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7:16~20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나의 장점이 무엇이고, 나의 단점이 무엇인지, 자신을 가만히 들여 다 보십시오.
만일 지금 나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현재의 내 모습은 다름 아닌 바로 내가 심은대로 거둔 것입니다.
내 성격이, 내 스타일이, 내 결정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나의 장단점이 어우러져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누구 핑계 대지 마십시오.
약한 자는 핑계를 대지 않습니까?
솔직히 자신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키십시오.
문제는 마음 속에 은근히 그래도 내 스타일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음 속 깊숙이 들여다보면 마른막대기보다 못하다고 기도 하면서도 그래도 내 정도만 되어보라고 합니다.
내 신앙 스타일, 내 삶의 스타일이 옳다고 그래도 고집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지금과 똑같은 내 모습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내 약점은 여전히 나를 괴롭힐 것입니다.
내 약점을 진짜로 솔직히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킬 때에 모가 난 부분은 비로소 둥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장점이 되어 나를 점점 더 신앙 성숙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 해보면 유유상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놈은 같은 것 끼리 만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악하면 악한 것끼리 만나는 것 입니다.
혹 부모 중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애가 친구 잘 못 만나서 저렇게 됐다고?
전혀 아닙니다.
그 애 부모 입장에서 생각 해 보십시오.
상대방 부모는 우리 애를 잘못 만나 자기애가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둘이 똑 같으니 만나는 것입니다
왜 머리 좋은 놈들은 꼭 사기꾼이 되는지...
사기꾼은 사기꾼끼리 만나고,
도둑놈은 도둑놈끼리 만납니다.
저거끼리 만나서 저거끼리 훔치고 사기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 더러움에 내어버려두사...(하나님께서 내리는 가장 무서운 징벌 중의 하나입니다)롬1
악한 것에서 악한 것이 나오고, 좋은 것에서 좋은 것이 나옵니다.
그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그러면 다른 측면에서 한 가지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을 잘 압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인격적인 씨앗을 심으면 영적인 열매가 열립니다.
영적인 것을 심고 육적인 것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으며, 육적인 것을 심고 영적인 것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보면 경제, 사회, 문화, 정치 각 분야 별로 씨앗을 심으면 각각에 해당하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또한 기도 말씀, 전도, 사랑, 찬양 등의 씨앗을 심으면 마찬가지로 그것에 대한 열매를 맺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자기의 심은 것을 생각지 않고 엉뚱한 것을 구하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빨리 죽는 경우입니다.
타인을 돕기 위하여 밤낮없이 일하다가 몸의 이상이 생겨 죽는 경우입니다.
세상적으로 예기하자면 저리 착한 사람을 저리 일찍 데려가다니 하늘도 무심하지
그렇게 말하지만
이 사람은 인격적인 씨앗을 심었으므로 훌륭한 인품의 사람이 되었지만, 건강에 대한 씨앗을 심지 않았을 경우 빨리 죽을 수 밖에 없겠지요.
물론 불의의 사고 등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은요.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씨앗을 심었는 지 생각하여 보고 자기가 원하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씨앗을 심지 않았다고 하면 그 열매를 얻기 위하여 그 씨앗을 심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하기에 오직 십자가에서 대신 죄를 감당해 주신 예수님만을 의지해 봅니다. 죄인으로선 어찌할 수 없기에 오시어 이런 죄인을 주님의 생명 보자기에 싸매어 주신 그 사랑 때문에 구원받았음을 늘 찬양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