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3:6-8) 최초의 사회개혁자 아브람

조회 수 1004 추천 수 33 2008.01.07 20: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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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사회개혁자 아브람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너나 나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창13:6-8)


오랜 전에 남한에서 버리는 음식 찌꺼기의 양이 북한의 주식 생산량을 능가했습니다. 미국에서 버리는 음식만으로도 아프리카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미국은 현재의 열 배 인구가 살아도 충분히 풍족하게 살 만큼의 자연환경이 갖춰져 있다고 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은 인류에게 얼마든지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이미 다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세계식량계획(WFP)'에 의하면 세계 인구 1/7은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매년 기아 난민의 수는 400 만 명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매 5 초에 1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인해 죽어갑니다. 매년 1,090 만 명의 5 세 미만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죽는데 그 60% 이상이 영양실조가 원인이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람과 그 조카 롯의 소유가 아주 많아졌습니다. 성경은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해 종들이 서로 다투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목축에 필요한 물과 초지가 모자랐거나 서로 좋은 것을 먼저 차지하려 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기까지 그 땅이 목축에 너무 적합하여 가축이 많이 번식했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식량이 모자라 힘든 것과는 정반대로 넘쳐흘러 남아도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너무나 어리석지 않습니까? 아브람의 때나 지금이나 식량은 남아도는데 서로 다투며 곳곳에서 굶어죽는 일이 벌어지니 말입니다. 그 이유야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만 가장 많이 그것도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빨리 차지하려고 고집부리기 때문입니다. 소유를 증식하려고만 하지 나누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여 증식시킨 소유를 남과 쉽사리 나눌 수 없습니다. 또 나누라고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돈을 받고 팔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문제는 여러 사회 경제적 요인 때문에 대대로 잘 사는 자(나라)는 잘 살고 못사는 자는 못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조적인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타개할 현실적 조치가 마땅히 없습니다.    

그래서 유사 이래로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 온갖 사상과 체제를 고안하여 시도해 왔습니다. 그런대로 도덕적 양심은 살아 있어서 기아를 구조적으로 없앨 방안들을 모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제대로 성공한 방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분배를 강조하자니 성장이 안 되고 성장에 우선을 두면 분배가 등한시 됩니다. 예컨대 아주 최근까지도 공산주의가 그 이상을 실현해 주리라 기대했지만 무참히 실패했지 않습니까?  

흥미롭게도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람은 이 문제를 아주 지혜롭게 해결했습니다. 말하자면 역사상 최초로 사회 구조를 성공적으로 개혁한 자였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조카와 서로 헤어져 각기 다른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와 달리 세계는 각기 거주의 경계가 이미 지어졌습니다. 민족들이 따로 헤어져서 차지할 새 땅이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럼 아브람의 사회 개혁은 우리가 따를 수 없는 실패한 모델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개혁의 초점은 헤어지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시행한 개혁의 결과적 형식일 뿐입니다. 개혁의 근본 내용은 따로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다투지 말자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서로가 한 조상을 둔 골육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친척끼리 말하자면 민족끼리 잘 먹고 잘 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럼 여전히 현재의 상황과 동일해질 뿐입니다.

인류의 실패는 기아를 해결하겠다고 이미 벌어진 현상만 붙들고 늘어진 데에 있습니다. 또 그 원인을 식량 생산의 부족이라고 물질적 시각으로만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 기아 자체를 없애려 해선 영원토록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본문대로 “땅이 서로 동거함을 용납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은 풍족하고 다른 곳은 척박하기 마련입니다.  

오직 무슨 일이 벌어져도 서로 다투지 않겠다고, 즉 아무리 땅이 서로 동거함을 용납하지 않더라도 현실의 풍요를 추구하려는 목적으로 절대 전쟁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실천이 없으면 기아 문제의 해결은 요원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선 인류 전체가 골육이라는 확신이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만 합니다. 모든 인간이 아담과 이브의 한 조상을 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한 어떻게 그 피 같은 식량을 나눌 수 있으며 또 더 좋은 목초지를 이웃에게 양보할 수 있겠습니까? 최소한 다투지 않고 헤어지기라도 하겠습니까?

아담과 이브를 한 조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땅이 우연히 물질로 존재하게 되었고 또 그 물질이 오랜 세월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인간으로 진화되었다고 믿는 자들에게는 인류가 한 조상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이웃이 골육이라는 인식이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모든 사고와 행동이 물질주의에만 바탕을 둡니다. 어떻게 하던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그것도 자기와 자기 가족만 말입니다. 당연히 이웃이 굶어 죽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기껏 큰 자연재해가 벌어져야 쥐꼬리만 한 양심에 찔려 자기 쓰고 남은 것으로 적선을 베풀 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과 롯에게 “그 땅으로” 서로 동거하지 못하게 만드신 것이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우선 땅이 풍요로워 먹고 사는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기적 욕심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며 또 땅도 풍요로운 곳과 척박한 곳으로 나눠졌습니다. 자연히 다툼이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그럴 때에 인간이 과연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지 두고 보시려는 것입니다. 당신을 모르고 전 인류가 골육이라는 인식이 없는 자는 서로 다투다 사망으로 결말지을 것이며, 반면에 믿음의 후손들은 모든 이웃이 골육이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듯 그들도 사랑하여 다투지 않고 나누거나 헤어지리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작금 교회에서 더 많은 물질을 그것도 자기에게만 더 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는 신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1/8/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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