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33-37 신자는 맹세하면 안 되는가요?

조회 수 694 추천 수 0 2014.11.24 22: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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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는 맹세하면 안 되는가요?
  

[질문]


“또 옛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태복음 5:33-37)

주님은 맹세를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도 맹세를 해야 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컨대 신랑신부는 주례자 앞에서 “앞으로 서로를 아끼며 사랑할 것”을 맹세해야 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과 상충되는 것 같아 혼란스럽습니다.

[답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


주님이 하신 말씀의 진의(眞意)를 몰라 이런 오해가 생깁니다. 주님은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는 말을 너희가 “옛사람”에게서 들었다고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부터 구약성경이 말하는 대로 배워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선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고 말씀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주님이 맹세를 완전히 금지했다고 이해합니다.

주님의 뜻이 맹세는 악한 것이므로 맹세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산상수훈(마5-7장)에서 주님은 팔복강화(마5:1-16)를 마치고 한 가지 전제를 단 후에 실제적인 계명들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모든 말씀의 해석은 당연히 그 전제와 부합되어야만 합니다. 그 전제가 무엇입니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17,18절)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 전체를 완전케 할 것이라고 합니다.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한다고 더욱 강조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주님은 의도적으로 일정한 패턴에 따라서 가르치십니다. 간단히 말해  “옛사람은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거기에 이런 것을 더 보탠다.”는 형식입니다.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말소하고 당신의 가르침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보완 확장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구약성경의 “살인치 말라”는 가르침은 결코 폐기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거기에다 말로 형제를 노하게 하는 정신적 살인까지 살인죄의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더 엄격한 율법을 제정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가 행동으로 드러난 잘못만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고, 그 생각은 원죄로 타락한 영혼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죄가 사람을 묶고 있는 것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태생적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맹세에 대한 가르침

맹세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됩니다. 주님의 말씀 중에 옛사람에게서 들은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는 것이 바로 구약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선 ‘헛맹세’는 거짓 맹세를 말합니다. 거짓 맹세는 지금도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결코 해선 안 됩니다. 십계명의 제 9계명에서도 헛맹세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는 것도 바로 헛맹세의 일종입니다.  

후반부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는 구약의 가르침도 너무나 지당합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민30:2)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자원하여 맹세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으며, 만약 맹세했다면 반드시 지키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민수기의 이어지는 말씀은 미혼여자의 서약은 아버지가, 아내의 서약은 남편이 그 유효성 즉 준행할 의무 여부를 최종 결정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민30:3-16) 가정의 영적 지도자 내지, 하나님 앞에 가정의 대표로 서야할 자는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또 맹세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은 자칫 잘못된 판단에 따라서 맹세할 수 있음을 하나님도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입다 사사가 승전하여 돌아올 때에 제일 처음 환영하는 자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맹세하는 바람에 자기 무남독녀 딸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 자체부터 큰 죄이지만 잘못된 맹세의 대표적 예입니다.(삿11:29-40) 사울 왕도 전투 중에 음식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는데 공교롭게도 자기 아들 요나단이 야생 꿀을 먹었습니다. 요나단은 부친의 맹세를 듣지 못했고 또 부하들이 만류하는 바람에 유야무야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사울은 하나님께 한 서약을 어기게 되었습니다.(삼상14:24-35)

율법은 인간의 판단 착오나 어리석음으로 맹세를 잘못하게 되는 경우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혹 누구든지 무심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니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범과를 인하여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양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레5:4-6)

잘못 맹세했다고 여겨지면 곧바로 하나님께 자복한 후에 속건제로 회개의 제사를 드리면 그 범과를 용서해 준다고 합니다. 입다 사사나, 사울 왕이 율법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속건제를 드렸으면 그런 난처한 지경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구약성경이 맹세에 대해서 가르치는 바는 진정성 있는 맹세는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맹세를 했으면 최선을 다해 지키라는 것입니다. 혹시 잘못 맹세했거나 완벽하게 지키지 못하면 그 범과를 고백하고 속건제를 드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맹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구약의 맹세에 대한 가르침은 누가 봐도 합당합니다. 이는 취소될 성격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도무지 하지 말라고 했으며, 심지어 악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맹세 자체를 무조건 금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위선적 형식적인 맹세를 단호히 거부한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에게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을 자기들 편리한 대로 악용하는 잘못된 습관을 당장 그만 두라는 뜻이었습니다.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마23:16-22)

