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개인적으로 성경문답 사이트의 #43 “목사님께 무조건 순종해야 하나요?”의 글을 읽고 성도만 일방적으로 양보하여 교회를 떠나야 함에 대해 반론을 제기해 왔습니다. 목사 직분은 신성하므로 하나님 외에 인간이 그 잘못을 징계하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말하자면 목사성직론적 인식에 바탕을 두고 목사 입장에 편향된 해결책을 제시해선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너무나 지당한 지적이었기에 혹시라도 그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켜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래와 같이 보충 설명하고자 합니다. 혹시라도 그 동안 동일한 오해를 하게 된 분에게는 필자로서 사과를 드립니다. 이전에 그 글을 읽으신 분이나 처음 방문하는 분께선 그 글과 함께 아래 글을 비교해서 읽어봐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목사성직론에 관한 운영자의 생각

흔히 이해하는 뜻으로 목사성직론을 요약하면 “목사직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신성불가침이다”가 됩니다. 여기서 저는 전반의 목사직은 하나님께 받았다는 부분은 동의하고, 후반부 신성불가침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1) 목사직은 분명히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반드시 직통 계시를 받아야 하거나 초자연적 간섭으로 세워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가 된 당사자로선 분명히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일생을 바쳐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는 헌신이 따릅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 쪽에서도 꼭 목사로 세울 자를 선택하여 많은 준비와 연단의 기간을 거쳐서 소명을 줍니다.(사도 바울이 가장 좋은 예) 그래서 참 목사는 하나님이 세운 자입니다. 간혹 이런 인식이 없고 소명도 받지 않은 분이 있어서 말썽입니다만…

물론 목사를 포함해 모든 신자는 처음 구원을 받는 순간 남은 일생을 통해 무엇을 먹든 마시든 그리스도를 증거하라는 소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목사와 선교사 같이 풀타임(Full Time) 사역자의 경우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개인적이고도 구체적인 소명이 있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평신도는 생계를 꾸려가는 세속 직업을 따로 가지고 주님을 간접적으로 증거하지만, 풀타임 사역자는 평생을 두고 복음 사역 그 자체가 직업이 되어 비록 경제적 보상이 따르지 않더라도 주님을 직접적으로 증거만 하며 그에 따른 희생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목사는 평신도와 달리 그 모든 삶을 하나님이(성도나 교회가 아니라) 직접 돌봐 주십니다.

이왕에 말이 나온 김에 꼭 한가지 첨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목사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실제 목사나 선교사의 경우 하나님으로부터 평신도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적 권능을 받게 된 것을 실제 사역을 통해 많이 체험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은혜를 받는 반면에 또 더 큰 징계를 받습니다. 이는 풀타임 사역자의 소명과 책임이 얼마나 귀중한가 절대 잊지 말고 더욱 분발하여 헌신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참 목자의 자리에 서 있다면 하나님이 그에게 영적 권위를 더 세워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2)목사는 특권층은 아니지만 교회 질서상 최우선적 권위자입니다.

목사도 일개 성도이며 교회 안의 모든 직분은 그 맡은 역할만 다르지 우열이 없기 때문에 절대 특권층이 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신약 성경에서 목사가 한 번밖에 언급이 안 되었지만, 지금 현재의 목사직에 비추면 장로와 감독은 그 맡은 역할로 따지면 목사직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선지자, 사도, 교사는 현재의 목사와는 그 맡은 역할이 일부 겹치지만 전체적으로 봐선 다른 직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현재의 교회로 따지면 목사, 장로, 집사, 교사, 등 모두 예수님을 머리로 한  교회의 지체일 뿐입니다. 그 직분상의 기능적 우열이나, 누가 더 권력(Power)을 많이 가졌느냐는 절대  따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목사, 교사, 집사 모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지체라는 뜻은 그 지체가 없으면 다른 지체가 바른 역할을 하지 못하며 전지체가 다 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제대로 기능을 발휘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직분만 다르다고 해서 그 권위(Authority-가시적인 조직체를 이끌어 가는 역할상의 책임과 권리를 말함)마저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용어 선택을 의도적으로 권력(Power)과 권위(Authority)로 분간해서 한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근한 예를 들면 부부 관계와 같습니다.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는 한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움직여 나가는 데에 우열이 따로 없고 역할만 다릅니다. 한 쪽만으로는 온전한 가정이 되지 못합니다. 반드시 둘이 합쳐야 합니다. 수치적으로 따지면 1+1=2가 되는 것이 아니라 0.5+0.5=1이라는 뜻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자 한 사람으로선 그 기능을 제대로 못하니까 1이 아니라 반쪽 밖에 안 된다는 뜻으로 0.5입니다. 그래서 부부란 상하복종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연합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평등한 신분의 사람이 여럿 있을 때는 당연히 조직 질서상의 대표자는 필요합니다. 가정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남편과 아내는 권력은 같지만 권위는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남편을 가정의 영적인 권위자(대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남편(아버지)를 통해 그 가정을 이끌어 나가길 원하십니다.

