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할 때 복음을 어느 정도까지 전해야 하나요? 

 

[질문]

 

오래전 구원의 확신도 없던 때에 성경 공부한 지식만으로 후배에게 전도를 했는데 지나고 보니 크게 후회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3일 후에 부활하셨다. 그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약속하셨다.”라고 전했습니다. 문제는 그 후였습니다. 기독교에 상당히 적대적인 후배에게 “이 내용을 믿든지 안 믿든지 나는 복음을 전했고 훗날 네가 안 믿어서 지옥에 가도 나의 책임은 없다”라는 말까지 했는데 그 친구가 너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며 그게 뭐냐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그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전해야 할까요? 

 

[답변]

 

전도에 누구나 반드시 따라야 하고 열매도 쉽게 열리는 100점 만점의 완전한 방안은 절대 없습니다. 전하는 자의 믿음의 수준부터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하느냐는 신앙 연륜이 깊어져야만 그나마 조금씩 알게 됩니다. 상대에 따라서 달라져야 하는 전도의 방식은 직접 전도해 본 경험이 없이는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신자는 그나마 기독교 교리라는 보편적인 적용 기준이라도 있지만 전함을 받는 자의 사정은 더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삶의 기본적인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종교관의 수준이 각기 다른데다 각자 개인별로도 스스로 불합리하고 모순된 사고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절대적이고 완전한 진리이신 하나님을 거역 대적함으로써 영혼뿐 아니라 이성도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자와 피전도자 두 사람의 평소 관계는 물론 전도하는 시점 장소 여건 등 전해야 하는 내용과 방식을 결정함에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아주 많습니다. 

 

흔히들 사영리(四靈理)라고 불리는 복음의 핵심 진리를 말로 전하는 것이 전도라고 여깁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상대가 이해하든 못 하든 신자는 그 진리를 선포만 하면 전도의 책임을 다했고 그 후로는 하나님의 몫이라고 단순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질문자가 경험한 것처럼 부정적인 반응을 접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사도들이 십자가 복음을 순전하게 전했어도 사람들은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헬라인은 아무런 선행을 하지 않고도 자기들과 상관없는 유대인 로마 사형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말도 안 된다고 반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게 저주받아 나무에 달려 죽은 자가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까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고전1:22-23) 그들의 가치관과 종교관이 복음과 충돌만 되지 수용 조화될 여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각지에 교회를 개척하여 세운 바울 사도는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율법 있는 유대인들의 방식으로, 또 율법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의 관습 문화 사고방식에도 먹힐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자기를 낮추어서 어려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고전9:19-22) 대표적으로 할례 같은 율법의 규례를 지키는 일은 구원과는 아무 관계 없기에 이방인들은 그러지 않아도 교회 신자로 받아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죄인의 자리에까지 낮추셨던 성육신의 정신을 본받아 사역한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전도하려면 상대에 대해서 평소에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사상 철학은 물론 성격 특성 재능 등도 잘 알아야 합니다. 뭔가 도와줄 일이 없는지 현실 사정도 관심 있게 살펴보고 특별히 정신적 고충이 없는지 수시로 대화해봐야 합니다. 실제로 어려서 교회 주일학교에 출석한 경험조차 없는 완전 불신자 성인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의 대부분이 큰 고난이 닥쳐서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마음의 위로를 받으려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자기 힘으로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고난이 닥치면 스스로 겸손해지고 절대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상대가 어려운 일에 처하면 평소에 잘 도와주는 신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기거나 최소한 기도를 해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전도할 대상에 대해서 평소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것부터 전도의 시작입니다. 단순히 인간적 현실적 도움만 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섬김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그가 깨달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매번 기도하자거나 찬양 부르며 성경 말씀 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인간적 의리만으로 돕는 것이 아니며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인식이 절로 생겨야 합니다. 그러려면 불신자보다 현실적 사정이 그리 낫지 않아도 전혀 내색 하지 않고 수고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 의지하는 자니까 이런 섬김이 가능한가 보다라는 인식이 들면 상대가 먼저 복음에 대해서 마음을 열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당연히 말로 복음을 전했지만 그 전에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소유를 팔아서 어려운 성도를 도우며 함께 모여 떡을 떼며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예배드렸습니다. 그렇게 온 백성에게 실제 삶에서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행2:43-47) 로마의 귀족들이 자기들이 부리던 노예들과 함께 형제자매라고 부르며 함께 예배드리며 섬기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연약하고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어떤 정치 경제 종교적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십자가 진리대로 살아가며 순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불신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것입니다.

