우리’라고 복수라고 표현했으니 당시 사도들의 인생이 전부 그랬다는 것입니다. 누차 말하지만 바울과 베드로 같은 자들만 그랬다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들도 스데반이 순교할 때처럼 하늘에서 영접해주시는 예수님의 인자하신 얼굴을 보며 평온과 기쁨가운데 오히려 찬송을 하며 죽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콜로세움에 모인 수만 관중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대부분이 조롱 멸시했겠지만 그 중에 하나님이 구원으로 남겨두신 백성은 그들의 삶이 크게 부러워지고 그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을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순교한 신자들도 바울처럼 복음으로 새 신자를 낳는 아비가 된 것입니다.

 

부활절 예배에서 단순히 부활의 역사성 진실성 그 의미만 재확인해선 안 됩니다. 성경공부 시간에 다 배워서 익히 알고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제자로서 구원의 길을 배운 것에 불과합니다. 바울처럼 부활의 은혜가 평생의 실제적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남들을 복음으로 예수 안에서 새로운 자녀로 낳는 아비까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살아가는 방식과 방향과 목표로 인해서 이웃에게 큰 충격을 안길 정도까지 되어야 합니다. 불법과 거짓과 폭력과 음란이 예사가 된 세태에서 무엇에나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웃들이 도대체 저렇게 살다가는 완전히 손해만 볼 텐데 왜 바보처럼 벽창호처럼 아직도 저렇게 순진하게 사느냐는 조롱까지 들어야 합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만 해도 온전한 믿음과 소망으로 전혀 불안 초조해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위로 격려 기도해주며 자기가 선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해서 봉사해야 합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려도 이 땅과 교회가 거룩하게 회복되도록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사태에 대형교회들이 남아도는 헌금으로 이웃과 사회에 기부하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직장을 잃어 살길이 막연해진 교회 내 성도들에게 구제조차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교회를 향해 과연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실지 두렵기만 합니다.

 

물론 스스로 우리 자신을 볼 때 너무 연약하고 진토 같고 죄의 본성과 자존심과 욕심이 잔뜩 남아 있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이 마음은 원이지만 너무 어렵고 수시로 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도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온전히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진리이자 사실은 남아 있습니다. 우리도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 할 때 사실상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새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 땅에서의 삶이 계속 엄청 고달프겠지만 성령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전의 지난 인생이 처절한 실패이다 못해 완전한 죽음이었음을 절감했기 때문에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지 않습니까? 정말로 성령 안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고 거듭난 자는 이미 이 땅에서 부활했기에 범사에 성령님의 선하신 인도를 구하면 부활인생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미 확보된 천국의 영광이 나의 현재의 삶을 이끄는 근거와 힘이 됩니다. 최소한 사람과 세상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힘이 닿는 데까지 아주 조금씩이라도 주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부활절을 온전히 기념하는 길은 매일의 삶에서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이미 부활한 자로 살아가는 것 외에 없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모든 신자들이 영적으로 많이 성장할 것입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참된 부활신앙은 코로나 이전이나 그 와중이나 이후에도 한 결 같이 자유와 평강을 유지하며 세상과 사람과 죄악 앞에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4/1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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