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92-94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큰소리칠 수 있는가?

조회 수 297 추천 수 12 2012.03.09 01: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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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큰소리칠 수 있는가?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시119:92-94)


본 기자는 고난 중에 멸망치 않고 구원 얻어 살게 되었음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고난에서 구원 받은 경로가 흥미롭습니다. 고난 중에 주의 법이 자신의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의 법대로 따랐더니 고난이 끝났더라는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모세오경 토라를 찬송하는 시입니다. 본 시편에만도 하나님 말씀의 다양한 특성들을 대변하는 여러 단어가 등장하지만 본문에선 법 혹은 법도라고 했으니 더더욱 율법을 의미합니다. 또 율법이란 신자가 지켜야 할 여러 도덕적 종교적 계명들의 집대성입니다.

그럼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고난에서 건져주는 이는 물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동시에 신자의 어떤 신앙행위가 전제 혹은 수반됩니까? 간절한 기도나 굳건한 믿음의 인내입니다. 사방이 막힌 가운데서도 주를 찾고 또 찾으면서 믿음으로 견디었더니 주께서 구원을 맛보게 했다는 감사가 나오는 것이 통상적인 경우 아닙니까?

큰 환난이 닥치면 신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끝까지 인내하는 자는 믿음이 상당한 수준입니다. 대개의 경우는 조금 그러다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면 인간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일부 편법 혹은 불법을 범해 세상과 타협하여 자력으로 종결지어버립니다. 그 속내는 하나님도 나의 너무나 딱한 사정을 아시니까 눈 감아 주시겠거니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종내 믿지 못해 수차례나 굽은 길을 택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자는 기도하고 인내하는 정도를 넘어서 고난 중에도 주의 법도를 성실히 지켰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법대로 살면 고달픈 일이 안 생겼다든지, 혹은 법대로 살았으니까 보상으로 고난에서 구해주셨다는 뜻도 아닙니다.

우선 그에게 고난이 닥쳤으니까 첫째 진술은 틀린 것입니다. 바울이나, 다윗이나, 아브라함이나 성경의 믿음의 위인치고 고난을 겪지 않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믿음의 용도는 고난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둘째 진술도 결과적 모습으로는 분명 그럴 수 있지만, 법대로 사는 것이 자신의 즐거움이 되었다고 하니까 법을 준수하는 동기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예컨대 고난 중에 성전 제사를 율법대로 다 수행하려면 솔직히 더 괴롭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즐겁게 행했다는 것입니다. 평소 법대로 사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결론에 이릅니까? 고난이 닥치자 법대로 산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많든 적든, 커든 사소하든, 자주 오든 뜸하든 전혀 상관없이 법도를 지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던 것입니다. 선하고 의롭게 살면 자연히 즐겁지만 조금이라도 악하거나 추한 길로 빠지면 즐거움은 사라지고 괴롭더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궁핍해도 주님과 교제 동행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쁘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신자가 주의 법도대로 살면 세상에선 고난이 당연히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사는 것이 고난이 없어지는 것보다 더 즐겁더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주님의 법대로 살다보니 어떤 고난이 닥쳐도 고난처럼 여겨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고난에 대한 생각을 긍정적 낙관적으로 바꿔먹기로 결단하여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에서 건짐을 받으려고 세상과 타협하는 일은 죽어도 시도조차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계속되더라도 주의 법을 기꺼이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고통도, 현실적으로 조금 불편하긴 해도, 이미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비유컨대 살을 빼고 건강을 지키려 체육관에서 운동하면 솔직히 힘들고 귀찮긴 합니다. 그러나 운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건강을 해치는 일은 죽어도 싫고, 대신에 건강하게 살려고 간절히 소망하는 자라면 그 귀찮음과 불편함은 전혀 고통이 아니게 됩니다. 나아가 차츰 운동하는 그 자체의 재미에 빠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라는 마지막 구절입니다. 지금까지 설명과 조금 상충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주의 법도를 지킬 테니까(조건) 구원해 달라는(보상) 것처럼 들립니다. 아닙니다. 이해하기 쉽게 상기의 운동과 건강의 비유를 다시 적용해 봅시다.  

“주의 법(운동)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비만)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운동)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계속 할 테니) 주께서 이것들로(운동이)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운동)를 찾았나이다.”

주의 법(운동)은 주께서 멸망(비만으로 인한 질병)에서 구원해 주려고 주가 만드신 것입니다. 운동을 안 하면 자연히 건강이 약해지듯이, 주의 법도를 지키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멸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운동 안하면 병이 오듯, 주님과 교제 동행하지 않으면 멸망이 온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유일한 길은 주의 법도를 지키는 것임을 확신하기에 그렇게 살았고 또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아주 즐겁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마지막 절도 당장 고난에서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외치기보다는 내가 주의 법도대로 살고 있으니 구원도 마땅히 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현실에 문제가 다 없어져 지금 편안하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현재의 고난 때문에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아침저녁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하면서 불안에 못 이겨 또 다른 대책을 마련하려는 바보는 없지 않습니까?

사람이 진짜 살고 죽는 일은 현실의 고난과 구원에 달리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영적 교통이 끊기면 멸망이 임합니다. 그분과 말씀과 기도로 교제는 물론 그분 뜻대로 살고 있다면,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더 이상 현실의 고난에 대해 염려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신자로서의 본 기자의 당당함을 엿볼 수 있습니까?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마치 “나는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같은 뉴앙스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평소에 주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현실의 고난에서 안 구해주시면 하나님의 약속이 틀린 것 아닙니까?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럴 리는 없지 않습니까?”처럼 말입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법도를 지켰으니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나를 구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신자로서 할 바를 다하기만 하면 나머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거기서도 하나 더 나아갑니다. 당신의 뜻대로 사는 것만이 신자의 유일한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의 다른 것을 하나님께 요구할 이유도, 필요도, 가장 중요하게는 자격이 전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복적인(잘 믿으면 환난이 없다는), 율법적인(믿음과 고난이 조건과 보상의 관계라는), 신앙은 두말 할 것 없이 틀린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만 하면 나머지는 주님이 다 책임져주신다는 믿음도 너무나 지당한 것입니다. 그보다 주의 법도대로 사는 것 자체가 진정한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바꿔 말해 그러므로 따르는 세상에서의 핍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더 이상 환난이 아니어야 합니다.

2/23/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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