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이는 하나님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조회 수 2935 추천 수 72 2005.11.30 02:47:15
[질문]

얼마 전 저의 큰아들(5살)의 질문에 저와 신랑이 대답을 못하고 대충 넘겼는데 아이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한 것 같아서 도움을 청합니다. 저희 큰 애는 5살인데 교회에 가면 또래가 있는 유치부에 가지않고 저희 부부와 함께 꼭 본당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어릴 적부터 그것이 몸에 밴 것이라서 당연히 예배는 본당에서 드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예배 중에도 조용히 있어서 아주 대견스러운 아이인데 얼마 전에 우리한테 질문을 하나 하더군요.

" 아빠.. 왜 하나님은 안보여?? 난 하나님이 안 보이는데..""
갑자기 대답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냥 5살짜리 아이한테 하나님은 너의 마음속에 계신다 하고 말하기에는 그 나이 또래로써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을 것 같고 대충 얼버무려 이야기 하였는데 밥 먹을 때나 잠자기 전에나 기도는 해주지만 아이가 항상 머리 속에 이런 큰 의문을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답을 해줘야 하는 건지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답변]

증명할 수 없는 하나님

다섯 살짜리 답지 않게 아주 고차원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아기가 어디서 태어났는가 묻는 질문보다 더 어려운 질문입니다. 어린이에겐 태아나 하나님이나 안 보이긴 마찬가지인데 인간보다 하나님에 관한 것을 먼저 물었으니 정말 대견하다고 할만 하네요. 답변을 드리기 전에 제가 겪은 비슷한 경험을 먼저 나누었으면 합니다.

제가 불신자 시절에 극성스런(?) 전도사 이모 바람에 처와 아이들만 먼저 교회를 나가도록 했습니다. 그 얼마 후 5살 정도 된 둘째 아들이 식사 기도를 하면서 “우리 아빠 지옥에 안 가게 해 주세요”라고 하는 바람에 제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 아이가 “하나님과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또 죄에 대한 심판과 구원이 무엇인지?”에 관해 도대체 얼마나 알아서 저런 기도를 하는가? 교회 보냈더니 순진한 아이를 완전히 맹신 내지 광신으로 세뇌 교육 시켜 놓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고 죄 없는 마누라에게만 한창 신경질을 부리다가 곰곰이 이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궁리해 보았습니다. 당장 교회를 못 나가게 하면 가장 손 쉬울 것 같은데 이미 세뇌가 된 아이의 꿈속에 아빠가 지옥 불에 타는 모습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아니면 하나님과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납득을 시키면 좋겠는데 도저히 그것을 증명할 수가 없으니 더 큰일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당시로선 저부터 영적인 면에 전혀 무지하여 하나님의 존재 여부가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아가 심정적으로 신뢰가 가는 무신론을 5살 아이에게 알아듣게 설명해줄 방도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우선에 교회에 함께 나감으로써 아이의 불안감을 없애고 또 교회에서 잘못 가르치는 부분을 제대로 분별해 아이의 생각을 되돌려 놓는 수 밖에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물론 그 후 한참 지난 후에 정식으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을 때는 저도 많이 깨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아마 알아보려는 소망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지만, 어느 정도 갖고 나갔습니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왜 안 보이는가를 아이들 수준에 맞게 제대로 설명해 줄 재간은 아무리 목사이지만 저에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선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5살 아이가 어른 예배에 참석해서 떠들지 않고 끝까지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비록 대견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신자 부모로서 절대로 대견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일학교가 그 해답

주일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어린이들의 심리 상태를 잘 파악하고 그 생각이나 대화의 수준을 그들에게 맞추는데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질문은 목사나 신학자보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더 답변을 잘한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주일학교에 그 동안 계속 출석하고 있었다면 이미 이런 문제는 다 졸업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아이답게 커야만 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루 속히 아이를 주일학교에 등록해 그곳에서 예배 보는 습관을 드리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기 힘들어 할 테니 몇 주간은 엄마나 아빠 둘 중 한 사람이 함께 참석해 서서히 적응시키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성인 예배에 몇 번 빠져도 됩니다. 어린이 예배에 함께 참여하면 그것으로 주일 예배를 드린 것이며 나아가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집에서 성경을 가르칠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배울 수 있어 더 좋습니다.

