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6:41-50) 지구가 멸망하기 일분 전인데도?

구약성경강해 (35) / 민수기강해 (25)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 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 칠백명이었더라 염병이 그치매 아론이 회막문 모세에게로 돌아오니라.”(민16:41-50)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심판

 

고라당 반역에 직접 참여한 자들은 여호와의 불로 소멸되고 땅에 생매장 당하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런 엄격하도고 끔직한 형벌을 받은 바로 이튿날에 회중이 또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함으로써 하나님께 전염병으로 심판받는 내용입니다.

 

본문 기사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어떻게 단 하루 만에 일부 사람들이 아니고 온 회중이 모세를 거역할 수 있습니까?(41절) 백성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염병으로 죽은 자도 무려 일만 사천 칠백 명에 달했습니다. 어제 심판 받은 몇 백 명에 비하면 수십 배로 많은 자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반역에 직접 가담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 불평한 것만으로 죽었습니다. 아무리 성경이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일일이 기록하지 않지만 언뜻 하나님이 좀 심한 것 아닌지 의아해집니다.

 

거기다 역으로 따지면 온 회중이 거역했다면 그 전부 벌을 받아야 하는데 비록 아론이 속죄의 사역을 감당했지만 왜 일만 오천 여명만 죽도록 벌을 내립니까? 그들이 죽음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줄 짐작은 되지만 살아남은 자들만 너무나 큰 축복을 받은 것 아닙니까? 혹은 우연히 그런 행운을 누린 것입니까?

 

오래 전에 고 빌리 그래함 목사가 한국 여의도 광장에서 전도 집회를 했는데 약 백만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도 온 서울 시민이 다모였다는 식으로 과장하며 강조합니다. 또 그 표현을 아무도 잘못되었다고 탓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는 뜻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온 회중이라는 의미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히브리어에는 몇 번 말씀드린 대로 비교급이나 최상급을 정확히 표현해내는 방식이 없습니다. 성경에 전부, 온, 다 (영어로 치면 all의 의미)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지만 대부분 아주 많다는 뜻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형벌을 받아야만 할 자는 결코 그 벌에서 면함을 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도 먼저 죽은 자들의 거역했던 정도가 더 심했을 것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에게 대들었을 때도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미리암에게만 문둥병이 도지게 했습니다. 지금도 모세에게 앞장서서 거역하고 심지어 모세와 아론을 치려고 했던(42절) 자들에게서부터 염병이 발병해서 주변으로 급속도로 번져나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징계나 심판을 하실 때에 반드시 백성들이 그 지은 죄를 깨닫고 고치게 하는 방식으로 하십니다. 여호와 불로 소멸되는 벌을 받은 고라당의 향로를 쳐서 제단을 둘러싸게 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라고 했습니다..(38절) 심판을 면한 다른 사람들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그 반역의 사건을 기억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새롭게 헌신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심판을 내릴 때에 모세와 아론도 향로에 불을 담아 함께 서있었으나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 당신의 거룩한 종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아론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그 향로를 들고 염병이 창궐하고 있는 지역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신속히 달려가서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48절)는 표현대로 속죄 제사를 드리자 염병이 그쳤습니다. 아론은 염병이 번지는 곳에 최초로 가서, 가장 가까이, 아니 바로 곁에 섰습니다. 실은 병이 번지고 있는 그들 속으로 뛰어 들어간 셈입니다. 모든 사역자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섬김의 자세입니다.

 

대제사장인 아론의 이 사역은 십자가에서 당신께서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심으로 새 생명을 주시는 영원하고 순전하신 대제사장 예수님의 구원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많은 이들을 보존하여서 당신의 긍휼로 품어주고 여전히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죽였는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해서 바로 어제 받은 끔찍한 심판을 하루 만에 까마득히 잊어버릴 리는 절대 없습니다. 본문의 거역은 지금까지의 거역과는 조금 성격을 달리합니다. 그들이 거역하는 이유에 대해 성경이 설명하는 바에 주목해야 합니다.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41절)라고 대들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렇게 말한 것이 실제적인 이유입니다. 여호와께 직접 대들기 두려워서 인간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을 대신 비방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들었던 것입니다. 본문 앞의 16:28-30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민16:28-30)

