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제가 3년을 기다려 왔던, 하나님이 약속하신 둘째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간 남편의 동의가 없었으므로, 시시탐탐 남편을 꼬실 기회만 엿보던 중에 생긴 아이라, 저에게는 더 큰 기대를, 아이 아빠에게 막막한 책임감만을 불러 일으킨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임신한 동안, 이상하리 만큼 제 믿음을 시험하는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노령(?)에 갖은 아이라, 병원에선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기형아 검사를 소개했습니다. 평소엔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들을 앞에 놓고, 저는 이상하게도 갈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믿음 저 구석에 자리한 하나님에 대한 예의(?)가 발동하면서, 왠지 그런 테스트를 앞에 놓고, 내 믿음이 흔들리면 안된다는 기본적인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아이면, 어떤 모양이라도 감사히 받아야하는데,, 하는 마음과, 정말 기형아가 태어나면, 그걸 감당할 수 없을것 같은 두려움 사이에서, 검사가 가능한 2달간을 갈등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중, 하나님은 제게 “두려워 마라, 네게 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라”
“두려워 말고, 네 믿음이 허락하는 대로 행하라. 어찌 행하던, 너를 향한 내 계획은 변함이 없으리라.” 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응답의 해석을 놓고 저는 또다시 미궁에 빠졌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응답에서 얻은 용기만을 붙들고 과감히 모든 테스트를 거부했습니다.
저의 첫번째 갈등에서 거의 벗어날 무렵, 저는 그 간 별 문제없이 해 오던 십일조를 놓고 남편과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마침 그 즈음이 크리스마스 때라, 우리의 우연한 갈등은 더 깊은 상처로 남게 되었고, 저는 다시금 내게 있어 십일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검하면서, 제 믿음의 기본이 흔들리는 것 같은 영적 위기에 다다랐습니다. 저의 시작은 분명, 하나님의 간섭이 너무나 소중해서, 그분이 허락하신 모든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리고 그런 하나님과 그분이 내게 허락하신 물질을 바꾸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할까 두려워서 시작한 순수한 의식행위 였음을 기억하는데, “너는 그렇게 엄격하게 십일조 해야 만 천국가지?” 라는 한마디를 통해 돌아본 제 자신은 더 이상 그 순수성을 찾아 볼수 없을 만큼 감사를 상실한 억지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그의 말 처럼 하나님의 맘을 사려고 천박하게 억지로 십일조를 해 왔었다는 생각에 다다르면서, 내가 자부해 오던 겨자씨 반톨만한 믿음은 큰 착각이며 교만이었다는 인식에 괴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괴로움이 있는 동안에는 십일조는 물론, 헌금조차 할 수 없었고, 힘없이 찾는 하나님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또한 나를 이렇게 큰 시험에 들게한 남편이 야속했습니다.
그러던 중, “십일조 하다 안 하면 큰일 나는데” 라는 누군가의 한 마디에 저의 가슴은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저는 저의 이 모든 자각이 사실이 아님을 애써 부정하며, 그간 하지 않았던 십일조를 남편에게 선포하듯, 나를 시험에 빠지게 한 악을 이긴양 헌금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 날 저녁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비참한 날이 될줄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다툼은 십일조를 한 행위를 인함도, 그에 대한 남편의 핀잔에 의함도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사소한 말에 물밀듯 밀려온 저의 분노는, 늘 우리 사이를 훼방 해 온 악이 한꺼번에 저의 심장에 달라붙어 제 지각을 마비시키고 승리의 쾌재를 노래하는 날카로운 악의 함성이었습니다.
어이없어 하는 남편의 반응이 저를 진정시킬리는 만무했고, 순간적인 분노와 우울증에 빠진 저는 혼자 방에 들어 앉아 죽음만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푸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워서 더욱 더 딱딱해 보이는 저 밑 아스팔트 길을 내려다 보며, 하나님께,, 여기서 떨어져도 아프지 않게 저 길가에 깔린 얄팍한 눈들로, 나를 감싸 안아 천국으로 보낼수만 있다면, 정말로 몸을 던지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그동안 침묵해 오시던 하나님이 제게 물어 오셨습니다. “정말로 죽기를 원하느냐? 네가 정말 원한다면, 네가 아이를 낳을때 내가 너를 대려가겠다.”
뜻밖의 응답에 갑자기, 나의 3살 넘은 불쌍한 아들이, 그리고 태어나면서 엄마를 잃을 아이가 그리고 나의 오랜동안의 기도제목과 그에 대한 기다림의 세월들이 안타까워 졌습니다. 그리고는 눈물로 응답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그날을 두손 높여 찬양하는 그때까지 살고 싶어요.”
