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18-25) 예수는 로마 군병의 사생아인가? 

2022년 성탄 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1:18-25)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신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신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 사실을 믿지 않거나, 의심하는 신자도 있으며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니까 그런가보다 여기는 신자들도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믿어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절대적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대로 그 앎을 자신의 삶에 실현해야만 온전한 믿음입니다. 히브리어 ‘안다’라는 단어도 체험적인 지식을 뜻합니다. 요컨대 성탄절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경축 감사하는 교회의 일회성 연례행사로 그쳐선 안 되고, 신자라면 1년 365일을 성탄절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부활 승천과 함께 많은 신자에게 삶에서 실천적 믿음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믿어보려고 노력하는 사항으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살았던 인생의 시작과 끝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예수님을 알고 있다는 말을 아예 꺼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주님의 부활에 대해선 부활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성경 기록을 면밀하게 대조 검토함으로써 타당하고도 합리적인 변증이 가능했습니다. 반면에 성령 잉태는 마리아의 태중에서 일어난 초자연적 신비인지라 구체적으로 따져볼 수 없어서 신자들에게 여전히 난해한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동정녀 탄생을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목숨을 건 마리아

 

먼저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는 성경의 말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의 결혼 관습은 약혼한 후에 신부는 일 년 정도 친정 본가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약혼은 법적으로 결혼과 같은 효력을 지니며 두 사람은 정식 부부로 맺어진 것입니다. 단지 함께 살지 못하기에 첫날 밤만 일 년 뒤로 미뤄집니다. 

 

일 년이 지나면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서 처가 가족과 친척들과 잔치를 벌인 후에 아내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신부를 데리고 올 신랑을 늦도록 기다린 신랑 쪽 가족 친척들과 다시 잔치를 벌이고 비로소 신랑 신부는 첫날 밤을 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을 기름 등불을 준비하여서 밤이 새도록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에 비유한 것이(마25:1-13)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요셉과 마리아는 서로 손도 안 잡은 상태인데 덜컥 마리아에게 임신이 된 것입니다. 물론 그녀가 외도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인 이적이었지만 그녀만 아는 비밀이자 진실입니다.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며 불륜을 숨기려고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남편 요셉도 믿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자신에게 잘못이 전혀 없으니 사실대로 털어놓고 의논은 해봐야 합니다. 당시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면 마리아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님 저에게 아주 비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일이라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당신도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저로선 어쨌든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데 성령에 의해 임신 되었습니다. 다른 남자와 절대 동침하지 않았다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 배 속에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셈인데 제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보고 잘 판단해 주십시오. 당신의 처분에 따르겠지만 절대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령 수태에 대해 천사에게서 고지받았던 내용과(눅1:26-38) 곧바로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간 일과 그 후의 자기 몸의 변화된 상태 등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었을 것입니다. 

 

요셉으로선 마리아가 평소에 몸가짐이 현숙한 처녀임을 알았다 해도 그녀의 말을 결코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륜을 저지르고선 참으로 교묘하지만 너무나 엉뚱한 거짓말을 지어냈다는 생각부터 들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호사가나 기독교 반대론자들이 로마 군병과의 관계에서 난 불륜의 자식이라고 예수를 비난하듯이 도무지 씨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요셉으로선 내 약혼녀가 미쳤거나 아니면 바보인가라는 의심까지 생겼을 것입니다. 

 

당시 약혼 후 일 년간 신부가 처가에 머물러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일을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일 년 동안 친부모의 엄격한 감시와 관리를 받으면 바람을 피울 수 없습니다. 만약 불륜을 저지르면 열 달의 수태 기간 중에 배가 불러와서 표가 납니다. 율법에도 이와 관련된 규정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신24:1) 신랑이 일 년 후에 신부를 데려왔는데 이미 정조를 잃은 것이 드러나면 증서를 써주고 처가로 돌려보내라고 명합니다. 부부 관계를 이어갈 수 없는 결정적 하자이므로 파혼을 허락해주었고 나아가 그 여자도 정식으로 이혼이 되었으니 다른 남자와 재혼할 수 있게 해주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만약 약혼 중에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배가 불러오면 법적으로 정식 부부 사이인지라 간음죄가 적용됩니다. 약혼자이자 남편이 고소하면 그 간부와 함께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레20:10) 만약 요셉이 마리아를 믿지 못하고 화가 나서 장로들에게 고소하면 아무도 성령 잉태를 믿지 않을 테니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요셉과 의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배가 불러오는 것을 남이 알게 되면 자신의 불륜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므로 마찬가지로 꼼짝없이 죽어야 합니다. 마리아로선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습니다. 

