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4:16-18 사마리아 여인은 계대결혼을 했는가?

조회 수 1209 추천 수 9 2012.02.01 00: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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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인은 계대결혼을 했는가?


[질문]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다 떠나갔고 지금 같이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여자를 방탕했던 사람이라고 얘기하거나, 남편이라는 대상에게 의지하려고 했던 나약한 여인으로 묘사하고 그 때문에 남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 제 육시(정오 즈음)의 땡볕 아래서 물을 떠야만 했다고 보편적으로 얘기합니다.

한데 최근에 이 여인이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것은 이 여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사마리아에서도 전해져 내려오던 형수취수제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맞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이후 강제 결혼 정책으로 많은 혼혈이 일어났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의견의 타당성은 어느 정도인가요?

[답변]

계대결혼이 옳으려면?


북왕국 이스라엘은 마지막 호세아 왕 9년(BC722)에 앗수르에 의해 망합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 포로를 많이 잡아가기도 했지만 바벨론 등에서 많은 이방인들을 데려와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거주토록 합니다. 자연히 혈통적 종교적으로 혼합되었고 그 후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하고 상종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왕하17장 참조)  

따라서 앗수르가 혼혈 정책을 쓴 것은 맞지만 그 혼혈정책과 이 여인이 남편이 많았던 것과는 어떤 연관도 없습니다. 상식적으로만 따져도 앗수르가 혼혈아를 많이 만들려고 여러 번 결혼, 이혼시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문제는 이 여인뿐 아니라 모든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 해당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오경만(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구약성경의 첫 다섯 책)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다른 말로 율법을 중시하긴 유대인과 동일했으며, 또 그럼 율법에서 명하는 형수취수(계대결혼법)(신25:5-10)도 지켰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남편이 많았던 것을 그 제도 때문이라고 단정지어서 해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차례로 죽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의 장남 엘과 차남 오난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었습니다. 다윗과 예수님의 선조가 된 유다조차 삼남 셀라마저 죽일 수 없다고 판단하여 며느리 다말을 쫓아내었지 않습니까?(창38장 참조)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도 예수님께 트집을 잡으려고 바로 이 제도를 들먹거렸습니다. 일곱 형제와 결혼한 여자의 경우 부활 시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여섯 형제가 죽은 셈인데 이 여인의 남편 숫자보다 단 한 명 더 많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의 불합리성을 주장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형제 숫자를 최대한 불렸다는 정도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습니다.(마22:23-33)

본 주제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스필버그 감독의 “Saving Private Ryan”이란 영화가 시사하는 바도 참조할 만합니다. 형제 셋이 전사하자 국가에서 그 가문을 이으려고 막내를 구하러 특공대를 보냈지 않습니까? 특공대원들이 대신 죽더라도 그랬습니다. 어쨌든 욥기의 경우처럼 자연재해 등으로 형제들이 일시에 죽는 예는 있어도, 계대결혼을 시킬 만큼 다섯 형제가  시차를 두고 순차대로 죽는 일은 현실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으니까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칩시다. 그럼 당장에 몇 가지 모순이 파생합니다. 첫째, 마지막으로 함께 살고 있는 남자가 그 여인의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이 말이 안 됩니다. 계대 결혼해도 정식 남편입니다. 친형제가 다 죽으면 친척 중에 가까운 순서대로 그 책임을 져야하고. 친척마저 없으면 자기 가문의 사람과 결혼하면 됩니다. 심지어 율법은 기업을 무를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경우도 같은 지파의 남자와 결혼시켜 가문을 잊도록 했습니다.(민27:1-11, 36장) 보아스는 룻과 계대결혼을 했는데(룻기 4장) 형제도 아닌 친척인 그는 정식 남편이었습니다. 만약 사마리아 여인에게 남편이 많았던 이유가 계대결혼 때문이었다면 마지막 남자도 정식 남편이어야만 합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려면 성경기록예 맞추어 해석해야 합니다. 즉, 앞선 네 번의 재혼은 형제든, 친척이든 계대 결혼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지막 동거하는 자가 남편이 아니라면 그 여인이 계대결혼에 너무 지쳐서 스스로 가문을 등졌거나, 다말의 경우처럼 시댁에서 쫓겨 나왔어야 합니다. 계대 결혼을 이어갈 수 있는 친척이나 같은 지파 남자는 얼마든지 있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그 해석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 여인의 심령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아주 갈급했다는 뜻이 됩니다.