 

모세는 분명히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해달라고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대로 응답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고 대든 것입니다. 여호와는 백성을 죽일 마음까지는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연약하고 성정이 우리와 같고 가뜩이나 성격이 급한 모세인지라 드디어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것입니까? 도무지 화가 풀리지 않아 하나님께 엄청난 벌을 내려달라고 저주의 기도를 한 것입니까? 그런 분노의 심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껏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했던 사실을 보면 우리처럼 자기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한풀이하듯이 기도했을 리는 없습니다.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금송아지 우상 숭배했을 때(출32장)와 가데스 바네야에서 거역했을 때(민13장), 두 번 다 여호와는 백성들을 진멸하고 모세의 후손으로 다시 큰 나라로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세는 두 번 다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리고선 여호와께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시내 산에선 자기 이름을 하늘의 생명책에서 지우더라고 백성들을 향한 긍휼만은 제발 거두지 마시라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야에선 이스라엘의 선조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고 특별히 이방 족속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체통을 당신께서 지키시라고 따지듯이 매달렸습니다.

 

이번에 모세가 심판을 구하는 기도를 한 까닭도 두 번의 전례와 비교해서 그의 순전한 믿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백성들이 광야로 돌아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니까 하나님도 그 땅에 한 순간도 더 서있지 못하도록 생매장의 벌을 내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그런 뜻을 대변한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에 자신의 마음이 합쳐진 결과였습니다. 기도하고 있는 중에 모세의 입술을 성령이 주장하여 그런 기도를 하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계획과 소망을 이뤄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대로 순종 헌신하겠다는 순전한 믿음으로 기도를 깊이 오래 해보십시오. 실제로 자신의 생각이 아닌 성령이 시키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그렇게 기도하겠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내용의 기도가 입술에서 줄줄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시키신 기도인지라 당연히 그 기도대로 오묘하고 풍성한 은혜가 실현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낸 황소 신

 

지금 모세가 땅이 벌어져 산 채로 매장시켜 달라는 기도를 마치는 동시에 땅이 갈라졌습니다.(31절) 그런데 주목할 것은 31절에서 “이 모든 기도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라고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지금 회막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난 후에 계시를 받아서 백성에게 전한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그랬을 때는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울면서 회개하거나 아니면 그에 대드는 식으로 반응했습니다. 지금은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모세가 말하자마자 바로 그대로 되었으므로 백성들로선 모세가 애꿎게 백성들을 죽였다고 여길 만도 합니다.

 

그렇다고 또 다시 이스라엘이 너무 어리석다고 여겨선 안 됩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사백 년이 넘도록 그들의 우상 숭배하는 모습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고 실제로도 애굽과 동일한 종교관과 신관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잠시 자리를 비운 그 며칠도 못 참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음란하게 숭배했습니다.

 

금송아지 반역의 주모자들은 심지어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32:4)라고 선언했습니다. 애굽에서의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을 건너게 하고 먹고 마실 것이 없는 광야에서 보호 인도해준 모든 공로를 황소 신에게 돌렸습니다. 모세를 따르는 일부 충성분자들은 여호와를 믿을지라도 우리는 애굽의 황소 신을 믿는다고 노골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으킨 애굽의 열 재앙 모두가 그들의 우상이 전혀 허상임을 보여주려는 시도였음에도 이스라엘은 애굽의 바로처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완악하게 대들었습니다. 아마도 출애굽 때에 여호와가 황소신에 대해 직접 심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지막 열 번째에 애굽의 모든 장자와 생축의 처음 난 것도 죽임을 당할 때에 황소의 첫 송아지도 무력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탓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모르거나 금방 잊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간의 이적들을 체험하면서 그분만이 천하의 유일한 절대자임을 깨달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거룩하신 여호와라고 그 이름을 입술로 시인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모세가 말하는 대로 여호와가 들어준다는 것을 전제로 한 비방입니다. 말하자면 모세가 한 말이 여호와께 드린 기도이거나 여호와께 받은 계시가 아니라 우상 신들에게 말하는 신탁과 같은 성격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숙지해서 몸에 베이다시피 한 종교관은 신들은 반드시 제사장이 의뢰하는 신탁에 따라 반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진심으로 신들을 경배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고 반대로 신들이 반드시 인간의 요구와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기도와 신탁의 차이