 

마리아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성령 잉태 고지를 받았을 때는 아무래도 성령도 역사했을 것이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긴 했으나 점차 속으로 반신반의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막상 경수가 두세 달 끊기고 신체 리듬이 이전과 달라지자 천사의 고지가 사실임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이제 곧 남이 알 정도로 배가 불러올 것이므로 더 망설일 수는 없어서 약혼자이자 남편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자칫 죽을 수도 있지만, 아니 그럴 확률이 훨씬 더 높지만 더 보태거나 더 뺄 것 하나 없는 엄연한 진실이었기에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일단 요셉과 의논해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마리아를 살려준 요셉

 

마태는 요셉의 첫 반응에 대해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19절)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를 드러내지 아니한다는 것은 아내가 간음했다고 장로들에게 알리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목숨을 살려주려 했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끊고자 한 것은 율법의 규정대로 이혼 증서를 써주어서 처가로 돌려보내고 그 간음한 대상과 결혼할 수 있게 조치하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요셉의 결혼은 이미 온 동네에 공식화되었고 일 년 동안 기다려야 하므로 요셉으로서도 시간과 경비에서 어느 정도 피해를 봤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알지 못하는 간부에 대한 시기 질투로 불같은 화도 솟았을 수 있습니다. 지금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모자랄 판인데 요셉은 마리아의 생명 보존은 물론 그 앞날까지 배려해 준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찾아온 시간과 장소와 전해 들은 말 전부를 육하원칙에 따라 세세히 설명해주며 믿어 달라고 간청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요셉이 온전히 믿어주리라고 기대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로선 그렇게 말하는 것 외에는 어떤 해결책도 없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했습니다. 평소에 요셉의 인품을 존경했겠지만 너무나 순순히 약혼녀를 위해서 조용히 해결해주려 하니 너무나 고마웠고 존경심이 배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라고 말합니다. 요셉이 이 일로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천사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마리아와의 첫 만남 때에 바로 이혼증서를 써줄 테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대답했는지, 아니면 조금 생각해보고 다시 의논하자고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혼증서를 써준다고 했어도 어떤 구실로 작성해야 할지 정해야 하며 또 그 후에 본가와 처가 가족들 사이에 파생될 여러 사태에 대해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따져볼 사항이 많았던 것입니다. “조용히 끊고자 했으니” 요셉은 자신의 여러 피해는 감수하고 이혼증서를 써주고 없었던 일로 처리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적 윤리로는 요셉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럼 요셉과 마리아의 결혼은 파혼으로 끝나고 장차 태어날 예수는 사생아가 되며 마리아는 미혼모가 되어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만약 성령으로 잉태되지 않고 실제로 마리아가 불륜을 저질렀다면 설명드린 대로 마리아는 죽었던지 최소한 파혼되어 분홍글씨 주인공처럼 모든 이의 저주 가운데 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아무리 요셉이 의인이라도 둘 중 하나로 끝납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남의 아이를 자기 아이로 입적시켜서 대신 키워주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당시는 연애 결혼이 거의 없었고 일 년의 약혼 기간 내내 친정에서 편안히 지냈으므로 굳이 불륜을 저지른 약혼녀와 그 자식을 보호해줄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은 남편으로 의무를 다하고 있었기에 큰 배신감만 생겼을 것이므로 그러고 싶다는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정황상 인간끼리 행하도록 그냥 두어선 또 실제로 인간 사이에서만 일어난 일이었다면 예수 이야기는 절대로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이 일을 주도했기에 마태는 반드시 본문대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잉태부터 그 본질상 사람들이 공교히 지어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도 입에 올리길 두려워하는 유대인들이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내용이었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이야기를 제자들이 천하의 바보가 아닌 이상 성경에 기록할 리도 없습니다. 

