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5) 참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조회 수 1194 추천 수 56 2007.12.12 22: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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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12:5)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선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나는 우를 범했습니다. 물론 롯이 동행하게 된 까닭이 아브람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롯이 스스로 따라가겠다고 끝까지 고집했거나 아브람의 아비 데라가 고아가 된 손자 롯이 불쌍해 동행시켰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아브람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지시를 완벽하게 수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중간 기착지에서 소유와 사람을 모아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단순히 거주지를 바꾸라고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 생활 기반과 보호막이 되는 민족, 사회, 문화, 경제의 모든 울타리를 벗어나 오직 당신만 바라보는 인생행로를 걸어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의 지시를 다시 어긴 셈입니까?  

갈대아를 떠나라는 것이 세상을 온전히 등지고 수도사나 방랑자 같은 삶을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인생을 영위하던 이전의 방식과는 완전히 담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에선 자기 능력만 의지해 살던 삶을 일절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인생의 안전, 만족, 행복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언제, 어디서, 누구랑,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그분이 시킨 일을 그분의 뜻과 방식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만 하나님이 없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눈에 안 보이지만 하나님이 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새롭게 형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음에도 그에게 다시 큰 민족을 이루고 보이는 땅을 다 주겠다고 약속하신 까닭입니다. 아브람은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참 고향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가 갈대틸?있을 때는 사기 같은 부정한 방법으로도, 두 번이나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인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을 수 있을 것임,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또 도덕적으로 타락한 유흥과 쾌락에 그 돈을 낭비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하란에선 오직 성실과 정직과 신용으로 그것도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을 해서 돈을 모았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전과는 달리 그 돈으로 노예를 사서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자식이나 친척이 불어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의 진실한 삶의 방식과 신실한 여호와 신앙을 본 주위 사람들이 자연히 그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그들 또한 우상의 땅과 타락한 삶을 떠나 하나님 안에서 새 고향을 찾겠다고 아브람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아브람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들에게도 살아 있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자가 복의 근원이 되는 실체적 모습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동일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교회입니다. 아브람을 따라 나선 사람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갈 바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향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의 안전판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든 어떤 장애가 그 앞에 있든 그분이 주신 소명만 따르는 자들이 모여 인류 최초의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본받아야 할 모습은 아브람이어야지 단순히 그를 따라 나서는 사람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아브람을 따른 자들이 그만큼 믿음이 신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의 온전한 믿음을 보고 따른 것만은 분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자 한 사람이 바로 교회이자, 선지자이자, 제사장이자, 목사이자,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상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의 선하고 신령한 영향력으로 인하여 세상과 사람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브람이 롯을 데리고 떠남으로써 하나님의 지시를 위반하는 실수를 했고 또 가나안에 입경한 후에도 여러 번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럼에도 갈대아를 떠날 때에는 자신의 이기적인 동기나 목적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믿음은 온전했습니다. 그가 완전한 미지의 땅을 향해 출발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로선 그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은혜를 받은 경험이 있어서 그분을 충분히 신뢰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나타나 당시로선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지시를 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순간 어떤 위험이 닥칠지 심지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닥칠 것인데도 군말 하지 않고 따랐습니다. 그에게 오늘 날의 신자같이 신학적으로 정리된 믿음은 하나도 없었지만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굳건한 의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큰 축복을 넘치도록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롯과 완전히 헤어지도록 만드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의롭지만 하나님은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롯이 아브람의 곁에 있지 않도록, 그것도 서로 소유를 다투어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도록 하나님 당신께서 간섭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당신께서 거룩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에 비해 오늘 날의 교회와 신자는 어떤 모습입니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기는커녕 더 강하게 붙들려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총과 권능과 영광으로 채워질 새 땅을 소망하기에 현실적 인간적 안전판을 등 뒤로 던지려는 자들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안전과 만족과 행복을 구하는 수단과 힘을 그분에게서 얻어 가려는 자들로 교회는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도 쥐꼬리 같은 헌금과 봉사와 교환해서 말입니다.    

또 신자에게 영향을 받아 그와 동일한 삶의 방식을 살겠다고 자발적으로 따라 나서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늘의 본향에까지 이르도록 영원토록 운명을 같이 하며 함께 살겠다는 새로운 친척과 아비 집은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심지어 부부나 부모 자식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세상의 고향을 떠나 하나님 안에서 새 고향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떠나온 옛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려고만 모든 시간과 노력을 경주합니다.  