 

하나님은 십계명의 둘째 계명에서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하나님이 강조한 뜻이 당신을 어떤 형상에 비추어 우상을 조각하지 말라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우상이라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이방족속처럼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주는 신들을 조작해내는 그런 잘못은 절대로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 신들은 인간이 자기들 필요에 따라 만들었으니 사실상 그 신에게 기도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신탁 즉, 일종의 명령만 하면 됩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민수기 22-24장에서 모압 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에게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민22:6)고 세 번이나 부탁한 것이 그런 신관을 드러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신탁을 이스라엘의 신에게 하라는 것입니다. 발락은 여호와도 이스라엘의 민족 신으로 자기들 우상과 같은 신 즉, 이스라엘이 자기들 필요에 따라 스스로 만든 신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발람은 곧바로 저주의 신탁을 하지 않고 나름대로 여호와의 뜻을 물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여호와는 이방인 선지자 발람에게 오히려 이스라엘을 위해 복을 빌라는 응답만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방인까지도 들어 쓰셔서 당신의 백성을 당신의 뜻에 따라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가 했던 말 중에 땅으로 입을 열어 고라당을 삼킬 것이라는 부분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시쳇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가 여호와께 그렇게 신탁한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거기다 지금껏 모세가 말하는 대로 다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말한 내용의 초점은 그가 고라일당과 달리 하나님이 세운 종임을 증명해달라는 데에 있었습니다. 누가 여호와가 보낸 종이며, 누가 여호와를 멸시하는 자인지 백성들로 똑똑히 보여서 알게 해달라는 것이 모세의 신탁이 아닌 간구의 주안점이었습니다.

 

고라 일당을 비롯해 일부 백성이 계속해서 모세와 아론의 지휘권을 걸고넘어지는 까닭도 이 신탁의 권리를 독점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아가 애굽에서 탈출시켰고 자기들을 시내산에서 택한 왕 같은 백성으로 삼았으니 자기들 원하는 대로 이뤄져야만 한다고 착각했ㅅ습니다. 반면에 모세의 신탁은 항상 자기들이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만 만들어내더라는 것이 불만 원망 거역의 진짜 원인입니다. 그들을 몰아내고 자기들이 신탁을 행하면 자기들 뜻대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와 비슷한 불만을 심지어 모세의 형제인 아론과 미리암도 가졌지 않습니까? 또 그래서 여호와는 계속해서 모세는 나와 직접 대면해서 친구처럼 사람들의 말로 대화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직통 계시라는 초자연적 소통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모세는 한 번도 나에게 자신의 뜻과 계획을 갖고 와서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명령하는 식의 신탁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오직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겸손히 물었고 그래서 내 뜻을 말해주었더니 그대로 하나 가감없이 너희들에게 전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모세 그의 말이 나의 말이고 나의 말이 그의 입술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반역한 일당을 땅이 생매장할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많이 죽였는가?

 

이스라엘은 기억력이 나빴거나 종교심과 도덕심이 약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과 모세와 신앙적으로 달랐던 유일한 차이는 여호와가 자기들 뜻대로 해주어야 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조차 우상 신들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부려먹으려 한 것입니다.

 