 

천사가 온갖 고민에 빠진 요셉에게 현몽해준 내용이 무엇입니까?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20절) 추측건대 천사의 모습이 틀림없이 마리아가 설명해준 가브리엘과 똑같았을 것입니다. 꿈의 내용도 생생했고 무엇보다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가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먼저 명한(눅1:31) 후에, 요셉에게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1절)고 동일한 계시를 주었습니다. 요셉으로선 아이의 이름까지 일치했으니 마리아의 이야기를 부인할 수 없고 서서히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즉, 불륜을 저지른 적이 없으니 안심하고 데리고 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마리아를 데리고 온 뒤가 더 문제입니다. 본문 사건이 약혼한 지 얼마 후에 일어났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임신이 안 되어도 생리 불순이 생길 수 있기에 경수가 끊어지고 최소 석 달이 지나야만 임신으로 인정합니다. 그런데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수태 고지를 받고서, 그때 바로 잉태된 여부는 모르지만, 엘리사벳의 집에서 이미 석 달을 함께 보냈습니다.(눅1:56)   

 

정작 마리아가 임신을 확인했어도 요셉에게 어떻게 털어놓아야 할지 한참 고민했을 것이며, 어쩌면 사실임을 보여주려고 배가 조금 불러왔을 때까지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본문도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18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가 되었던 약혼 기간이 끝나고 마리아를 데리고 오면 조기 출산할 것은 확실합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마리아는 불륜녀로 정죄되어서 요셉의 동네에서 고개 들고 살 수 없습니다. 그 부부는 시쳇말로 완전히 왕따를 당할 것이므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 가서 아이가 한참 자라도록 숨어서 사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현실적으로 최선의 방책이었던 대로 정말로 다른 동네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만삭이 다가오자, 이때도 정확하게 임신 몇 개월인지 모르지만,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모두 본적지에 가서 호구 조사를 받게 했습니다. 그 후에는 천사가 또다시 현몽하여 잠시 애굽으로 도피시켜주었습니다. 애굽에서 다시 현몽하여 아예 나사렛으로 이주하게 인도했습니다. 요셉의 고향 사람들로 예수의 출산 시기와 약혼 기간을 정확히 비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너무나 신묘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아무 근거 없이 겉모습만 보고 비난할 것까지 차단할 수 있는 비책을 이미 다 마련해 놓았던 것입니다. 

 

처신이 난감한 요셉

 

나아가 요셉이 정작 염려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남았습니다.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이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라면 시골의 이름 없는 목수인 자기가 대체 어떻게, 친아버지도 아닌데 온전한 아비 노릇을 해주어야 할지 도무지 자신이 서지 않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전해준 말에 따르면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32,33)고 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므로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을 뜻합니다. 또 영원히 야곱의 집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합니다. 고대에는 아무리 부모라도 아들 왕에게는 깍듯이 공경해야 했는데 하나님의 아들인 셈인데 어떻게 그 아들을 대해야 할지 완전히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요셉이 무엇까지 걱정하는지 다 꿰뚫어 알고서 그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칭해주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여호와가 다윗과 맺은 언약(삼하7:1-17)에 따라 메시아의 호칭입니다. 지금은 로마와 유대 당국의 이중적인 학정에 시달려 메시아 대망 사상이 절정에 이른 때인지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일은 누구에게나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을 말할 때는 야곱의 집, 야곱의 후손, 야곱의 별칭인 이스라엘의 후손, 나아가 아브라함의 후손 등으로 말합니다. 

 

