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어떻게 전도하면 좋을까요?

조회 수 17 추천 수 0 2020.07.25 10:20:24

노인에게 어떻게 전도하면 좋을까요? 

 

[질문]

 

점점 고령화시대로 가고 있어서 주변에 많은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고착화되고 고정관념을 깨기 어렵고 살아왔던 경험, 시대,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좋을까요? 게다가 세대 간의 갈등과 격차가 심해지는데 독거 어르신이나 믿지 않는 부모님은 대화도 통하지 않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청년처럼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할 시간도 많지 않은데 걱정이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이지만 어떤 시도나 접근을 하면 좋을지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답변]

 

신자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있는 참으로 어려운 주제입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 뇌세포가 노쇠해져 신경전달물질의 활동이 원활하지 못해서 생물학적으로도 이미 고착된 생각 쪽으로만 사고활동이 흘러간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어지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성향은 거의 모든 노인에게 자의와 무관하게 자연스레 일어나는 생리적 증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노인들의 그런 고정된 관념과 성향을 깨트리고 전도하려면 여간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전도가 되지 않으니까 그 고집을 깨는 정공법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들과 논쟁과 토론도 불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 먼저 스스로 전도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갖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신자로선 그들이 갖는 의심들에 대해 핵심을 찌르는 합리적인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또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진리를 부인하는 포스터모던 시대인 지금은 연령층 구분 없이 복음을 일방적으로 전하기보다는 불신자들이 기독교에 대해 갖는 의심과 비평과 반발들부터 해소시켜주는 변증적인 전도를 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에 이미 굳어있는 노인층에겐 더더욱 설득력과 친화력을 구비하여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변증적인 전도를 하라.

 

그 전에 신자들이 전도에 대한 조금 잘못된 몇 가지 생각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전도(傳道)는 말 그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구원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이에 대해선 ‘변증-믿지 않는 형제에게 사이트’의 “전도만 하지 구원하려들지 말라.”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연세가 많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까 어서 빨리 전도해야지라는 조급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구원은 즉, 그분이 예수를 믿고 안 믿고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달린 것입니다. 평소부터 성령이 역사하여 그 마음을 열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또 전한 후에도 계속 기도하며 자주 찾아뵙고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자들이 전도는 반드시 또 가장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길을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하면 상대는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반발부터 하는 경우를 자주 겪습니다. 그 주된 이유가 기독교나 예수쟁이(?)에 대한 반감 때문이긴 하지만 신자들이 미처 모르는 중요한 요소도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본질은 죄인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럼 전도를 당하는 사람으로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온전히 인정해야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설령 죄인이라고 인정해도 만약 죄에서 구원 받는 길이 여럿이라고 믿으면 왜 십자가만이 유일한 길인지도 납득시켜야 합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 받아야만 할 죄는 첫째로 하나님을 거역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죄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판국에 그분을 대적하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하면 아예 귀를 닫고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은 그분 뜻에 맞게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데도 그분을 거역하였기에 모두가 심판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 심판에서 구원 받으려면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의 은혜를 믿어야만 합니다.”가 될 것입니다. 이 진리에 수긍하여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이끄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복음의 맨 마지막 부분에 죄인이 심판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으로 제시됩니다. 그럼 그 전까지의 진술을 온전히 수긍해야만 하고 또 여러 구원의 길 중에 예수 십자가가 절대적으로 유일한 길이라는 것까지 동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분명히 절대적 진리이나 무턱대고 예수 믿어서 천국 가시라고 밀어붙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전도하기 전에 혹은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의 구원관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부터 파악한 후에 그 단계에 맞는 변증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노인뿐 아니라 모든 불신자에게 다 해당되는데 신자는 불신자들의 십자가복음에 대한 보편적이고도 근본적인 반박들에 대해 답변할 내용을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보다 하나님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는 뜻은 결국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장 죽어서 눈을 떠도 천국의 하나님 보좌 앞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를 택해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철두철미 죄인이라는 진심어린 고백이 없이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기독교를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앞에 항복하게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노인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아무래도 죽음 이후를 크게 염려하게 됩니다. 세상에 100% 철저한 무신론자는 없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완고해도 속으로는 절대자에 의한 영원한 구원을 바라는 소망은 다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바로 터치하는 것이 서두에 말한 정공법에 해당됩니다.

