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1:12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의미는?

조회 수 25877 추천 수 10 2012.10.10 01: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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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의미는?


[질문]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에서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을 드립니다.

1) "세례요한 때"부터라 하면 구약 시대에는 천국이 침노 당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는데 이것이 어떤 뜻인가요?

2)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분명 예수님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데,  "천국을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하면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어떤 행위에 의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으로 오해 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답변]

언뜻 보면 이 구절은 구약시대와 비교해 신약시대에는 구원의 진리가 뭔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거기다 천국을 침노해야 차지한다고 하니까 많은 신자들이 질문자처럼 행위 구원의 말씀인지 궁금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본문의 뜻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도리어 성경을 가장 기본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아주 적절한 교재가 됩니다. 신학적 지식이 없더라도 본문과 앞뒤 문맥만 정확히 따지면 온전히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난해할수록 본문과 문맥에서 그 뜻을 찾아야 하고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그 안에 정답 혹은 정답으로 이끄는 힌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모든 저자는 특정 주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글을 이어가기에 문맥과 격리된 의미를 갖는 구절은 하나도 없는 법입니다.  

성경해석의 대전제  

본문처럼 행위 구원으로 오해될만한 구절들이 성경에 종종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전체의 뜻은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교리를 전적으로 부인합니다. 성경전체라는 것은 구약성경에도 믿음의 구원을 드러내는 복음이 얼마든지 있다는 뜻입니다. 정확히 말해 구약도 행위구원을 부인하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 진리가 바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연유했지 않습니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3:17, 21,22)

따라서 아무리 행위구원으로 오해될만한 구절이라도 무조건 그런 해석은 배제해야 합니다. 대신에  앞뒤 문맥을 잘 살펴서 왜 그런 표현을 하였는지 믿음의 구원에 바탕을 두고 더 깊은 뜻을 찾아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가장 혼동하는 구절인 야고보서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7)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앞부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2:18) 야고보가 어떤 자와 자신을 비교합니까? 행함은 없고  예수를 그냥 믿기만 한 자입니다. 성화의 열매가 전혀 보이지 않는 자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성령의 온전한 거듭남이 있었다면 성화가 아직 제대로 안 이뤄져도, 모든 신자가 그런 형편임, 당연히 구원 받은 것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과 대조해서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이겠다고 합니다. 이미 온전히 믿었다는 사실의 진정성을 행함으로 입증하겠다는 것입니다. 행위구원이란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관하게 인간의 공적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뜻이 행위구원이 되려면 “나는 믿음 없이도 행함으로 나의 온전함을 보이리라”고 그 표현이 달라져야 합니다.

본문 뒤에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을 예로 삼아 동일한 맥락에서 말씀합니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1b)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언뜻 행위구원 같습니다. 그러나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22절)고 이어집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드러나야 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믿음이 온전히 있는 것입니다.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23절)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늙어 생산이 불가능함을 알고도 후손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에 어떤 행위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또 말년에 그 약속의 외아들마저 제물로 바친 것도 하나님이 이삭을 부활시켜 주시거나 또 다른 자식을 줄 수 있음을 온전히 믿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롬4:17-22) 요컨대 모리아 산 사건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증명된 것이지, 이삭을 바친 후에 비로소 의롭다 여겨진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본문과 문맥에서 뜻을 찾으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는 본문을 먼저 따져 봅시다. 만약 침노해서 천국을 차지하는 것이 특정 행위라면 행위 구원이 됩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는” 은혜 시대인 신약시대를 말하는데 더더욱 어불성설입니다. 본문 안에서부터 그런 해석은 단연코 부인됩니다.

더 구체적인 의미를 알려면 이 구절이 속한 전체 문맥(11:2-19)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오실 그이” 즉, 메시아가 당신인지 묻게 했습니다. 본문은 주님이 그에 답한 후 제자들에게 풀어 설명한 내용입니다. 요컨대 “예수님의 정체성”을 당신께서 직접 변호한 것으로 본문은 그런 바탕에서 해석해야만 합니다.

주님은 우선 요한의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행하신 이적과 가르친 내용을 보고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11:6)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깨닫고 메시아로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는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세례 요한이 맡은 역할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메시아 즉, 당신께서 곧 오신다고 미리 선포했던 자라는 것입니다.(7-11절) 그래서 10절에서 말라기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말3:1a)라는 예언을 인용한 것입니다. 본문 앞에 있는 내용들입니다.