현실에선 그렇지 못한 면도 많이 있지만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영적 지도자가 아버지가 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이상적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편모의 가정에는 엄마가, 부모가 둘 다 안 계신 경우에는 형제 중의 맏이 영적 권위자가 되어야 합니다. 안 믿는 부모, 형제가 있을 때도 반드시 아버지를 최종적인 영적 권위자로 세우도록 전도하고 인도하셔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강령으로 첫째는 하나님 사랑과 둘 째는 이웃 사랑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둘째는 “이와 같으니”라고 했으므로 두 강령이 신자에게 주는 중요성, 의미, 가치등에서는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첫째, 둘째로 차례를 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 두 강령 중에도 순서는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와 똑 같은 열심과 정성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지만, 이웃을 사랑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역할만 다르고 권능과 신분 상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교회 안의 직분자들 사이에도 순서는 있고 또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어떤 공동체와도 달리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유일하고도 특이한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이시고 교회 구성원 모두는 연약하고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데에 한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모든 교회 구성원이 신분상 평등하다고 해서 그 전부와 일일이 영적 가르침을 필두로 교회를 이끌어가는 방향에 대해 교통할 수 없습니다. 순서가 있어야 하고, 질서를 잡아야 하며, 대표자를 세워야 합니다. 바로 그 직분이 목사입니다. 이런 뜻에서도 목사는 성직입니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인간의 육체를 이루는 지체도 그 역할만 다르지 중요도에서 단 하나라도 빠지는 것이 없습니다. 발가락과 손가락은 하는 역할만 다르지 둘 다 반드시 없으면 안 됩니다. 심지어 손가락 하나 없는 것 보다 발가락 하나 없는 것이 더 불편합니다. 맹장이나 편도선도 아주 중요한 역할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지체는 머리로부터 지시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모든 지체도 머리이신 예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이고 인간은 육인지라, 영적인 지시를 대신해 줄 인간적인 머리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 역할을 맡는 것이 목사입니다. 그 명칭이 어떤 것이 되었든 교회 안에는 반드시 영적인 지도자 내지 대표자는 있어야 합니다. 권력으로 따져 위아래가 없이 다 같이 평등한 선 상에 서 있지만, 권위로 따지면 앞뒤가 있어 하나님 바로 앞에 서 있는 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다른 선지자와는 달리, 꿈으로나 이상이 아니라 대면해서 명백한 말씀으로 교통 하셨듯이 말입니다.    

만약 100%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교회를 운영(고전14:26-33)한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현재에도 퀘이크 교도들은 목사 평신도의 구분이 없고 모두가 동일한 성도입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예배 중에 성령의 계시를 받은 것을 그대로 말씀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따로 목사가 없어도 됩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필요 없고 단지 조직의 현실적인 관리 즉 총무 같은 일을 최고 연장자가 담당하면 됩니다.

