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6:52-56) 하나님의 일에 부자가 설 자리는 없다. 

구약성경강해 (52) / 민수기강해 (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그 다소를 막론하고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민26:52-56)

 

 

한 이스라엘 족장과 미디안 한 족장의 딸이 음행하자 대제사장이 될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하나님 대신에 창으로 배를 꿰뚫어 심판했습니다. 곧바로 하나님은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에 대한 극렬한 진노를 거두었으나 그동안 무려 이만사천 명이나 염병으로 죽었습니다. 그 후에 출애굽 후의 두 번째 인구 조사를 실시하게 했는데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각 지파별로 땅을 기업으로 나눠주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53절)

 

고대에 땅은 인간이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터전으로 모든 경제활동을 감당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곡물 야채 과일 등은 일용할 양식으로, 식물로 옷감과 염료를 추출해 의복을 지었고, 나무 흙과 돌로 집을 지었습니다. 땅에서 산출되는 것으로 의식주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당시에도 상업, 금융, 무역 같은 이차 산업도 있었으나 초보적인 수준인데다 일반 백성들은 그런 것들을 활용하지 않고 땅에서 나는 것만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땅을 배분하는 방식을 백성들에게 지시했다는 것은 인간사회의 경제를 운영하는 당신의 원리를 밝힌 셈입니다. 오늘날 신자도 숙지하여 삶에 그대로 적용해야 할 지침입니다. 크게 두 가지를 명했는데 첫째 사람 명수대로 공평하게 분배하고, 둘째 추첨으로 분배하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조치 같으나 좀 더 깊이 살펴볼 여지가 있습니다.

 

청부론(淸富論)의 오류

 

먼저 사람 명 수대로 나누라는 것은 공평성만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에게 다 나눠주라는 것이 우선적인 의미입니다. 각 개인이 땅을 소유하고 운영할 수 있는 사유재산 제도를 세운 것입니다. 각 명수대로 공평하게 나눈다고 해서 혹시라도 국가가 모든 재화를 통제 관리하는 공산주의를 성경이 지지한다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모든 땅은 국가가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그분이 모든 백성의 생업을 보장해준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받았으니 마땅히 그분의 목적에 따라 성실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것 특별히 물질은 아무 의미가 없고 악한 것이니 멀리하고 하늘의 영생만 소망하라는 가르침은 성경과 전혀 무관합니다. 신자는 세상에 속한(of the world) 신분은 아니지만 그 현실적 삶은 세상 안에서(within the world) 살아야만 합니다. 현실을 외면 도피하고 수도원에서 평생을 수양하는 것처럼 살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신앙이 아닙니다.

 

재물이 악한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돈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 가치중립적이며 경제활동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것을 소유 관리 소비하는 사람에 따라 돈의 가치가 달라질 뿐입니다.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은 광산 채굴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선한 목적이었는데 나중에 인간을 대량 살상하는 무기에 전용된 것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이듯이 말입니다.

 

그 반대로 물질 자체가 악하지 않기에 신자도 돈을 열심히 많이 벌어서 선한 일에만 사용하면 된다고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맘껏 사용할 수 있게끔 부정부패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돈을 벌어 청렴한 부자가 되라고 장려합니다. 돈이 많으면 하나님의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또 현실적으로 출세 형통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면 주위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지니까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 주장의 동기는 선하고 이해가 되며 정말로 그 바라는 대로만 된다면 기대했던 열매도 간혹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가진 너무나 끈질긴 교묘함과 인간의 완악한 본성에 대해 무지 내지 경시한 의견에 불과합니다. 만물 가운데 가장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자기 마음을 평생토록 온전히 거룩하게 통제하지 못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언제든 돈을 주인으로 삼던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어지간히 경건한 신자라도 죄와 탐욕의 본성이 남아있기에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이 출세하기 시작하면 처음의 순수한 의도는 차츰 뒷전이 됩니다. 결국에는 그런 방식으로 전도하려던 사람이나 현실적 도움을 통해서 전도 받은 사람이나 첫 의도와 반대로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을 쏟게 됩니다.