 

상대가 건강이 위급하거나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선 당연히 구원 교리를 중점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상대라면 상대가 영적으로 상당히 겸손해지고 예수님에 대해서 어느 정도 호의가 생겼을 때 자연스레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처음부터 무작정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선포해버리면 자기는 남들보다 의롭게 산다고 자부하거나, 모든 인간이 다 그러함, 구원이 절실한 만큼 죄인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으므로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반발과 적대감만 생깁니다. 평소에 삶에서부터 신자다운 모습을 보여서 예수님 가르침대로 신자의 착한 행실을 보고 불신자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정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지금 시대처럼 말로 하는 전도가 왕성한 적이 없으나 지금처럼 기독교가 비난받는 때도 없습니다. 그 첫째가는 이유는 교회와 목회자와 신자의 평소 모습이 전하는 말과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신자 쪽에서 무조건 복음을 전하는 전도보다 불신자 쪽에서 기독교와 예수에 대해서 먼저 질문하게끔 인도하는 전도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려면 물어오는 질문에 대해서 언제든 구체적으로 답변해줄 수 있도록 평소에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 열심히 배워서 숙지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라고 권면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세대는 절대자 하나님과 모든 절대적 진리가 부인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입니다.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했고 무신론적 진화론이 대세가 됨으로써 기독교교회 안에서조차 유신론적 진화가 득세하려는 판국입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단순히 기독교 교리만 선포하지 말고 더 근본적으로 성경적 세계관에 대해서 토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절대적 진리가 실종됨으로써 인간사회의 법률을 어긴 죄 외에는 절대적인 죄라는 개념조차 없어졌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죄에서 구원을 받는 길로 제시되는데 사람들은 이 시대에 하나님은 물론 절대적 죄도 없으므로 구원받을 필요성에 대해서 이전만큼 실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런 식으로 전도를 하는 기독교가 잘못되었다고 비방합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의 효용성도 단순히 삶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나 현실적 고난에 대해서 마음을 다스리며 위로받는 수준으로 제한되고 있는 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죽어 마땅한 죄에서 영원한 구원을 받는 기독교 진리는 케케묵은 신화 혹은 보수 꼴통 광신자들의 종교적 궤변이라고 취급받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이 세대에게는 예수를 믿어 죄에서 구원받으라고 전도하기 이전에 절대자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이 계시한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사실부터 변증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은 물론 각 개인의 삶을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주관 통치하신다는 진리부터 확신시켜야 합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돈이 주인이 된 타락한 세상 풍조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정반대로 살아가는 신자의 거룩한 삶으로 그들에게 영적인 찔림을 주어야 합니다. 

 

결국 이 세대에 맞게 변증적인 전도를 하려면 모든 신자가 목사 이상의 성경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같이 현실적 축복을 받거나 최소한 고난을 없애는 것만이 신앙의 첫째 목적이 되어 있고 교회도 그렇게 부추기고 있다면 아무리 좋은 방식으로, 심지어 현실의 어려움을 도와주면서까지 전도해도 거의 먹혀들지 않을 것입니다. 도움 받은 불신자로선 어차피 현실에서 잘 사는 것만이 신앙 목적이라면 교회밖 세상에 더 효율적인 방안이 많기 때문입니다. 당장 급한 불은 신자와 교회의 도움으로 껐기 때문에 조금 미안하고 감사하긴 하지만 굳이 교회에 출석할 생각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거기다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으니까 문제입니다. 물론 제대로 가르쳐도 모든 신자가 불신자들의 모든 질문에 대해서 변증하며 진리를 설득시킬 수준까지는 이를 수도 없습니다. 