따라서 그런 특수한 교회를 제외한 모든 교회에선 목사는 권력 즉 신분상의 특권으로는 다른 평신도에 비해 우월한 것은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질서와 순서 상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부여한 권위가 있습니다. 평신도가 퀘이크 교회로 개종하지 않는 한, 현재의 모든 교회 체제 하에서는 목사를 영적질서상의 권위자로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는 가장 먼저 여러 교회를 비교 방문해 어떤 목사를 자기의 영적 지도자로 모실 것인지 평가하고 분석한 후에 교회를 정해야 합니다. 일단 어떤 목사를 영적 지도자로 모시겠다는 확신이 선 후에 그 교회에 등록하여 봉사하고 또 당연히 목사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도 목사의 권위가 신성 불가침이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육체로 따지면 발가락이 두뇌의 지시를 당연히 받는 것이며 받지 않겠다고 우기는 것은 아예 말이 안 된다는 측면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3)그러나 목사직은 신성불가침은 아닙니다.

문제는 만약 두뇌가 바른 역할을 못한다면 지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입니다. 물론 목사도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가 결정적인 잘못을 했을 때도 무조건 목사를 두둔하고 끝까지 순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영적인 지도자이기에 더욱 순종하면 안 됩니다.

목사가 잘못했다면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자는 셋뿐입니다. 하나님과 본인과 교회(성도들)입니다. 세속적인 기관 즉 정부 중재 기관 혹은 법원 등에 의존하는 것은 바울 사도가 엄격하게 금한 대로 비성경적이라 아예 논의에서 제외되어야 합니다.(고전6:7)

우선 하나님은 목사의 잘못에 대해선 반드시 더 엄격하게 치리하십니다. 속히 회개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벌을 주시되 더 큰 벌을 주십니다. 교회 분란이 생기는 자체가 벌써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것이며 성도들이 떠나는 것은 본격적인 심판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 만의 때와 방법으로 반드시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둘째로 본인이 그 잘못을 고쳐야 하는 경우인데, 목사가 목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되면 언제든 목사를 그만 두어야 합니다. 안수를 받았으니 평생 목사여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자격 없는 자가 목사 일을 감당하고 있느니 차라리 자격이 없으니 당분간 쉬겠다든지, 평신도로 돌아가 봉사하겠다는 것을 훨씬 좋아할 것입니다.

대신에 목사가 목사로서 바로 서 있으면 끝까지 지키시고 필요한 모든 것은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목사는 하나님만이 치리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목사는 하나님의 특별관리 대상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징계도 하나님이 먼저 하시고 축복도 하나님의 고유의 방법으로 하시는 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목사가 영원한 목사이어야 하고 또 하나님마저 그것을 인정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분명히 소명을 받았고 목사직을 정말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올바르게 수행하는 한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입니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목사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회개치 않고 계속할 때입니다. 그럴 때는 당연히 교회가 그 잘못을 고쳐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즉 “목사를 평신도라도 나서서 치리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아래 제 답변 글의 변증 부분에서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43 성경문답 글에 대한 변증

한마디로 #43의 내용은 “목사가 분명히 잘못했는데도 성도는 순종해야 합니까? 그럴 경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물어온 질문에, 저는 “순종 안 하셔도 됩니다. 대신 교회를 떠나십시요”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성경적, 신학적 논의를 떠나 현실적으로는 세가지 뿐입니다. 목사가 스스로 교회를 떠나든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끝까지 목사와 성도가 시비를 가리든지, 성도가 떠나는 것입니다. 이 셋 중에 저는 3번째 방안을 현실적으로 가장 유익한 것이라고 제시한 것입니다.

현실적이라고 표현했다고 해서 비성경적 대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상호간에 설명과 이해의 편의를 위한 용어의 선택일 뿐입니다. 즉 지금 질문은 목사가 도저히 스스로 떠나려 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첫째 대안은 질문자체의 논리적 필연으로 당연히 답변에서 제외됩니다. 그럼 둘째 끝까지 시비를 가리는 것과 셋째 성도가 떠나는 것 밖에 답변으로 남지 않는데 과연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하겠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현실적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물론 분쟁거리는 끝까지 덮어두고 목사나 성도가 계속 기도하며 인내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만, 일단 질문자의 의도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시비거리가 되고 있을 때를 전제해서 한 것입니다. 또 실제로 양쪽 당사자가 다 참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사실은 그렇게만 된다면 대부분 원만하게 수습될 수 있습니다. (제가 정작 권하고 싶은 대안은 이것입니다.)  