여호와가 광야의 떨기나무 불꽃으로 모세에게 임재한 이후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고 이 자리에 이르도록 행하신 모든 일들의 특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우상 신들이 갖지 못한, 아예 실존하지 않는 허상이므로 아무 능력도 없지만, 엄청난 큰 능력으로 많은 기적들을 일으켰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겐 본문에서 만 오천 여명 심판한 것은 아무 일도 아니며 당연히 행했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타락한 인간 세상을 단숨에 멸망시켜야 마땅하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으나 단지 당신만의 긍휼로 참아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분의 전지전능성만 붙드는 것은 좋은 믿음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상식입니다. 그분의 뜻을 제대로 깨달아 그에 맞추어 반응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출애굽 이후 여호와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우상 신들과 전혀 다르게 인간의 요구대로 응해주지 않고 오직 당신의 뜻대로만 행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때로는 백성들의 눈앞에서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도 아주 끔찍해 보이는 심판을 내린 이유도 우상 신들은 절대 그럴 능력은 물론 그럴 권위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 안에서 형벌을 주어야 할 자에게 면제는 결코 없으며, 은혜를 베풀어야 할 자가 누락되는 법도 결코 없습니다. 아무 장애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맘껏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기들을 안락하고 풍요롭게 해줄 의무 때문입니다. 간혹 그 공동체가 정한 규율을 어기는 경우 이미 정해진 규율대로 주술사가 벌을 주거나 눈속임으로 공포심을 심어줄 뿐입니다. 우상 자체에서 나오는 심판이나 축복은 전혀 없고 아예 불가능합니다.

 

풍년이 들면 신이 축복했다고 여기고 신나게 파티를 열었고, 흉년이 들면 신이 노했다고 여기고 인간 제물까지 바쳤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관하십니다. 창조주가 이미 만들어 놓은 자연 중의 극히 일부분인 나무나 돌로 깎아 만든 조각들이 어떻게 그 자연을 임의대로 조종해서 풍년이나 흉년을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상들은 순전히 인간들이 스스로 잠시 위로 받으려는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인생살이가 고달프다는 것은 이해가 되나 이스라엘은 아직도 자기들에게 일어나는 범사를 세밀하고도 완벽하게 주관하는 하나님 앞에 순전히 엎드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죄로 타락하여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이자 공급자이신 하나님과 분리 단절되어 있는 상태에선 인간의 어떤 경건하고 신령한 도덕적 종교적 행위 관습도 실은 자기 위로와 만족에 불과합니다. 또 불완전하고 탐욕에 가득 차있는 인간인지라 스스로의 위로와 만족으로는 절대로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당신을 거역하고 우상을 따르는 당신의 백성들을 대표적으로 자연재앙, 전염병, 전쟁 세 가지 방식으로 심판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자연 재앙을 인간의 힘으로 많이 극복했습니다. 또 수많은 실패를 통해 전쟁은 공멸하게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 세 재앙이 현대인들이 볼 때에 참으로 원시적이고 어떤 면에선 주술적인 냄새까지 나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미개하거나 원시적이라 그런 심판을 내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셋 만큼 인간들이 완전히 무력해지고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정말로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하나님만 붙잡아야 하는 절대 절명의 상황으로 밀어 넣은 셈입니다. 특별히 전쟁은 인간끼리의 죄악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 똑똑히 보라는 뜻입니다. 심판을 받는 자들은 정말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며 남은 자들 또한 똑같은 죄인이므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 구하라고 모든 자들에게 미치는 그런 심판을 내리는 것입니다.

 

지구 종말 일분 전

 

신구약 성경 전체 내용을 한 문장을 줄여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더러 제발 우리말대로 해달라고 끊임없이 칭얼대며 떼를 쓰는데 반해서, 하나님은 인간더러 특별히 당신이 택한 백성들로 제발 내 말대로 하라고 간절히 호소했다는 것입니다. 창조 이래로 지금까지 아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인류 역사는 하나님과 인간의 그런 힘겨루기로만 기록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에게 전하려는 메시지 딱 하나뿐입니다. “나는 너희를 갈대아 우르와 애굽 같은 흑암의 세상에서 불러낸 너희의 하나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지라!” 바로 그 주제로만 레위기라는 책 한 권이 저작되어졌고 또 그 책 이름이 말해주듯이 레위인 즉, 목회자들부터 거룩한 삶의 본을 보이며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은 그대로 순종하겠다고 피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죽이셔도 군말 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모세를 비롯한 하나님이 세운 종들은 그렇게 했으나 백성들은 언약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의 염병 심판은 언약대로 하나님이 시행한 것뿐입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처럼 오늘날의 세상 사람들도 그분께 진심으로 엎드리고 거룩해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안락 풍요 쾌락 사치만 추구합니다. 그것도 남들보다 나와 내 가족과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장 화려한 것들을 차지해야 한다고 설칩니다.

