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0:10,11 진짜로 본받을 만한 기도(1)

조회 수 416 추천 수 14 2011.12.20 05: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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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본받을 만한 기도(1)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30:10,11)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것은 신자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어떤 면에서 그러한지 구체적으로 말하라면 잘 모릅니다. 자기를 죽이려 쫓아다닌 사울을 거꾸로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두 번이나 맞았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인간이 죽일 수 없다고 살려준 사실만 기억합니다.

물론 그 사건도 당연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의 진면목은 오히려 그가 지은 시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의해서 읽지 않으면 쉽게 지나치기 쉽지만 곳곳에 보석처럼 그와 하나님과의 너무나 진솔한 대화가 숨겨져 있습니다. 노년에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적은 시편 30편도 그 좋은 예입니다.

두 절만 인용한 까닭은 신자들이 주된 관심을 쏟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 주께 도와 달라고 간구했더니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고, 베옷(슬퍼 한탄할 때에 혹은 환난으로 고생할 때에 입는 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으니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다른 한 편 우리도 가끔 그런 은혜를 받지만 과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자부심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그럼 다윗과 우리가 다른 점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 전에 새벽마다 아무리 눈물로 울부짖어도 슬픔이 춤으로 변한 적이 별로 없음은 또 어찌된 연유입니까?  

이 시편은 성전낙성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윗이 회상했던 자기 일생에 베풀어진 하나님 구원의 은혜가 이스라엘 역사에 간섭하신 것과 동일하다고 여겼습니다. 특별히 BC 165 년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짖밟혔던 성전을 다시 회복시킨 후에는 성전을 봉헌하는 찬양으로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다윗 개인의 일생에, 나아가 이스라엘 전 역사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 시입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구원의 세 종류를 열거합니다.(1-3절)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1절)하셨고, “나를 고치셨고”(2절),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3절)셨습니다. 현실에서의 모든 어려움과, 육신의 질병과, 영혼의 피폐함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존재, 삶, 일생에 일어나는 어떤 어려움에서도 그분만이 구원의 주였다는 뜻입니다.  

만약 본 시편이 이 정도로 그치면 일반적인 신자의 회상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평생을 마감하는 자리에 서면 누구나 하나님께 유사한 감사가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이 시편을 노년에 지었긴 하지만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시점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큰 질병에 걸려 고쳐주기를 간절히 구했고 또 기도한 대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9절) 무덤에 내려간다고 했으니 죽을병에 걸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살려달라고만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를 찬송하며 진리를 선포할 테니까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럼 또 우리가 흔히 하는 서원 기도와 같은 것입니까? 이번 어려움만 해결해주면, 이 병에서 고쳐만 주시면 정말 신자답게 주님 뜻에 순종하며 살겠으며, 심지어 주의 종이 되겠다고 기도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아니 그 내용도 언뜻 동일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우리와 다른 점이 분명 하나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이 주님의 손해인양 따지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은 한 번 죽기 마련이며 인생의 나고 죽음도 오직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죽음 앞에 겸허하게 순종하는 것이 믿는 자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거기다 신자는 죽고 나면 천국으로 갈 것이니까 본인에게는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유익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감히 자신이 죽고 나면 아무 유익이 없고 주를 찬송하고 진리를 선포할 자가 한 명 줄어버리니까 하나님 쪽에선 큰 손해이지 않느냐는 투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당시 상황에선 다윗만큼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고 그 진리를 올바르게 선포할 자도 없었습니다.

이제 그와 우리의 간구의 차이를 구별하시겠습니까?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큰 손해가 될 것이라는 다윗의 확신과, 그저 평범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 우리의 습관적인 믿음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 그렇다면 다윗의 당당함도 크게 무례한 것은 아닌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의지적으로 믿음을 크게 키우면서 담대하게 선포하는 어투로 기도하면 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당당히 간구할 수 있다는 것은 평소에 늘 그렇게 해왔거나, 최소한 그렇게 할 준비와 헌신이 충분히 되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 그래서 그 응답도 유효한 것입니다. 변소 갈 때와 올 때 표정이 다른 모습의 서원처럼 되어선 아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야말로 하나님께 무례하다 못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도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6절)라고 무사할 때에 영적으로 큰 교만에 빠졌음을 먼저 진정으로 회개했습니다. 또 그로 인해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7절)라고 모든 잘못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신다면 그런 잘못은 결코 범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죽게 되면 세상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아주 약해지며, 그분의 진리가 선포되는 일이 크게 줄 것이라고 담대히 말했던 것은 어떤 과장, 가식도 없이 진심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모세나(출32:32) 바울(롬9:3)이 동족의 구원을 위해 자신은 음부에 떨어져도 좋다는 기도를 역으로 바꾼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이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 평생에 한 번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다는 온전한 뜻도 바로 이것입니다. 단순히 그분의 약속을 되풀이해서 읊고서 약속을 지켜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언약 자체가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 당신의 사랑으로 일방적으로 베푸신 것입니다. 당신의 성품에 비추어 영원토록 변개, 수정, 가감이 없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바꿔 말해 신자 쪽에서 언약을 이뤄달라고 구태여 요구할 필요는 전무한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가 진짜 점검해야할 측면은 그분의 언약 백성답게 살고 있는지, 그분의 은혜와 권능을 누릴만한 상태가 되어 있는지 여부입니다. 다윗처럼 당당하게 나의 간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하나님 손해라고 따질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언약이 실현된다는 뜻입니다. 그전에 약속대로 하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손해이지 않습니까? (그분은 당신의 자녀를 위해 얼마든지 손해를 감수하시지만, 그렇게 하면 바로 우리의 손해이기에 그러지 않는 것입니다.)

11/16/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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