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영적인 아버지인가?

조회 수 3643 추천 수 88 2006.02.17 16:04:19
아래 질문도 어떤 분이 이멜로 개인적으로 질문해 오신 것이지만 일반적이고도 아주 흥미로운 주제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질문]

한 가지 delicate 한 문제가 있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목회자가 회의 석상에서 그리고 설교 중에 자기 자신을 “영적인 아버지”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과연 사람에게 (개신교 목사에게) 영적인 아버지라는 표현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요? 영적인 지도자라면 몰라도 영적인 아버지라는 표현이 자꾸 맘에 걸립니다.

성경에 “영적인 아버지”라는 표현은 단 한번 나오더군요.

“우리를 낳아준 아버지가 견책해도 우리가 그를 존경한다면 영적인 아버지께 복종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히브리서 12장9절-공동번역)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히브리서 12장9절-개역개정)

[답변]

우선 그 목사님께서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 말씀을 하셨는지 설명이 안 되어 있는데다, 또  어떤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본인이 아닌 이상 정확하게 알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질문자님께서도 이미 생각해 본대로 성경에 나타난 의미에 따라 과연 그렇게 주장해도 합당한지 아닌지는 추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히브리서 12:9의 영의 아버지(the Father of spirits)는 바로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목사님이 이런 의미로는 결코 그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 목사님이 이 말씀의 뜻처럼 교인들에게 어떤 징벌을 가하면서 하나님 대신에 벌을 주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면 정말 큰 일입니다. 제발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신에 목사님은 아마도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고 한 말씀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바울은 사실상 자기를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영적인 아버지”가 된다고 말한 셈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네 개의 당파(1;12)가 있을 정도로 분쟁이 심했습니다. 성도들을 실질적으로 양육하는 이는 하나님이신데(3:7) 하나님의 사역자에 불과한 인간 지도자를 추종하고 경배했었습니다. 아직 영적 분별력이 미숙한데다 인간적인 이기심과 시기심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적 성장의 진정한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고 당파의 주역이 된 자신과 아볼로는 단지 그분의 종이란 사실을 강조했습니다.(3:8,9)

이어서 간곡한 어조로 인간적인 교만과 분파주의를 버리고 화합하여 일치될 것을 권합니다.(4:1-21) 그런데 자신이 다른 지도자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입장에서 그 권고를 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영적인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설립자(교회를 낳은 아버지)인 자신의 위치와 특권을 강조하기 위한 뜻이 아니라 부성애적 사랑에 바탕을 둔 표현이었습니다.

바울이 “일만 스승”과 “많지 않는 아비”를 대비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말씀을 교리에 비추어 가르치기만 하는 목회자는 얼마든지 많지만 정말 아비의 심정으로 성도의 유익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한 사람씩 따뜻하게 참 사랑으로 섬기는 목자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0장에 예로든 것 같은 선한 목자는 바울 당시나 지금이나 아주 드문가 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자신을 스스로 선한 목자라고 높이는 표현은 더더욱 아닙니다. 지금 서로 교만해지고 시기심으로 분쟁에 휩싸인 고린도 교인들의 상태가 너무 안타까워 정말 아버지의 심정으로 간절하게 권한다는 뜻입니다. 감정적 동정이나 율법적 훈계와는 거리가 먼 권면입니다. 그 바탕에는 아주 따끔한 질책과 너무나 넓은 자비가 동시에 깔려 있습니다. 실제 아들에게 하는 아버지의 훈계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바울이 왜 이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답변은 다 나온 셈입니다. 정말 바울과 같은 입장이라면 그런 표현을 써도 되겠습니다만, 그래도 고린도 교회의 예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질문 가운데 “회의석상에서 설교 중에 주장하고 있다”라는 말씀이 자꾸 신경 쓰이게 합니다. 자주 사용하여 마치 목사는 다 그렇다고 주장하거나, 스스로 자기를 높이려는 시도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습니다. 또 아비는 아들을 알고 아들도 아비를 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구태여 서로 아비나 아들이라고 주장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영적인 권위는 지도자가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를 때에 자연적으로 세워지는 법입니다.  

자신은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오직 복음의 진리를 정확하게 가르치겠다는 헌신을, 또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고 권하는 열정과 정말로 자기 아들 같이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심정을 강조하기 위해 목사님들이 “영적인 아버지”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있을 것입니다. 진짜 진짜로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 의도한 뜻이 아래와 같은 경우에 해당된다면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목사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 복음을 전한 전도자의 입장이 아니라 구원을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과 힘을 발휘했다. 자기가 아니었다면 결코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복음을 잉태케 해 준 아버지다. 바울의 표현대로 하자면 복음의 씨를 심고 물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라게 했고 구원 받을 믿음을 실제로 목사가 심어 주었다.

        목사의 영적인 권위는 신성불가침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제약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목사부터 잘 섬겨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도 많이 받는다. 하나님을 경배하기 이전에 인간 목사를 경배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영적 지도와 권면과 징계를, 성경 말씀을 가르침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아버지의 명령으로 알아서 절대 순종해야 한다. 나아가 목사가 하는 어떤 일에도 반대나 불만이 있어선 안 된다. 그리고 정말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듯이 모든 면에서 목사를 정성스레 섬겨야 한다.

한마디로 바울은 하나님의 종의 입장에서 오직 성도의 유익을 위해 섬기고 또 성도를 하나님 안에서 거룩하게 세우려는 애끓는 심정에서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에게는 말씀으로 가르치거나 사랑으로 섬기거나 간에 정말 혼자서 일만 스승을 감당하고도 남을 열정과 정성과 진심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목사라고 해서 바울과 같은 그런 열정과 사랑이 진실로 있다면 이런 표현을 사용 못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단 성도더러 목사를 섬기라는 것(인간 숭배의 뜻이라면 거론될 필요도 없이 안 됨)이 아니라 목사가 성도를 섬기겠다는 헌신이 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진짜 그렇다면 목사가 구태여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성도들이 저절로 목사를 존경하고 따를 것입니다. 또 진정으로 그런 목사라면 자기 스스로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론적인 제 답변에 비추어 구체적인 전후 사정을 잘 아시는 질문자님께서 스스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2/17/2006

사라의 웃음

2012.10.29 22:02:45
*.109.85.156

오직 십자가의 진리를 알려주려, 그리하여 모든 성도가 구원을 얻기를 앉으나, 서나 안타까이 기도하며 가르치는 그런 지도자, 자녀를 사랑하는 아비의 맘이 되어서 자나깨나 자녀들이 구원받기를 염원하는, 그래서 자신은 어떠한 오해를 받으나, 무슨 욕을 들으나 상관치 않고 오로지 예수님만을 전하는 그런 지도자가 참 흔치 않은 요즘 세상의 교회들인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처럼, 십자가의 진리만을 전하고 전하였기에, 하나님이 그 본심을 다 아시고 계시기에, 누가 뭐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만을 전하고 또 전하시는 목사님들이 이 땅에도 점점 더 많아지길 진심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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