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34-36이 어렵습니다.

조회 수 10053 추천 수 15 2011.08.22 22: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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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34-36이 어렵습니다.


[질문]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헬, 던지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4-36)

이전에 말씀을 묵상하는데 구절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궁금했습니다. 진작 질문 드리려 하다가 오늘에서야 갑자기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답변]

본문의 주어(主語)는?


많은 분들이 본문에 대해서 조금 혼란스러워 합니다. 예수님의 일관된 가르침과 상충되는 것 같습니다. 그분은 “평강의 왕”으로 오신다고 예언되었고(사 9:6), 구유에서 태어났을 때도 천군천사들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눅2:14)가 올 것이라고 찬양했습니다. 또 삼 년 간의 공사역 중에도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치유하면서 서로 하나가 되어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지막 종려 주일에는 평화의 상징인 아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화평 대신에 검을 주러 왔고, 나아가 가족들끼리도 서로 원수로 만들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과연 그런지 본문부터 다시 잘 살펴봅시다. 성경에 의심나는 부분의 해답은 거의 모두 본문 안에 정답이나 그 힌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원래 우리말로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 표현이 대체로 애매하고 정확하지 못한 면이 있지만 히브리 혹은 헬라어 원전을 번역만 한 것이기에 생각보다 정밀합니다. 본문도 잘 따져보면 주님의 말씀하신 참 의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세상에는 검을, 가정에는 원수 됨을 준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주어가 엄밀히 따지면  “주님 본인”이 아니라 “당신께서 오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이 땅에서 하셨던 일 모두를 받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모든 의아심이 기인합니다.

알기 쉽게 말해 주님이 화평을 가르치지 않았거나, 그 반대로 검을 가지고 전쟁하고 가족끼리 원수가 되라고 가르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단지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시어 행하셨던 모든 일의 결과가 그런 식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당신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또 그 보혈의 공로를 온전히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복음입니다. 따라서 “내가 세상에 온 것”이라는 주어를 복음이라는 한 단어로 바꾸어서 본문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어떤 뜻이 됩니까?  

“십자가 복음은 세상 사람들로 화평하게 하지 않고 서로 나눠지게 하며, 심지어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 사이에도 분란을 일으키게 만든다.”    

서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금껏 아무도 몰랐던 인간 마음속에 깊이 숨겨진 추악한 본성까지 완전히 까뒤집어서 예리하고도 정확하게 드러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어떤 민족도 받지 못한 큰 은혜를 입었고, 거룩한 율법을 받아 준수하며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그랬습니다. 자연히 그들로부터 돌아온 반응은 단순히 외면,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일심으로 극도의 분노와 저주를 품고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님을 죽이려 덤볐습니다.

복음의 요체가 무엇입니까? 어떤 경건한 자라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분과의 영적 교통이 끊어진 원죄 하의 모든 인간은 아무리 선행과 회개를 해도 자기 죄를 스스로는 도무지 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모든 죄인을 대신해 죽으시고 하나님께 영단번의 제물로 바쳐진 예수님의 보혈 공로를 믿어야만 합니다. 그 믿음마저 성령의 간섭으로 더럽고 추했던 영혼이 거듭나게 해주는 은혜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일 뿐입니다.  

인간의 전적 타락과 무능을 전제로 하는 십자가 복음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일 뿐입니다. 한마디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교만한 자에게는 십자가는 이해도 안 될 뿐더러 미움의 대상이 됩니다. 반면에 자신에게서 의로움을 도무지 찾을 수 없음을 애통해 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는 한없이 기쁜 소식이 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결국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세상 사람들을 오직 두 종류로 나뉘게 만들었습니다. 끝까지 그분을 완악하게 거부하고 미워하여 사망에 이르는 자와, 그분을 겸비하게 구주로 영접하여 생명을 얻는 자입니다. 그 둘 사이에 어떤 조정, 타협, 중재, 혼합, 융합이 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한 쪽은 거짓의 아비 마귀에 속아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어서 세상에 속한 자요, 다른 한 쪽은 당신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주신 선한 목자를 따르는 양들로 하늘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屬)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黜會)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요15:18-19, 16:1-2)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정통복음주의 개신교만 유독 미워합니다. 가톨릭과 자유주의 개신교를 포함한 다른 모든 종교에 대해선 관용을 해도 말입니다.  십자가가 아니면 구원이 없다는 유일하고도 절대적 진리를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한 이유는 그들도 스스로 죄인이고 그 죄를 어떤 선행과 공적으로도 씻을 수 없다는 진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사단에 미혹된 영혼의 작용으로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 믿는 자도 아무 주는 것 없이 미워집니다. 가족들이 나서서 더 그러합니다. 본문의 뜻은 바로 그것입니다.  

배제 되어야 할 해석 혹은 적용

따라서 십자가 복음이 전제되지 않은 본문에 관한 모든 해석과 적용은 당연히 배제되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아기 예수가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주러 오셨다는 성탄절의 단골 구호도 엄격히 말해 틀린 것입니다. 우선 누가복음에 기록된 천군천사들의 찬양에도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분명히 한정지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택정함을 입고 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안에 온전히 들어온 자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성령의 간섭과 인도에 의해서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온전한 사랑의 교제가 가능하고 또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진정한 평화가 임합니다.

예수님 오신 이후에도 이 땅에는 평화는 요원합니다. 초대교회부터 신자에 대한 박해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문화 관습 제도 인종 종교가 다른 집단끼리 지금도 전쟁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은 예수 믿는 자들을 여전히 미워하거나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신자를 포함 한 모든 이에게 죄의 본성은 펄펄 살아 있기에 모든 이가 만족하는 완전한 평화는 불가능하며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도 아닙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검을 주러 왔다고 해서 나라나 종족 사이에 전쟁을 장려 내지 조장하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또 복음이 두 종류로 사람을 나눈다고 해서 신자더러 불신자와의 불화를 당연시하고 또 그렇게 하라고 명한 것도 아닙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담을 쌓고 지내는  핑계로 둘러대선 안 됩니다. 십자가에 드러난 영적 진리가 사람들 영혼에 눈에 보이지 않게 작용한 결과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신자더러 오히려 오른 뺨을 맞거든 왼뺨도 대어주어야 하며 원수까지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 주라고 명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가지고 기독교 서구제국들이 후진국을 식민지화 하고 수탈한 명분으로  동원해선 절대 안 됩니다. 나아가 신자들이 교회 나간다고 반대 내지 핍박하는 불신자 가족에게 예수님께 벌 받을 것이라고 대드는 것도 아주 큰 잘못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케 하는 것이 가족 간의 사랑하는 관계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이지, 가족끼리 불화하고 미워해도 된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말하자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예수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듯이”(마13:44) 자기 모든 것이 없어지더라도 십자가 복음을 자기 것으로 차지해야 합니다. 또 그 일을 위해서 마땅히, 아니 감사함으로 기꺼이 감당해야 할 희생이 바로 세상의 미움, 박해, 핍박은 물론 가족들의 반대입니다.

요컨대 미움을 갖는 것은 불신자 쪽이지 신자가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미움을 당해 자연적 인간적인 반응으로 미움으로 맞대응해서도 안 됩니다. 그들이 드러내는 미움은 단지 영적으로 무지해서 자기도 모르게 하는 짓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또 끝까지 사랑으로 인내하면서 그들도 복음 안에 들어오도록 기도하고 여건과 기회가 허락하는 대로 말로서 전도해야 합니다. 그 이전에 더욱 사랑을 섬김으로써 신자의 선한 행실을 보고 그들로 예수를 믿고자 하는 찔림이 생기게 해야 합니다.        

8/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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