 

젊은 사람이 감히 노인의 죽음을 논하려면 자신의 순전한 의도를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먼저 밝혀야 합니다. 첫째는 “예수 믿으라, 교회 함께 가자고 의도는 없습니다.”라고 사전에 단단히 못을 박아야 합니다. 그래서 논의 중에 “기독교 교리를 받아드려라, 우리 교회 목사님을 한 번 만나 보자, 이왕이면 종교를 하나 갖는 것이 좋지 않으냐, 심심하신데 교회 가면 친구할 분도 많다, 주일에 식사 나누며 교제하고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등의 주제와 무관한 포교의 냄새는 절대 풍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어서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껏 저지른 잘못들은 전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며 아주 나쁜 죄입니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온갖 비리와는 별도로 당신께서 죽음 후에 어떻게 되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당신께서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해결해야할 과제이지 않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하나님 그분이 잘못된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요컨대 기독교와 예수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죽은 후에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면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인가, 과연 사후세계가 있는지부터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다면 시작이 반이라고 전도의 첫 단계는 성공한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은 노인과 어떤 방식과 내용이든 대화부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나마 노인의 관심을 끄는 주제가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그 전에 언제든 노인을 찾아가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부터 형성해야 합니다. 상호 진실한 교제는 전혀 없다가 불쑥 찾아가서 “예수 천당” 이야기를 꺼내려니까 신자부터 도무지 자신이 서지 않으며 그런 상황에선 아무리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전한들 상대는 들어볼 생각도 않는 것입니다.

 

대화가 시작되면...

 

전도 대상자와 평소에 대화를 많이 나눴다면 절대자, 사후세계, 구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어느 정도 알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또 무슨 주제로 대화를 이어갈지 전도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전 지식이 없다면 예수보다 죽음을 주제로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에 따라 관심 갖는 주제가 다 다르겠지만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그에 파생되는 질문과 반발들이 따를 것입니다. 그 각각의 반문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변증을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예컨대 사후세계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실감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임사체험을 한 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책을 구해 전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면 그분의 실존 여부에 대해 변증해야 하며, 조물주와 창조주의 차이가 무엇인지 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물론 하느님과 하나님의 명칭이 왜 다른지 등의 지엽적인 문제도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예수님과 그 십자가만이 구원의 길임을 가르치는 단계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도달하려면 넘어야 할 산들이 아주 많으며 그 산들은 노인일수록 더 높다는 점을 감안 아니 각오해야 합니다. 불신자 혼자선 그 산들을 결코 넘을 수 없으며 신자가 손을 잡고 함께 넘어가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를 두고 일반 신자는 감당할 수 없고 목회자 혹은 변증신학자가 해야 할 몫이라고 간주해선 안 됩니다. 신자들이 자기가 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우리 목사님이 대답해주실 테니까 교회부터 출석해봅시다 혹은, 목사님과 개인적인 면담을 주선해보겠다는 식으로 답하지만 가뜩이나 교회와 목사들에게 마음이 굳어있기에 더 부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예수쟁이들은 남의 생각은 전혀 존중할 줄 모르고 기독교 교세만 늘리려는 종교 팔이 사기꾼이라는 의혹만 더 쌓게 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5,16)

 

“항상 준비하되”라고 했으니 모든 신자는 십자가 복음에 대한 어떤 질문이라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양심에 따라 선행을 실천함으로써 그 진리가 거짓이라고 비방하는 자들로 부끄럽게 만들라고 합니다. 전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며, 최소한 전하는 자들이 진리라고 확신하고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만인제사장을 넘어서 만인신학자 최소한 변증가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의 본질이 사실상 변증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그랬습니다.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스데반과 바울의 설교에서 보듯이 진리의 영인 성령의 조명으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가 예수임을 말씀에 비추어서 정확하게 풀어서 전했습니다. 일반신자도 예수가 메시아라는 동일한 메시지만 전했으며 이미 부활이 보장되어 있음을 믿었기에 온갖 환난과 핍박 가운데도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인 로마 황제를 주라고 시인할 수는 절대로 없었고 예수님만이 구주라고 고백한다는 이유로 순교까지 당했습니다. 자기들이 믿는 진리에 목숨까지 바쳤기에 그들을 비방하는 자들로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바울이 전도가 말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이뤄진다고 해서 진리가 무엇인지 따지지 말고 일단 믿어야 한다는 식으로 밀어붙여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만한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변증가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겐 거리끼는 것이요 지혜를 찾는 헬라인(이방인)에겐 미련한 것으로 비춰졌습니다. 최초의 선교사로 전도의 일선에 섰던 그는 온갖 질문 비평 반발을 들었으며 그에 대해 일일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믿는 바 도(道)만 전했지 믿고 안 믿고는 하나님께 맡겼으나 생명과 죽음의 냄새 두 가지로 명확히 구분되게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노인 전도의 비결.