 

무엇보다 대외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사람들로 돈을 벌고 출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미국 교회의 조사에 따르면 성인이 되어서 믿게 된 자의 대부분이 현실적 고난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자나 권력자가 전도를 하면 더더욱 교회는 돈과 권력을 약속 보장해주는 곳이라고 오해할 것 아닙니까?

 

바울 사도도 교회 내외부에서 그런 오해를 하지 말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이왕이면 잘 믿고 잘 살자.

 

물론 하나님의 일에도 돈이 필요하며 때로 큰돈이 소요되긴 합니다. 그러나 전심으로 그분께 헌신 순종하는 신자들은 자발적으로 헌금 헌물 재능기부 노력봉사하며 그래도 모자라는 부분은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채워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선 저에게도 수많은 간증 거리가 있습니다.

 

그분의 일은 그분의 방식과 때에 따라 그분께서 이루십니다. 그분께 택함을 얻어 쓰임 받고 있는 신자는 앞서가는 그분을 따라만 가면 됩니다. 신자에게 돈과 권력이 많다고 그분의 역사가 더 크게 일어나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선 당신보다도 돈과 권력이 그 일을 이뤘다는 오해를 살까봐 일부러라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죄에서 구원 받게 하는 것이 그분의 일인데 돈으로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면 자칫 돈으로 구원을 사고 판다는 의미가 되므로 하나님이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은 머리 둘 곳도 없이 고달프며 좁고 협착한 길을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십자가에 승리한 당신을 믿고 의지하며 담대히 승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신자가 걸어갈 인생길이 결코 분홍빛 카펫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의 뜻도 아직도 남아 있는 불신자 시절의 자기를 세상 앞에 높이고 싶은 마음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이왕이면 믿음도 좋고 세상에서도 제대로 출세하면 더 좋지 않느냐 여기고 많은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하나님과 돈을 함께 주인으로 모시려는 혼합종교입니다. 탐욕적인 속내를 감추려는 너무나 유치하고 비겁한 자기 핑계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이 목적이고 돈은 수단으로 시작했어도 나중에는 돈이 목적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얻는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솔직히 말해 작금 많은 한국교회들이 이미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신약신자들 중에 세상에서 고난 핍박받지 않은 사람은 없고 대다수가 순교 당했습니다. 그 박해받는 비천한 상황에서도 죽기까지 복음을 전했고 로마 제국 전역에 복음은 염병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염병이라는 표현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 인간이 도무지 막을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강력하고 충만하게 역사함으로써 신자들이 가는 곳마다 흑암의 세력들은 무참히 패배하여서 사탄에 미혹된 많은 자들을 건져내었던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돈이 힘을 보태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산 채로 맹수 밥이 되거나 불에 태워지면서도 찬양을 부르며 감사와 기쁨으로 천국으로 올라갔습니다. 수많은 이방 족속들이 자기들과 전혀 차원이 다른 진짜 믿음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초대교회 신자들이 부자가 되거나 출세한 것을 보고 감동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고난과 핍박 중에도 참 생명이 주는 활력 기쁨 평강 자유를 놓치지 않는 모습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심판받은 첫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참 하나님 여호와와 돈과 출세를 약속하는 우상 신들을 함께 섬겼기 때문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이왕이면 잘 믿고 돈 벌고 출세하겠다는 바로 그런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온전한 믿음이 먼저다.

 

물론 신자가 항상 손해보고 가난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신자의 경제적 궁핍과 풍요는 주님의 절대적 주권에 따라 결정됩니다. 오직 당신의 이름이 높여지는 목적에 따라서만 각자의 여건에 맞추어 물질을 나눠주십니다. 신자 각자의 재능과 은사에 따른 고유의 인생 계획이 다 다르기에 신자들의 재정 상태도 달라질 뿐입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미국의 지미카터 대통령이 매주 주일학교를 섬기는 것은 기독교에 대해서 아주 좋은 인상을 심어줍니다. 반대로 아주 가난한 목사가 그마저도 자기가 쓰지 않고 아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분명히 선한 울림이 생깁니다. 언뜻 카터의 사회적 위치가, 또 목사의 어려운 형편이 복음 사역에 도움을 준 것 같으나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가진 온전한 믿음 때문입니다. 돈이 많든 적든, 권세가 높든 낮든 신자답게 거룩하게 사는 것이 주변에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의 영혼에 찔림을 줍니다. 때를 얻든 못 얻든 그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순전한 믿음입니다.

