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은퇴의 비결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ㄸㅏㄻ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창3:17-19)
미국 남성들의 가장 큰 꿈은 조기 은퇴(Early Retire)하여 최대한 여생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타락한 아담이 하나님께 받은 벌 때문에 조기 은퇴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함께 벌을 받은 땅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기 때문에 인간은 종신토록(終身:늙어 죽도록) 수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이야말로 미국 남성들의 철천지원수가 된 셈이며 그래서 갈수록 예수 믿는 자들이 줄어드는가 봅니다.
인생살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두 개를 들라면 돈과 시간일 것입니다. 조기 은퇴라는 목표는 결국 이 두 마리 토끼를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다 잡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돈을 벌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또 돈을 쓰려 해도 시간이 필요 합니다. 그 반대로 시간적 여유를 가지려면 돈 벌이가 줄 수 있고 또 시간을 잘 활용하려 들면 돈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둘의 균형을 맞추어 보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거의 모두가 실패합니다. 둘이 항상 함께 붙어서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보편적으로 돈이 많은 자는 시간이 없고 시간이 남아도는 자는 돈이 모자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의 균형을 잘 맞추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욕심 때문에 그 균형이 어지간해선 잘 맞춰지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 버는 데만 자기에게 허락된 시간을 다 소비하고 이제 어지간히 되었다 싶을 때는 이미 남은 시간은 너무 모자랍니다. 또 그 적은 시간이나마 즐길 수 있는 건강과 정서가 따라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심과는 달리 욕심을 줄이는 것만이 행복과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자기가 즐기려고 원하는 항목을 가능한 줄여놓고 그것만이라도 감당할 돈은 벌자는 주의입니다. 욕심을 절제하고 삶의 질을 검소하게 만들어 돈과 시간에 최대한으로 쪼들리지 않게 살아 보려는 것이 미덕이 됩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아예 즐기는 것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고 최소한의 의식주로 만족해보려 수양을 쌓습니다. 결국 보통사람들의 일생은 정작 하고 싶은 일은 제대로 시도도 못해보고 돈과 시간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싸움만 하다 다 보냅니다.
신자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돈과 시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돈 대신에 시간을 택하는 일생이어야 합니다. 돈을 위해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위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아담의 죄로 하나님께 받은 벌이 종신토록 수고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죄를 짓지 않아 벌 받기 이전의 상태는 어떠했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먹을 것이 그저 굴러 떨어져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먹음직한 밥상이 미리 차려져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동산의 모든 나무 실과를 관리하고 동물들을 다스렸습니다. 범죄 이전에도 일을 열심히 해야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 종신토록 가심덤불과 엉겅퀴 속에서 수고해야 한다는 것이 끼니를 마련하는 일이 이전보다 훨씬 더 힘들어졌다는 단순한 의미도 아닙니다. 아담이 범죄 이전에는 시간을 돈보다 더 중요시했는데 범죄 이후에는 그 순서가 반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종신토록 수고하는 벌을 받아 평생 뼈 빠지게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덧 골병이 들어 죽을 때가 되는 인생입니다. 지금 불신자의 인생이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시간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고 해서 돈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 돌 같이 생각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라고 세속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수도원에서 금식과 기도로 지새워야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그 대신 돈과 시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구태여 노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더 중요시하기에 시간 때문에 돈을 희생해야지 돈 때문에 시간을 희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십시오. 돈과 시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심초사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 둘의 불균형으로 혼란스러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의 관심은 오직 시간에 있었습니다. 새벽은 자신을 위해, 낮 시간은 연약한 병자와 불쌍한 죄인을 위해, 밤 시간은 또 다시 자신과 제자들을 위해 활용했습니다. 오직 시간만 중요시 했습니다.
사람들이 일찍 은퇴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돈을 버는 것이 사실은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그것을 하려니까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고 싶은 일이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일이다 보니 그 만큼의 돈을 미리 충분히 확보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또 돈을 쓰는 일이란 당연히 돈 대신에 시간에 투자를 하는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는 믿고 있고 그래서 시간을 더 확보하려는 목표로 인생을 삽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돈에 허덕이다 참 목표인 시간은 전혀 확보도 못해보고 인생을 마쳐버립니다. 너무나 어리석은 인생이 아닙니까?
주님에게는 돈이 모자란 것이 결코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에 제자들은 최소한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무슨 일을 하던 돈으로 환산하던 옛 습관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돈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에게 맡겨진 시간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시간 전부를 바쳤다는 것은 당신의 일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했다는 뜻입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시키는 일만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최하 이백 데나리온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 당신만의 방법으로 다 이루어주셨고 나아가 여분마저 더 생기게 했습니다.
신자가 되어서도 왜 현실의 삶이 이렇게 고달프고 힘든가 자꾸 불만이 들면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이 스칠 수는 있지만 불만으로 간직해선 안 됩니다. 나아가 아담이 범죄 하여 벌을 받았기에 그 힘든 것이 아주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단념해서도 안 됩니다. 신자는 범죄 이전의 아담으로 회복 된 자이므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과 손잡고 거닐던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담도 범죄하기 이전에는 시간을 하나님께 완전히 드렸습니다. 그분의 인도를 따라 그분이 시키는 일만 했기에 구태여 돈(그에게는 땅의 소산)과 시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불신자는 어떻게 하던 더 많은 시간 여유를 가지려고 돈을 죽기 살기로 벌어 보지만 오히려 둘 사이의 불균형만 더 커집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시간을 드리고 그 분의 일을 해야 합니다. 목사 선교사가 되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목회자를 포함해 모든 신자가 자기 직업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의식을 철두철미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신자가 당신이 시킨 일만 하겠다는데 돈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 일을 끝까지 책임을 안 져주실 리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지금 돈을 벌려고 시간을 몽땅 투자합니까? 아직도 불신자 시절의 가치관과 습관을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려고 계속해서 돈을 저축하여 불려 나가고 있습니까? 가장 평범한 일생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급자족하며 검소하게 살려고 시간과 돈을 최소한의 균형으로 만족하려 듭니까? 도덕군자나 경건한 종교인이 되려고 애를 쓰는 중입니다.
시간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만으로 신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는 일 전부를,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시킨 일만 하려고 시간을 몽땅 그분에게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돈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신자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세상에서 조기 은퇴한 자입니다. 요컨대 불신자도 그렇지만 특별히 신자는 돈에서 하루 빨리 은퇴하지 않고는 시간 여유가 늘어나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5/23/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