그 후 이 일을 잊기 위해 더욱 미친듯이 일에만 몰두하며 생활한지 삼일째 되던 날 아침 이상한 느낌이 저를 평소보다 일찍 깨웠습니다. 화장실에 가 보니 하혈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18주가 다 된 상태라, 걱정은 됐지만 유산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초음파로 단순히 상태를 진단해 보고자 병원에 보내어진 저는, 그 날 집으로 돌아 오지 못하고 분만실에서 예견되어진 이른 분만을 기다리며 누워 있었습니다. 원인을 알수없는 상태로, 닫혀있어야 할 자궁문은 이미 열린 상태였고, 서서히 분만의 진통이 점점 강하게 다가 오는것을 느끼면서도 한 가닥의 희망을 걸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내 몸쪽에 원인이 있어서, 치료 후 아이를 살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렇게 5시간이 흘렀을 무렵, 갑자기하나님이 주신 응답의 의문이 풀리면서 제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내 뱃속에서 생사의 위기에 놓여있는 이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임이 분명했습니다.
자신을 잉태 해 놓고 사랑도 관심도 없는 철없는 부모를 위해,
하나님을 사랑한다 고백하면서도 거룩함의 실천이 없는 엄마를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도 그 부르심을 외면해 온 아빠를 위해,
그리고 그 엉성한 부모 밑에 자라고 있는 불쌍한 형을 위해서 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악에 휘말림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철저히 깨닫게 해 주려고 우리 가정에 온, 하나님의 메신저였기 때문입니다. 아직 때를 채우지 못하고 나오는 이 아이가 그렇게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 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때까지 쥐고 있던 인간적인 희망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해 주며, 우리 아이는 이렇게 사람의 형태를 겨우 갖추자 마자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하던 순간, 저의 하체에 따뜻한 양수의 접촉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과 역사는 그 순간에도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연약하고 어리석은 우리 부부의 회한의 눈물과 흐느낌 속에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이 녹아 들어있게 하셨습니다.
삼년전, 새벽 기도때 간절히 기도 했던 기도 내용과 응답이 갑자기 떠올라 저는 하나님 앞에 더욱 더 엎드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도 우린 여전히 요란한 수레 굴러가듯 살고 있었습니다. 자존심과 성냄과 분함과 증오가
나쁘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 악의 본체에 쉽게 휘말려 굴복 당하는 삶을 살며 쉽게 이혼을 운운하던 때 였습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살고 있는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애원하며, 거의 이혼을 정당화 해 달라고 졸라대는 심정으로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역사를 나의 불 순종으로 거스리는 것에 대한 두려운 맘이 그나마 남아 있어, 그런 생때 기도를 드릴때 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뜸금 없이 내게 또 다른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이 따로 있듯이 내 남편에게도 그의 길을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주실 그 아이는 이미 그 당시6개월 가량이 된 첫째 아이에게 꼭 필요한 아이라는 느낌까지 갖게 해 주셨습니다.
이 알 수 없는 응답을 받고서, 도저히 어느누구에게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응답을 받을 당시 내게 느껴졌던 하나님의 권위는 부정할수 없을 정도로 강했기 때문에 그 응답 을 노트에 받아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부터 둘째 아이에 대한 소망을 키워 왔습니다. 그후 3년이 지나서야 겨우, 병원 분만실에 누워 이 모든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의 메세지를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24시간에 걸친 유도 분만이 끝난 후 회복실에 옮겨져 하루 밤을 넘기는 동안, 간이 침대에 잠들어 있는 남편과 아들녀석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와 같이 연약한 그들을 향한 나의 어리석음이 너무나 잔인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잔인함의 실체가 이 세상의 모든 육체를 구속하고 있음이 애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애통하심과 오래 참으심에 눈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쳐잠든 그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사랑해”라고.
내 두손위에 잠시 놓여졌던 그 아이가 생각나면, 아쉬움과 회한의 고통으로 아직도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그리고 거짓과 사망의 아비, 사탄의 올가미인 악에 쉽게 지배당하는 우리들이 너무나도 처절하게 느껴지며, 그런 악이 그 누구보다도 밉습니다. 하지만, 그 악 또한 하나님의 교육 자료로 사용하시어 나에게 천국의 실체를 조금씩 알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 어떤 감사행위도 의도와 행위 자체로만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내 맘에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깨어있는 교감이 없이 하는 감사행위는 그 어떤 것도 천국에 속한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해 주신 천국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깨닫고 실천할때 누릴 수 있다는것도 알았습니다.
나의 단순한 십일조 행위는, 진리를 가리고 나를 무지 속에 가두어 안심시키는 형식적인 제사 이었음을, 또 그런 나의 무지가 그와 나를 더욱 쉽게 악에 휩싸이게 했음을 고백하며,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전해져, 우리 부부가 겪은 무지함의 고통없이, 늘 섬기고 찬양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아픔이 있으셨을텐데 용기를 내서 글을 올려주시고 감동을 주시니 감사를 드리며,
모든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