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5;25-29)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는 전하지 말라는 일차 경고를 받고도 굴하지 않고 주를 전했고 믿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났습니다. 다시 시기가 가득해진 대제사장과 관원들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지만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주자 새벽임에도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습니다. 또 다시 대제사장이 그들을 잡아 힐문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도들은 법률적으로 따지면 엄연히 탈주범인데도 대제사장은 그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았고 간수들을 문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탈옥이 간수들의 잘못이 아니며 사도들에게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괜히 섣불리 그 문제를 거론했다간 오히려 이적을 인정해주고 사람들에게 더 선전되는 효과가 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무시해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고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고 합니다. 무신론 내지 범신론자들로서 인간 이성의 합리성만 추구하는 헬라인은 철학을 합니다. 반면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로선 그분의 초자연적 인도와 보호를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그 종교의 가장 우두머리인 대제사장이야말로 표적을 더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바로 자기 눈앞에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표적이 분명히 일어났음을 보고 알았음에도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가르치지 말라고 다시 협박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사도들이 전하는 도가 하나의 새로운 종교로 발전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유대교가 성전 제사로 누리는 권력과 이익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사도들이 일으키는 표적과 기사가 꼭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니까 일어난다는 것을 눈치 채고 혹시라도 그것을 금하면 그런 기적이 줄어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한 것입니다.
나아가 본문 기록에 따르면 아주 특별한 이유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라고 사도들에게 따졌습니다. 지금 사도들에게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는 선한 기적이 자꾸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여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5-47)
말하자면 대제사장의 눈에도 차츰 예수 믿는 자들이 옳아 보였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 자기로선 아무리 해도 주지 못하는 참 구원이 일어나 평강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신자들의 모임과 행실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당장 유대교의 교세가 줄어 그 기득권에 손해를 끼치는 것도 싫었지만 예수가 옳고 자기들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은 더더욱 싫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에 빌라도는 흉악범 바라바를 죽이고 예수를 대신 살리려 노력했습니다. 그도 무죄한 예수의 피를 자기 손에 묻히기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 때에 대제사장의 사주를 받은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마27:25)라고 고함질렀습니다. 대제사장은 나사렛 이단의 괴수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잘 하는 일이라고 확신(?)했는데 이제는 그 확신이 여지없이 깨어져 가고 있음을 스스로 실토한 셈입니다.
그도 사실은 양심의 가책을 조금씩 느꼈다는 뜻입니다. 선하고 옳은 일이 예수의 이름으로만 일어나지 않으면 자기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사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집니다. 그 피 값이 자기들에게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한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속내를 은연중에 내비친 것입니다. 그 피를 자기들에게 돌리라고 큰소리 칠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그 피를 돌리지 말라고 합니다. 온천하 만민 앞에서 명명백백하게 내뱉은 말도 뒤집어엎으려 합니다. 역사상 최고의 범죄를 번복했으니 역사상 최고로 염치없는 오리발입니다.
도대체 대제사장과 그 관원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분명히 하나님만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이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남을 인정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의 모임에는 천국의 기쁨이 넘침을 알았습니다. 나아가 자신들 스스로 자기들 죄 값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지 않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성실히 섬긴다고 인정한 사람들이 말입니다. 이야말로 인간의 상식과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지 않습니까?
반면에 대제사장의 채근을 받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순종한다고 자부하는 제사장들 앞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사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척 한 것뿐이었습니다. 자기들 욕심, 시기, 자존심, 명예, 체면, 재산, 권력 등을 유지하거나 불리기 위해 하나님을 동원하거나 심지어 배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나 사람들에게 순종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순종했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 당시의 유대 대제사장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기 전의 우리가 바로 그들과 하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아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도,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대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천국과 하나님을 전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평안과 안락을 위해 세상에서 돈만 쫓았던 자들입니다. 돈만 준다면 어떤 죄악과도 타협하고 심지어 귀신에게도 절할 수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예수라는 이름은 죽어라고 싫어하고 심지어 저주했습니다. 아무리 전도자가 예수는 쉼과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해도 그랬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예수가 옳고 그를 따르면 자기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질 것이라고 은연중에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의 피 값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기 싫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악과를 필요 없다고 내팽개치고 자신의 욕심만 따라간 아담의 후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권세에 묶여 있던 흑암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니 사단의 철천지대적인 예수를 그렇게 미워할 수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것도 사실은 기적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속마음으로는 죄를 괴로워하고 영원을 사모하며 예수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참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싶은 소원과 열망이 있는데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거나 초자연적인 능력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은 기적입니다. 사단에게 묶여 있었으니 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성령의 간섭으로 예수를 믿게 한 것은 더 큰 기적입니다. 역사상 가장 큰 오리발을 물리친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사도들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여야 합니다. 단순하게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때를 얻든 못 얻든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본문의 대제사장처럼 살지 않으면 됩니다. 그가 자신의 명예, 권력, 재산,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 완전히 꿇어 엎드리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 하나님을 이용하면서도 하나님을 순종하는 척 했던 것의 정 반대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에게 순종하지 말고 자신의 모든 것이 없어지더라도, 심지어 목숨이 달아나더라도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삶에서 드러내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자기 가진 것으로 기꺼이 불쌍한 이웃을 도우고 날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아 그들로 우리가 소유한 보배 예수에 대한 갈증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지 못하면 우리 또한 대제사장처럼 여전히 그분에게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셈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분의 피 값을 갚아 드려야 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진짜로 순종해야 합니다.
4/21/2006
정말 인간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도 기적같은 일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보다 더 큰 기적임에 틀림없습니다^^
날마다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을 닮아가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우리 자녀들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에 불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고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