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77:7-9,19-20) 최악의 고난이 최고의 축복이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시77:7-9, 19-20)

 

 

이 시편은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에 빠져 영혼이 완전히 피폐해진 기자가 여호와께 자신의 비탄한 심경을 피 끓듯이 토로해내는 내용이다. 주님이 자기를 완전히 버렸고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을 것 같은 불안에 휩싸여 있다. 주의 인자와 약속은 영구히 폐하였고 대신에 노하심만 넘치도록 체험하고 있다고 했다. 인자는 회개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인데 그마저 끝났다고 여겼으니 기자는 많은 허물과 죄를 범했던 것이 틀림없다. 더더욱 전혀 소망이 없는 상태이다.

 

그런 상태에서 불현듯 선조들이 체험한 홍해의 기적을 떠올리고 마음의 평강을 되찾았다. 그의 현실 형편이 나아졌는지는 침묵하고 있으나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급함과 불안함만은 분명히 해소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다시 기억하고 힘을 얻었다고 이해하고 치워선 안 된다. 기자가 홍해의 기적을 떠올림으로써 평강을 되찾은 근거를 잘 살펴봐야 한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19절)라고 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바로의 군대에 쫓겨서 홍해와 마주쳤을 때에 어떤 상황이었는가? 바로 본문과 같은 완전한 절망이다. 뒤에는 세계 최강 바로의 정예부대가 포위해 추격해오고 있고 앞에는 시퍼런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그 환난에서 빠져나갈 방도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백성들도 그래서 모세에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1,12)고 노예 살이에서 해방시켜준 모세에게 거꾸로 분노를 쏟아 부으며 대들었다.

 

이스라엘은 이 기자의 고백대로 주의 곧은 길이 그 험한 바다 가운데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모세가 지팡이를 홍해 위로 내뻗어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드러날 때까지도 그곳으로 이끈 여호와에 대한 의심 원망 분노에 가득 찼을 것이다. 아니 그 땅을 걸어서 건너면서도 바닷물이 다시 덮치지는 않을지 바로 뒤에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바다 건너편 육지에 무사히 도착한 후에도 같은 바닷길로 추격해오던 바로의 군대가 바닷물에 수장되는 것을 보고나서야 겨우 안심했을 것이다. 비로소 여호와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정반대로 뒤바뀌었을 것이다. 최고의 절망이 최고의 기쁨이 되었다. 곧이어 역사상 최대의 찬양집회가 미리암의 주도로 열렸다.

 

최고 절망에서 건져지면 당연히 그 기쁨도 최고가 된다. 인간은 피조물 중에 최고의 기억력을 부여받았지만 원죄로 타락한 이후로 이상하게도 영적인 문제에서만은 망각도 최고로 잘 한다. 새로운 환난이 닥칠 때마다 매번 힘들기는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이번이 최고 힘든 것 같다. 제대로 구출되지 않고 큰 불행을 당할까 염려가 쌓인다. 나아가 이전에 하나님께 받은 은혜보다는 어려웠던 쓰라린 추억들만 계속 떠올린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 불만 원망이 순식간에 몇 배로 증가한다.

 

그런데 신자라면 누구나 구체적인 상황과 고난의 크기는 달라도 각자 만의 홍해의 체험이 있다. 도무지 끝나지 않고 출구가 없어 보이는 절망이 닥칠 때마다 자기만의 그 최고로 컸던 은혜의 체험을 떠올려야 한다. 자기 인생사에서 가장 큰 고난에서 무사히 건짐을 받았으니까 지금도 이런 고통을 느끼며 살아있다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큰 능력만 회상하면 안 된다. 지난 세월동안 홍해뿐만 아니라 수많은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그 때마다 주님과 씨름하며 이겨냈기에 이 자리까지 이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큰 능력보다는 그분의 나를 향한 신실하심, 처음과 끝이 항상 같은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그 은혜를 기억해내야 한다.

 

저도 어언 7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정말 수많은 고난을 겪었다. 일일이 간증할 수 없지만 감히 남들보다 더 심한 고난, 최소한 전혀 뒤지지 않는 고난들이었다. 믿음도 연약해 고난이 닥치기만 하면 예의 건망증이 발동해 순간적으로 괴롭고 하나님에 대한 의심 불만부터 생긴다. 그러다 기도하면서 차분히 하나님 그분을 다시 생각하면 지금껏 가장 힘들었던 고난에서 건져주셨던 은혜는 물론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구체적인 과정까지 회상할 수 있다. 

 

특별히 당시 그 큰 환난의 와중에선 이 기자의 고백처럼 사방이 막힌 흑암 가운데서 주의 곧은 길이 있는 줄 꿈도 꾸지 못했으나 결국은 하나님만이 해답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의 창고에서 꺼낸다. 그럼 지금도 그와 동일한 은혜 가운에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언제 어디서나 모든 문제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라고 진심으로 겸허히 고백하게 되고 평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은 힘들 때마다 출애굽과 홍해의 기적을 반복해서 회상하고 다시 힘을 얻었다. 죽음만 기다리던 최악의 환난에서 완전히 역전된 최고의 은혜였다. 당시에 성경은 없었고 그 은혜를 기록할 종이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암송해서 후대에 전승하는 것이 최고의 방안이었고 구전을 하려면 시가로 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고대에는 기억할만한 사건이나 하나님께 감동받을 때마다 시를 지었다.

 

현대의 신자들은 그런 은혜 일지를 기록하지 않고 시로 작성해 간단히 외워서 계속 회상하는 자는 거의 없다. 가뜩이나 망각의 동물인데 더더욱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 자신의 홍해의 체험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하게 하나는 정해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완전히 죽을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역전된 기억을 어려울 때마다 되살리면 환난 중에도 기뻐하며 찬양까지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작금의 펜데믹 사태가 조금 불편하긴 해도 방역수칙만 잘 지키면서 주님께 기도하고 의탁하면 너끈히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것이다. 그럼 주변의 힘든 사람들을 찾아가 나만의 홍해 체험에 근거해서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위로할 수도 있을 것이다.

 

(12/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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