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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유반(一年有半)
| 現代文보기 | 原文보기 | 성서조선 第 150 號 (1941年 7月)
작년 3월에, 오랫동안 몸 담았던 교육계에서 사퇴한 이래로 1년 하고도 반! 세계도 변화가 격심하였거니와 내 한 몸의 신변과 심령에도 실로 반 생애 동안 경험한 것보다 더 많고 심각한 파란이 소용돌이쳤다.
우선 경험한 것은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치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시 31:11) 라는 시인의 비애를 만끽하였다. 가까운 사람들의 멸시와 벗, 특히 ‘내 상에서 밥 먹던’ 친구들의 배반은 견디기 어려운 잔이었다.
때 마침 경제계와 사상계의 급격한 요동에 당면하여 부득이 미디안 목장을 찾아 북만주의 황야에까지 한 몸을 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거룩한 섭리의 손이 이미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점점 분명해졌다.
백두산 이남의 반도에만 국한되었던 우리의 시야가 최소한으로 잡아도 무단장(牧丹江, 목단강), 쑹화장(松花江, 송화강), 랴오허(遼河, 요하) 등의 유역 저편에까지 전개된 것은 우리가 일찍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많은 번잡스러운 일과 큰 불안이 따른다. 그러나 ‘하려거든 40 이전에….’ 라는 어떤 친구의 충고는 결행한 다음 비로소 그 진의와 진미를 알게 되었다. 40을 넘기면 그만큼 생각과 계산이 굳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백발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의 장래는 어떠한가. 계획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집트를 탈출한 것에 대해서는 다시 후회함이 없다. 다른 모양의 큰 뜻을 앞날의 꿈으로 바라보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만주의 물과 흙에서 실로 진취적인 넋이 움트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영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