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것이 완전히 지나갔는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간 구속에 관한 진리를 기술해 놓은 책이라고만, 이정도도 알지 못하는 신자가 많지만, 간주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직접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품성을 갈고 닦아 영적으로 성숙해지려고 훈련하는 차원으로 그쳐선 안 되고 정말 그 말씀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살아야 합니다. 요컨대 말씀하신 그대로를 한 점 의심 없이 믿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을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노력해야지”로 이해하면 도덕 교과서일 뿐이지 하나님 말씀이 아닙니다. 분명히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또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지금 여기에 없어야 합니다. 다시 되돌려서도 안 됩니다. 아니 되돌릴 마음이 추호도 없으며 그렇게 되지도 않습니다. 나아가 “보라”고 할 정도로 세상과 사람 앞에 새 피조물로 당당하게 내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새것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전 것이 완전히 지나가지 않았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기에 구원 받은 것도 아닙니다. 새것임을 확신하고 새롭게 살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새것임을 확신한다는 말에도 조금 어폐가 있습니다. 확신하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하면 확신이 아닙니다. 단 한 치의 의심도 들지 않는 상태가 확신입니다. 아무 노력 없이 그렇게 살게 된 것, 즉 생활방식 자체가 나아가 존재가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신령하고 경건해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죄의 본성이 남아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여전히 수시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완전히 지나간 이전 것은 예수를 몰랐던 때의 무신론적, 인본주의적, 세속주의적 사고와 가치관입니다. 인생을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들만 추구하며 살려 했던 방식을 완전히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은 이후의 삶을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여 그분 뜻대로 나를 살리신 이를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예수 없이는 가장 처참한 실패이며, 반대로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해도 예수만 있다면 가장 풍성한 성공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모든 것과 예수 둘 중에 어는 것을 택하겠느냐는 물음에 주저 없이 후자를 택해 비록 평생을 두고 머리 둘 곳이 없어도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경건한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죄가 혐오스러워지므로 방탕한 삶과는 자연히 거리가 멀어집니다. 때로 옛 본성이 작동하여 유혹에 넘어가도 신자에게 내주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신자의 영혼에 깨우침을 주어 회개케 해주시고, 필요하다면 죄로 걸어가는 발걸음을 강권적으로 막아 주십니다.
본문이 새로운 피조물의 정의를 어떻게 내렸습니까? “우리도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사람들을 세상 기준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자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불쌍하게 여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이 그도 대신해 죽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는데 신자도 그를 위해 끝까지 사랑으로 섬겨 십자가 복음 안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누구 앞에서건 예수를 대신해서 서서 그분의 남은 고난을 그 사람을 위해서 채우며 살아야 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을 아직도 육체대로 안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11/29/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