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는 자기를 사랑하면 안 되나요?

 

[질문]

 

평소에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서 여쭤봅니다. 왜 성경에는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은 하나도 없고 자기를 부인하라고만 하는지요? 자기도 잘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잘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세속적인 욕심을 다 끊어야 하고 성경 계명에 어긋나는 것도 절대 하지 말라는 뜻인지요? 세상과는 완전히 담을 쌓으라는 것 같아서 항상 부담되고 때로 죄책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답변]

 

성경에 자기 사랑이 없는 까닭

 

말씀하신 대로 성경에 자기를 사랑하라는 직접적인 말씀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도 하나님께 하듯이 사랑하라고 명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은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아무런 노력이 필요 없이 저절로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성경이 구태여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오히려 너무 자기만 사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최초 인간의 그런 자기 사랑이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진노 아래 두게 된 원죄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사탄의 꾐에 넘어가 자기를 하나님보다 높이고 그분이 필요 없다고 부인하는 바람에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영적인 죽음이 그들과 그 모든 후손에게 임했습니다.

 

영적인 죽음이란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청지기로 삼아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게 하려고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당신의 형상이 왜곡 파괴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서로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을 만큼 순수하게 사랑했던 아담과 이브는 자기 잘못을 서로에게 전가하며 틈새가 벌어졌습니다. 서로를 향해 수치심을 느꼈고 까닭모를 두려움까지 생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은 받지만 영적인 죽음이 인류의 숙명이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태생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된 모습을 띄게 됩니다. 자연인 상태에선 하나님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분을 완악하게 거역하게 되었습니다. 평생토록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만을 추구하는 탐욕적 이기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농간 아래 놓인 세상은 인간끼리 시기 질투 모함 경쟁만 일삼는 악의 도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런 인간 본성이 깨끗이 사라지고 온전히 거룩해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 본성은 남아 있기에 더더욱 자기를 사랑하라고 권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에 일부 교회가 세상을 향한 욕심을 완전히 죽이라고 권면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기에”(창3:6) 따먹고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도 그들의 그런 생각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데 하나님이 아닌 세상 즉 사탄으로부터 온 것”(요일2:16)이라고 정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라는 것은 온전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질문자께서 의아해 하듯이 자기 부인이 세속적인 욕심을 다 끊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6:10)일 뿐이지 신자가 돈을 열심히 버는 것은 결코 죄도 아니며 자기 사랑만 하는 모습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방법으로 벌어서 그분의 뜻과 방법에 따라 쓰면 됩니다. 재물을 불쌍한 이웃에게 헤아리지 말고 후히 나눠줌으로써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신자도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이 땅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등지고 거역한 것이 가장 큰 죄임을 절감하고 그분만을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 실천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따지면 타락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파괴되었던 하나님의 형상이 창조 당시로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나 이제는 그 형상을 성령의 인도에 따라 회복하려는 소망과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바꿔 말해 자기만 높이려던 자기 사랑을 없애고 그분을 가장 먼저 최고로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자만이 참된 자기 사랑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신자도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단 불신자 시절의 사랑과 다른 참된 자기 사랑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 질문자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이웃에게도 참 된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럼 불신자와 신자의 자기 사랑이 어떤 면에서 다른 것입니까?

 

불신자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기적 탐욕적 자기 사랑을 합니다. 이웃도 안중에 없습니다. 자기가 제일 잘났기에 하나님도 전혀 필요 없으며 그분을 거역하는 것에 전혀 죄책감이 없습니다. 간혹 자기 소유 중에 남는 것으로 불쌍한 자를 도와주는 적선은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이미 잘나고 잘났다고 여기는 자기를 인간 세상에서 통하는 육신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더 치장하여서 자신의 우월함을 이웃 앞에 과시하려 듭니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을 지적하는 일에는 달인이 됩니다. 한마디로 자기만 사랑하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됩니다.

 

신자의 사랑은 이와 정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세상의 도덕과 종교에서 말하는 이타적 사랑을 하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불신자 중에도 평생을 자선 사업하거나 나름대로 이타적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꽤 있습니다.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근검 절제하는 삶을 삽니다. 누가 봐도 법 없이 살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밖에서 그분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인간이 고안한 철학 윤리 종교에만 의존하기에 불완전하고 부족하며 상대적이고 때로는 하나님께 죄가 되는 인간적인 선행일 뿐입니다.

 

반면에 신자는 하나님 안에서 자기 사랑을 해야 합니다.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구원을 얻은 바탕에서 자기 사랑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탐욕적 이기적으로 오직 자기만 사랑했기에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이었으나, 예수님이 내 모든 죄 값을 대신 감당하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맞바꾸어서 새 생명으로 거듭났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간섭으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이후로는 성령님이 신자에게 평생토록 내주하십니다. 신자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령님이 보호 인도 주관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부름 받아서 쓰임 받는 그분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주님께 순종함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이 땅에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불신자 시절에는 이 땅에 아무 목적과 계획 없이 우연히 버려진 존재로 죽음으로 그 실존이 끝이라고 믿습니다. 신자란 자기는 하나님이 세상에 단 한명만 있는 걸작으로 그분의 지으신 너무나 고귀한 존재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또 당신이 지으셨기에 그분이 평생을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양 일대일로 친밀하게 교제 동행해주실 것이고 이 땅의 생을 마치는 순간에는 부활 승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믿습니다.

