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구절을 보며 자기가 주인인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고
차라리 예수를 영접하고 현실에서 고난받는 것이 낫다라고 이해했습니다.
생각으로도 죄짓는 인간이기에 예수님 말씀대로 행하면 결국 죽는 것이
결론이라고 생각하여 해당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될 것 같아 다음의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팔과 눈이 악한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악한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 예수님을 영접하여 자기 삶의 주인을 바꾸지 않는 한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다라고 받아들였습니다.
팔을 이용해 이웃을 해치면 팔은 도구일 뿐 실제로는 악한 자기 마음이 이웃을 해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맥적으로 마태 5장에서 예수님께서 분노를 품는 것이 살인이라고 명하시고 음욕을 품는 것이 간음이라고 명하신 말씀에도 부합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해석을 하는 것이 영해에 가깝나요?
이전 질답중에 한 형제님 답글이 제 생각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
두려운 마음에 질문드립니다.
우선 성경도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문학적인 저작이라는 인식부터 가져야 합니다. 문학적 저작이라는 것은 성경도 책 별로, 또는 한 책 안에서 문장별로 각기 장르가 다르므로 그에 합당한 해석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누차 성경 해석하는 법에 관한 책을 읽어보라고 강조하는 까닭입니다.
예수님은 마5:29-20에서 과장된 비유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주제를 강조하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문자적으로 눈을 빼고 손을 자를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스스로 고자가 된 자도 있습니다. 이런 기법을 사용한 말씀은 오히려 영해를 해야, 즉 그 비유적 표현이 함의하는 영적인 진리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이도 말이나 마음으로 짓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받아 들여야 한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이 정확한 해석이므로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에 인용하신 앞선 문답에선, 주님이 앞에서 설명한 진리를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든 비유에까지 굳이 영해를 시도할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제가 댓글을 단 것입니다. 성경해석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모든 성경 말씀에 심오한 영적인 진리가 숨겨져 있다고 보고 모든 말씀을, 그 단어 하나 하나까지도 무조건 영해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해석의 대표적인 신학자가 오리겐이라는 교부였는데, 그가 바로 앞에서 말한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입니다.
비유는 일종의 예화인 셈인데, 예화나 비유는 항상 설교에서 강조하는 진리를 보완 설명하는 용도이므로 그 세부적인 표현이나 단어에서 까지 심오한 의미를 찾아내는 영해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번 설명드렸듯이 "낮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는 속담(비유)에서 '낮'은 기억자의 모양만 상징 비유한 것입니다. 낮의 재질, 성능, 각도, 크기 등을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하는 법"이라는 책을 참조하라고 권면드린 것입니다.