 

돈이나 권력이 전도하는 자나 전도 받는 자들을 거룩한 믿음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돈과 권력이 일단 개입되면 인간의 부패한 마음은 절제를 못하고 금방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며 그런 잘못에 대한 그럴싸한 핑계까지 만들어 냅니다. 청부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신자들로 그런 잘못에 빠지게 만들 것입니다.

 

재물과 하나님의 일의 관계에 대해선 바울이 정확히 설명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현재 궁핍하다고 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전제했는데 일부러 궁핍을 강조하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천과 풍부 어디에든 처할 줄 하는 자족의 비결을 터득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바울이 현실의 출세 형통을 꾀하거나 재물을 모으는 일을 한 것이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다마섹 회심 사건 이후로는 오직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재정이 많고 적음에 아무 관계없이 그분께서 다 이루시더라는 고백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재물이 많고 지위가 많아야 하나님의 일을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성격적인 가르침이 아니며 그것을 목표로 노력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아주 어렵다고 선언했습니다. 부자는 아무래도 그 삶이 하나님보다 돈에 좌우되며 또 무리하게 편법과 불법에 의존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한 입으로 두말할 리는 없기에 당신의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부자를 동원할 리도 없습니다. 주님의 일에 진심으로 충성하고 있으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필요 충분한 만큼만 그 재정을 채워주십니다.

 

추첨해서 나누어라.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에게 땅을 나누는 두 가지 원칙 중에서 둘째 원칙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의 명수대로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믿음과 상관없이 누구나 알고 또 시행할 수 있는 초보적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명수대로 나누되 반드시 추첨해서 나누라고 명했습니다. 추첨이 언뜻 원시적이고 미개한 방식 같으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땅이란 토질의 비옥도와 형태와 어디에 위치했는지에 따라서 생산성의 우열이 생기고 경작해야 할 작물의 종류들도 달라집니다. 지파들 간에 땅에 대한 선호도가 겹쳐서 경쟁 시기할 수 있으므로 어떤 땅이 배당되던 불평하지 않고 합의 승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추첨이란 단순히 행운에 맡기는 도박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심, 취향, 계획, 이해관계, 인맥, 호불호, 감정 등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가장 중립적이며 냉정하리만큼 합리적인 방안입니다. 그 결과에 모두가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53절)고 명했습니다. 한자로 따져서 회사를 뜻하는 기업(企業, enterprise)이 아니고 유산을 뜻하는 기업(基業 heritage)입니다. 대대로 이어지는 가업이자 생업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공로 노력 하나 없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모든 것들이 그분의 기업입니다.

 

예컨대 나라, 민족, 인종, 피부색깔, 언어, 부모, 신체, 외모, 기질, 특성, 재능, 은사 등등, 가장 중요하게는 살고 죽음은 인간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거나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하나님이 이미 마련한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당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인간이 선택은 물론 조정, 변경, 취소, 포기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지금 땅을 추첨해서 지파별로 배분하는 이유도 그 땅은 오직 그 지파에게만 속하고 그 지파를 위해서 마련해주신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서로 사고 팔거나 교환 수정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율법이 땅의 경계표를 함부로 옮기거나 없애지 말라고 엄격히 명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추첨해서 나눠진 땅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으려면 참으로 순전한 믿음이 요구됩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계명에 무조건 맹종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 세워질 당신의 나라를 의무감과 죄책감으로만 당신을 따르는 형식적인 종교인들로 채우겠다는 것은 당신의 계획에 애당초 없었습니다. 자발적이고 기꺼운 순종과 헌신이 따르지 않는 신자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기에 당신의 은혜도 받을 수 없습니다.

