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내지 일만 오천 종의 난초가 있다. 분명히 당신은 이들 모두를 잘 알지는 못할 것이지만 난초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이야기하면 이것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이 다양한 난초들은 아주 많은 종류의 서로다른 모양과 색깔과 크기를 가지는 꽃들을 만들어 낸다. 각각의 독특한 모양과 색깔과 크기는 난초 자신의 꽃가루 퍼뜨리기를 도우는 벌, 나비, 박쥐, 나방, 파리및 새들 각각에게 맞도록 완벽하게 최적화되어 있다.
꽃가루 운반자로 새들을 사용하는 난초들은 전혀 향이 없다. 대신에 이것들은 아주 밝은 색깔을 보여서 새들의 가장 예민한 감각에 호소한다. 진화론자들은 이것을 “상호 진화(co-evolution)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이 현상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 난초들이 새들의 가장 예민한 감각이 시력임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이 난초들이 어떻게 유전자 재조합을 일으켜 자신들의 선명한 색깔을 (스스로가) 개발시켰겠는가? 그럴 수가 없다. 과학적으로 들리는 이름을 부여한다고 해서 진화론적 주장이 더 과학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벌 난초를 예를들어 보자. 이 난초는 암컷 벌처럼 보이는 꽃을 만들어 낸다. 이것의 목적은 자신의 꽃가루를 벌에게 실을 수 있는 위치로 그 수컷 벌을 유인하기 위함이다. 식물 자신이 일부러 자신의 모양을 바꾸어 벌을 속여 그 벌로 하여금 꽃가루를 옮기게 만든다는 주장이 어떻게 과학적일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고의적으로 당신을 배제하고는 이 창조를 설명하지 못하도록 만드셨다. 그가 그렇게 하신 것은 단순히 우리로 하여금 당신 자신이 실재하신다는 것을 알게하기 위함 만이 아니다. 그분의 목적은 훨씬 더 크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의 개인적인 관계성을 원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이것이 우리에게 가능하게 만드셨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관심을 그리스도에게 이끄신다.
Notes:
Batten, Mary. 1983. "Sex & plants." Science Digest, Oct. p.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