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1~6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한명인 나사로의 중병 소식에도 이틀을 더 유하시고 나사로에게 가셨습니다. 나사로에게 가는 길이 얼마만큼 먼 지 모르겠지만 만일 한나절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라면 나사로의 중병 소식을 들은 그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이틀째 되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이틀 더 유하시고 나사로에게 도착했을 때에는 죽은 지 나흘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이 사건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가서 살리면 사람들이 사실 죽은 것 같았지만 혼수상태가 아니었나 하고 오해할 소지를 확실하게 없애기 위해서 죽은 지 나흘 만에 나사로에게 가셨던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 사건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사건임을 알았을까요?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분은 1분 1초도 예외 없이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가능한 일 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집중하셨고, 하나님께 너무나 예민하게 반응함으로 인하여 가능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헬라인이 와서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들여 달라고 하는 말을 제자들을 통해 들었을 때에 그 사건을 통해 자기의 죽음이 임박함을 바로 안 것처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틀 더 유하셨던 상황을 가만히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또는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가신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이틀 뒤에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로 칠 것을 제자들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을 모면하고 이리로 오자마자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대인의 감정이 가라앉을 수 있은 최소한의 기간인 이틀을 기다렸다가 여전히 상황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나사로에게로 움직이셨던 것입니다.
그런 사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나사로를 사랑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나사로를 살려주셔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갔던 것입니다.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여보면 어떤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는 삶이 곧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