그런데도 요셉을 “다윗의 자손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고 했으니 어쨌든 문자적 의미로는 요셉도 메시아라고 부른 셈입니다.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온다는 예언이 요셉 너를 통해서 이뤄진다는 의미가 앞서고 또 그만큼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된 메시아라는 믿음을 심어주려는 의도였습니다. 네가 마리아를 내치지 않고 정식으로 아내를 받아들인다면 메시아인 예수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니까 결코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그 전에 마리아를 배려해주려는 인간적 의로움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네 아내 마리아”라고 말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마리아가 네 아내로서 하자가 될 수치스러운 일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으며 그녀도 네 아내는 물론 메시아의 어미가 될 자격과 소양이 충분하니까 그런 점을 절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야 선지자가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고 이미 예언했음을 더 확실하게 확인시켜주었습니다.(23절) 요셉은 꿈인데도 틀림없이 천사의 계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고 성령이 역사하여 기쁨도 충만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그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고 주시는 현몽이라 마리아의 성령 임신에 하나님이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이 한 번의 현몽으로 아기 예수의 메시아 됨에 의심의 뿌리까지 완전히 근절되었다고 섣불리 단정해선 안 됩니다. 우리도 예수를 처음 믿을 때는 눈물 흘리면서 크게 감격하고 정말 자기 목숨까지 바칠 것처럼 헌신합니다. 그러나 별다른 일이 없어도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그 감격이 시들해지고 사소한 고난이 생기면 의심 원망까지 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요셉도 메시아의 아비가 되었다는 처음의 감격이 날이 갈수록 옅어지고 다시 의심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 천사의 말이 정말 사실인지, 내가 과연 잘한 결정인지, 앞으로 아들이 태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수시로 온갖 상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아내로 데려와 결혼을 되돌릴 수는 없고 의로운 사람이라 어느 누구에게도, 마리아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만 속으로 끙끙 앓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으로 여자의 태만 빌려서 잉태된 메시아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너무 궁금해졌을 것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영화 Alien(외계인) 같이 흉측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고대는 반인반수(半人半獸) 형상의 신들을 많이 믿었기에 그런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요셉의 믿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지닌 인간인지라 자연히 생각이 그렇게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태어날 때까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인간 출생에 관한 과학이 발달되기 전이라 혹시라도 동침하면 메시아인 예수 탄생에 인간인 자기가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걱정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출생과 출생 직후에 요셉은 또다시 비상한 일들을 많이 겪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배경에서 행하지 않고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만삭이 될 때쯤에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 것, 베들레헴이 일찍 메시아 탄생지로 예언되었다는 점, 동방박사의 방문과 목동들의 경배와 찬양, 헤롯을 피해 다시 현몽을 받아 애굽으로 피신한 일, 헤롯의 두 살 이하 남아의 살해 사건, 헤롯이 하나님의 벌을 받아 급사한 사건, 애굽에서 나올 때 다시 현몽을 받아 나사렛으로 간 것 등등, 아들 예수와 연결되어서 그 모든 일들이 마치 시계의 톱니바퀴가 물리듯이 착착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임을 확신하게 되고 마리아가 전해준 성령 탄생의 비화도 그대로 진실임을 전혀 의심치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의 의미

 

무엇보다 예수가 자라가면서 보여주는 성품, 태도, 비상한 영적 지혜 등등이 그 확신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쨌든 동정녀 탄생은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부부만, 정작 본인인 예수에게도 성인이 되어서야 말해주어야 할 성격이라, 끝까지 비밀로 지켜두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당신의 백성을 죄에서 건져주는 메시아 사역을 완성한 후에 열두 제자들에게 비로소 털어놓았을 것입니다.

 

부모나 제자들이나 예수님의 삼 년간의 공사역과 골고다와 부활의 현장에 있었던 산 증인들입니다. 주님이 유대 사회에서 소외되고 괄시받은 자들을 이사야 선지자의 임마누엘 하시는 메시아 예언대로 아가페 사랑으로 위로하고 치유하며, 마음의 상처까지 씻어주고 필요하면 기적을 베풀어 풀었던 모든 일들의 의미를, 특별히 가르침 받은 천국 복음을 정확히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출생에 대한 비화는 주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이 반드시 복음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또 자신들의 스승이 인간 랍비, 선지자, 메시아를 넘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간으로선 풀 수 없었던 퍼즐이 동정녀 탄생과 부활 승천으로 완전히 맞춰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후대의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읽으면 지어낸 이야기이거나 로마 군병의 사생아라고 비난받을 내용인데도 마태와 누가는 성경에 버젓이 기록한 것입니다. 기록 당시에 앞으로 그런 의심과 비난을 받으리라고 혹시 예상했을지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뺄 것도 없는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후대 사람들도 자기들처럼 반드시 동정녀 탄생을 알아야만 십자가 복음의 은혜와 권능을 더 깊이 깨닫고 받아 누릴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성령 잉태에 대한 많은 신학적 의미를 일일이 살펴볼 여유는 없습니다. 한 가지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성령으로 잉태되었기에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면서도 완벽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감당할 희생 제물로서 자격이 온전해집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의 죽음으로만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자기가 가장 의롭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을 아주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니 자기 대신에 어느 누가 죽더라도 자기 죄가 씻어진다고 인정할 리는 없습니다. 그전에 성령이 역사해주지 않으면 자기야말로 죽어 마땅한 천하의 죄인이라는 인식조차 아예 하지 못합니다.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전 인류를 대속할 수 있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됩니다. 