 

따라서 신자의 자기 사랑은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 안에서 정확히 깨달아 확립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불신자 시절에는 오직 자기만 높이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사랑에 불과했습니다. 자기 교만이자 자기만 자랑하는 썩어질 헛된 자기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는 자기를 세상에 하나 뿐인 너무나 귀하고도 소중한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인식한 바탕에서 자존감이나 자긍심이 높아지는 자기 사랑입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연약하고 어리석고 죄 많음을 철두철미 확인하고 예수 외에는 소망이 없음을 절감했기에 하나님 앞에 한 없이 자기를 낮추게 됩니다. 이웃도 하나님의 긍휼 없이는 한시도 제대로 살 수 없음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절감했기에 진정으로 그들을 불쌍하고 애통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웃을 나 자신의 인간적인 의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받아 누린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더 빨리 소개하고 나눠주고 싶어집니다. 따라서 이웃 앞에서도 결코 자기 잘남을 자랑할 수 없으며 대신에 자기를 한 없이 낮추게 됩니다. 이제는 남의 눈의 티끌은 보이지 않고 자기 눈의 들보만 먼저 정확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비로소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요컨대 죄에 찌든 인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을 알아야만 온전한 자기 사랑을 할 수 있고 또 이웃도 진정한 사랑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된 후로는 더더욱 자기 사랑을 따로 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 신분 소속은 이미 바뀌었고 현재도 그분의 권능과 은총을 받아 누리고 있으며 장래에는 부활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 진리와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바로 신자의 자기 사랑입니다. 그래서 신자더러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듯이 이웃도 그렇게 사랑하라고 성경은 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명하신 자기 부인의 뜻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막8:34도 같은 상황에서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셨음)

 

자기를 부인하라고 직접적으로 명령하신 이는 예수님입니다. 주님이 무슨 뜻으로 그 말씀을 하셨는지 정확히 살펴봐야 합니다. 우선 ‘이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앞에서 있었던 어떤 일이 원인, 배경, 근거, 전제 등이 되어서 이 권면을 하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앞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주님을 메시아이자 독생자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런 믿음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고 음부를 이기는 권세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주님은 “이때로부터” 비로소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을 것을 예고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성질 급한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고 간곡히 만류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꾸짖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상기의 권면을 했습니다.

 

이제 본문의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의 문맥 안에서의 뜻이 밝혀졌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막은 것 즉, 하나님의 일은 안중에 없고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한 이유가 바로 자기를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역으로 사람의 일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여 실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어서 제자들더러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좇으라고 명했습니다. 당시의 처형관습에 따르면 예수님이 그랬듯이 죽임을 당할 사형수가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단순히 신자가 감당해야 할 현실의 고난이나 세상에서 억울하게 당하는 손해나 핍박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하고자 하는 자기 부인은 분명히 당신처럼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서 처형을 당하는 것입니다.

 

부인해야 할 대상이 ‘자기’입니다. 자신의 욕심, 세상의 유혹, 재물, 권력, 명예가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없애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탐심 재물 죄악을 죽이는 모습이 될 수 있지만 어쨌든 자기 자신 전부를 죽여야 합니다. 쉽게 말해 베드로더러 불신자 시절의 믿음이나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온 믿음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상의 어떤 핍박도 견디며 주님의 십자가 순교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적극 만류한 것은 너무나 선한 일입니다. 제자가 스승의 죽음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서 세상의 재물 권력 명예를 탐한 것도 아니며 죄의 유혹에 넘어간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줄 정치적 현실적 메시아이길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인간적 생각이었고 그 생각을 부인하지 못했기에 자기를 부인하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이 직접 자기 부인을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먼저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더 자세한 보충설명도 따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25,26절)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바로 자기 부인의 참 뜻이 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개인적인 욕망 죄악 이기심을 죽이는 도덕적 종교적 차원의 의미와는 뜻이 안전히 다릅니다. 성경 말씀을 문맥 안에서의 뜻부터 정확하게 찾아내지 않고 자기가 가진 지식 선입관 편견으로 단순히 그 한 구절만 따로 떼 내어서 어림짐작한 탓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성경해석에서 반드시 없애야 할 최악의 습관입니다.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요하게 첨언할 사항은 주님이 말하는 자기 부인이야말로 바로 신자의 참된 자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천하 죄인이 예수 십자가 은혜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분의 동역자가 되었다는 새로운 정체성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신자의 자기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자신이 세상에서 불려 나와 평생을 두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영광을 기리는 것이 신자의 자기 사랑입니다. 주님이 가셨던 길을, 비록 골고다 언덕 처형장이라도, 그대로 따라 걸어가는 것만큼 귀한 인생이 없습니다. 비천한 인생으로 감히 주님 가신 길을 똑같이 걸어갈 수 있는 자신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신자의 자기 사랑의 절정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인간적 의리만 앞세웠고 또 현실적 메시아만 기대하여 주님께 야단맞았던 베드로도 성령의 거듭난 은혜로 십자가 죽음에 동참해 순교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자신이 주님처럼 십자가에 바로 달릴 만한 자격이 전혀 없으므로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신자로서의 진정한 자기 사랑 즉,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바치는 자기 부인을 이룬 것입니다.

 

5/3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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