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조라는 표현이 구원에선 적절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문제를 두고 기도하거나 간절히 생각하고 있어야만 실제로 자기 주변에 발생하는 평소와 다른 현상 사건 등을 그것과 연결시켜서 징조라고 알아챌 수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으면 설령 징조가 있어도 본인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니까 징조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징조를 구한다는 것 자체부터 징조가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구원으로 택한 자에게는 그 견고한 심령의 문을 노크할 수 있는 여러 일들을, 대표적으로 현실적 실패나 정신적 절망 같은, 일으켜 주시고 수시로 전도자도 붙여주십니다. 그와 동시에 성령으로 그 진을 조금씩 무너뜨려주시면 완악했던 한 죄인의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한 영적인 안목이 서서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굳이 징조라고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한 죄인의 외부에 여러 징조를 일으켜 주시면서 그 죄인의 내부에도 성령으로 역사하여서 점진적으로 구원으로 인도하신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징조는 각 사람마다 다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본인만이 또 대체로 한참 후에야 징조였다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을 받고 난 후라야 나에게 일어났던 이런 저런 비상한 일들이 특별히 여러 실패들이 바로 구원의 징조였구나라고 확인하고 더더욱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징조라는 표현이 구원에선 적절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문제를 두고 기도하거나 간절히 생각하고 있어야만 실제로 자기 주변에 발생하는 평소와 다른 현상 사건 등을 그것과 연결시켜서 징조라고 알아챌 수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으면 설령 징조가 있어도 본인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니까 징조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징조를 구한다는 것 자체부터 징조가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구원으로 택한 자에게는 그 견고한 심령의 문을 노크할 수 있는 여러 일들을, 대표적으로 현실적 실패나 정신적 절망 같은, 일으켜 주시고 수시로 전도자도 붙여주십니다. 그와 동시에 성령으로 그 진을 조금씩 무너뜨려주시면 완악했던 한 죄인의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한 영적인 안목이 서서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굳이 징조라고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한 죄인의 외부에 여러 징조를 일으켜 주시면서 그 죄인의 내부에도 성령으로 역사하여서 점진적으로 구원으로 인도하신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징조는 각 사람마다 다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본인만이 또 대체로 한참 후에야 징조였다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을 받고 난 후라야 나에게 일어났던 이런 저런 비상한 일들이 특별히 여러 실패들이 바로 구원의 징조였구나라고 확인하고 더더욱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