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6:6-18) 성령이 막으시는 기도
“비두니아로 가기로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행16:7)
바울 선교 팀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 했지만 성령이 막으셨다고 한다.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바울의 계획을 예수의 영이 막았다. 바울이 가려던 행선지를 하나님이 세 번이나 못 가게 하셨다. 하나님의 더 선하신 뜻이 분명히 있겠지만 바울이 가려했던 곳에도 많은 불신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 하나님이 특정지역이나 종족을 편애하시는 분이라는 뜻인가? 그럴 리는 결코 없다. 성경은 항상 앞뒤로 면밀히 살피며 읽어야 한다.
먼저 아시아는 지금의 인도 중국 동남아 같은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아시아로 불리는 터키 인근 지역이다. 간혹 이 때 복음이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먼저 들어가는 바람에 유럽이 선진국이 되고 아시아는 오랜 기간 발전이 안 되었다고 가르치는데 잘못이다. 복음은 죄인의 영혼을 씻어 그 존재와 성품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것이지 신자의 주변여건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참 신자는 예수님처럼 탐욕과 죄악으로 물든 세상과 정반대로 살아가기에 도리어 현실적 손해와 핍박을 받아 궁핍해지게 된다.
그리고 고대에는 민족마다 신이 있고 그 신들의 다툼의 승패에 따라 각국의 흥망성쇠가 정해진다고 믿었다. 기독교는 그런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되 죄인을 개인적으로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다스리신다. 위와 같은 가르침은 마치 기독교가 여러 종교들 가운데 최선의 종교이고 기독교의 하나님이 최강의 신이므로 기독교 국가를 가장 부유하게 만들어 준다는 뜻이 되므로 고대의 미신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알렉산더 대왕이 지중해 인근지역에 큰 제국을 세움으로써 헬라어가 공용어가 되었다. 로마가 그 패권을 이어받았지만 헬라어 사용은 계속되었다. 기독교 복음은 일차적으로 헬라어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지중해 인근에서부터 먼저 전해져야만 했다. 상기 가르침이 말하는 아시아는 헬라어 사용 지역이 아니다.
바울이 처음 계획했던 이번 전도여행의 목적은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15:36)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성령은 그러지 말고 새로운 지역으로 가라고 명한 것이다. 그 일은 바나바 팀이 하면 된다는 것이다. 제2의 로마와 같은 빌립보 즉, 이방 세계의 중심지에 십자가복음의 불화살을 쏘아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중에 바울이 로마에서 자택연금 되어서 시위대에 복음을 전할 때에 이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게 하고 또 빌립보서 같은 옥중서신들을 저작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 빌립보 지역에 예수 십자가 은혜가 절실히 필요한 자들이 많았던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이유였다.
하나님의 뜻과 길은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처럼 우리의 기도를 막으실 때가 많다. 내가 소원하고 계획한 일, 아주 선할 뿐 아니라 심지어 바울같이 주님을 위하는 일임에도 그럴 수 있다. 우리의 영적 분별력이 지극히 모자라고 알게 모르게 인간적 감정과 욕심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 미래와 넓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을 한눈에 보시고 종합적으로 가장 합당하고 선한 계획은 하나님만이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기 기도한 대로와 다른 응답을 받았다. 목표한 아시아와 비두기아 드로아 세 곳을 성령님이 막으셨다. 그의 기도의 깊이도 대단하지만 성령의 계시를 분별하여서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이 더 대단하다. 우리는 첫 기도가 막히면 계속해서 불평과 원망으로 지새느라 성령의 음성을 전혀 듣지도 못할 것이다. 기도란 내 뜻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맞추어 내 뜻을 수정해 나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중요한 사항은 그렇게 고쳤을 때 그분의 더 선하신 뜻이 드러나고 신자에게도 더 큰 유익이 된다는 것이다.
(9/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