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4:23) 사탄의 자식이 된 일부 한국교회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4:23)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임입니다. 단순히 기독교라는 종교의 지역적 단위가 아닙니다. 건물, 정관, 교리, 교단, 직분 등이 교회에 필요한 요소이긴 해도 교회를 구성하는 본질은 아닙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한 베드로와 동일한 신앙을 갖고 또 실제로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말하자면 다른 종교와 구별짓는 또 다른 종교의 조직이라기보다는 세상 사람과는 정반대의 생활 방식을 공유한자들끼리 서로 힘을 합쳐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주일에 특정 장소에 모여 드리는 예배가 그 공동체를 하나로 결집하는 근간이긴 하지만, 주님이 세상에서 따로 불러내어서 당신을 따르도록 한 사람들의 실제적인 현실 삶들의 결집체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에 살았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에 행하신 일을 간략하게 셋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자 개인은 물론 그들의 모임인 교회는 반드시 또 최소한 이 세 가지 일은 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먼저 회당에서 가르쳤습니다. 주님은 구약성경을 정확하고도 완전하게 재해석하시고 또 그대로 실제 삶에서 실현하는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율법의 문자와 형식적 제의에 묶여 있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정신을 알게 해준 것입니다. 교회의 첫째 소명은 성경교육입니다.
둘째는 천국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가 주님이 선포하신 첫 메시지였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사탄에 미혹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예고했고 그대로 기꺼이 실행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관해 가르치고 각 고을에 흩어져 전도하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교회의 둘째 소명은 전도와 선교입니다.
셋째로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은 불치병과 불구를 완전히 고쳐주고 죽은 자도 살리셨고 귀신들린 자를 회복시켰습니다. 병 외에 약한 것, 사마리아 여인 같이 정신적으로 상처가 많은 자들도 진리의 말씀으로 상담하여 치유해주었습니다. 세리나 이방인이나 창녀 등과도 진정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마음의 쓴 뿌리를 제거해주었습니다. 교회의 셋째 소명은 지역사회와 소외딘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역의 대상과 순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교육은 이미 예수를 주로 영접한 신자들에게 구원의 의미와 하나님의 통치원리에 관해 알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전파는 주님에 관심이 있는 자들을 구원으로 초대하는 일입니다. 백성의 병과 약한 것을 고쳐주는 것은 완전한 불신자로 살아 역사하는 주님의 사랑을 체험케 해서 예수님에 대해 마음 문을 열게 하는 일입니다.
그 순서는 어떻게 행해졌습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세 가지 사역이 함께 이뤄졌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치유가 먼저 있고 다음에 전도와 교육이 따랐습니다. 산상수훈의 경우도 주님께 각종 병을 치료 받은 무리들이 모이자(4:23-25), 먼저 팔복 강화로 천국 백성이 되라고 초대한 후에(5:1-12),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율법을 풀어서 설교해주었습니다.(5:13-7:29)
작금 한국의 교회들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가장 먼저 지역사회의 불쌍하고 소외된 계층을 대상으로 구제하고 치유해야 함에도 거의, 아니 아예 행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전문기관에 전부 맡겨버립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와 현실적 상황이 바뀌었고 또 교회는 육신적 치료와 현실적 구제를 하는 곳이 아니며 영혼을 구원하는 소명을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신자들의 마음을 예수님과 기독교에 호감을 갖게 만드는 일을 전도에 앞서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제 발로 교회로 나오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호감을 갖지 않은 상태에선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사정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의 세상보다 더 추한 부정과 스캔들로 반감만 키우고 있으며 벌써부터 가장 인기 없고 신뢰가 가지 않는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신자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던 초대교회의 모습은 눈을 닦고도 찾기 힘듭니다.
거기다 성경의 진리조차 온전히 가르쳐지지 않습니다. 순전한 십자가 복음은 실종되고 세속 철학과 인본적 윤리와 타협 조정 왜곡된 변종 복음만 만연합니다. 교회와 목사에게 충성하는 아부꾼을 양성하고, 정서에 호소하여 일시적 위로를 제공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화려한 건물과 함께 갖추고서 현실적 복을 판매하는 종교 장사치로 타락되었습니다. 교회가 반드시 행해야 할 이 셋 외의 종교 장사를 위한 온갖 다른 일들에 매진합니다.
교회는 주님처럼 가장 우선적으로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가 위치한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먼저 찾아가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지 않으면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으며 하나님이 외면할, 아니 심판하실 것입니다. 최소한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갖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할 자신이 없으면 교회 안에 성경 진리라도 제대로 가르쳐져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만이라도 순전히 선포되면 진리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성령의 권능이 역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교회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종교를 팔아먹을 대상인 교인들의 숫자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늘리는 일입니다. 전도라는 거룩한 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은 기독교 소비자를 찾는 것입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고 말씀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합니다. 다른 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행할 일은 이웃 구제가 가장 먼저라고 아니 전부라고 바로 교회의 주인이자 머리되신 예수님이 선언하셨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통탄스럽게도 한국교회는 이웃 사랑을 최우선 계명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조직체 교회와 인간 목사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것으로 둔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가장 먼저 이웃 사랑을 행해야 함에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장사치만 배가 불렀던 성전의 타락상과 한국 교회의 실상이 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그나마 구제와 선행을 열심히 행했습니다. 주님은 그런데도 형식적 종교 관습에 묶여 있다고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저주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일부 한국 교회에는 그보다 더한 사탄의 자식이라는 저주의 말씀이 틀림없이 임할 것입니다.
1/22/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