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5:11-14)주일날 아무 것도 못하는 목사

조회 수 1266 추천 수 101 2006.05.09 18: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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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 있다가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5:11-14)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천국보좌 앞의 예배를 빼고는, 말하자면 성경에 기록된 중에는 가장 장엄했던 예배가 본문입니다. 아마도 인류 역사를 통 털어 이 땅에서 이뤄진 예배 전부를 따져도 가장 거룩하고 신령했던 예배일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차 제사장들이 감히 서서 섬기지도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성전이 이 지구상에서 최초로 건축되어 봉헌된 날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에 당신께서 그 예배를 최고로 기쁘게 열납했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그전에도 성막 가운데 있는 언약궤에 좌정하셔서 당신의 백성들이 행하는 곳마다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때때로 당신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히 덮어 모세가 들어갈 수 없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경우는 예배에 동원된 인적, 물적 자원의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제사장들이 반차대로 하지 않고 함께 다 모였습니다. 규례대로 하자면 24반차로 나뉘는데 전부가 모였으니 일상적으로 드리는 예배의 24배가 되는 사역자들이 모인 셈입니다.

나아가 찬양의 웅장함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4천명의 악기 다루는 자(대상23:5)가 있었는데 다 동원 되었고 그 중에 나팔 부는 자만 120명이었습니다. 백 명 정도 규모의 관현악단 40개가 동원되었다고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거기에 무대에는 찬양 인도자가 288명이나 서있었습니다.(대상25:7)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 할 때에 아마도 온 땅이 진동하고 천국 보좌에까지 그 파장이 직접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또 이 땅에 있던 모든 악령의 여리고성들이 순식간에 다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 우두머리 사단마저 도저히 숨 한번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 혹시 자기의 마지막 날이 되는가 싶어 하루 종일 간을 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배에서 참가인원의 규모와 찬양의 웅장함보다 훨씬 더 부러운 모습은 따로 있습니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한 것입니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충만한데다 종교적 경외감으로 무릎 꿇고 엎드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확한 해석은 구름의 영광에 압도되어 더 이상 예식(혹은 봉사)을 진행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너무 큰 충격이나 감동을 받아 아무런 생각이나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속에 있는 모든 힘이 빠져 나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탈진한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가 확연했고 성령의 역사가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불의 혀 같이 강림했던 때와 방불했을 것입니다. 솔로몬 때는 제사장들이 아무 활동을 못했고 오순절에는 그 무식했던 제자들이 더욱 담대하게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 다르지만, 모든 사람들이 오직 성령의 권능에만 100% 완전히 사로잡혔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너무 부럽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주일날의 예배가 이런 모양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히 느끼고 성령의 권능에 완전히 사로 잡혀 감히 아무 말도 못하게 되는 예배, 오직 하나 “하나님 한분만이 영원토록 거룩하십니다”라는 한 마디 고백 말고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드릴 수 없는 예배 말입니다. 정말 성령의 새 술에 취해 손발에 힘이 다 빠져 나가고 그저 예수님만 사모하며 기리고 다른 아무 생각이 없이 하루 종일 지낼 수 있는 주일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사장들이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목사가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에만 따르고 그분의 권능에 힘입어 자기 속의 온 힘을 다 쏟아 부어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고 그 선포된 말씀 가운데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느끼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찬양대도 기교의 세밀함과 악기의 다양함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열심과 진정에 사로 잡혀 성령이 시키는 찬양을 하고 그 찬양을 듣고 따라 하는 회중 모두가 이미 천국에 들어온 감격을 누리는 체험을 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문의 경우처럼 반차를 무시하고 스스로 자원하여 봉사하되 예배를 인도하기 전에 먼저 자신들의 정결례를 드리는 모든 사역자들 위에 성령이 어찌 강력하게 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는 영원토록 선하시고 자비하시다는 메시지만 선포하는데 어찌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요컨대 주일날 목회자를 비롯한 전 회중이 예배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그 예배의 감격이 너무 커서 다른 아무 일도 할 수 없이 예배 후에는 멍하니(?) 지낼 수 있는 예배가 너무나 아쉽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날에는 어찌된 셈인지 주일 날 예배 후가 더 바쁩니다. 예배 후의 일정 때문에 예배마저 간략하게 단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도들마저 밀린 일 처리하려고 예배가 어서 빨리 끝나라고 속으로 재촉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 함께 모일 수 있고 또 바쁜 현대 생활에 여분의 시간이 주일뿐이기에 여러 가지 교회 일들을 의논하고 개인적인 급한 일들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나 성도가 가장 근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배하여 사단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 아닙니까? 교회마다 본문 같은 예배를 드린다면 사단이 정말 꼼짝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성도들이 꼭 제자훈련 코스를 마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주일 예배에서 만나본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 크고 가슴에 품게 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너무 귀해 주일 날 오후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쑥 빠질 수 있게 한다면 더 이상 교회가 성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성령의 권능에 완전히 사로 잡혀 목사나 성가대가 오직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만 증거 하여 성도들도 성령에 의지하지 않고는 자기 힘으로는 서 있을 수조차 없는 그런 예배, 그런 주일, 그런 교회, 그런 목사를 천국 가기 전에 이 땅에서 만나고 체험해 보아야 할 텐데...

사단의 왕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은 오직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와 성령의 권능뿐입니다. 그런데도 교회마다 십자가는 사라져가고 있고 성령 대신 목사 개인의 자질과 경력과 학력으로 이끌어갑니다. 주일은 예배를 보다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 아무 일도 못하기는커녕, 안락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 쉬면서 잠시 쇼 구경했으니 도리어 정신이 들고 자기가 한 일은 하나 없으니 힘은 남아돌아 밀린 일을 더 활발하게 정리하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주일 예배에 생명을 걸 때만이 교회와 성도의 온전한 영적 승리가 있으며 황폐한 이 땅에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이 세대에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한 성전은 정녕 한군데도 없는가요?

5/9/2006  

 


날마다순종

2020.10.21 15:39:33
*.14.99.253

저 예배에 함께 했을 것을 상상하니 그것만으로도 설레입니다^^

'예배 후의 일정 때문에 예배마저 간략하게 단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보니 왠지 웃픕니다.

 

몇년전 한 영화속의 귀신들린 어린소녀가 일의 경중을 분간치 못하는 어른들을 보며 비웃듯 던져 유행이 되었던 대사가 문득 떠오릅니다.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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