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아들아,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2장>
마가는 빠르게 예수의 행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핵심적인 사건의 현장을 크로즈업 하고 있습니다.
숨죽이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뒤를 밟지 않으면
금새 놓쳐버립니다.
예수의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갑니다.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는데
집에 계시다는 소문에 계속해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는가 하면 발디딜틈조차 없을정도로 가득했기에
문 앞에조차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현장은 이제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안에서 밖으로 빠져 나오기도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예수께서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현장은 매우 조용했으며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비록 병고침이 목적이거나
여러가지 문제들 때문에 예수앞에 나온 사람들이었지만
어쩌면 그동안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에 목이 말랐을 영혼들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나
영원하신 그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음성) 듣기를 원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마다 진리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먹고 사는 육신적인 것으로만은
도저히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마다
사람들은 떡으로만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도를 하고 방황을 하고 고행을 하고 도를 닦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성을 위하여 철학이 발달했고
또한 인간은 결국은 종교와 뗄수 없는 관계속에서
허우적 거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사람으로 부터 출발을 합니다만
기독교는,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으로 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종교이면서도 사실은 종교가 아닌 생명인 것입니다.
죽은 전통이 아니라 살아있는 예수와 함께
오늘과 내일과 영원을 향하여 함께 걸어가는 삶입니다.
예수앞에 나온 이사람들은
그동안 살아있는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영의 양식인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을 들었으며 율법에 따른 무거운 멍에를 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은 고달펐고 삶은 매말라갔습니다.
회당과 성전에서 언제나 들었던 서기관들의 율법강론을 듣고
또다시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침체와 답답함과
무거운 짐을 짊어진체로
그렇게 하루 하루를 견디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사렛의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가 평범한 나사렛의 목수 요셉의 장남이며
마리아의 아들임을 사람들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어느날 부터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기이한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들이 항복을 하며 소리지르며
떠나갑니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그가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정말인가?
그래서 모여서 그의 말을 자세히 듣기를 원한것입니다.
그동안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 방항하였던 사람들이 오늘 예수의 말씀을 듣자
가슴 한구석에서 뜨거운 무엇이 치밀어 올라온 것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깊이 듣고 싶어합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전의 랍비들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단지 그의 말씀을 듣기만 하였는데
몸의 무거운 어떤 것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마음을 짓누르던 어떠함들이 스르르 풀어져 버리고 마음이 상쾌하여 집니다.
시원하여 집니다.
자유와 해방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기만 해도 우리의 모든 얽어매는 것들은
더이상 우리를 구속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여기 수 많은 사람들이 집 앞을 막아섰습니다.
그런데 어떤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채로 네사람이 들고 왔습니다.
앞으로 들어 갈 수 없자
지붕을 뚫고 병자를 침상과 함께 내려보냅니다.
네 사람의 수고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한족이라도 균형이 맞지 않으면 큰일날 상황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놀랐지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 상이 무사히 땅에
내려오기를 바라보았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노력과 수고는 보는 이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이 순간에
이 무슨 무례한 짓인가를 따질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도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시간이 오래 걸렸겠지만 누구하나 불평하거나
짜증내지는 않았겠지요.
이윽고
침상이 바닥에 안전하게 닿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아들아,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나만의 믿음이 아니라
너만의 믿음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2009/04/14.ⓒ사랑그리고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