성인 예배에선 하나님이 안 보인다는 것을 구태여 증명할 필요 없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라, 살아 계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아야 하고 손으로 만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설교합니다. 아이로선 그런 설교의 비유적, 상징적, 신학적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자기 이해 범위 안에서만 받아 들입니다. 즉 하나님이 안 보이는데 왜 목사님은 자꾸 만나 보라고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주일학교 예배에선 어떻게 가르칩니까?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듣고, 행동을 다 보고 계세요. 마음에 무슨 생각하는지도 알아요. 왜냐하면 그분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슈퍼맨이나 파워레인져와도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이 능력이 엄청나게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예요.”

유아시절은 스폰지 세대라고 말합니다. 선생님이 자기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단어와 비유(슈퍼맨, 파워레인져 같은)로 가르치면 그 가르치는 그대로 100% 순수하게 전부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빨리 주일학교로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당황 되는 질문을 받게 된 원인은 사실 부모가 제공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가?

그러나 이왕에 나온 질문에 대해 부모로서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하겠습니까? 마음 속에 하나님이 있다는 설명은 아이에게 너무 어려울 뿐 아니라 자칫 기독교적인 해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불교식 해답입니다. 하나님도 각자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뜻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영혼에 제 3위격 하나님인 성령님이 항상 내주하신다는 교리를 가르치려 들면 더 막막해집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과 별개로 엄연히 실존(實存)하시는 객관적인 존재입니다. 초자연적 현상이나, 피조물에 내포된 신적 속성이나, 인간의 신비한 체험이나, 형이상학적인 추론을 두고 아무리 그것들을 신적 존재와 연결시켜 해석하더라도 그 자체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분명한 실재(實在)로 살아 역사하시며 지정의를 가진 인격적인 분입니다.

아이에게는 아이가 알아듣는 범위 안에서만 설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지만 안 보입니다. 그래서 안 보이는 것을 안 보인다고 못을 박아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어른들처럼 하나님은 분명한 실재이기 때문에 신자가 그 분의 존재는 확인할 수 있지만 죄에 찌든 인간이 거룩하신 그분의 실체는 여전히 볼 수 없다는 식의 설명은 아이를 더 혼동하게 만듭니다.

이런 질문의 배경에는 아이로선 명확하지 않는 부분이 둘 있습니다. 첫째는 분명히 있다고 하면서 왜 안 보이느냐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물체는 있으면 무조건 보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관해선 여러 유용한 설명이 가능합니다. 가장 흔한 예로 눈에 안 보이지만 바람은 있다(사실은 바람은 눈에 가끔 보임), 혹은 인간의 생각도 눈에 안 보이지만 분명히 있다, 더 알기 쉽게는 사람의 몸 안에 심장, 위장 등이 눈에 안 보이지만 박동 소리가 들리고 밥을 먹으면 배부르고 또 개스도 나오니 분명히 있다는 식의 설명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이런 정도의 질문을 하는 아이에게 만족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바람, 마음, 몸 안의 장기는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아이들도 이미 경험으로 다 알고 있거나 눈 앞에 그런 현상을 들이다 대며 설명해주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대상들입니다. 하나님은 바람, 생각, 신체 장기와는 전혀 다른 대상입니다. 아예 눈으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현상을 갖다 댈 수도 없고 심지어 비유할 대상조차 없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경우에는 아이들도 그분의 실존 여부부터 의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의심의 근거를 한 번에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있습니다. 아이더러  아무리 작더라도 자기 힘으로 하기 힘든 어떤 구체적인 문제를 두고 직접 기도하라고 시켜서 그 응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지만 분명히 바로 곁에서 그 아이의 기도를 듣고서 그 어려운 일을 해주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싼타크로스 할아버지의 경우와 같습니다. 아이들이 싼타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림 책이나 영화로도 보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 싼타가 있는지 부모에게 묻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때에 벽난로 옆에 걸어 놓은 양말에 선물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밤새 싼타가 다녀 갔음을 의심하지 않게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말하자면 일상적이 아닌 조금 특별한 것이나 엄마가 도저히 해 줄 수 없는 것을 요구할 때는 먼저 하나님께 이 일을 들어주실지 함께 기도해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간혹 엄마가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일지라도 아이만 기도하도록 하지 말고 부모도 함께 기도한 후에 들어 주어야 합니다. 아이를 눈가림으로 속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착한 일을 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윤리적인 가르침만 주기 위해 부모가 싼타 노릇을 대신하는 것과 아이와 부모가 함께 기도하여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것과는 그 의미는 천지 차이입니다.