만약 목사가 교회 전 성도에게 영향을 주는 아주 분명한 잘못을 한 경우에 목사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누구라도 제게 물었다면, 아주 단호하게 즉시 목사 직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담임하는 교회를 사임한 후에 자기 회개와 영적인 새로 고침의 절차를 먼저 가져야 합니다. 그래도 도저히 자신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안수 받은 목사 직분마저 사임해야 합니다. 끝까지 버티다가 교단에서 판결 받고 추방당하기 전에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아무도 그렇게 하는 자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그렇게 회개할 정도가 되면 목사직을 감당할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기에 애당초부터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항상 말썽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목사는 일시적인 실수나 사단에 꾐에 넘어가 그럴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많은 성도들에게 큰 영적 피해를 주면서까지 그랬다면 그는 애당초부터 목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가시적 조직체 교회의 목사는 맞을지언정, 하나님 앞의 비가시적 본질적인 교회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사기꾼과는 누가 옳으냐 그르냐 따질 필요도 없이 상대도 말아야 합니다.

또 교회를 떠나라는 것이 앞에서도 말씀 드린 대로 목사를 자기의 영적인 지도자로 인정 안 하기 때문에 떠나라는 뜻이지, 목사는 신성불가침이니까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뜻으로 목사가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양 떼들로부터 등을 돌림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떠나는 것 자체가 목사에 대한 벌의 의미이지, 목사를 건드리면 성도가 벌 받는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목사가 분명한 잘못을 저지르면 성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목사도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교회 어른들이 가서 회개하고 고칠 여유를 주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고쳐지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는데도 끝까지 목사가 회개를 하지 않고 성도들도 책임지고 목사를 고치려 들거나 시비를 가리려 들면 차츰 온갖 분쟁이 나고 결국에는 법정에 까지 갑니다. 제가 교회를 떠나라는 것은 바로 두 번째 대안인 이렇게는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제 글의 논지는 간단합니다. “분명한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회개하지 않는 목사라면 이미 그 품성으로 봐서 조직체 교회를 쉽게 포기할 리가 없고 그러면 당연히 교회 안에 분쟁이 생기게 됩니다”라고 밝혔듯이 목사가 안 고쳐지면 분쟁이 생기고 또 그러면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조직체인 한 개별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 하나님 나라가 함께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의 K 교회 사태를 보십시오. 그 사태의 원인과 과정은 정확히 모릅니다만 누가 봐도 분명히 L목사가 목사로서 해선 안 될 잘못도 많이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보는 세상은 누구 잘못을 따지지 않고 예수쟁이들은 모였다하면 싸운다고 주님과 기독교 전체가 도매금으로 욕 먹는 좋은 구실을 또 하나 주는 셈입니다. 그래서 목사를 포함한 모든 신자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서로간의 권위나, 누가 옳고 그른가를 떠나서 이런 사태 만은 막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 배후에는 목사와 평신도 중에 누가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서 반드시 사단이 작용합니다. 사단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가지고 그것도 쌍방이 동시에 분명히 옳은 명분을 갖고 싸우게 만듭니다. 의로운 싸움마저 사단이 작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어떻게 하든 비가시적인 전체 하나님 나라가 무너지게 만들려는 흉계입니다. 목사든 평신도든 문제가 생기면 상대와 교회를 두고 기도하기 앞서 배후에 있는 사단을 대적하는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가 전혀 회개치 않으면 처음부터 엉터리 목사였거나 지금 그에게 사단의 힘이 더 크게 작동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교회 분쟁에선 내외적으로 목사가 미치는 영향력(만들어내는 파문의 크기만을 말하는 것이지, 더 좋거나 혹은 더 나쁜 방향이라는 의미는 일차 제외됩니다)이 성도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성도가 분쟁의 자리에서 피해 버리면 그 파장도 줄고 사단이 싸움 부칠 일 자체가 없어집니다. 반면에 성도도 분쟁의 자리에 있다 보면 반드시 같이 휘말리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성령의 능력, 예수님의 인도와도 관계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은사를 가장 많이 받은 고린도 교회가 분쟁은 가장 많이 있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사단이 활개치는 것도 일부러 묵인하시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삯군 목자와 참 목자를 신자더러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참 목자를 찾아 가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를 떠나서 바로 된 교회를 찾아가야 합니다.  
      
