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8:1-11 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조회 수 2683 추천 수 9 2012.02.01 01: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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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질문]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가 같이 나올 수 있는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대상을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를 죄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닌가요? 이걸 근거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는 것이 원본에 없었으나 후에 덧붙여진 이야기라는 설이 있던데, 이것이 타당한 말인지, 만약 정말로 가필된 것이라면 왜 후대의 성서학자들이 이 구절을 다시 손보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과연 추가된 구절인가?


먼저 그 구절 하나만이 아니라 요한복음 7:53-8:11까지의 내용 전체가 일부 필사본에는 없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누가복음의 21:38 뒤에, 혹은 요한복음의 맨 뒤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이 사건의 역사적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즉 원본에는 없다가 후대에 추가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본들이 이 기사를 요한복음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본에 배열이 다른 것은 서기관들이 그 필체나 내용이 누가에 가깝다는 이유로 어디에 둘지 몰랐을 뿐 기사 자체를 완전히 없애려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또 일부 사본에 삭제된 이유는 2, 3세기의 기독교가 이방종교와 가장 다른 점을 간음을 죄로 인정하는 것(오늘 날의 사정과 유사하지 않습니까?) 때문으로 이해합니다. 즉, 본문의 깊은 의미를 미처 모르고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무조건 용서해준 것이 기독교의 우월성(?)에 손상을 입힌다고 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 수시로 온갖 계략을 동원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간음한 여인을 그 현장에서 붙들었으면 곧바로 간부(姦夫)와 함께 돌로 쳐 죽이면 됩니다. 그런데도 간부는 사라지고 여인만 붙들어 와서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그 배후 사정에는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모략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돌로 쳐 죽이라고 답하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당신의 그간의 가르침을 스스로 안 지킨 셈이 됩니다. 말만 앞서는 위선적 랍비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용서해주라고 답해도 율법을 위반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제 삼의 답변을 합니다.

인간의 지혜와는 차원이 다른 대답으로 오히려 유대인들을 궁지로 빠트렸습니다. 성경의 유사한 사건과 비교해 볼 때 오히려 그 사실성이 더 입증된다는 뜻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구태여 당시의 다른 이, 아니 역사상 어떤 누구에게 시험 목적으로 물어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던 사건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어떤 죄라도 당신 앞에 겸비하게 무릎 꿇는 자는 용서해 주신다는 예수님의 여타 가르침과도 일치합니다. 실제로 이어지는 8:15에선 예수님은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여인을 용서하신 이유를 다시 한 번 바리새인들에게 풀어 설명해준 셈입니다. 오히려 현재의 위치에 이 기사가 있어야 앞뒤 연결이 더 자연스럽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외국어 신약성경 번역본인 제롬의 라틴어 벌게이트에는 요한복음에 이 기사를 포함시켰고, 어그스틴도 본문을 중요시 했습니다. 한마디로 원본대로 성경에 계속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문제가 잠시 논의가 되었지만, 후대에 가필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어느 구절도 다시 손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끝까지 남았는가?

본문의 근본 주제는 간음한 현장에서 잡혀왔어도 그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긍휼입니다.  율법과 대비한 은혜를 드러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모략을 잘 벗어나는 예수님의 신성도 함께 강조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아주 중요한 사항이 또 하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 앞에 끝까지 남은 그 여인만 용서 받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10절)라고 예수님이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그럼 돌로 치지 않으면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여인을 고소하던 이들이 오히려 자기들을 고소한 셈이 되었습니다. 또 율법으로 정죄하려던 자가 다 사라졌으니 그 정죄함 즉, 돌로 쳐죽임 당함에서도 여인은 풀린 셈입니다.  

거기다 이 여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예수님에게서 물러갔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여서 구속하실 수 있는 구세주로 오신 분에게서 떠나버렸습니다. 스스로 구원의 기회를 걷어찬 꼴입니다. 반면에 그 여인은 당시 상황으로선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주님 앞에 아마도 엎드린  모습으로 끝까지 남아 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부끄럽고 겸비해진 상태에서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고 용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주님의 말 한마디에 스스로 찔려서 모두 물러감으로써 율법의 정죄는 이미 완전히 취소되었습니다. 십자가 은혜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으로선 더더욱 정죄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 주님 앞에 엎드린 그녀의 지금 심령의 상태를 잘 아시기에 구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요컨대 주님에게 속하여 그분을 따르면 영생이, 그분을 배척하고 떠나면 영벌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 곧바로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절)  여인을 정죄하던 자들은 주님을 떠났기에 모두 어두움에 다니게 되었고, 당신 앞에 남게 된 여인은 오히려 생명의 빛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지금처럼 이 기사가 위치한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씀드린 또 다른 좋은 증거입니다.  

이 기사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신성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현장에 간음한 여인이 실은 모든 인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운명이 구원과 심판으로 갈리는 기준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진심으로 자신을 내어드리느냐 여부인 것입니다.

정죄와 범죄

질문자님은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가 같이 나올 수 있는 내용인지 궁금해 했습니다. 어떤 대상을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그를 죄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뜻인데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구원과 죄의 상관관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간단히 그 상황에 적용만 해보아도 간음죄에서 용서 받았으니 다시는 동일한 죄를 범하지 말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거짓말한 것이 아빠에게 들켰으면, 이번에는 용서해 줄 테니까 다시는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마땅히 타일러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 본문에서의 의미는 더 깊은 차원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 얻는 경우로 확장해서 따져야 합니다. 먼저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와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구원을 세 차원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어 구원을 얻는 단계를 칭의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벌인 지옥행에서 면제 받고(긍휼, mercy), 도무지 받을 조건이라곤 하나 없었는데도 천국 가는 상(은혜, grace)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죄(원죄)와 예수 믿기 전과 후의 모든 도덕적 죄에 대한 형벌(penalty)만 면해지는 차원입니다.

이는 죄인을 의인 즉,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는 하나님 쪽에서의 일방적 은혜입니다. 어둠과 죄악과 사망의 노예가 되어 있던 자를 빛과 의와 생명의 자리로 그분이 옮겨주신 것입니다. 신분과 소속만 달라진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그 사람의 조건, 상황, 공적 그 어떤 것과 상관없이 당신의 품에 품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영어로 치면 "not guilty, innocent"라고, 더 정확하게는 “not sinner but His children"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은혜를 받은 신자는 더 이상 도덕적 종교적 죄를 짓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생각이나 말로나 행동으로 실제적인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성화라고 하는데 죄의 가공할 능력에서 해방되는 과정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어도 그 속에 남아 있는 죄의 본성을 줄이고 없애는 싸움입니다. 평생을 피 흘리기까지 악과 싸워서 범죄하지(commit a crime) 말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 합니다.

다지 정리하자면 이 사건에서 예수님이 정죄하지 않은 대상은 간음하다 붙잡혀 온 그 여인 즉, 한 사람의 인격체 전부입니다. 또 그 여인이 용서 받았다면 당연히 지금의 간음죄도 함께 용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하지 말라는 대상은 정죄 받지 않은 여인이 앞으로 행할 행동(생각도 행동임)입니다. 구체적 가시적 실제적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머지 세 번째 차원은 신자가 죽으면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바뀌는 영화입니다. 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천국으로 옮겨지는 것이자 신자의 영혼도 죄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진심으로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는 이미 확정된 사실로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는 구절을 가필한 것으로 본다는 것은 정죄와 범죄의 정확한 내용을 구원의 이런 세 차원과 연결시켜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1/17/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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