아브람과 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온 자들에게는 교회 건물, 성경, 목사, 성가대 같은 종교적 형식과 수단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종교 행위는 가는 곳마다 돌로 단을 쌓아 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뿐이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갈 바 모르지만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미지의 땅으로 한 걸음이라도 출발하는 믿음은 보였습니다. 과감히 세상의 안전판을 모두 버렸습니다.

과연 아브람의 교회와 현대의 메가 처치와 어느 쪽이 참신자이며 바른 교회입니까? 또 교회가 어떻게 해야 개혁을 이루고 신령해질 수 있습니까? 교회의 온갖 프로그램과 체제를 개혁할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신자라도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삶에서 실천하면 교회는 자동으로 개혁되는 것 아닙니까? 그 신실한 한 명의 신자를 보고 함께 따라 나서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타나면 바로 그것이 진정한 교회 아닙니까? 나아가 그런 교회에선 설령 신자가 아브람과 같은 실수를 범하더라도 하나님 당신께서 그 신자를 바로 세워서 교회를 개혁해 주실 것 아닙니까?

12/13/2007

조인구

2007.12.13 03:31:42
*.137.166.72

아멘 !!

부스러기

2007.12.13 11:13:36
*.137.166.72

마태복음 1장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가복음 1장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요한복음 1장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누가복음 2장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요한복음 4장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6장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태복음 8장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장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9장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태복음 23장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마태복음 27장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립보서 2장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갈라디아서 2장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빌립보서 3장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하박국 3장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김유상

2007.12.13 19:53:16
*.170.40.25

"교회의 온갖 프로그램과 체제를 개혁할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신자라도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삶에서 실천하면 교회는 자동으로 개혁되는 것 아닙니까? 그 신실한 한 명의 신자를 보고 함께 따라 나서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타나면 바로 그것이 진정한 교회 아닙니까? 나아가 그런 교회에선 설령 신자가 아브람과 같은 실수를 범하더라도 하나님 당신께서 그 신자를 바로 세워서 교회를 개혁해 주실 것 아닙니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만, "신자"가 교회의 지도자를 가르키는지 아니면 개개의 신도를 가리키는지 모호하군요. 내용상으론 전자이리라 짐작되는데, 굳이 "지도자"라고 쓰지 않고 "신자"라는 큰 말을 쓰신 의도가 지도자 중심의 교회관을 벗어나려는 데에 있기 때문인지요?

하지만, 현실은 슬프게도 그렇습니다. 너무나 지도자 중심이어서, 교회 프로그램을 정하고 없애고는 지도자에 달려 있고, 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안가는 것도 지도자에 달려 있습니다. 일개 신자가 아무리 바로 보고 바로 가고자 해도, 지도자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엔, 그 신자와 혹 그와 함께 하는 다른 신자들은, 함구하고 함께 잘못된 길로 가거나, 그 교회를 이탈하거나의 선택을 강요당하게 됩니다. 물론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겠지요. 고약한 것은, 편하고 익숙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 정착의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는 번거로움과 두려움보다, 아끼던 형제자매들이 잘못 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들을 내버려두고 나만 살겠노라 떠나는 비겁자 이기주의자라는 자책감을 안고 가야한다는 겁니다.

운영자

2007.12.14 14:33:50
*.105.223.26

김유상 집사님 말씀대로 저는 지도자 중심의 교회관을 벗어나려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사도 한 사람의 신자일 따름이며 신도도 만인제사장직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지도자나 목사나 사역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신자라고 했을 때는 그런 직분의 구분 없이
믿는 자를 총칭합니다. 본문도 그런 뜻이었는데 쓰고 보니 지도자에게 적용되는 부분이 많네요.
정말 현실은 지도자, 특별히 담임 목사에 따라 믿음의 방향이 좌우되며
심지어 왜곡되어지는 경우가 많아도 그에 따른 책임과 고통은 오직 신도가 져야 하니까
참으로 안타깝고도 억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은밀한 하나님입니다. 그런 목사는 반드시 하나님이 바로 잡아주거나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핍박을 받는 현실을
괴로워했을 때에 주신 해답이지 않습니까? 또 그 악인의 범위는 믿음의 의인에게 잘못 대하는 자 모두를
망라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는 단지 참 복음으로 인도하는 가이드에 불과한데 스스로 "내가 복음"을
만들어내니 큰일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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