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35-39) 아무 열매 없는 새벽 기도

조회 수 970 추천 수 51 2009.10.25 21: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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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열매 없는 새벽 기도


“새벽 오히려 미명(未明)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막1:35-39)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서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찾아 나섰습니다. 함께 기도하려고 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찾아왔으니 만나주어야 할 것 아니냐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이처럼 기도할 짬도 없을 만큼 바빴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온 제자들과 함께 기도처에서 돌아오긴 했지만 그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몰려드는 군중들을 피하신 적은 있지만 직접적인 면담 요청을 거절한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그것도 새벽부터 찾아온 자를 말입니다. 새벽부터 찾아왔다면 바로 그 마을 사람들인데 예수님은 다른 마을로 옮기자고 했습니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절하신 까닭을 알려면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에서 따져봐야 합니다. 가까운 마을들로 가서 “거기서도 전도하자”고 했으니 이미 그 마을은 전도가 완전히 되었다고 본 것입니까? 아무리 예수님이 전도했어도 마을 사람 전체가 다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전히 그 마을에도 전도할 자는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또 지금 갈릴리 지역을 순회하는 목적이 바로 전도라고 합니다. 그럼 그 마을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다른 마을에 가려 했으니 그 이유는 둘뿐입니다. 더 넓은 지역의 더 많은 사람을 더 빠른 시일 내 전도하려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는 목적이 전도와 상관없는 즉, 죄에서 건짐 받는 구원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둘 중에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무래도 후자입니다. 예수님은 전도의 숫자에, 요즘 식으로 따지면 교회의 양적 성장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단 한명의 진정한 제자를 양육하시길 원했습니다. 삼년간의 사역 동안에 전도된 숫자가 베드로가 오순절 한 번의 설교로 회심한 자와도 도무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지 않습니까? 또 제자들더러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당신께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이 마을 사람들이 새벽부터 예수님을 찾아 나선 까닭은 구원과는 거리가 멀고 심지어 귀신을 쫓아내어 달라는 부탁도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예수님은 단 한 명이 언제 어디서 어떤 무례한 방식으로 찾아왔더라도 만나 죄를 사해주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와 다른 이유라면 병을 고치거나 현실의 풍요를 비는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병만 고치려거나 현실적 형통만을 위해 찾아오는 자는 아무리 그 사정이 군급해도 만나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새벽부터 찾아왔다면 나름대로 형편이 딱하고 급했을 것은 틀림없음에도 예수님은 다른 마을로 가버렸지 않습니까? 병을 고치고, 현실 형편을 나아지게 하고, 개인의 감정적 상처를 씻고, 자존심을 세우는 등의 일에만 믿음을 동원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 그런 형통을 주시면 더 잘 믿겠다는 것도 예수님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으로선 아무리 바빠도 필요하다고 판단하셨다면 얼마든지 만나주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시간과 공간을 만드신 분이자 주관자이지 않습니까? 그 마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입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당신께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도 반드시 해야만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단의 미혹에 빠져 당신의 영광스런 광채를 그 심령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를 너무나 불쌍히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의 인간들에게 가장 먼저 선포하신 말씀과 또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과 당신을 십자가에 단 원수들을 향해서도 저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니 그 죄에서 용서해달라는 간구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미 예수 믿은 신자들을 보시는 그분의 관점도 당연히 똑 같을 것입니다. 신자가 이런저런 현실의 문제로 기도할 때에 이 마을 사람처럼 그 해결이 아주 시급하다고 생각하여 새벽미명부터 예수님을 찾지만 오히려 거절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의 뜻이 명백하게 바로 그것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은 신자의 그런 요구를 무조건 거절만 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분의 관점은 신자가 겪고 있는 환난과 문제들을 통해서 자신의 죄가 깨끗이 씻어지고 예수님과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져서 당신의 뜻대로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를 통해서 당신의 거룩한 광채가 불신자들과 미명에 문제만 해결해달라고 요구하는 동료신자들에게 비춰지기만을 시급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신자가 바로 이 예수님의 관점에다 자기 믿음의 관점을 완전히 일치시키지 않으면 그분의 은혜와 권능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난에서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도 그 응답이 완전 거절은 몰라도 예상보다 훨씬 더 지연될 수 있습니다. 기도란 바로 이런 주님과 신자 사이의 현안을 보는 시급성의 차이를 조절하는 작업입니다. 서로 타협해서 합의를 본다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하나님의 시급성에 맞추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십시오. 오직 성부 하나님이 시키신 일만 하셨고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의 경우에서 보듯이 바로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을 대상으로 꼭 해야만 할 그 일만 하셨습니다. 또 그러기 위해 새벽 미명에 기도부터 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관점에 자신의 관점을 일치시킨 후에 비로소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신자가 아주 시급하다고 보고 기도로 간절히 아뢰는 것들의 대부분이 하나님은 오히려 시급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시급하다고 보는 일들의 대부분을 신자는 오히려 좀 더 여유를 가진 후에 하자고 요구합니다. 시급하다는 것은 반드시 그 때에,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만 할 일입니다. 다음에는 그런 기회가 아예 오지 않거나 와도 아주 늦게야 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새벽마다 뜨겁게 기도할 정도로 스스로 시급하다고 보는 일에는 신자가 열심을 다 하지만, 하나님이 시급하다고 보는 일에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 아닙니까? 당장에 하던 일 몽땅 제쳐두고 전도하러 나가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신자를 향한 일정표에 따라 하나님이 이루실 일에 전혀 진전이 없을 것 아닙니까? 말하자면 새벽기도마다 “주님 왜 이리 응답이 더딥니까? 왜 나를 외면하십니까? 어서 빨리 저를 이런저런 일들 해결해 주시옵소서.”라고 열렬히 간구해도 예수님으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이 “죄에서 건질 다른 양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것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새벽에 어떤 기도를 해야 합니까? 지금 주님이 나에게 가장 시급하게 원하시고 꼭 나를 통해 이루시려는 일이 무엇인지부터 물어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과연 그에 대한 주님의 답을  어지간한 믿음이 있는 신자라면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럼 과연 무엇이 문제입니까? 혹시 그것마저 그리 깊이 안 따져 봐도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을까요?

10/25/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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