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얻든 못 얻든 전파하라.

조회 수 238 추천 수 0 2018.07.23 02:08:37

(딤후4:1-5) 때를 얻든 못 얻든 전파하라.

새벽기도 설교 (14)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1-5)

 

무조건 전도하라.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복음으로 낳은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처럼 쓴 서신이 디모데후서입니다. 목회에 관한 여러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런 권면 중에서도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6절은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말합니다. 전제(奠祭)란 동물 희생제물을 태워 바치면서 술을 붓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순교의 제물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벌써 전제로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합니다. 십자가 처형이 임박한 것을 바울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제자이자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충고입니다. 예수님이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과 그 맥을 같이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되 때를 얻든 못 얻든 힘써서 하라고 합니다. 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 전도한 것으로 그치지 말고 말씀으로 잘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되 가르친 것을 지키게 하라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때를 얻든 못 얻든 전파하라”는 이 말씀을 오늘날에도 많은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전도를 독려하면서 가장 많이 또 자주 인용됩니다. 바울이 “엄하게 명한” 전도에 관한 권고이기 때문입니다. 주로 어떻게 가르쳐져 왔습니까?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장소, 환경, 시간에 구애 받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가르침이 잘못된 것은 아니고 본문에 그런 뜻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영원히 살고 죽는 문제입니다. 그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가 없으며 언제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르니 시급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무조건 막무가내로 전파해야” 하는 데에 방점을 찍습니다. 전한 후에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고 예수를 영접하지 않으면 그 본인의 잘못이자 책임일 뿐이라고 합니다. 또 전도에만 초점을 맞추니까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은 뒷전이 되고 결과적으로는 신자의 변화가 없습니다.

 

마치 시장에서 아무나 소매를 끌고 들어가 물건을 강매하는 듯 전도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주인이 손님들과 영업하는데도 가게에 쳐들어가 전도합니다. 병원에 병문안 가서도 같은 병실에 다른 환자들이 있든 없든 소란하게 찬양 부르고 설교하는 식입니다.

 

때는 어느 때인가?

 

무조건 전하라는 것이 본문 2절의 뜻이 아닙니다. 전도를 반드시 시급히 해야만 하는 이유에 관련된 말씀이지 전도하는 방식에 관한 충고가 아닙니다. 바울이 그렇게 엄하게 명한 근거를 본문이 어떻게 설명합니까?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명한다고 합니다.

 

그가 나타나실 것 즉, 심판주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재림이 반드시 전도해야 할 첫째 근거이자 이유입니다. 그 둘째인 그의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의 영원한 통치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때를 얻든 못 얻든”의 때는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입니다. 전도자로선 주님 재림의 때를 짐작도 못합니다. 따라서 그 때를 알든 모르든, 임박했던 안 했던,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되니까 열심히 전도하라는 것이 본문 안에서의 뜻입니다.

 

피전도자의 상황의 어떠하든지 간에, 아니면 복음 수용 여부를 문제 삼지 말고 무조건 전하라는 뜻과는 무관합니다. 일부 번역본이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라고 전도하는 상황에 적용했습니다만, “때를 얻는다.”는 원어의 뜻은 현존하다, 곁에 있다, 임재하다, 임박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3절은 “때가 이른다.”고 합니다. 그럼 2절의 때도 3절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때를 얻는 것은 3절의 때가 이른 것이고, 못 얻는 것은 아직 이르기 전이라는 뜻이 됩니다. 같은 저자가 같은 문단 안에서 한 단어를 두고 여러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 때가 어떻게 된다고 말합니까?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볍고, 자기 사욕에 따라 스승을 두고, 자기 원하고 좋아하는 말만 듣고, 허탄한 이야기를 따른다고 합니다. 따라서 때를 얻지 못한 것은 아직 그렇게까지는 타락하지 않은 것이고, 때를 얻은 것은 바로 그런 타락상에 이른 것입니다.

 

“때를 얻든 못 얻든”의 문자적 의미는 때를 구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그 때를 세태가 진리에 눈을 감을 때라고 말합니다. 그럼 그 전에는 그나마 진리가 먹힐 때라는 뜻입니다. 그럼 사람들이 진리에 눈을 감기 시작할 때는 단 한 명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더더욱 전도해야 합니다. 또 진리가 조금이라도 먹힐 때는 가능한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초대하기 위해 더더욱 전도해야 합니다.

 

따라서 전도자가 정확히 분별하여서 문제 삼지 말아야 할 것은 피전도자의 개인적 처지가 아니라 각 세대의 영적 흐름입니다. 사악하게 타락해가면 더 전해야하므로 2절에서 오래 참으라고 권한 것입니다. 또 그럴 때일수록 정확하게 가르쳐야 하므로 꾸중할 것은 하고 시대의 타락상은 물론 이단들의 잘못된 흐름을 잘 경계시키라고 권한 것입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유하게

 

전도할 때는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살펴서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전도 여행에 내보내며 뱀처럼 지혜롭되 비둘기처럼 온유하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예의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의 관습을 따라 전한다고 했습니다. 상대방 사정 무시하고 전한다는 의미와는 정반대입니다. 바울의 사상이 책마다 달라질 리는 없습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듯 믿음을 강요해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간단한 복음을 아무에게나 전해도 염병처럼 번져 나간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가르치는 방식대로 무조건 전도했는데도 먹혔던 때가 역사상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초대교회 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와 교회를 속히 정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주님 부활의 목격자들이 아직 살아있었기에 복음이 순순히 먹혔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실질적인 도움을 주며 서로를 섬겼습니다.

 

죄악으로 타락한 이방사회와 종교적 위선으로 가득 찬 유대인들에게 신자들이 지금껏 보지 못한 전혀 다른 모습의 성결한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 신자들의 삶을 본뜨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때가 이르기 전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가뜩이나 그 위선적인 삶으로 욕을 먹고 있는데 막무가내로 전도했다간 더욱 역효과만 날 것입니다.

 

현대는 친밀한 관계에 입각하여 그것도 변증적인 전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절대적 진리가 실종하여 죄라는 개념 자체도 함께 실종 내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이런 다원주의 상황에선 하나님의 실존부터 시작해 그분의 절대성에 대한 납득부터 시켜야 합니다.

 

물론 아주 힘듭니다. 바울이 말한 때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실망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평범한 진리이지만 “위기가 곧 기회”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뜻이 있습니다.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고 합니다. 듣고 싶은 소리를 골라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쨌든 듣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상대주의 다원주의가 판을 쳐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그분의 영원한 품으로 찾아 돌아가려는 본성은 숨길 수 없습니다. 자기 실존의 뿌리가 무엇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극적 진리는 탐구합니다. 거대담론에 대해서 골치가 아프다고 외면은 해도 전혀 알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사실은 겉으로 말은 안 해도 시대가 너무 허무하니까 더 절실히 알고 싶어 합니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하면 됩니다. 진리를 타협 왜곡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하는 내용이 지금처럼 무조건 믿으라가 아니라 뭔가 불신자가 솔깃해지는 내용으로 흥미를 돋우며 전해야 합니다. 뱀처럼 지혜롭게 변증적으로, 비둘기처럼 온유하게 예의 바르고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전해야 합니다.

 

또 경책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무엇이 참 진리인지 그들 수준에 맞추어 그들 언어로 전하여 영적인 분별력을 스스로 갖추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에서 때를 얻든 못 얻든 전하라는 말씀의 참 뜻이자 오늘날 한국교회에 가장 절실한 전도 방안입니다.

 

7/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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