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3:11-12) 성령과 불의 세례란?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1,12)
한국 신자들은 이상하게도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보지 않고 소위 말하는 “내가복음” 식으로 해석 적용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물론 그렇게 가르쳐왔던 목회자들의 잘못이 더 큽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이 베푸시는 “성령과 불의 세례”입니다.
기록된 그대로 성경을 본다는 것은 우선 자신의 편견과 고집과 선입관들은 결코 개입시켜선 안된다는 뜻입니다. 또 성경에 대해 이전에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과 교리에 관한 선이해와, 나아가 자신의 신앙적 체험도 해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백지의 순수한 상태에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본문에서 파악하고 그 후에 문맥 안에서와 책의 주제에 맞추어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단순히 분문만 정확하게 분석해도 그 안에 정확한 설명이 자세히 다 나와 있습니다.
성령과 불 세례에 대해서 본문이 어떻게 말합니까?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행하실 일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일 것인데 바로 구원입니다.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인데 이는 심판입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주님이 행하실 두 가지 세례를 구원과 심판으로 나눴습니다. 거기다 심판은 분명히 불로 태운다고 합니다. 그럼 불 세례는 바로 심판을 뜻하고 성령 세례는 구원을 말합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간섭으로만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당연히 이 때에 성령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간혹 성령이 강력이 임하여 뭔가 내면에 뜨거운 감격이 생기거나, 실제로 불 같은 기운이 온 몸을 감싸는 것 같은 체험을 두고 성령의 불 세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그런 체험을 표현하는 용어로만 한정해야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 세례에 적용해선 아주 틀린 해석이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주님의 세례를 “성령과 불의 세례”라고 두 종류로 언급했고 또 각각을 풀어 설명했습니다. “성령의 불 세례”라고 하면 불은 성령이 역사한 후의 양태를 뜻하고 한 가지 세례를 말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는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려는 용도로 주님의 말씀을 끌어와 잘못 사용한 것의 대표적 예로서 성경 본문이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신자들이 이런 정확한 구분을 하지 못하는 반면에 간혹 그런 체험을 하니까 그런 가르침이 옳은 줄 오해 착각 추종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문맥 안에서의 뜻은 무엇이 됩니까? 저자 마태가 예수님의 성령과 불의 세례를 세례 요한의 물 세례와 비교 대조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요한의 물 세례는 회개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구원과 심판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만 이뤄집니다. 본문으로 따지면 성령의 세례입니다.
다른 말로 회개하는 물 세례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 자신들의 윤리적 죄를 자복하고 고쳐서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윤리적 죄를 회개했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도 됩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가 도덕적 선행이 공로가 되는 행위구원론을 철저히 거부하고 있고 본문도 그 진리를 재확인해 줍니다.
세례 요한의 물 세례는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는 물 세례와는 성격이 다르고 예수님 당시에만 있었던 의식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요한이 자신이 광야에서 주님 오심을 위해 말씀과 기도로 준비했던 것처럼 다른 유대인들더러 천국 복음이 곧 실현됨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키워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메시아 예언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도록 위로와 힘을 주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는 물 세례도 그 자체로는 결코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그것이 구원을 위한 준비였다면 오늘날의 그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고백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자신의 중생 체험을 증거하고, 믿음의 공동체에 일원이 되어서 성도와 교회의 덕을 높이고, 남은 인생을 주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며 그분이 맡기신 소명을 실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서약식입니다.
구원은 오직 성령이 임재하여 사탄에 미혹에 묶여서 견고한 진이 되어 있던 한 죄인의 내면이 무너져 내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주님만이 성령의 세례를 주십니다. 그럼 성령의 세례 한 번으로 구원은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흔히 뜨거운 성령의 불 세례를 받아야만 혹은 다시 받아야만 구원이 이뤄진다는 것은 틀린 해석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불 세례를 분명히 쭉정이를 불에 태우는 심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성경이 한 가지 용어로 여러 의미를 내포하여 혼동을 주지 않습니다. 거기다 뜨거운 불 체험을 불 세례라고 말하면 본문의 심판과 정 반대의 긍정적인 의미가 됩니다. 조금이라도 달라 혼동이 생기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아주 정미하게 기록된 것이 성경인데 정반대의 의미로 말할 리는 더더욱 없습니다.
지금 경건하고 심오하며 전문적인 교리나 신학적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음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성경 단어의 원어를 추적하거나 단어 자체의 뜻을 해석한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본문의 의미를 문자적 기록 그대로 평이하게 그 앞뒤 순서와 문법적 구조를 따라간 것 뿐입니다. 본문을 본문 대로 해석하면 됩니다. 작금 성경 본문의 뜻도 제대로 추적을 안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1/18/2019
명확한 설명 감사합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목사님처럼 이치에 맞게 성경을 해석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