주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일곱 번 질책하는 중에 세 번째의 저주입니다. 맹세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우선 주목할 것은 맹세를 했기 때문에 야단맞은 것이 아닙니다. 맹세 자체를 금지한다는 의미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맹세에 대해 백성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야단친 것입니다. 그들은 금과 예물(성전에 바칠 헌물)을 걸고 맹세한 것은 꼭 지키되 성전과 제단에다 대고 말로서 한 맹세는 꼭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주님은 금보다 성전이, 예물보다 제단이, 성전과 제단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모든 맹세는, 돈을 걸었든 말로만 서약했든, 결국 하나님께 행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어떤 맹세라도 최선을 다해 지켜야지 맹세 중에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맹세를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로 순수한 진정성을 싣느냐 여부이며 또 그랬다면 최선을 다해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질문에서 인용하신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자세히 다시 보십시오. 상기의 질책과 평행되는 표현을 사용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동일한 화자(話者)가 동일한 표현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 화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하늘보다 하나님의 보좌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땅보다 하나님의 발등상이, 예루살렘보다 큰 임금(하나님)이, 머리보다 그것을 자라게 하는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어떤 맹세라도 모두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은 맹세에 거는 사안의 종류에 따라 준행할 의무를 달리 했습니다. 자기들의 영적 권위를 높이거나 물질적 탐욕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궤변적 언어유희를 했던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부모를 부양할 돈으로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고르반” 선언만 하면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막7:11) 성전에 돈을 바치겠다는 서약이기에 노부모를 방치하더라도 반드시 지키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헛된 제물을 제발 그만 가져오라고 한탄 하면서 그 대신에 선행과 공의를 실천하며 그 돈으로 고아와 과부를 변호하라고 했습니다.(사1:10-17) 예수님도 제물에 예물을 바치러 오다가 형제들에게 원망 들을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화해하라고 가르쳤습니다.(마5:23,24) 주님은 헌금, 헌물 또 그를 위한 맹세 같은 종교적 행위보다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정의와 공평을 실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돈보다 성전이, 성전보다 하나님이 크다고 강조한 이유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돈과 예물을 받아 치부하려고 반대로 가르쳤습니다. 주님은 지금 맹세를 그렇게 가르치지 말고 그런 헛된 맹세는 결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맹세에 대해 보완 확충한 개념

주님은 이어서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라는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은 유대 랍비들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두 번 이상 같은 대답을 하면 맹세라고 간주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그런 해석이나 관습까지 염두에 두셨는지는 모릅니다. 저자 마태는 특별히 유대인 독자를 대상으로 이 복음서를 저작했기에 특별히 그 점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주님이 맹세 자체를 무조건 금지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예스, 노로 대답한다는 자체가 일종의 맹세입니다. 맹세란 하나님께 자원하여 무엇을 드리려 서약하든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복을 받은 대가로 어떤 것을 바치겠다든지, 사람들 사이에 계약을 지키려는 보증이든지 간에, 모든 종류의 약속을 잘 지키겠다는 결의를 내비치는 행위입니다. 그럼 무슨 계명이나, 서원이나, 약속이나, 계약이든 간에 진정성과 성실성을 갖고 대답을 했다면 맹세인 셈입니다.

요컨대 주님의 뜻은 구태여 말로든 물건이든 보증할 필요 없이 무슨 약속이든 성실히 지키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맹세에 대해 가르치는 근본 의미를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꾸만 거창한 대상이나 물건을 동원해 맹세하는 것은 상대를 속이려는 잘못된 의도가 개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지도자들이 자기들 탐욕을 채우려 과도한 말장난을 했듯이 말입니다. 아예 맹세를 금해버리면 인간의 그런 치사하고 비겁한 과장, 사기, 기만을 차단할 수 있다는 뜻도 주님의 말씀에 포함된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맹세 자체를 금한 것이 아니라, 맹세를 악용하는 것을 금한 것입니다.

주님은 유대지도자들이 성전, 제단, 예물, 하늘, 땅 등 하나님이 통치하는 거룩한 영역마저 자기들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고 야단쳤습니다. 살펴본 대로
주님은 살인죄를 정신적 살인에까지 확대 적용했듯이 지금 맹세도 인간의 영혼의 타락상과 연결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추하고 더럽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맹세를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혹은 맹세를 해도 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는 종교적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맹세가 갖는 영적인 의미를 온전히 깨달아 정말로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한다면 순전한 맹세를 하고 순전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산상수훈의 모든 가르침이 그러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신자의 실제 삶에서의 신자가 지켜야 할 윤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면적으로는 모든 죄가 인간 영혼이 타락한 데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는 것입니다. 행동과 말과 생각의 죄는 영혼의 죄에서 나온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시작이 영혼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볼 것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한 까닭입니다. 그 후의 모든 가르침도 천국을 보는 문제 즉, 구원받은 신자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서는 일에 관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미래의 불특정한 일

