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2:3)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교회

조회 수 1545 추천 수 64 2009.11.11 20: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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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교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존 웨슬리는 가끔 평신도를 설교자로 세웠습니다. 한 신자가 달란트 비유의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눅19:21)의 ‘엄한’(austere)이란 단어를 ‘굴 따는 사람’(oyster)으로 착각했습니다. 자연히 예수님을 잠수부에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잠수부는 얼어붙도록 추운 바다 밑으로 들어가 손으로 더듬는 중에 날카로운 굴 껍질에 손을 베지만 굴을 딴 후엔 찢어져 피가 나는 손으로 굴을 따서 물 위로 올라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사람들을 영광스런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죄 많은 이 땅에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셔서 찢기고 피나는 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설교했습니다. 일부 신자들이 성경 본문의 뜻도 모르는 자에게 설교를 시켰다고 웨슬리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는 “아무 염려 마세요. 오늘 저녁 주님께서 12개의 굴을 따셨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설교를 듣고 12명이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그 설교자는 엄한 사람이라는 단어뿐 아니라 본문의 대의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복음으로 죄에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 받은 자가 주님께 받은 은사와 재능을 사용해 열심히 충성하라는 내용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그날 웨슬리가 설교했어도 그만한 결신자가 나오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신자가 선한 의도로 순수한 열정과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면 설령 그 과정 중에 착오와 허물이 있더라도 성령의 권능은 역사합니다. 물론 자기가 잘못하는 줄 전혀 모르고 있을 때에 한해서입니다. 거짓이나 잘못인 줄 알고도 주의 이름만 앞세워서 뻔뻔하게(?) 자행하는 일에는 절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습니다. 사단에게 놀이터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 평신도가 알고 있고 전하고 싶었던 것은 오직 예수님뿐이었습니다. 청중들로 어떻게 하든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고 싶어서 자기 지정의로 추론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했던 것입니다. 아마 어휘력이 딸려 평소에 성경을 세밀히 보지 못한 사람으로 그날도 으레 그런 뜻이겠거니 여겼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었다면 그런 순수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라면 주위에 분명히 물어보지 않았겠습니까?

비슷한 또 다른 실화가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이 교회는 성실히 다녔지만 회심하기 전이었습니다. 어느 주일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교통편이 다 막히는 바람에 출석하는 교회까지 못가고 근처 작은 교회를 갔습니다. 마침 그 교회 목사님도 오지 못해 한 평신도가 설교를 맡았습니다. 이분은 그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말만 반복해서 소리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예수 믿으라는 한마디 앞에서 스펄전은 생전 처음으로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체험하며 자신을 주님께 완전히 바치는 진정한 회개를 했습니다.        

교회 강단에서 선포될 것은 오직 예수님 이야기뿐이어야 합니다. 죄에서 구원 받는 십자가 구속만 설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 후 정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일과 그분의 일에 충성하는 일에서도 오로지 예수님의 은혜와 권능에만 의지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 전부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창조, 타락, 구속, 완성 모두 그분과 연결되지 않는 기사가 없기에 그분을 빼고는 완전한 해석과 이해와 적용이 불가능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 “또 만물(萬物)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2,23)

왜 예수 믿으라는 너무나 단순한 설교에 그런 큰 역사가 일어날까요? 설교자의 순수함, 진정성, 열정, 소망 등이 작용했기 때문입니까? 이미 말한 대로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전제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부족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순수해도 여전히 죄가 살아 숨 쉬기에 언제 어디서나 쉽게 깨어지는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능력의 심히 큰 것은 오직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과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있을 뿐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자체로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분의 품성, 치유, 사역, 강화,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등을 간단한 이야기 식으로 전해도 그러합니다. 그 이유도 간단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그분은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유일하다는 뜻임, 완전한 사랑으로 그 모든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분 당신이 바로 절대적이고도 완벽한 사랑이었습니다.

한 죄인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온전한 능력은 오직 온전한 사랑에서만 나옵니다. 그 온전한 예수님의 사랑이 증거 되는 곳에는 당연히 성령의 놀라운 역사도 함께 임합니다. 굴 따는 잠수부라는 성경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비유에도 12명이나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지 않습니까? 그 평신도의 설교의 초점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에 있었으며 그 비유로 그 죽음의 의미를 생생한 그림으로 전환시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동료 교인을 사랑하는 열정을 통해 살아계신 예수님의 참 사랑이 청중의 심령을 파고든 것입니다.

성경은 너무나 확고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증거하고 또 주로 모시고 행하는 곳에서만 성령이 역사하며 또 성령이 진정으로 역사하는 곳에는 반드시 그런 열매가 맺힙니다. 역으로 예수님의 증거가 빠진 종교 행위는 아무리 심오하고 경건해 보여도 성령님도 함께 사라질 뿐입니다.

초자연적 신비나 엄청난 결과를 맺어야만 성령의 권능이 역사한 것처럼 이해할 근거나 이유는 성경에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무식하고 소박한 한 평신도가 나름대로 성의를 다한  범위 내에서도 성령의 큰 역사는 동반했지 않습니까? 참 신자라면 누구라도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소유하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실수와 허물이, 심지어 분명한 잘못이 개입되더라도 말입니다. 단 순수하게 예수로 인해 살고 예수로 인해 죽겠다는 온전한 소망과 헌신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작금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교회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자꾸만 정교해지고 전문화되다 못해 정작 배우고 믿고 따라야 할 본질이 차츰 사라집니다. 경건하고 열정적이며 감동이 넘치기에 분명 신명나고 즐거운 신앙생활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오랜 기간 동안 양육 받아 쌓아 놓은 것들이 종교적 훈련법과 실행지침 뿐인 것 같습니다. 또 바로 그렇게 쌓인 지식들이, 믿음이 아니거나 믿음과는 별개의 것으로, 도리어 성령의 온전한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아주 단순합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해주신 예수님 앞에 자신을 비춰보면 너무나 비참한 죄인임을 절감하는 것입니다. 구원 후에도 성령의 권능 안에서 그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기도, 말씀, 선행, 전도, 예배, 찬양, 교제, 교육 모두가 그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는 한 가지 목적에서 수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각각이 인본적인 학문과 기술이 혼합된 전문분야가 되어서 예수님과는 따로 떨어져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조금만 가슴 벅차는 일이 생겨도 성령이 역사했다고 좋아합니다. 과연 그러 할지요? 그 반대로 혹시 성령의 역사를 가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신자가 진짜로 감명 받아야 할 것은 예수의 이름이 증거되는 앞에 만물이 복종하는 모습뿐이어야지 않습니까?

11/11/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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