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우리 중에 누가 제일 바리새인 같으냐?" '톰 허베스톨의 '불편한 진실, 내 안의 바리새인' 이란 책에 이런 질문이 나와있다. 이 질문 앞에서 나의 뇌는 본능적으로 두루 돌아다니며 누가 제일 바리새인 같을까? 라는 질문을 또 나에게 던지고 있다. 그 옛날 백설공주 엄마의 거울이 내 손에 쥐어져 있다면 무어랄까? 갈등 하나 없이 "바로 너!"라는 답을 주었을 것이다.
얼마전 담임목사님께서 '갈대'라는 시를 읽어 주셨다. 갈대가 속으로 운다. 어느날 너무도 흔들리며 서럽게 운다. 그러나 그 울음을 차가운 달빛에 의함도 아니고,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의함도 아니였다. 그 울음은 자기 혼자 그렇게 흔들리며 우는 울음이라는 내용의 시가 참 맘 깊이 머무른다. 우리 신앙인들도 늘 그런 울음을 우는 것 같다. 마치 베드로의 눈을 그윽하게 바라 보시는 예수님, 가야바의 뜰에서 그 모진 수모 다 겪으시며 그의 사랑하는 제자를 시선으로 놓치지 않으시고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빛 앞에 어푸려져 우는 울음이 갈대의 울음 같다.
오래도록 소원 하나 있었다. 우리 '그예다 가족' 은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처럼 지내기를 많이 소원했었다. 그래서 오래전 운영자님께도 이 소원을 말씀드렸었다. 어쩌면 귀한 말씀을 마치 토끼마냥 옹달샘에서 물만 먹고 돌아오기가 너무 죄송스러워 생긴 열망이 아닌가 싶다. 그런 소망의 맘이 깃들여져서 여러 댓글들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리 행동하는 나에게서 자꾸만 바리새인의 냄새가 난다.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 속엔 표범의 무늬처럼 지울 수 없는 인간의 죄성에서 스며나오는 말과 행동들이 너무도 많다. 다른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속에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는다 싶으면 판단도 잘하는 내가 실상 뒤돌아보니 모든 자욱마다 이 표범의 무늬뿐임을 이제야 조금 알아가는 것 같다.
"거울아, 거울아. 우리 중에 누가 제일 바리새인 같으니?" 라는 이 질문 앞에 이젠 답이 있다. 바로 나임의 해답을 이젠 안다. 갈대의 속울음처럼, 차가운 달빛 때문에 우는 울음도 아니고 매섭고 차갑게 몰아치는 바람 때문의 울음도 아닌 내가 바로 바리새인이고 내가 바로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임을 알기에 오늘도 흔들거리며 갈대처럼 운다. 그런데... 이런 나를 예수님은 시선 놓치지 않으시며 그윽하게 바라보시고 계심에 갈대보다 더 흔들리며 운다.
때문에 주님의 영광 가리우고 목사님의 사역에도 얼마나 많은
방해를 하고 있었음이 죄송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할례받은 입과 할례받은 머리로 정말 주님 입혀주시는 사랑으로
조용히 그예다 가족들을 예수님 안에서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