 

노인에 대한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신자들이 행하는 대로 네 가지 영적 원리를 전한 후에 예수님을 영접케 하는 기도를 서두르는 방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그런 방식은 정말로 임종을 눈앞에 두어서 시간이 촉박한 자에게만 적용해야 합니다. 사탄에게 미혹된 죄의 노예더러 참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진정으로 무릎 꿇게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정말로 모든 질문에 항상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대와의 오랜 기간의 진솔한 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변증에 자신이 없을 수 있고 또 그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면 최소한 자신의 간증이라도 진솔하게 나눠야 합니다. 그런 은혜로운 간증거리조차 없다면 최대한 양보해서 전하는 내용이 영원하고도 절대적이며 유일한 진리임을 확신하면서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진리는 반드시 통하거나 전해지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간증이던 교리든 절대적 진리로 확신하려면 성경을 깊이 연구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히 변증적인 전도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전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초대교회처럼 확신하는바 진리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사람들 앞에 보여야 합니다. 자기 믿는 바대로 신실하게 사는 것을 보니까 그가 믿는 내용이 무엇인지 한 번 들어나 보자라는 마음이 생기게 해주어야 합니다. 평소에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강조한 또 다른 까닭입니다.

 

그리고 신자가 복음을 전해도 결국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가 이뤄지고 전하는 동안에도 예상치 못한 반발을 당할 수 있으며 신자 스스로 영적 분별력도 떨어지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하면서 전해야 합니다. 기도의 대가인 조지 뮬러는 믿지 않는 친구들 셋을 위해 죽을 때까지 기도했는데 그가 죽은 후에 회심했다고 합니다. 뮬러의 간절한 기도가 바탕이 되었지만 일생동안 고아들을 위해 희생한 그의 거룩한 삶에 감명을 받지 못했다면 친구들이 회심하지 않았거나 훨씬 늦어졌을 것입니다. 단지 기도만 한다고 회심하는 것은 아니며 전하는 복음의 진리가 정말로 진리임을 삶에서 실증시켜주어야 합니다. 

 

말을 맺자면 가장 먼저 노인과는 더더욱 언제든 찾아가서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자주 찾아뵈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섬기면서 그 노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 잘 살펴야 합니다. 진심으로 당신을 위해서 염려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부터 그에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를 다시 정리하는 셈이 되지만 처음에는 기독교라는 종교적 색채는 완전히 제거하고 교회로 끌고 가려 한다는 인상도 절대 주어선 안 됩니다. 죽음 이후에 대한 주제부터 시작해서 성경에 계시된 영적 진리를 객관적인 논리로 바꾸어서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시로 튀어나오는 반문 내지 반발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합리적인 변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겠다고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그분의 평소 고민하고 있는 주제나 현재 당면한 고난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하여 심도 깊게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복음을 직접 전할 기회가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복음을 논리적으로 변증할 자신이 없다면 자신이 하나님께 은혜 받은 간증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어떤 고난과 핍박 가운데도 기독교 진리대로 거룩하게 살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최소한 기독교 신자들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나 보자라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합니다.

 

노인 전도의 진짜 정답은 먼저 그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노인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죽음보다는 사실은 외로움입니다. 요즘처럼 삶이 복잡하고 빠듯한 상황에선 자식들마저 잘 찾아오지 못합니다. 대신에 바로 곁에 사는 젊은 신자가 자식처럼 자주 방문하여 말동무라도 되어주면 아주 좋아하고 마음도 서서히 열게 됩니다. 사소한 일상의 일로 대화의 물꼬를 터면서 노인의 꼰대스러운(?) 회고담이나 정치적 의견에 맞장구는 못 쳐주어도 반대하지 말고 묵묵히 들어주십시오. 그럼 언젠가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그 상황에 가장 합당한 전할 말도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제가 잘 아는 이곳의 1.5세 젊은 전도사님이 하버드대학 출신의 미국 노인을 전도하려고 몇 년을 섬겼습니다. 만나서 식사도 나누고 찾아가 말동무도 해주며 때로 복음도 전했습니다. 그러다 그 노인이 친구도 없는 먼 도시로 이사 가게 되자 스카이페로 교제했는데 결국 그 노인이 먼저 성경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세상 모든 철학과 종교에 능통했던 차라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적힌 성경과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와 서신서를 통해 예수님과 그 십자가 은혜를 알게 되자 드디어 몇 달 전부터 자발적으로 교회에 출석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노인과 완전히 친구가 되고난 후에는 복음을 직접 바로 전하기보다는 서서히 성경공부로 인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노인이 고집스럽고 사고가 빨리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자를 빼고는 노인들이 겉으로 보기보다는 이성과 지성이 아주 정상이며 지혜로운 분별력은 오히려 더 앞섭니다.

 

고집이 세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가 믿는 바에 대한 자신감이 많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런 확고한 의견을 깨트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인 성경 말씀뿐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생애, 가르침, 사역,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복음서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되면 그 견고했던 진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친구부터 되어서 성경공부로 인도하라는 것은 사실상 모든 전도에서 정답입니다.

 

7/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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