본문에 이어선 어떤 내용이 나옵니까?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13절)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은 구약성경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은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인데 그 예언은 요한으로 끝마쳐졌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필요 없고 요한의 예언대로 자신이 바로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사람이니라.”(14절)고 요한에 대해 부연 설명했습니다. 이 또한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를 인용한 것입니다. 크고 두려운 날은 여호와의  날로 바로 예수님의 초림을 말합니다. 그 전에 엘리야 같은 선지자가 와서 구원과 심판을 선포할 것인데 요한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15절)라고 선포한 후에 16-19절에선 이 세대의 귀 없음에 대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면 구원 받을 수 있는데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메시아의 오심은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 심판을 의미하는데도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요한은 귀신들린 자요, 인자(인간으로 오신 예수)는 술을 탐하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세대의 사람들은 요한의 예언도(세례 요한의 때부터), 또 그 예언대로 실제로 메시아가 왔어도(지금까지)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심지어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과 그 제자들도 예수님이 술 마시고 세리와 죄인과 교제하니 혹시 메시아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기에 그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종교적 외양보다 당신께서 일으킨 이적과 가르침의 의미를 잘 따져보면 당신의 메시아 되심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다른 성경과 비교해보라.

이제 본문의 의미가 거의 드러났습니다. 먼저 요한의 메시지대로 메시아가 이 땅에 왔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가 곧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여 죄인을 구속하실 사역을 완수할 것입니다. 따라서 귀 있는 자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구주로 영접하여 그분의 영생을 선물로 얻고 또 그분의 거룩한 통치 아래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설명한 그대로 당신을 인하여 실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귀 없는 자처럼 당신의 메시아 되심을 깨닫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세례 요한의 예언과  예수님 당신의 사역과 가르침에 대해 세밀히 따져서 구약의 모든 예언들과 비교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깨달음을 얻는 자는 구원을 차지할 뿐 아니라 그분의 거룩하고 완전한 통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구절을 해석했으면 성경전체가 말하는 진리와 성경 다른 부분의 동일한 언급과도 부합되는지 비교 검증해봐야 합니다. 앞에서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잘 깨달아 그분을 메시아로 영접하여 구원을 얻으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는 기독교 진리와 완전히 일치 됩니다. 누구라도 예수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또 누가복음 16:16과 평행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은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4-16)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들어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웃었고 주님은 그들의 교만을 야단쳤습니다. 그리고 율법과 선지자는 즉, 구약성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요한으로 마감되고 이제는 그 메시아이신 당신이 오셔서 천국 복음을 직접 전파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에선 ‘침입한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의 “침노하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둘 다 특정지역을 침공해서 강제로 빼앗는 것 같은 어감을 줍니다만, 근본적으로 그 어원은 강력한 힘으로 행동하는(주도적) 또는 움직이는(수동적) 모습을 뜻합니다. 헬라문법상으로도 수동태와 중간태(수동과 능동의 의미가 다 있음) 둘 다 해석이 가능합니다.

알기 쉽게 말해 우선 주어가 되는 천국(마태복음의 경우)과 복음(누가복음의 경우)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예수님이 전파하고 있는 복음의 권세가 강력하고 또 여러 이적으로 그 복음의 절대성이 확실히 입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고 듣는 귀가 있다면 그 복음 앞에 항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신자 쪽에서도 정말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갈급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아주 크고 강한 행위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껏 세상에선 도무지 구원을 얻을 수 없었기에 메시아를 만나려는 강한 기대와 소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한다는 것은 누구나 침노하기만 하면 차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천국이 강력하게 이 땅에 도래했습니다. 단순히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고 완전한 통치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통치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오신 이후처럼 강력하지 못했기에 아무나 침노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이후 천국이 강력하게 임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과도 연결됩니다. 구약시대에는 특정인물에게 특정사건을 위해 성령이 일시적 부분적으로 임했지만 이젠 예수를 진심으로 영접하면 누구에게나 임재 내주합니다. 또 영원토록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으로 보호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천국을 침노한다는 또 다른 의미입니다.

9/28/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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