성경 기록과 달리 마지막 남자까지 계대결혼을 했다 치면 그 남자도 남편입니다. 그럼 예수님도 헛다리짚었고, 성경기록에 오류가 있는 셈이 됩니다. 거기다 마지막까지 계대결혼이었다면 그 여인은 율법을 아주 신실하게 지켰기에 칭송 받아 마땅합니다. 동네 사람 모두가 가문의 기업을 이으려 자기 모든 것을 희생한 효녀나 열녀로 취급할 텐데 구태여 사람들 눈을 피해 혼자 물 길러 올 이유는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분명한 기록이 없기에 그녀가 계대결혼했는지 여부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계대결혼이란 반드시 남편이 죽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다섯 명이나 순차로 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남편에게 이혼증서를 받고서 혹은 그런 증서도 없이 쫓겨 나왔다고도 볼 수 있으며, 어쩌면 더 개연성이 높아 보입니다. 아니면 이미 말씀드린 대로 네 번의 계대결혼과 마지막의 임의 동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그 여인의 심령은 갈급했음은 틀림없습니다. 요체는 결혼의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결혼과 또 다른 동거를 해도 전혀 평강과 행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 의도

무엇보다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이 여인을 만나러 가셨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요4:3,4) 유대에서 갈릴리를 가는데 사마리아를 통과하면 3일이면 가고, 둘러 가면 6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사마리아인을 상종도 않던 당시 유대인들은 시간과 경비의 손해를 무릅쓰고 둘러갔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그 반대로 행했습니다. 하필 그 여인이 우물에 물 길러 오는 시간에 맞추어 그곳에 도착한 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확하게 그녀를 만나려고 정확한 시간과 장소로 찾아가신 것입니다. 그 여인의 사정을 이미 다 꿰뚫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28,29절)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요2:24,25)

우연히 그 여인을 만난 후에서야 당신만의 신적 권능으로 그 여인의 사정을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께서 주도했습니다. 그것도 그 여인의 현재의 현실적 상황과 심령의 영적상태에 맞추어 진행했습니다. 나아가 이 여인만 구원하려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留)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39-42절)

예수님은 영적으로 갈급하고 가난한 이 여인을 통해 사마리아인들을 구원하려 한 것입니다. 정확히는 사마리아인들을 표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도하는 본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이 여인의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알아맞힌 신통력 때문이 아니라 당신께서 전하신 천국복음 때문에 구주임을 확신하게 되었다지 않습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신자라면 누구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승천 직전에 제자들더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되 먼저 유대에서 시작해 사마리아를 통과해 온 땅으로 퍼지게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명할 그 말씀을 미리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43절) 갈릴리 쪽에는 데가볼리라는 헬라제국이 지은 이방인들의 도시 열 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마리아인들과 이틀을 유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과 대화는커녕 상종도 않는데 한 이름 없는 젊은 유대 랍비가 그들과 한 집에서 먹고 마시고 자면서 교제했습니다. 이틀을 유하고 다시 갈릴리 가는데 하루나 이틀 더 걸렸을 수 있습니다. 결국 둘러가는 만큼의 시간인 6일이 다 소요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이 또한 동행한 제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대단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과 상종도 않으려고 둘러가려면 6일이나 걸립니다. 곧바로 질러가면 3일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그 3일 동안에 복음을 전하면서 불쌍한 이 여인 뿐 아니라 이만큼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보여준 것입니다.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35절) 너희가 괜스레 허비하는 3일을 영적 추수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4절)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는 가나안 여인에게 예수님은 아주 냉혹한(?)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15:24) 그러자 여인은 재차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더 가혹하게 거절(?)했습니다.

이제 이런 말씀이 당신의 본심이 아님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사마리아를 일부러 통과하고 이틀을 유하고 또 갈릴리와 데가볼리까지 복음을 전하러 갔지 않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 속을 아시는 주님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어 후대의 성경독자들에게 복음과 믿음의 관계를 깨우쳐 주려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구원에는 인간의 현실적 상황과 신분과 조건에 대한 어떤 차별도 없음도 함께 말입니다.

성경에서 계대결혼에 대한 가르침은 창세기 다말 기사와 룻기에 자세히 나옵니다. 전자는 하나님 뜻에 불순종하여 실패한, 후자는 순종하여 성공한 예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는 특정한 결혼방식보다 기록된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수님의 의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급선무입니다. 사마리안 전도가 핵심 주제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진정으로 참 사랑에 목말랐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이 심령이 가난한 여인을 통해 십자가 복음(전도)의 보편성, 시급성, 절대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물가의 대화도 한 불쌍한 죄인을 안타까이 여기어 구원코자 하는 예수님의 놀랍고도 풍성한 은혜와 권능이 문장 하나, 단어 하나 하나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절대로 별개의 독립된 한 사건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살펴본 대로 창세기의 다말, 룻기, 예수님의 지상 명령과 심지어 가나안 여인과의 대화에까지 다 관련이 있었습니다. 사건 자체에만 시야를 한정시키다 보면 자칫 상처 받은 한 심령을 치유하는 예수님에 그칩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전적으로 접급하면  사마리아인은 물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계획은 물론, 그 계획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몸소 본을 보이며 실현하신 주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1/6/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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