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라면 누구나 주기도문 정도는 줄줄 외웁니다. 굳이 외우려 들지 않아도 몇 번 듣고 따라서 읽다 보면 저절로 입에 붙을 만큼 짧고 그 내용도 쉽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이기에 예배시간이면 다함께 암송하다 보니 외우지 않을래야 외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혹 대표기도라도 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합니다. 평소 교회 안에서 능수능란하게 기도를 잘 하던 아무개집사나 장로, 권사님을 찾아가 조언을 듣기도 하고, 세계평화로부터 시작하여 나라와 민족의 부흥, 목사님 가정과 우리 교회 모든 성도와 가족들의 평강에 이르기까지 종이에 빼곡하게 적은 기도문을 시험공부하듯 외우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즉, 우리가 기도할 내용이 그 안에 다 들어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며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곧 기도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있음이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이자 은혜이며, 아버지께서 이토록 패역한 피조물인 나를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용서하신 것을 진실로 알기에 나 또한 원수를 사랑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또한 기도입니다. 나아가 오직 악한 것만을 내어놓을 수 밖에 없는 나의 비참한 처지를 절감하기에 다만 악에서 구해주십사 간구하는 것이 기도일 뿐입니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구원이나 행복, 이를 테면 병의 치유나 이런저런 어려운 처지에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선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건축이나 전도, 선교 등등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실수나 재미로 피조물을 불행에 빠트리거나, 당신의 일에 피조물의 도움을 필요로 하실 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이해는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 있고, 육신의 탄생에는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내포되어 있으며,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모든 일에는 전능자의 세미한 인도가 숨어 있다는 진리에서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이 곧 기도임을 알게 합니다. 때와 장소를 가려서 드리거나, 형식에 맞추어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의 삶이 곧 기도인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말은 바로 그 뜻입니다.
따라서 기도를 하는지 안하는지, 하루에 얼마나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두고 고민하거나, 나아가 매사를 기도응답과 연결지어서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현실의 문제는 해결되면 해결되는 대로, 해결이 안되면 안되는 대로, 모두 하나님의 인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