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9가지 역설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고후6:3,4)
새로운 피조물이 된 모든 신자는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예를 들어 그 직책이 갖는 특성을 3-10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반드시 겪어야 할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9가지 열거하고 있습니다. 환난, 궁핍, 곤난, 매맞음, 갇힘, 요란한 것, 수고로움, 자지 못함, 먹지 못함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모든’ 일에서 거리끼지 않고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겪더라도 그런 어려움이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또 9가지나 열거한 까닭도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을 것이며 그것도 매번 여러 종류의 고통이 상황에 따라 동시에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일군에는 좋은 일 9 가지도 생긴다고 말합니다. 깨끗함, 지식, 오래 참음, 자비함, 성령의 감화, 거짓이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 의의 병기가 그것입니다. 이 또한 앞에 설명한대로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항상 따르는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어려움 9가지와 좋은 일 9가지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어려움은 외부적 상황 하에서 객관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반면에 좋은 일은 모두 신자 자신의 내면이 인식하는 주관적 변화 내지 반응입니다. 그럼 무슨 뜻이 됩니까? 항상 외부적으로는 어려운 일이 따르지만 내면은 오히려 기쁨과 감사가 넘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신자 자신의 품성이나 사고를 바꾸려는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감화나 진리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더 신령하고도 깊은 교제에 들어가면 외부적 상황이 어떠하든 그분의 권능과 은총으로 자신의 사역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신자의 삶도 하나에서 열까지 오직 그분의 주권적 은혜 안에서만 영위되어집니다. 그 결과 자기가 맡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의 소명을 더 확고히 붙들게 될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인생의 목적 자체가 바로 그분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신자가 겪는 9 가지 역설을 설명한 것입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합니다.
그가 “...같으나 ... 아니하고“라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신자에게는 완전히 반逾풔?두 가지 상황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는 현실 상황은 부정적이고 힘들지만 본인이 실제로 느끼는 것은 정반대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신자를 평가할 때에 더욱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세상에선 신자가 악하고 욕되며 무명한 자 같이 취급을 받아도 하나님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우며 유명하게 대우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럼 신자가 하나님과 교제가 더 깊어지고 그분의 일을 더 많이 한다면, 즉 새로운 피조물로 맡게 된 화목케 하는 직책을 더욱 성실히 수행한다면 어떻게 된다는 뜻입니까? 바울이 고백한 그대로 겉 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속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강건하고 기쁨이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당했던 고난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럼에도 그 속에 염려되는 것은 연약한 교회와 성도들뿐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군, 바꿔 말해 신자라면 누구라도 모든 일에서 9 가지 나쁜 것(4,5절)을 이겨내고, 9가지 좋은 것(6,7절)을 이웃에 베풀어야 하며,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에서 9가지 역설적 결과(8-10절)를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이겨내는 것은 자기 믿음으로,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하면, 결과는 하나님이 다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거나 단순히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직책을 수행해선 안 됩니다. 오직 모든 일에 받은 직책이 훼방 받지 않게 하려는 목적과 동기가 앞서야 합니다. 참 된 기쁨과 감사함으로 자발적인 열정과 진정한 헌신을 소명을 위해 바쳐야 합니다. 예컨대 진짜 아무리 현실에서 가난하고 궁핍해도 하나님 안에 있기에 부요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또 오히려 그런 것이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받는 유일한 통로임을 확신하고 실제로 그 은혜를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건대 전문 사역자에게만 해당 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신자 모두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대로 스스로 자신이 이 세 종류의 오묘한 9가지, 사실은 그보다 수 없이 더 많지만, 은총과 권능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동료 신자나 주위의 불신자를 향해 십자가 복음의 입이 크게 열리고 예수님이 주신 자비로운 마음이 광대해져야 합니다.
12/14/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