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8:15-17)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천국 열쇠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18:15-17)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마16:15-16) 그러자 주님은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보증하셨습니다. 이어서 교회에 천국 열쇠를 주는데 땅에서 무엇이든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무엇이든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18,19절) 주님이 교회에 부여한 권능과 특별히 기도로 실현되는 역사가 실로 엄청나지 않습니까?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땅에서 무엇이든 기도하면 하늘에서 듣고 다 이뤄주신다고 합니다.
한국교회는 매일 새벽마다 열정적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럼 과연 주님이 약속하신 그 권능과 역사를 실현해 보이고 있습니까? 솔직히 아무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주님 약속대로 되었다는 증언이 없다면 주님의 말씀과 교회의 사역 둘 중 하나는 잘못된 것 아닙니까?
상기의 마18:15-17은 교회 안에 죄를 범하는 형제를 어떻게 치리해야 할지에 관한 주님의 명료한 가르침입니다. 처음에는 그 형제가 창피하지 않도록 한 명이 비밀리에 찾아가 권면하라고 합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한두 사람 증인을 데리고 가서 설득하라고 합니다.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교회 전체가 나서서 권하고 끝까지 뉘우치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 같이 여기라고 합니다. 당시에 이방인과 세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자로 간주해 유대사회에서 격리시켰기에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교회에서 출교시키라는 뜻입니다.
언뜻 보면 교회가 죄 중에 있는 교인을 순서를 밟아서 냉정하고도 합법적으로 처리하는 지침 같습니다. 죄인에게 몇 번 공식적으로 권고하다가 별로 고칠 생각이 없으면 아예 사탄에게 넘겨주라고 단언하신 것 같습니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라고 약속하신 당신의 뜻과 상충되어 보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은 성도들의 합심 기도를 통해 실현되는 하나님의 큰 역사에 관한 아주 좋은 예입니다. 교회가 행할 권능의 참 모습을 이만큼 정확하게 가르치는 말씀도 없습니다. 주님이 본문에 이어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재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18-20)흔히 15-17절은 교회 치리에 관한 지침이고, 이어지는 18-20절은 합심기도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따로 떼어서 이해하고 치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둘은 반드시 연결해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말씀은 정미하고 완전합니다. 죄인을 치리하는 첫 단계는 두 사람만의 은밀한 만남이고 둘째 단계는 두세 사람이 함께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주님은 합심해서 기도해야 할 사람의 숫자를 두 번에 걸쳐 의도적으로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19절), 뒤에는 “두세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처음에는 단순히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만 약속했지 합심해서 기도하라는 가르침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19절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했으므로 땅에서 매고 푸는 일이 바로 교회가 행할 합심기도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나아가 교회가 죄인을 치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므로 연결해서 부연 설명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성도들끼리 기도한 후에 치리를 하라는 것입니다.
상기 본문에서 특별히 또 반드시 주목해야 할 말씀은 15절의 첫 부분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개역성경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지만 죄로 인해서 피해본 사람이 먼저 찾아가 권고하라는 뜻입니다. 표준새번역이나 흠정역 등은 분명히 “네 형제가 네게 범죄하거든”이라고 그 뜻을 명료하게 밝혔습니다.
요컨대 가해자가 전혀 뉘우칠 기색조차 없을 때에 피해자가 먼저 찾아가서 용서해주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바꿔 말해 형제를 얻을 목적으로 먼저 찾아가서 먼저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천국의 열쇠가 기도인데 음부를 이기려면 죽음을 극복해야합니다. 또 그러려면 성도들은 오직 상대의 생명과 영혼을 살리는 사랑의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땅에서 무엇이든 매고 무엇이든 풀면 하늘에서 그대로 들어주신다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졌습니다. 오늘날 새벽기도로 모여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건물의 신축확장, 사업 번창, 질병퇴치 같은 교회 목사 성도들의 사적인 탐욕이 아닙니다. 또 반드시 교회로 나와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해야만 사탄을 묶어서 훼방 못하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 안팎의 형제들이 죄를 범하면 그 피해를 입은 자가 먼저 가해자를 찾아가 사랑으로 품고 용서하는 기도가 바로 땅에서 묶고 풀어야 할 ‘무엇’입니다. 그것도 피해자와 가해자 두 당사자만의, 아니면 진정으로 동일한 긍휼을 품은 두세 성도의 기도만으로도 죽어가던 생명이 되살아난다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함께 기도할 정도라면 찾아간 성도들의, 특별히 피해자의 긍휼한 마음의 진정성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성령이 역사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상기 본문이 정작 말하는 바는 음부를 이기는 천국열쇠가 실은 합심기도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합심기도는 최하 두 사람 이상이어야 하는데 피해자가 찾아가 가해자와 함께 기도해야 가능합니다. 그전에 먼저 찾아가 용서해야하고, 그전에 먼저 사랑으로 품어주는 긍휼이 있어야 하고, 그 긍휼을 가해자가 순전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러려면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요컨대 예수 십자가 복음 안에서 성령의 간섭으로 완전히 거듭난 자들의 모임이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부 교인이 때로는 죄로 넘어지더라도 두세 성도들만의 사랑으로 섬기는 기도로 그 성도가 예수 생명 안에서 새롭게 되고 더 성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예수님이 비로소 새로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 성전도 동일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봉헌할 때에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더라도 회개하고 성전에 나와, 심지어 성전으로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여달라는 간구만 했습니다.(왕상8:31-53)
역대하에선 한 마디로 줄여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대하7:14) 예수님은 조금 더 발전시켜 성도들끼리 서로 용서 사랑하고 함께 회개의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경제적 이권만 다투는 강도의 굴혈이 되었다고 선언하며 환전상과 장사치들의 상을 뒤엎고 크게 야단치며 쫓아내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 해도 그런 꾸중을 듣지 않을 교회가 얼마나 될까 따져보면 참으로 등골이 오싹해질 뿐입니다.
오늘날 과연 이런 사역에 전념하는 교회가 있을까요? 주님의 약속을 실현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나마 신앙양심이 남아 있다고 주님이 인정해주실까요? 무엇보다 교회가 예수 십자가 복음조차 순전하게 전하지 않는데 주님이 약속하신 권능이 실현될까요? 아니 천국열쇠의 뜻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그 열쇠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교회 안에는 오직 예수 십자가뿐이어야만 합니다. 그분만이 교회 사역의 알파요 오메가요, 성도들 모임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단순히 두세 사람이 모여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고 천국 문을 열 수 없습니다. 교회는 죄인을 십자가 복음으로 거듭나게 해야 하고, 그렇게 용서 받은 죄인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모습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쉽게 말해 다른 죄인을, 그것도 “네 형제가 네게 범죄하거든” 그 가해자를 피해자가 먼저 찾아가서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어주어야만 합니다. 합심 기도 이전에 바로 예수 십자가 복음이, 또 성도가 복음대로 살아가는 삶이 천국 열쇠입니다.
3/23/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