성도가 교회를 옮기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어떤 경우이든 성도 자신의 영적 유익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 교회를 가시적 조직체에 국한하지 말고 전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를 볼 때에 하나님 당신의 생각이 무엇일까를 먼저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분명한 잘못을 범했을 때는 우선 성도는 그런 목사에게 영적인 지도를 더 이상 받아선 안 됩니다. 그러나 목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도저히 뉘우치지 않는다면, 분쟁을 막기 위해선 비유가 이상하지만 절이 떠나든지 중이 떠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주지 스님격인 목사가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뜻은 교회를 자신과 동일시 했기에 절은 죽어도 안 떠나겠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성도들도 떠나지 않겠다면 목사와 신자들 간에 절 따먹기 시합을 벌릴 수 밖에 없습니다. 분쟁은 피할 길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시각에서 본 우주적 교회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분쟁입니다. 엄격하게 말해 이미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참 신자라면 남아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는 성도가 떠나버리는 벌 말고도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아주 큰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교인이나 목사 개인이 저지른 윤리적 죄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지만(사실은 말할 수 없는 긍휼로 기다려 주시는 것이지만), 하나님 당신의 나라가 훼손되고 그 이름의 영광이 가릴 때는 가차 없이 심판을 합니다. 목사가 잘못되었고 끝까지 절을 차지하겠다고 버텨서 전체 기독교와 예수 믿는 자들이 다 욕을 먹는데 절대 가만 놓아 두실 리는 만무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이 치리하신다는 것이 신성 불가침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엄격한 심판을 확신하기에 그 처분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선 누구보다 더 확신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목사는 성도들이 치리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 맞다고 오히려 더 주장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하지만 목사가 분명한 잘못을 전혀 고치지 않을 경우에 옳고 그름을 밝히려 분쟁을 택하기보다는 성도들이 그 목사 곁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몇 명만 그것도 아무 소리 없이 빠져나가더라도 결국 진리는 반드시 밝혀집니다. 그러면 더 많은 성도들이 아무 소란이나 조종 없이도 그 이탈의 대결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당신만의 방법과 때에 따라 당신의 공의를 반드시 확고하게 세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회란 조직체 교회가 아닌 성도들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떠나간 교인들이 각자 적합한 교회를 찾아 갈 수도 있지만 다시 모여 조직체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을 두고 교회가 나눠진다고 부정적으로만 인식하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가 더 확장되는 것이며 각 성도들에게 적합한 참 교회(조직체)가 다시 세워진다는 관점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의견이 달라 심하게 다투고 피차 갈라섰지만 하나님은 각자가 간 곳에서 또 다시 당신만의 방법으로 복음을 확장시켰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행15:36-41)

예수님만이 교회의 머리입니다. 목사가 머리가 아닙니다. 목사를 하나님만이 처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적 주권을 믿는다면 더더욱 분쟁을 피하셔야 합니다. 분쟁은 인간들끼리 서로 옳다는 것을 증거 하는 싸움입니다. 옳음을 증거할 대상이 성경적 진리일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분쟁에서 양 당사자가 서로 성경 말씀에 바탕을 둔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쪽을 단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습니까?        

조용히 떠나가는 것이 시시비비를 밝히지 않겠다거나, 잘못된 목사를 방임하겠다거나, 교회를 지키지 않겠다거나, 성도들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관점이 아님을 깊이 깨달으셔야 합니다. 성도의 공동체에는 예수님 만이 머리이고 성령님만이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만이 더 확고하게 선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교회를 바로 잡지 않고 가만 두고 보시겠습니까? 그것도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그분의 영광만을 구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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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장로가 목사를 존경하기보다 목사가 장로를 그래야 맞지 않는가? [2] 운영자 2005-10-25 2841
49 신자가 현실의 행복을 추구하면 안 되나요? [2] 운영자 2005-10-15 2806
» “목사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하나요?”에 대한 보충 설명 운영자 2005-10-08 2809
47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후손의 숫자는? [2] 운영자 2005-09-04 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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