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 묵상 메시지에 대해 한 회원님이 질문을 주셔서 제가 답변한 내용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질문) 매주 죄에 넘어지는데 어떻게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요? 늘 똑같이 죄에 넘어진다는 것은 나아진 모습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요?
(답변) "하나님께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거나 개선의 노력 하나 없이 말로만 사과하는"이라고 전제했으니 그런 모습과는 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 최소한 변명 대신에 구체적으로 지은 죄 모든 것을 토설해도 나아진 것이며, 죄를 이겨내지는 못해도 이기려고 한 번이라도 시도만 해봐도 나아진 것입니다. 자꾸 그러다 보면 짓는 죄의 종류가 줄고, 빈도수도 뜸해지고, 그 세기도 약해지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각 말 행동으로 짓는 죄가 훨씬 줄고 점차 진정한 사랑으로 섬기게 됩니다. 신자라면 매주 아주 조금씩이라도 의로워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예수 믿은 후에 여전히 어리석고 무익하므로 주님의 긍흘과 도우심이 절실한 죄인이라는 인식은 당연히 있어야 하나, 그것에 머물고 그런 인식을 하는 것이 아주 좋은 신앙이라고 여기면서 스스로 성화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신앙입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이지만 성화는 신자의 적극적 주도적 능동적 자발적 노력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상기 묵상 메시지에 대해 한 회원님이 질문을 주셔서 제가 답변한 내용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질문) 매주 죄에 넘어지는데 어떻게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요? 늘 똑같이 죄에 넘어진다는 것은 나아진 모습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요?
(답변) "하나님께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거나 개선의 노력 하나 없이 말로만 사과하는"이라고 전제했으니 그런 모습과는 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 최소한 변명 대신에 구체적으로 지은 죄 모든 것을 토설해도 나아진 것이며, 죄를 이겨내지는 못해도 이기려고 한 번이라도 시도만 해봐도 나아진 것입니다. 자꾸 그러다 보면 짓는 죄의 종류가 줄고, 빈도수도 뜸해지고, 그 세기도 약해지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각 말 행동으로 짓는 죄가 훨씬 줄고 점차 진정한 사랑으로 섬기게 됩니다. 신자라면 매주 아주 조금씩이라도 의로워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예수 믿은 후에 여전히 어리석고 무익하므로 주님의 긍흘과 도우심이 절실한 죄인이라는 인식은 당연히 있어야 하나, 그것에 머물고 그런 인식을 하는 것이 아주 좋은 신앙이라고 여기면서 스스로 성화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신앙입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이지만 성화는 신자의 적극적 주도적 능동적 자발적 노력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