 

만약 요셉이 천사의 현몽을 무시하고 인간적 의로움 만으로 가만히 마리아를 끊었다면 그 구원의 길이 완전히 막힐 뻔했습니다. 마리아로선 성령 잉태가 본인에게 일어난 사실이었으니까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며 굳이 믿음이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이 사건을 두고 정말로 오랫동안 앞뒤 사정을 비교해가며 철저히 따져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누라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가장 어리석은 남편이라는 비평을 들을 수 있는데도 성령 탄생의 비화를 온 천하에 자랑스럽게 당당히 공개했습니다. 사실이 아니고는 절대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본받아야 할 요셉의 믿음

 

성탄절을 맞아서 우리 또한 요셉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마리아를 배려해준 그처럼 성품이 의로운 사람은 교회 밖에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죄송하지만 그런 사람은 이전의 저처럼 성령이 간섭하기 전이라 자신은 의롭다고 확신하고 절대로 죄를 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에게서 본받아야 할 믿음이 그리 거창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묵묵히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의심과 불만은 지녔지만 천사의 지시대로 따랐고 그것이 온전히 진실로 밝혀질 때까지는 자신의 의심과 불만을 결코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꾼 꿈을 마리아가 전해주는 꿈과 비교해보는 이성적 영적 분별력도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예사로 넘기지 않고 하나님과 주변 사람의 관점에서 곰곰이 따져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뜻과 계획만 고집하지 않았고 그것이 틀렸을 때는 과감히 포기했고,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을 때는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원래 성품이 도덕적으로 의로웠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따르는데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그가 당신을 묵묵히 따르는 의로움을 아시고 그의 믿음이 더욱 견고 성숙해지도록 당신께서도 때로는 침묵하는 가운데도 범사를 묵묵히 그리고 거룩하게 이끌어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예수님 믿을 때에 단번에 믿음이 견고해지도록 해주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완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급하게 붙은 불은 금방 꺼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오래 뜨겁게 타는 불이 무엇입니까? 한 번 완전히 태워진 후에 만든 숯입니다. 불꽃도 거의 없어서 어떤 때는 제대로 타고 있는지 혹시 꺼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희미하게 불꽃도 보이고 무엇보다 열기가 후끈하고 아주 오랫동안 하얗게 재로 변할 때까지 그 열기를 유지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그러해야 합니다. 처음 믿을 때 큰 고난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나 성령이 은혜를 주셔서 썩어질 옛사람이 죽고 존재 전부가 완전히 새롭게 뒤집어져야 합니다. 정말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런 후에도 이런저런 문제와 환난을 겪는 중에 의심과 원망을 잔뜩 품게 되지만 하나님과 정말로 힘들게 씨름해나가야만 그 믿음이 정금처럼 즉, 숯불처럼 연단되어집니다. 

 

요셉의 믿음의 여정이 예수님의 출생 이후에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 아들 예수로 인해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이 살해당하자 가뜩이나 의로운 그인지라 평생토록 죄책감으로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마련한 인류 구원의 드라마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음에도 어느 누구도 그에게 박수쳐주지 않았고 그 또한 박수받으려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들의 말을 빌리자면 한 알의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이었고 그 열매는 엄청났습니다. 동정녀 탄생의 핵심 증인이자 주인이라는 역할을 차버렸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고 인류도 흑암 속에 여전히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신음하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비록 예수님의 육신의 아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혼자만의 비밀로 지니고 조용히 지냈겠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도 따로 하나 있었습니다. 자신의 법적인 아들인 예수가 자라가고 나중에 랍비가 되어서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는 동안에 비록 미약해도 자신에게 영향을 받은 의로움이 묻어나오는 것을 보고 아주 기뻐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십자가에 죽고 부활 승천한 후에는 자신이 맡았던 역할의 의미가 얼마나 막중했는지 깨닫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누구도 아닌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수하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훈련 양육시켜야 합니다. 그들에게 물려줄 가장 중요하고 첫째가는 유산도 믿음이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체험으로 알게 된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세상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오히려 당당하게 자랑하면서 증언해야 합니다.

 

성탄절의 의미가 한 마디로 무엇입니까? 하나님 그분이 어느 누구도 아닌 천하의 죄인인 바로 나의 죄를 사해주려고 직접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사야 선지자 예언대로 나와 임마누엘 해주러 오셨고 또 십자가에서 그 일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천국 입장권을 나눠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생도 하나님이 완벽한 각본을 미리 마련해서 지금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당신께서 거룩하게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 생각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고난이자 실제로 큰 고통을 겪더라도, 특별히 올 한해 각자에게 요셉처럼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겪었어도 결국은 천국에 마련된 우리의 아름답고도 영광스러운 장막으로 이끌고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그 절대적 진리와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면 어찌 일 년 365일을 성탄절로 지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2/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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