 

머리로 관념적으로 그분을 믿고 따라선 그 순종에 기쁨과 감사가 없고 결코 지속되지도 않습니다. 삶에서 여러 번 실패와 고난을 거친 후에 그 분 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절감해야만 비로소 자발적 순종이 가능합니다. 아브라함이 인생 말년에 가서야 자기 귀한 아들마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칠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그는 수많은 어려움들 중에 하나님이 합력해서 선으로 이끌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체험했습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그분의 뜻을 당장은 알 수 없어도 그분이 신실하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기에 그분께 가장 귀한 아들까지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런 신실하심이 본문에도 계시되어 있습니다. 염병이 끝난 후에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처음 명할 때에 그 이유를 “이스라엘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26:2)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와선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53절)고 합니다. 이 두 말씀에 조금 불합리한 점이 있지 않습니까?

 

인구 조사의 목적을 변덕스럽게 바꾸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쟁을 치르면 반드시 사상자가 나오게 마련이므로 땅을 분배하려면 정복전쟁이 끝난 후에 해야 정상입니다. 어느 지파에서 얼마나 사망자가 나올지 모르는 판국에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조사한 명수대로 땅을 나누라고 합니다. 운동시합을 시작하기도 전에 승리의 세리머니부터 하는 셉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가나안 정복전쟁의 승패에 대해선 아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사망자가 거의 없는 확실하고도 일방적인 승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가나안의 첫 전투인 여리고 성에서 그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로도 아각의 범죄로 인한 아이 성에서의 패배를 빼고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연전연승했습니다.

 

거기다 이 두 번째 인구조사는 사실상 불필요한 조사였습니다. 시내 산에서 거룩한 율법을 수여 받고 피의 언약식을 마친 후 가나안으로 출정하면서 바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그 후에 가나안과 접경한 가데스 바네야에 이르자 모세는 열두 지파의 족장들로 사십 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하도록 시켰습니다.

 

여호와는 먼저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 알아보라고 했는데 군사 전략을 세우려는 목적입니다. 이어서 토지가 비옥한지 살피고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고 하면서 담대하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그 땅을 반드시 차지하게 해주겠다고 보장하는 뜻이었습니다.(민13:18-20) 만약 이스라엘이 이때에 담대하게 진군했으면 당연히 가데스바네야 북쪽의 처음 마주치는 성도 여리고처럼 이스라엘 희생 하나 없이 기적적인 방식으로 함락되었을 것입니다.

 

이차 인구조사의 진짜 이유

 

그런 차원에서 정작 따져볼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남았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전쟁을 승리케 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럼 전쟁 목적이든 땅 분배 목적이든 인구조사는 그리 급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구조사를 다시 시켰다면 당신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첫째 인구조사와 이차조사 사이에 사십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에 인구가 대폭 감소되는 큰 사건이 세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데스바네야에서 거역한 구세대들은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어야 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이 인구조사에 대한 결론을 보십시오.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26:64,65) 신세대들에게 구세대들이 다 죽었음을 확인시켰습니다.

 

둘째는 고라당의 반역에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일만 사천칠백 명이나 되었습니다.(민16:49) 이번 조사 결과를 정리하면서 그 사실을 26:10,11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고라당 반역에 직접적으로 적극 가담한 자들은 땅이 입을 벌려 삼키고 불로 심판을 받았으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아들의 이가 시리지 않듯이 모든 이가 각자의 죄악으로만 심판받는다는 뜻입니다.

 