따라서 엄마도 함께 기도하여 선한 확신이 들어야만 해주고 또 그렇게 하면 현실적으로는 엄마가 해 준 일이지만 하나님이 해 주신 일이나 마찬가지 결과가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아이의 의심이 해소되었다고 그런 기도를 한두 번하고 그쳐선 안 됩니다. 어려서부터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분의 은혜 안에서 동행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무슨 일이든 기도하도록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 부모는 누워 잘 때에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아이더러 부모를 위해 또 자기의 어떤 소원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시켜야 합니다. 나아가 아이만 기도 시키지 말고 부모부터 항상 기도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고 또 응답 받은 것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해주어야 합니다.          

다시 제 둘째 아이의 예를 들게 됨을 양해 바랍니다. 자기가 저금한 돈과 명절날 친척이 준 돈으로 자기로선 평생에 꿈이었던 세발 자전거를 샀습니다. 그런데 새로 산 바로 첫날 자전거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아파트 단지를 몇 시간이고 샅샅이 훑어도 흔적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낙심한 아이에게 엄마가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하루 밤을 자고 난 아침 우리 집 문을 열고 나가니 바로 앞 복도에 그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천사가 갖다 준 것이 아니라, 아마 추측컨대 이웃 아이가 싫컷 타고 집에까지 갖고 갔지만 기도로 인해 그 아이 혹은 그 부모의 마음이 움직여져 원래 있던 자리에 되돌려 주기로 했을 것입니다. 저희 아이는 그 일이 지금도 바로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기억 나고 하나님을 전혀 의심치 않게 된 첫 계기였다고 실토합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 드린 이런 해결책을 주일학교에선 이미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여요 안 보여요? 그러나 있어요 없어요? 그분은 얼마나 힘이 세요? 못할 일이 있어요 없어요?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어요 없어요? 그런데 안 보이는 그 분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하나님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 보세요? 혼자서 속으로 아무도 모르게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응답이 되었어요. 그러면 그 기도를 누가 들으신 것이에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을 수 있어요 없어요? 그 기도를 이뤄줄 수 있어요 없어요? 아무도 모르는 일을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이뤄졌으면 누가 한 것이에요? 그럼 하나님이 있어요 없어요?” 등등… 그래서 하루 빨리 주일 학교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어렵게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해 범위 안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은 안 보인다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대신에 기도를 통해 안 보이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체험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싼타는 평생 볼 수 없는데도 아이들이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을 받은 체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자녀에게 하나님이 그런 정도의 확신이나 의미와 가치가 없다면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게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는 신자로서 자격마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기도하는 권능과 은혜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싼타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채 몇 년 걸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부모가 싼타 역할을 대신 했고 진짜 싼타는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싼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뭔가 아쉽고 괜히 화가 나기도 합니다. 꿈과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기도를 하며 자라는 아이는, 그것도 부모가 함께 기도하는 가정의 아이는 평생토록 꿈을 잊을 염려가 없고 오히려 갈수록 그 꿈은 더 커 갑니다. 기도를 듣고 또 응답해주시기를 너무나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그 아이 곁을 평생을 두고 떠나지 않으며 출입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아이도 눈에는 안 보이지만 하나님이 항상 자기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치 않습니다. 이 길 외에는 이 문제에 대한 어떤 답도 아이들 수준에 맞지도 않고 정답이 아님을 저로선 단연코 확언할 수 있습니다.

11/29/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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