신자가 실제로 맹세하지 말아야 할 경우도 있는데 베드로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 번이나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26:35)라고 대답합니다. 자기 생명을 걸고서 부인하지 않겠다는 맹세입니다. 알다시피 그는 너무나 무력하게도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합니다. 지키지 못할 맹세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이전에 주님이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겠다고 가르칠 때도 베드로는 동일한 잘못을 범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 예수님더러 그러지 말라고 간곡히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덧붙임으로써 자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맹세한 것입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스승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같은 맥락입니다.  

주님은 그 때에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절)라고 야단치셨습니다. 심지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막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막으면 인간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단만 좋게 만들게 된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실패를 맹세와 연관시키면 인간이 도무지 막거나, 조절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해선 맹세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그가 십자가 구원의 길을 미처 몰랐기에 스승을 사랑하고 위하는 진심에서 우러난 헌신이긴 합니다. 신자들도 장래에 실현될 하나님의 일을 미리 알지 못합니다. 또 살펴본 대로 주님이 맹세 자체를 금하지 않았기에 베드로처럼 순전한 열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장래 일에 대해서도 맹세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래의 특정한 결과까지 미리 확정적으로 장담하는 일만 금하면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어떤 지역에 가서 장사하여 큰 이득을 낼 것이라고 큰소리치지 말라고 했습니다.(약4:13-16) 그 이유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대신에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 것 저 것을 하리라”고만 말하라고 합니다. 옳다 아니다만 답하라는 예수님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미래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렸기에 그분의 절대적 주권을 겸손히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맹세와 서원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인 미래의 특정한 결과에 대해 맹세 내지 장담을 하지 말라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은 서약해도 된다는 뜻이 됩니다. 질문하신 결혼서약의 경우입니다. 이는 불특정하고도 실현은 물론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일을 즉, 하나님만이 주관하는 일을 미리 장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려고 노력하겠다는 결단을 입술로 고백한 것뿐입니다.

물론 부부가 살다보면 자주 싸우고 심하면 이혼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장래 일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서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떤 뜻이 됩니까? 결혼식장에서부터 이혼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결혼서약은 미래의 특정한 결과를 장담하고 그 위에 뭔가를 건 맹세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단순히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키워가겠다는 것입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도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준행하며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최선을 다하면 그만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이든 국가에 대한 충성이든 개인마다 헌신하는 정도의 문제이지 특정 수준을 사전에 정해 놓고 거기까지 이르지 않으면 보상한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법원에서의 증인선서도 거짓 증언을 하지 않겠다고 동의한 것뿐입니다. 거짓증거할지 모르니 선서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양심에 비추어 진실한 증언만 하라는 법원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인생살이에서 이런 것들보다 맹세에 더 가까운 일이 있습니다. 모든 상거래 계약서에는 계약금이나 보증금을 걸어야 하고, 대출을 받을 때는 담보를 걸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것이며 지키지 못할 것에 대비해 보증한 것입니다. 만약 신자가 맹세를 전혀 하지 못한다면 아예 이런 상거래를 모두 중지해야만 합니다. 세상을 떠나 수도원에서 평생을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옳다, 아니다 즉 예스 노만 대답했다고 해도 사람 일이란 알 수 없어서 그대로 지키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맹세에 대해 강조하는 내용은 장래 일을 인간이 뭔가 걸면서까지 장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서로가 절대 속이지 않는 진실성과 신뢰성이 보장되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모든 이가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옳다 아니다만 대답하고 또 그대로 완전히 실현된다면 맹세가 무슨 필요 있겠습니까?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아담과 이브는 서로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아니했다고 합니다.(창2:25) 부부 사이에, 이때는 인간이라곤 둘 뿐이었으므로 모든 인간끼리 감출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죄가 들어옴으로써 서로 속이고 핑계대고 조종하여 이용해 먹으려들게 된 것입니다. 그런 죄가 가장 확장 발전된 모습이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맹세까지 악용해 자기 배를 채우려든 것입니다.

질문에 인용한 주님의 말씀은 신자가 맹세를 해도 되는지 여부를 가르친 종교적 계명이 아닙니다. 맹세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대비하여 인간의 영적 타락상이 얼마나 추한지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신자는 맹세나 서약을 종교적 관점에서 따지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신실하고 순전한 자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10/2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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