셋째는 지난주까지 살펴본 모압과 미디안 여자들과의 음행으로 이만사천 명이 죽었습니다. 비느하스에게 죽임 당한 남자가 시므온 지파 족장이었듯이 주로 시므온 종족들이 우상숭배 제사에 적극 참가했던 것 같습니다. 시므온 지파가 일차 조사 때는 오만 구천삼백 명이었는데(민1:23) 이차 조사에선 이만 이천이백 명만 남아서(26:14) 무려 이만 칠천삼백 명이나 줄었습니다. 그 음행 사건에서 이만 사천 명이나 염병으로 심판 받은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인구조사를 시킨 하나님의 뜻이 명백해졌습니다. 가나안 진군을 눈앞에 둔 신세대들에게 선조들이 당신을 완악하게 거역하여 큰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입니다. 만약에 너희도 내가 기업으로 줄 땅 가나안에서 동일한 죄를 범하면 반드시 동일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 경고는 참으로 심각하고 엄중한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기업을 당신께서 선물로 주시기에 인간은 변경 포기하지 못하고 오직 당신께서 그 처리를 주관하십니다. 가나안 족속을 쫒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해주었는데 그 땅에서 그들과 같은 죄악을 범하면 가나안을 심판했던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그 땅에서 쫓아낼 것입니다. 그 땅에 당신의 나라를 전혀 세우지 못했기에 노예로 살던 이방 땅 애굽에서 구출해낸 당신 백성을 당신께서 다시 이방 땅 바벨론의 노예로 돌려보낼 것이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한마디로 당신의 입에서 나간 축복의 약속이든 심판의 선고든 실현되지 않고 땅에 떨어지는 법은 절대로 없음을 분명하게 깨닫도록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당신의 신실하심을 완전히 각인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백년 간 자기 소유 기업이라고는 한줌도 없이 노예로 살았던 자들에게 땅을 공짜로 주시는 당신의 긍휼을 온전히 깨닫고 전적으로 당신만 따르라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오직 신실한 종을 통해 이룸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는 모든 세대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다른 원칙은 없습니다. 모세와 비느하스를 통해 당신의 진노 아래 있던 당신의 백성과 다시 화목했습니다. 이제 곧 갈렙과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을 공평하게 추첨으로 분배함으로써 당신의 신실하심을 온전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발람의 신탁 사건에서 보듯이 필요하면 당신 혼자서도 큰 권능을 베푸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로 위급한 멸망에서 막아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수호신으로만 남아 있기를 당신께서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대로 새 생명을 주시되 더 풍성하게 주시길 그분이 더 간절히 원하십니다. 어떻게든 어려운 일만 막아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신자가 믿음으로 구할 바가 결코 아닙니다. 너무나 가난하고 연약한 믿음, 아니 구원 받은 믿음이 아닐 수도 없습니다.

 

신자가 그분의 기쁨이 되어서 그분의 일에 동참하여 행동으로 실현하지 않고는 그분의 영광은 결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평소에 그분과의 관계가 순전하고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분만이 유일한 주권자이며 소망과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왕이면 잘 믿고 잘 믿는 만큼 복 받겠다고 덤비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심판받을 믿음입니다. 온전히 신실하고 순전한 믿음이 아니고는 그분의 일에 쓰임 받지 못합니다. 그럼 그분의 역사에 동참해야만 얻을 수 있는, 바꿔 말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기쁨 자유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가장 자주 강조한 가르침이 바로 돈을 주인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돈이 너무 중요해서 하나님도 부인 거역 대적하는 자입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돈이 아무리 없어도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바는 현재 여러분이 소유한 것들, 처한 여건,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인간의 눈에는 추첨처럼 우연히 또는 자기가 의도한 대로 일어난 것 같아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고 완선하신 뜻에 따라 여러분에게 그분이 나눠주신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셨기에 그 기업을 신실하신 하나님이 끝까지 당신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요컨대 신자의 일생은 세상 권력과 재물이 절대로 흔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2/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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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뜻은? 운영자 2012-02-15 480
14 신자와 무소유(無所有) 운영자 2011-08-22 340
13 성경적 청부(淸富) 사상 운영자 2011-08-22 392
12 신자가 부유하게 살아도 되는지요? 운영자 2010-09-23 530
11 모든 죄 위에 더한 악 운영자 2010-04-16 413
10 불의한 청지기 비유의 뜻은? 운영자 2009-11-09 2280
9 당신은 진짜 부활을 믿는가? 운영자 2009-11-04 838
8 네 가지 종류의 사람 운영자 2009-11-04 928
7 최초의 사회개혁자 아브람 운영자 2009-11-04 587
6 스캔들에 혹하는 신자들 운영자 2009-11-04 585
5 조기 은퇴의 비결 운영자 2009-11-04 643
4 가계부를 점검해보라. 운영자 2009-11-04 704
3 자본주의를 대체할 제도는? 운영자 2009-10-25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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