 

기독교 전체는 물론 전도가 거의 벽에 다다른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없는 것입니까? 모든 세상사가 그러하듯이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대는 무신론적 유물주의가 주도할수록 더 부패 타락해질 것이며 각 개인도 영적으로 더욱 피폐해져 갈 것입니다. 현재 펜데믹으로 인한 생활방식의 전면적인 변화,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 재앙의 급증, 무차별적 테러와 총기 난사, 도덕의 실종으로 인한 흉악 범죄의 증가, 국제정세의 불안으로 야기된 경제적 난관 등등으로 거의 모든 이가 종말이 다가온다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닮게 지어진 존재이므로 양심이 살아있는 자들은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더 절실히 가질 수 있습니다. 삶이 힘들어져서 자신의 인간적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면 아예 포기하거나 하나님을 찾거나 두 부류로 나뉘는데 후자의 사람들을 찾는 것이 전도의 첫걸음이 됩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예수 복음을 전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 신자가 전도해야 하고 그래야 상대가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종교적 의무감이나, 교회의 양적 성장만 도모하거나, 자신의 의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려고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에 미혹되어 있는 그 사람의 영혼이 너무 안타깝고 불쌍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꼭 전해주고 싶다는 진심과 열정이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자기가 아는 바대로 십자가 복음을 순전하게 전하면 됩니다. 

 

전도할 때 어느 정도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사실은 질문 자체가 불합리합니다.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첫째 어느 정도까지 전해야 하는지 정하려면 본인부터 성경의 진리를 전부 다 알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상대와 상황에 따라서 가장 적합한 정답을 꺼내어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정도가 되면 굳이 이런 질문을 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둘째로 더 중요한 이유는 복음은 사실상 사영리로 정리될 정도로 간단합니다. 굳이 어느 정도까지 전해야 할지 단계를 나눌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원과 심판으로 나눠지는 길까지 즉,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진리를 전하되 예수 천당에 포커스를 맞춰서 전해야 전도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종교적 토론만, 전도할 목적으로 자주 만나서 절대자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좋고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한 것에 불과합니다. 

 

사도 바울이 헬라인과 유대인들로부터 복음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접해도 어떤 마음으로 전도했습니까?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전도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구원은 하나님이 당신께서 택한 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당신께서 베푸십니다. 인간 신자는 복음을 말로 전하기까지만, 그 후의 질문에 대한 변증과 진리에 대한 교육 양육까지 포함해서, 하면 됩니다. 복음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최대의 축복이자 그분의 절대적 진리이므로 그 내용은 단순합니다. 구원에 관한 절대적 진리이므로 성령이 역사하면 반드시 생명과 죽음 둘로 나뉘는 권능이 발휘됩니다. 

 

그러려면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진리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겨야 합니다.(빌3:8) 그리고 세상에서 어떤 극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아도 불쌍한 영혼에게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 새 생명을 알게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심정이 있어야만 합니다.(고후11:23-30) 한마디로 전도는 방법과 절차에 따라 상대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신자의 중심에 따라 성령의 역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작정한 기뻐하시는 자는 한 명도 빠트리지 않고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그분께서 구원해주십니다. 

 

전도에서 인간이 맡은 부분도 혼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합작해서 점진적으로 이뤄집니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오직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십니다.(고전3:6) 전도자가 말로 전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환경으로나 사건으로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한 죄인의 심령 안에 있는 사탄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복음을 전한 후에도 여전히 그런 역사는 진행될 것입니다. 단번에 그 견고한 진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럼 견고한 진이라고 표현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구원이 개인적으로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뤄지는 까닭은 신자의 신앙적 사고가 여러 단계로 발전되듯이 불신자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 가치관 인생관이 여러 단계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전도의 과정도 단계별로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해 신자는 언제든 자기가 전해야 할 대상에게 자신의 현재의 믿음의 수준에서도 반드시 아는 바대로 복음을 전해도 되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복음을 전하면 성령이 배후에서 역사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헬라인이나 이방인이 그렇게 보더라도)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는데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고전1:21, 25)

 

결론을 내리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불신자의 영혼을 진정으로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긴다면 신자는 자기가 아는바, 더 정확하게는 실제로 체험하고 누리고 있는 그대로 아무리 서투르더라도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그런 진심과 열정이 있다면 성령님이 택하신 자를 붙여주시고 상대의 상황에 가장 적합하고 심령에 찔림을 줄 수 있는 말을 신자의 입에 심어줍니다. 신자 스스로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합리적이고 힘 있는 진리를 말할 수 있지라고 놀랄 정도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있는 신자라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존재와 삶과 인생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게 마련입니다. 신자는 평생 해야 할 전도이지만 어설프게 여겨져도 한 번이라도 일단 실행해야 합니다. 그런 경험이 많이 쌓이면 사람과 경우에 따라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전할지 자신만의 지혜도 생기게 됩니다

 

(9/27/2022)

 

비슷한 주제로 이전에 썼던 아래의 글도 참조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전도만 하지 구원하려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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