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반드시 성령의 간섭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야만 받습니다.(요3:3) 그 외 다른 구원은 절대 없습니다.(요14:6) 십자가상의 그 죄수도 구체적인 성경의 기록은 없어도(사실은 다른 모든 제자도 그 구원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음) 성령으로 거듭났기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 근거로 십자가에서 행한 대화 가운데 크게 세 가지가 계시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다른 죄수가 주님을 비방하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23:41) 꾸중했습니다. 자기 죄를 정확히 깨닫고서 그동안 철저히 회개해 왔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23:42)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구세주인 것을 인지했고 또 자신이 구원받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하지 않은 자연인은(다른 죄수 같은) 절대로 실토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그의 간청을 듣고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43절)라고 구원을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를 구원해 주실 리 없습니다. 그러면 공사역 중에 당신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당신께서 뒤집는 셈이 됩니다. 주님이 그를 구원으로 택하시고 그런 자리에까지 이르게 한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본인이 미처 의식하지 못했어도 성령이 계속 구원을 위해서 그 강도의 심령에 역사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 있는 중에도 그의 영혼을 두드리면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게 하셨다가,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는 순간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해서 온전히 거듭나도록 이끈 것입니다.
그 죄인도 나름대로 영적 갈등과 씨름을 해왔다고 봐야 합니다. 극악무도한 죄인이었다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보고는 두려워서 즉 지옥 심판이 두려워서 갑자기 회개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으로 택한 당신의 자녀이므로 그 영혼의 견고한 진을 무너트리려고 계속 그 심령을 성령이 두드리신 결과입니다. 인간 쪽 신자는 자신의 택함과 성령의 역사는 모른 채 자기 나름대로 영적인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밤중에 예수님에게 구원의 길을 물으러 온 니고데모도 구원에 대한 소망은 있으나 율법 준행만으로는 도무지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번에 극적인 회심을 한 것처럼 보이는 바울도 틀림없이 스데반 처형을 주도하고 예수 믿는 시자들을 박해하면서 내심 크게 갈등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십자가 강도 사건이 불치병이나 노환으로 임종을 앞둔 불신자 환자의 구원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대로 단순히 지옥 심판이 두려워서, 그 심판에서 제외되고 싶다는 의도로만 회개해선 구원과 무관합니다. 이전의 성경 문답에서 밝혔듯이 윤리적 죄들만 회개해선 안 되며 본인 전부가 철저한 죄인이었다는 전인격적인 회심이어야 합니다.
이미 두 번이나 다룬 주제입니다만, 다시 간단히 답변드리자면
구원은 반드시 성령의 간섭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야만 받습니다.(요3:3) 그 외 다른 구원은 절대 없습니다.(요14:6) 십자가상의 그 죄수도 구체적인 성경의 기록은 없어도(사실은 다른 모든 제자도 그 구원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음) 성령으로 거듭났기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 근거로 십자가에서 행한 대화 가운데 크게 세 가지가 계시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다른 죄수가 주님을 비방하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23:41) 꾸중했습니다. 자기 죄를 정확히 깨닫고서 그동안 철저히 회개해 왔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23:42)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구세주인 것을 인지했고 또 자신이 구원받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하지 않은 자연인은(다른 죄수 같은) 절대로 실토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그의 간청을 듣고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43절)라고 구원을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를 구원해 주실 리 없습니다. 그러면 공사역 중에 당신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당신께서 뒤집는 셈이 됩니다. 주님이 그를 구원으로 택하시고 그런 자리에까지 이르게 한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본인이 미처 의식하지 못했어도 성령이 계속 구원을 위해서 그 강도의 심령에 역사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 있는 중에도 그의 영혼을 두드리면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게 하셨다가,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는 순간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해서 온전히 거듭나도록 이끈 것입니다.
그 죄인도 나름대로 영적 갈등과 씨름을 해왔다고 봐야 합니다. 극악무도한 죄인이었다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보고는 두려워서 즉 지옥 심판이 두려워서 갑자기 회개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으로 택한 당신의 자녀이므로 그 영혼의 견고한 진을 무너트리려고 계속 그 심령을 성령이 두드리신 결과입니다. 인간 쪽 신자는 자신의 택함과 성령의 역사는 모른 채 자기 나름대로 영적인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밤중에 예수님에게 구원의 길을 물으러 온 니고데모도 구원에 대한 소망은 있으나 율법 준행만으로는 도무지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번에 극적인 회심을 한 것처럼 보이는 바울도 틀림없이 스데반 처형을 주도하고 예수 믿는 시자들을 박해하면서 내심 크게 갈등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십자가 강도 사건이 불치병이나 노환으로 임종을 앞둔 불신자 환자의 구원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대로 단순히 지옥 심판이 두려워서, 그 심판에서 제외되고 싶다는 의도로만 회개해선 구원과 무관합니다. 이전의 성경 문답에서 밝혔듯이 윤리적 죄들만 회개해선 안 되며 본인 전부가 철저한 죄인이었다는 전인격적인 회심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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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문답에 올린 이전의 글들도 참조하십시오.
십자가상 강도도 구원이 예정되었나요?
(눅23:39-43) 십자가 강도의 구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