 

그 필연적인 결과로 하나님이 공짜 선물로 주신 이 아름답고 풍요한 자연을 완전히 훼손하여서 환경오염의 심각한 폐해로 작금 지구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핵만으로도 전쟁이 발발하면 온 세계가 멸망한다는 것도 잘 알기에 지구멸망을 예측하는 시간표도 만들었습니다. 지구 역사를 하루 24시간에 비추어서 마지막 일분에 해당되며 지금은 완전히 초읽기에 돌입했다고 흔히 말합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런 판국에 본문의 만 오천 여명의 심판이 과연 심하다고 탓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할 자격조차 없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제발 내 말을 들으라고 수도 없이 기적으로, 계시로, 율법으로, 선지자들로 호소 경고하고 때로는 본문처럼 겁도 주었어도 인간들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했습니까? 당신께서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모세처럼 수많은 이적을 일으켜주니까 열광하다가 자기들 말대로 하지 않는다고 그 하나님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발락이 발람에게 원했던 것처럼 예수님에게도 신탁을 걸려했지만 도무지 통하지 않자 평소의 대적이었던 우상 신들을 믿는 헤롯당 로마당국과 합작해서 죽였습니다. 주님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메시지만 전했습니다. 자기들을 위해서 선포하신 그 귀한 충고마저 너무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고 끝까지 자기들 신탁대로 응해주지 않으니까 죽여버린 것입니다. 주님은 그래도 저들이 자기들이 하는 짓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했으니까 용서해달라고 마지막 십자가에서 운명하는 순간에도 성부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우상숭배의 죄에 빠진 수많은 한국교회들

 

지금껏 이스라엘을 탓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염병 자연재앙 전쟁 어떤 방식이었던 당신의 백성부터 심판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의 강단에서 전해지는 메시지가 무엇이며 그 메시지를 듣는 교인들이 행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신자나 교회나 하나님더러 자기들 소원과 계획을 자기들이 원하는 때와 방식대로 해달라는 요구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원하는 것 하나가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그럽니다.

 

이 얼마나 심각하고 엄청난 죄악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아무리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삼위의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했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신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하나님을 우상으로 여기는 죄와 똑같습니다.

 

영적으로는 아무래도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교인들이 설령 목사더러 그런 것을 요구해도 목사는 모세처럼 일언지하에 거절해야 합니다. 또 저런 어리석고 불쌍한 교인들을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해서라도 제발 참 진리에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오히려 큰 비전을 품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아니라 자기 소원인데도, 하나님에게 끈질기고도 뜨겁게 명령하는 식의 신탁을 하면 좋은 믿음이라고 부추기고 있는 판국입니다.

 

한 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신자에게 문제나 고난이 생겼다는 것은 자신의 소원과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그것도 그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뜻입니다. 어디에 원인이 있던 그 어려움에서 건져달라는 기도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자기 소원과 계획만 붙들고 뜨겁게 기도한다면 이미 하나님이 거절한 일을 계속 떼만 쓰는 것 아닙니까? 그런 목사나 교인들이야말로 붕어처럼 기억력이 너무 나쁜 것 아닙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른 신이나 종교와 달리 결코 인간의 요구에 그대로 응하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속해서 찾고 있는 자도 당신의 뜻대로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순종하는 자뿐입니다. 본문의 아론처럼 하나님의 불이 담긴 향로를 들고 자기 목숨이 날아갈지라도 한 시도 지체하지 않고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선으로 달려가는 자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만이 우리에게 참 생명을 보장하고 나아가 고달프고 황량한 인생길의 유일한 위로요 기쁨이 된다는 것을 자기 삶을 통해서 드러내 보이는 자입니다.

 

요컨대 자기 뜻을 고집하는 신탁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묻는 참된 기도를 하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고치고 버리면서 순종하는 자입니다. 신자가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교회생활 오래하고 도덕적 종교적으로 의롭고 경건해도 하나님과 아무런 실질적인 관계는 없는 셈입니다.

 

7/2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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