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사람앞에서 떳떳해지고 싶은 맘이 송글송글 올라오는 내 모습이 엿보인다. 배설물 이상일 수 없는 자신인 줄 잘 알면서 자꾸만 배설물에다가 이것 저것 색칠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반드시 뒤돌아 보아야만 아는 것, 그래서 늘 하나님 앞에 고개 떨구고 사는 것이 마땅하건만 자꾸만 떳떳해지려하니 문제인 것 같다.
시부님 기일이였다. 우리의 의견을 들어주어 형제들은 추도예배를 드려도 좋다고 했다. 좁은집에 다닥다닥 모여앉아 머리 조아리고 기도하는 남편의 형제들, 조상님께 절을 해야겠다며 상을 차리라는 주문도 없이 다소곳이 에배를 드리는 모습에 콧등이 찡하여졌다. 조카들과도 사뭇 친하게 지내는 우리 딸아이들은 벌써 한 아이를 교회로 인도했다.
일터에서 아무리 바쁘고 힘이 들더라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상냥함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모두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도록 기도함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렇게 살아가는데 나의 맘 속에서 뻐엉 뚫린 곳이 있다. 미국에서의 삶, 가장 처절하리마치 아픈 현실 속에서 부어주셨던 그 기쁨이 사라지는 것 같다. 잠을 잘 시간도 없이, 편히 앉아 밥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나날들 속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불어오던 사건, 사건들... 아이들조차도 이젠 기진하여 숨 쉬기도 어렵다고 투덜 거리던 일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하나님 생각만 하면 가슴이 터질 듯 기쁘고 설레던 시간들이였다. 하늘에 풍선 하나 띄워놓은 듯, 맘이 하늘로 올리운 듯 기뻐 어쩔 줄을 몰랐던 시간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인 것 같다. 고난을 견디어 내도록 곁에서 영차~ 영차~ 하시며, 나 보다 더 아파하시며 그렇게 응원해 주신 주님의 선물이였음을 이제 알 것 같다.
요즘 다소 편안해진 환경 속에서 내 맘이 부자가 되어간다. 부요하다 못해 점점 더 욕심이 발동한다. 좀 더 편안해지고 싶어진다. 병이 들어간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맘 속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이 탐욕을 가리우고 싶어서 아마 전도라는, 형제들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에게 전도하는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지려 하는 것 같다. 여러모양의 종교적 행위의 색채와 냄새가 짙어져 간다.
아무리 고달픈 현실이여도 연단 받으며 풍성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들이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곁에서 활짝 웃으시며 응원을 아끼시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현실이 너무 아파 울때면 그 넓은 품에 안아주시며 함께 울어주셨던 예수님이 오늘은 너무 그립다. 탕자처럼 아버지의 것을 챙겨 나의 기쁨 삼으려는 죄를 들여다 보며 아버지의 그 푸근한 품을 다시금 그리워한다.
늘 귀한 내면의 목소리를 들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작은 괴변과 사변...
탕자는 안이냐, 바깥이냐 하는 차이에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안에 있으면 자녀가 되는 것이고, 밖에 있으면 탕자가 되는 식이지요.
혹시 안에 있으면서 탕자로 착각(?)하시는 것 같아서... 헤헤~
농담반 진담반~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